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해가 서쪽에서 뜨는 날 (完) >
내가 잔디에 누운 순간.
거짓말 같은 휘슬 소리가 울렸다.
사실, 어떤 감정인지는 말하기 힘들다.
기쁘다.
그냥 기쁘다.
이게 우승에 대한 기쁨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우습게도, 멍청하게도, 이 순간에서야 나는 내가 축구를 해 온 의미를 깨달았다.
저기서 울고 있는 관중들이 이유의 전부였다.
관중뿐 아니라 필드 위에서 사람들은 다 울고 있었다.
"으어어어어엉!"
"허어어엉!"
자신이 월드컵 결승에서 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경기 전날 울먹거리던 팀 클라인은 어린아이처럼 꺽꺽대고 울고 있었다.
미국리그의 마초로 유명한 선수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짠하기보단 웃겼다.
그는 이런 순간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그저 축구의 변방리그에서만 뛰면서 운 좋게 트로피 몇 개를 얻으면 전부라고 생각했을 거다.
유럽이나, 빅리그 진출은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8강전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였고, 결승전에서도 제 몫을 다해 줬다. 물론 메시가 두 골을 터뜨리긴 했지만, 그건 팀 클라인이 아니라 캉테가 와도 바뀌지 않았을 사실이리라.
미국의 우승이 과연 가능했던 것일까.
물론, 아니 본래 역사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미국은 8강이 최대 성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성과라고 사람들은 표현했다.
하지만 이게 온전히 내 영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Don't worry!"
"흐어어엉!"
늘 소심했던 웨스턴 맥케니는 의외로 담담하게 자기보다 몸이 큰 팀 클라인을 안아 주고 있었다.
"으아아아! 으허헝!"
풀리시치는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산티아고! 산티아고!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멕시코 이민 가정이라는 환경을 딛고 몸에 성조기를 두른 채, 미국 시민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내가! 내가! 내가 우승이라고! 내가!"
고등학교의 그저 그런 수비수로 본래 운명을 살아야 했던 제임스 로드릭은,
오늘 세계 최고 메시를 상대했고 월드컵 우승이라는 타이틀에 큰 몫을 차지했다.
"Yeaaaaaaaa!"
"Whoooooo!"
버홀터 감독이 춤을 추고 있다.
무언가 특별한 전술이나, 능력은 없지만.
그딴 게 뭐가 필요해?
미국으로 월드컵 우승이란 임파서블을 달성한 감독인데.
내가 감독의 예상외 수준급 춤 실력을 감상하고 있을 때.
산티아고가 붉어진 눈으로 내게 왔다.
"제프, 난 네가 정말 고마워."
"음, 산티. 사랑 고백이라면 거절할게."
"아니야. 지금은 받아 줘."
"뭐야. 설마 진짜야?"
"아니, 아니. 고등학생 때부터. 널 보고 축구를 같이하고 싶어 했고, 토론토로 갔고. 여기까지 왔어. 세상에. 내가 우승이라니. 믿기지가 않아."
믿기지가 않다니.
얘 생각보다 배포가 작네.
"이제 첼시에서 들어 올릴 트로피가 몇 갠데. 크게 보라고, 크게."
"좋아, 제프. 발목은 괜찮아?"
"문제없어."
"그치. 그렇지. 그래야 필드의 괴물 러닝백이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팬들이 널 부르는 별명이야. 축구장에서 러닝백 같은 플레이를 하는 괴물이니까."
필드의 괴물 러닝백이라니.
도대체 어떤 양반 머릿속에서 나온 멍청한 생각인지 모르겠다.
별명만 들었을 땐, 축구 선수인지 미식축구 선수인지 어떻게 알아?
쯧. 별명 잘 좀 짓지.
흠흠······ 아무튼, 필드 위에는 울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그 울음에 담긴 감정은 극명하게 상반됐다.
우리의 울음이 참을 수 없는 기쁨이 눈물로 쏟아지는 것이라면,
필드 위에서 비통한 감정으로 쓰러진 선수들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차마 벌떡 일어나 우리와 유니폼을 교환하지도 못했다.
저들이 어떤 심정일지는,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의 리오넬 메시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경기가 끝나고 알게 될 거라던 그 답변 말이야. 다 이런 거였나?"
나는 그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메시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제 아이에게 답이 된 것 같군."
그럴지도 모르겠다.
메시는 말없이 유니폼을 벗어 내게 건넸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 유니폼을 벗었다. 유니폼을 받은 메시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좀 어색하게 말했다.
