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35화 (235/258)

< 외전 4. 덜 푸른 심장 (4) >

제퍼슨과 구단 사이의 갈등.

이 소식이 퍼져 나가며 밖에서 지켜보는 팬들도 점점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좀 사이가 소원해졌나 본데?"

"원래 구단주랑 이사가 바뀌면 내홍이 한 번쯤 있잖아."

"좋게 해결될 거야. 설마 제퍼슨이 팀을 떠나기라도 하겠어?"

팬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수와 보드진과의 갈등은 축구계에서 흔한 일이니까.

약간의 문제만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데 그것이 파국까지 치달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PSG, 제퍼슨 영입에 사활!]

[제퍼슨 매물로 올라왔나?]

[익명의 관계자에 의하면 첼시의 새로운 구단주는 제퍼슨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제퍼슨과 첼시 구단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

"이것 좀 보라고! 구단주가 제퍼슨을 정리한다는데?"

"빌어먹을 놈들. 팀을 흔들려고 아주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군!"

"이럴 리가 있나!"

"이딴 페이크 뉴스를 쏟아 내는 놈들은 당장 감옥에 처박아야 해!"

"빌어먹을 더 선 같은 새끼들!"

루머는 점점 구체적으로 변했다.

제퍼슨이 팀을 떠나지 않으리란 굳건한 믿음이 흔들렸다.

심지어 겨울 이적 시장에서 재계약 관련으로 선수 몇이 팀을 떠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제퍼슨인데."

"설마 구단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데 구단주 별명이 구조 조정 전문가라던데?"

"뭐?"

"설마 주급 체계 손보려고 제퍼슨을 내보내는 건가?"

"에이, 설마?"

루머들이 판치는 이적 시장 막판.

제퍼슨의 에이전트가 타 구단 관계자들과 만나고 있단 뉴스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반응은 뜨거웠다.

아니, 활화산처럼 당장 요동쳤다.

"빌어먹을 구단주!"

"지옥으로 꺼져 버리라고!"

구단주와 신임 단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기 중에는 단장과 구단주를 욕하는 피켓이 버젓이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첼시 서포터즈들은 연합하여 제퍼슨을 지지한다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첼시의 9번은 영원히 제퍼슨 리다!]

팬들의 비난이 심해지자 단장은 구단주를 찾아갔다.

"상황이 좀 심각한데요?"

당혹스러워하는 단장과 달리 구단주는 태연했다.

"협상은?"

"현재 제퍼슨이 맨시티와 개인 협상 중입니다."

"잘될 것 같나?"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대체 선수 영입해. 적당히 팬들이 만족할 만한 스트라이커로."

"네?"

"슬슬 우리도 언론 플레이를 좀 해야지."

[첼시. 제퍼슨 리와 갈등 표면화.]

[로만 구단주 사임 후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첼시, 주급으로 인해 제퍼슨과의 재계약 난항]

[세계 최고 연봉 축구 선수 제퍼슨 리, 첼시 운영에 부담.]

[첼시 관계자, '제퍼슨의 주급을 만족시켜 주려면, 팀의 중요한 선수 몇을 내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물론 절대 다수의 팬들은 구단의 여론몰이라고 지적했지만, 조금씩 다른 얘기가 흘러나왔다.

"구단 재정이 그렇게 안 좋아?"

"하긴. 겨울에 우리 선수 두 명이나 팔았지? 정작 영입은 없고 말이야."

"제퍼슨의 주급이······ 뭐? 75만 유로?"

"어마어마하고만."

"조금 부담스럽긴 하겠네."

"그래도, 제프라면 그 정도는 받고도 남지."

"근데, 이번 시즌은 아예 못 뛰잖아?"

"음!"

"부상으로 한 시즌 날리는 선수한테 75만 유로라. 그것보다 더 받겠다고 재계약에서 요구한 거 아니야?"

"어차피 광고도 찍고 돈도 많이 벌면서, 으음."

"헤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프가 우리한테 갖고 온 트로피가 몇 갠데?"

아주 소수의 반응이었지만, 제퍼슨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속에서 다른 반응이 튀어나온 것이다.

구단의 언론 플레이는 치밀했고 교활했다.