"피가 좀 많이 묻었죠?"
"아니, 그런 건 상관없는데. 너무 크잖아? 이거 내가 입으면 아빠 옷을 입은 아이처럼 보일거야."
"음!"
그러고 보니.
"젠장! 내 유니폼도 넌 못 입겠군."
그렇긴 하네.
집에다가 걸어 놓을까.
메시와 잠깐 대화를 나누며 필드를 산책하듯이 걷자, 어느 정도 감정을 정리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간다.
"멋졌어."
"조금 엿 같긴 하지만. 젠장. 존나게 멋졌어."
"만나서 끔찍했고, 다신 보지 말자고."
"보려면 우리 팀으로 와. 알지? PSG?"
"음. 알죠. 챔피언스리그에서 나한테 혼쭐난 그 팀 말하는 거죠?"
"제기랄! 미국이 싫어!"
아르헨티나 선수들 몇몇은 패배에 비통해 했지만, 이제 많은 이가 애써 정신을 차리고 우리 선수들과 유니폼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메시가 문득 말했다.
"이젠 힘들 거야."
"네?"
"나와 호날두의 시대는 저물었지. 이번 월드컵으로 증명됐어."
"······."
"이젠 네 시대지. 이게, 참 힘들 거야."
"힘들다고요?"
"매 순간이 비교의 순간이야. 나도 마찬가지였어. 내 우상들과 끊임없이 비교됐지. 마라도나, 펠레, 베켄바우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참 힘들 거든. 내가 실수라도 한 번 하면, 한 경기 컨디션이 안 좋아서 망치기라도 하면. 과거의 전설들을 내 곁에 데리고 와서 비교질 하는 거 말이야."
메시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서, 그간 축구계를 지배해 오며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월드컵 우승을 그토록 바랐지. 끝까지 비교하던 사람들의 입을 닥치게 만들려고."
"으음."
그런 우승을 내가 막았다. 이건가?
······그랬다.
사실은, 진짜 원래 역사에서.
이번 월드컵 우승팀은 아르헨티나다.
리오넬 메시는 월드컵 우승을 이룩하고, 자신이 지배했던 시대를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다.
내가 회귀하고, 역사가 바뀌면서.
어쩌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이 메시일지도 모른다.
"근데 넌 월드컵 우승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군."
"하하하······."
"영광스럽고 더없이 찬란한 자리지만. 한번 잘 버텨 내 봐. 호락호락하진 않을 거야."
그렇다.
호락호락 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난 나름대로, 이학현으로 살면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축구인의 삶을 살았다.
이젠, 더는 두렵지 않다.
내 웃음에 많은 게 느껴졌는지 메시는 담담히 웃으며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뭐.
이제 단상이 다 준비됐다.
또 트로피네.
단상위에 올라서 우리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
대표적인 근육 마초, 팀 클라인은 정말 서럽게 울었다.
다른 선수들도 이제 감정을 정리하고 기뻐하며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도 말이다.
"쟨 왜 저렇게 서럽게 울어?"
"둘째를 만들러 가야하잖아."
"Oh, My God!"
"Holy Shit!"
장난스러운 선수들의 반응.
그러자 산티아고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클라인 딸 보니까 이쁘던데. 둘째도 귀여운 애 나오면 행복할 거 같은데?"
그 순진무구한 반응에, 단상에 있던 유부남 선수들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행복이라. 그래 행복이라."
"행복······."
"뭐 그건 그렇다 쳐도. 그 행복을 위해, 월드컵 결승만큼 치열한 마지막 의무방어전이 남았지."
"으!"
"맙소사!"
"클라인 와이프가 육상선수 출신이라지?"
"세상에."
"끔찍하군."
"끔찍해."
"정말로."
유부남 선수들이 한 마디씩 덧붙이는 가운데.
산티아고와 로드릭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음.
저 마초 같은 팀 클라인이 좀 안쓰럽긴 하네.
뭐, 아무튼.
우리는 우승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가장 뜨거운 겨울이었다.
***
미국에 돌아오는 순간.
선수들은 한마디씩 했다.
"우리가 할리우드 스타나 다름없군."
"이대로 할리우드에 가도 되겠는데?"
"어마어마한 인파야."
수많은 인파가 공항에 나와 있었고, 우리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를 뚫고 나가야 했다.
그 후로 꽤 바쁜 일정 몇 개가 순식간에 진행됐다.
백악관에 초청되어서 식사도 한 번 같이 했고, 팬 사인회도 한 번 했으며, 트로피를 들고 몇 개 주를 돌면서 카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4일 정도의 매우 급한 일정을 치르고.
나에게 주어진 1주일의 꿀 같은 휴식을 즐기기 위해 미네소타의 집으로 돌아왔다.
"발목은 괜찮니?"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오른쪽 발목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결승전에서 다친 상처다.
"3주 정도 아웃이에요."
"세상에. 네가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처음 본다."
"에이. 3주가 뭐가 커요."
"크지! 3주라니! 어휴!"
어머니가 호들갑을 떠셨다.
하긴 그렇게 느껴질 만하겠다. 내가 부상을 입어 봤자 크게 일주일이었으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입을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떨어뜨리셨다.
"그래도, 이 엄마는. 네가 다치면 정말. 정말 슬프단다."
어라.
여기서 운다고?
어머니 반응에 난 순간 당황했다.
내가 보아 온 어머니는 그야말로 당당한 사람이었으니까.
메달리스트 출신이기도 했고, 아버지를 꽉 잡아 사는 여걸이셨다.
한데 갑자기 이렇게 우시다니.
내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자, 아버지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이해해라. 지금 네 엄마가 감정 기복이 심할 때다."
"네? 왜요? 어디 안 좋은데 있어요?"
내가 가족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썼나.
걱정스러운 기색을 느꼈는지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으셨다.
음.
어색하게?
왜 어색하게 웃어?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가던 나는 이내 괴상한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늘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셨던 어머니 몸이 조금 부은 것 같은데.
특히 배가 좀 둥그렇게······ 엑?
"맙소사, 설마?"
"맞다."
아버지의 빠른 인정.
순간 나도 모르게 이마를 때렸다.
맙소사.
"동생이라고요?"
그러면, 그 영상편지의 얘기가.
"맞아. 네 엄마는 정말 NBA 스타로 만들재. 엄마가 농구 좋아하는 거 알잖아."
"운동시키시려고요?"
"그래야지."
"그 축복받은 유전자가 어디 가겠니."
어느새 눈물을 멈추신 어머니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드셨다.
나는 그 말에 슬쩍 바라봤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아버지. 육상 메달리스트 어머니. 그리고 월드컵 우승의 나까지.
음.
그런 유전자를 가진 동생 놈이 물리학 박사라도 된다면,
하긴 웃긴 이야기네.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얘 공부한다고 하면 어떡해?"
"어떡하긴."
"막 물리학 박사라도 된다면?"
"음. 물리학이라. 나름 어울리는데. 물리학 박사라면 몸집 좀 커야지."
부모님의 실없는 대화에 그저 웃고만 있는데.
띵.
마침 벨이 울렸다.
슬쩍 창문 밖을 바라보니, 고급 리무진과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
뭔지 알겠다.
아버지도 흘깃 보곤 나에게 말했다.
"그냥 가렴."
"네?"
"시상식 참여하라고."
바로 발롱도르 시상식에 내가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휴가를 정말 즐기고 싶었다.
월드컵 우승 이후.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면서 즐기는 꿀 같은 휴식 말이다.
부모님 곁에서 말이지.
"얘는 참, 눈치 없게. 네 아빠랑 엄마랑 오붓하게 둘이 좀 지내고 있는데. 응?"
어머니는 내 선택을 종용하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셨다.
으음.
그럴까.
쉴 만큼 쉬었는데.
난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
"제프다! 제프!"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는지 기자들이 카메라를 터뜨렸으며,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내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정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상 정중함을 다 가진 것 같은 공손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회장님께선, 반드시 시상식에 참여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반드시? 굳이 왜요? 불참하는 선수 있잖아요? 호날두도 그렇고요."
"······호날두는 불참해도 되지만, 제퍼슨 씨는 꼭 참여하셔야만 합니다."
흐음.
어떤 이야기인지 알겠구먼.
"좋아요. 가시죠."
***
발롱도르.
선수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영예 중, 최고로 권위 있는 수상.
사실상 현 시대 세계 최고의 선수를 꼽는 가장 찬란한 시상식.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서로 양분했던 시상식에서.
이번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제퍼슨 리의 이번 시즌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겠습니다!"
최종 후보.
리오넬 메시의 영상이 먼저 흘러나왔고,
그 다음 제퍼슨 리의 영상이 흘러 나왔다.
두 영상 모두 대단했다.
터져 나오는 화려한 플레이에 참석자들은 모두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러나 명백히 다른 점이 존재했다.
영상의 마지막.
메시의 영상과는 다르게 제퍼슨 리의 영상 마지막에는 월드컵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것의 의미는 명백했다.