단숨에 여론을 뒤집고자 하지 않았다.

아무리 여론을 뒤집으려 해도, 절대다수가 제퍼슨을 지지하는 상황이 아닌가.

구단주의 의도는 명백했다.

조금씩 제퍼슨을 탓하는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

구단의 입장은 명확했다.

[첼시 신임 단장, '제퍼슨과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 재계약 논의는 계속하겠으나, 이대로라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언론플레이는 결국 제퍼슨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

"결심하셨습니까?"

보고 있던 뉴스에서 시선을 돌려 제크 팀장을 바라봤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끝내 결단을 내렸다.

"맨체스터에 저택부터 알아봐 주세요. 큰 집으로요. 운동 기구와 재활 기구를 다 들일 정도로 큰 집으로 말이죠."

"······알겠습니다, 제프. 새로운 도전이군요."

"뭐, 상황이 그리됐네요."

제크 팀장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진행된 협상을 마무리할 시간이니까.

하긴.

나도 후련하긴 하다.

맨시티의 제안은 달콤했다.

지금의 계약 조건보다 더 상향된 내용.

제크 팀장은 내가 조건을 수락하길 원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첼시에서 6년 동안 뛰며 나 역시 구단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는 것.

6년의 세월.

수많은 동료를 만났고, 좋은 감독을 만났으며, 수도 없이 우승컵을 들었다.

경기장, 런던의 거리, 클럽 하우스에서 만난 첼시 팬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간다.

어린이 팬도, 노년의 팬도, 그리고 웃으며 가셨던 할리 할아버지도.

나는 사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주급 삭감에 동의할 용의가 있었다.

나 역시도 부상 복귀 후 내 폼이 천문학적인 주급을 받을 만한지는 의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새로 온 구단주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전활 걸지 않았다.

'얼굴 한 번 못 봤다니. 우스운 일이군.'

팀의 재정이 어렵다고?

그래서 지금 내 주급이 부담스럽다면, 나에게 진솔하게 얘기했으면 됐다.

직접 만나서 말이다.

에이전트를 통해 일방적으로 주급 삭감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날 설득했어야 했다.

구단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언론을 통해 상황을 묘하게 만들었다. 마치 나로 인해 팀의 재정이 어렵다는 것처럼.

내가 팀의 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개인의 욕심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상황을 몰고 갔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날 원한다면, 나 역시 주급을 삭감하겠노라 생각하면서.

마지막.

단장의 인터뷰가 내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

축구계의 오래된 격언.

맞는 말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이 내가 팀보다 위대해지려고 느꼈다면.

'그렇다면, 떠나야지.'

속이 후련하다.

배신감? 뭐, 그런 건 아니다.

나도 바보가 아니다.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들이 그간 나와 관계를 맺은 보드진이 아니란 걸 잘 안다.

만일 로만 구단주가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니잖나.

새로 온 인도인 구단주는 실제로 본 적도 없으니까.

결정을 내리고,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이 사실을 누구한테 먼저 전해야 할까.

필마르크 감독?

아니면 첼시의 동료들?

아니면······.

-맙소사! 휴대폰 화면에 당신 이름이 찍힌 걸 보고 내가 어떤 생각한 줄 알아요?

살짝 들뜬 목소리.

-빌어먹을! 드디어! 드디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제프, 말해 줘요. 이제 결심을 내린 겁니까?

참.

세상사가 재밌긴 하다.

필드에서 만나면 늘 눈을 부라리면서 적의를 표하던 양반인데.

이렇게 반가워하다니.

나도 이 양반에게 대놓고 트로피는 내가 가져가니까, 집에서 쉬라는 인터터뷰로 멕인 적도 있지 않나.

그런 사람을 이제는.

"맨체스터에서 뵙죠, 보스(BOSS)."

-브라보! 6년의 짝사랑이 이뤄지네요. 맨체스터에서 만나죠, 제프.

***

맨체스터 시티.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절대 강자 중 하나.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찬란한 선수들을 수집했고, 과르디올라의 천재적인 전술과 지휘력에 힘입어 유럽의 챔피언에 가장 가까운 팀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불행한 시기에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차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살리에리처럼.