월드컵 우승을 기점으로 원래도 제퍼슨 리에게 기울었던 발롱도르가, 완벽하게 기울여졌다고.
"2022 발롱도르의 수상자는······ 첼시의 제퍼슨 리가 선정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기립해 손뼉을 쳤다.
쏟아지는 환호, 함성, 박수.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
최고급 슈트를 맞춰 입은 제퍼슨은 다소 발목이 불편해 보였으나, 담담한 미소를 띤 채 단상에 올랐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을 계속 읋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네요. 제가 미처 이름을 못 불러 드린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다만 지금 못 불러 드린 분들은, 내년 시상식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삐치지 마세요? 알겠죠?"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윙크하는 제퍼슨 리의 모습에, 사람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또 놀랐다.
너무나 당당하게 내년 시상식에서도 수상할 거라고 공언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에선 서로가 끊임없이 경쟁했지만,
이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제퍼슨 리라는 시대의 이름.
그리고 그 시대 속에서, 과연 그의 이름에 경쟁할 수 있는 경쟁자가 있는가?
"제퍼슨 리가 두 명이 아닌 이상 없지."
누군가의 씁쓸한 말 한마디로.
2022 세계 최고가 결정됐다.
그 날.
유명 일간지의 헤드라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써 있었다.
Who is the Best?
<제퍼슨 리.>
***
"파티다!"
"파티! 파티! 파티!"
시상식이 끝나고, 나에게 달려오는 두 놈.
풀리시치와 마크 우트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산티아고도 웃으면서 다가왔다.
다행히도 할머니 건강이 크게 좋아지셨다.
산티아고도 미국의 영웅 중 하나가 됐고, 미국의 저명한 의사들이 할머니의 수술을 직접 집도했는데.
다행히 잘됐단다.
그러니 저렇게 행복해하지.
아무튼.
이놈들은 내 수상을 축하할 생각조차 안 하고 파티만 외쳐 댄다.
"파티해야지! 제프! 진짜로! 이번에는 해야지!"
"월드컵 우승하고 그렇게 후다닥 집에 돌아갈 줄은 몰랐어!"
"오! 제프가 마마보이였다니!"
"파티! 파티! 파티하자! 파티하자고오! 해! 하자고오오오!"
"하자."
심지어 담담하게 다가온 카이 하베르츠마저 파티를 하잔 얘기에.
다른 선수들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하베르츠는 파티가 있다고 참석하라고 하면, 이렇게 답변하곤 했다.
"그게 구단 정식 스케줄인가요?"
정식 스케줄이 아니라고 하면, 그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시간을 즐겼다.
"이거 정식 스케줄 아닌 파티인데?"
"그래도 하자고."
하베르츠의 대답.
허어.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하베르츠마저 그렇게 나온 순간.
사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 까짓것, 파티하자! 하자고!"
"헐."
"Real?"
"미친! 제프가 파티를 하쟤!"
"제기랄! 월드컵에서 헤딩하다가 머리 다친 거 아니야?"
이 자식들이.
"사실 미리 준비해 놨어."
내가 미리 준비한 내용을 얘기하자, 선수들이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거길 빌렸다고?"
"거기 더럽게 비싼데?"
"넘치는 게 돈 밖에 없어."
"맙소사."
"이게 미국인이 보여 주는 그 스웩이란 거냐."
"제기랄."
하여튼, 이 녀석들은 파티를 한다고 해도 뭐래.
어쨌든 파티를 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우리 파티피플인 션 올리버는······.
"미안, 나는 못 가."
"뭐?"
올리버가 멋쩍게 웃었다.
"여자 친구랑 데이트가 있어."
맙소사.
풀리시치와 마크 우트가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파티를 거부하는 션 올리버라니.
그들은 나와 올리버를 번갈아 보더니 소리쳤다.
"둘이 바뀐 거 아니야?"
"이거 너무 이상해."
"어색해 죽을 거 같아."
"꿈은 아니지?"
나는 도망가려는 올리버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여자 친구도 데리고 와! 파티하러 가자고!"
"안 돼! 안 돼! 정식으로 사귄 후 첫 데이트를 파티장에서 한다고?"
"데리고 와! 파티다!"
참, 우스운 이야기다.
올리버가 파티를 거절하고.
내가 운동 대신 파티를 하러가자고 할 날이 올 줄이야.
진짜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젠 좀 놀아야지.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이젠, 좀 놀면서 하자고!
-完-
< 230. 해가 서쪽에서 뜨는 날 (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