맨시티는 1인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

과르디올라의 지휘 아래 맨시티는 강력한 팀 중 하나로 우뚝 섰다.

다만 꼭대기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매 시즌 리그에선 아무리 잘해 봤자 2위가 한계였다.

[EPL 진기록, 승점 90점 고지를 넘겨도 준우승에 그치다! 맨시티, 승점 94점을 기록했음에도 리그 2위 확정! 첼시 승점 99점 우승!]

3년 동안 승점 90점을 넘기는 엄청난 성적을 거뒀다.

첼시는 승점 97, 99, 102점으로 그런 맨시티를 비웃기라고 하는 것처럼 우승을 달성했다.

억울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다른 리그였다면, 승점 90점 고지만으로도 우승이 확정이었으니까.

[맨시티의 꿈은 유럽에 있다.]

하나 맨시티 팬들은 리그보단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리그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몇 번 타이틀을 따냈으나, 챔스는 그러지 못했다.

'돈으로 축구를 하는 팀'이라는 조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챔스 우승이 필요했다.

맨시티가 리그의 강팀이 아니라 유럽의 명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챔스 우승컵이 있어야만 했다.

환상적인 선수단, 자금력.

거기에 최고의 감독 과르디올라.

그런데도 맨시티는 매년 번번이 쓴 물을 마셨다.

그들이 도저히 넘을 수 없던 벽.

첼시라는 절대적인 팀이 있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첼시에서 뛰고 있는 제퍼슨 리가 있었으니까.

[제퍼슨 리, 챔피언스리그 4강전 맨시티 상대로 해트트릭 폭발!]

챔피언스리그 8강, 4강에서 두 번이나 첼시를 만났다.

그때마다 제퍼슨은 맨시티의 심장에 비수를 쑤셔 박았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꿈을 짓밟는 잔혹한 플레이.

맨시티 팬들은 일심동체로 이렇게 외치곤 했다.

"우리 팀 레전드가 맨유로 이적해도, 제퍼슨만큼 밉지는 않을 거야."

"그 개자식은 빌어먹을 개자식이야."

"개자식! 영국에서 꺼져 버리길!"

"제발! 레알이나 바르셀로나로 가라고!"

"거길 가도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날지도 모르는데?"

"Holy Shit!"

시간이 흐를수록 맨시티의 열정은 식어 갔다.

환상적인 스쿼드를 구성해도 번번이 우승컵을 놓쳤다.

그러다보니 차츰 지쳐 갔다. 선수도, 스태프도, 보드진과 팬들까지도.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은퇴.

가브리엘 제수스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장.

만족스러운 대체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컸다.

리그에서의 경쟁력도 점점 약해졌다. 어쩌다보니 리그도 3위, 4위로 밀리기까지 했다.

"제기랄! 이번 겨울에 좋은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고!"

"공격수가 없어!"

"리그는 그렇다쳐도, 챔스를 또 이렇게 놓치겠다는 거야?"

"과르디올라! 제발 좋은 선수 좀 데리고 오라고!"

이제 이적 시장에서 맨시티는 선수들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하는 팀이 됐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사실 좋은 주급을 지급하는 상위권 팀은 꽤 많았으니까.

"맨시티? 거기 가면 돈은 많이 받지."

"근데 우승컵은 좀."

"솔직히 다른 빅클럽 가도 그만한 주급은 주잖아?"

선수들이 원하는 건 우승컵일 때가 많다.

맨시티는 번번이 결승선 앞에서 고꾸라지는 팀이 됐고, 월드 클래스 선수들은 그 점에서 맨시티를 꺼리게 됐다.

악순환.

제아무리 천하의 과르디올라도 어쩔 수 없는 악순환이 이적 시장마다 반복됐고, 이번 26-27시즌 겨울 이적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팀들과 달리 지지부진한 이적 시장을 보내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행보.

이제는 참을성을 잃은 팬들이 '과르디올라 아웃'을 외치며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나.

1월 29일.

이적시장이 끝나기 딱 하루 전.

[OFFICIAL]

제퍼슨 리, 맨체스터 시티와 역대 최고 조항 3년 계약으로 이적 확정!

그 누구도 믿지 못한 소식이 축구계를 강타했다.

< 외전 4. 덜 푸른 심장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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