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22화 (222/258)

< 222. Fucking American (1) >

미국의 8강 진출은 꽤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무려 20년 만에 만들어 낸 유의미한 성과.

16강이란 기존 목표를 월등히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더구나 포르투갈, 크로아티아로 이뤄진 조를 뚫어내지 않았나.

거기에 16강에서 네덜란드를 격파한 사실에 미국의 반응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제퍼슨 리 2골 2어시스트, 산티아고 2골 1어시스트, 풀리시치 1골 1어시스트!]

[북미의 왕, 월드컵을 정복하다!]

[압도적 득점 1위! 제퍼슨 리! 4경기 10골 폭발!]

화려한 득점 세례.

네덜란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특히 경기 직후 반 다이크의 인터뷰는 화제가 됐다.

"나는 메시, 호날두, 네이마르를 상대해 봤다. 하지만 제퍼슨 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아직도 월드컵을 보는 미국인들은 축구를 잘 모른다.

그래도, 메시와 호날두, 네이마르란 이름이 축구계에서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이름인 것쯤은 안다.

하물며 상대팀의 최고 수비수란 선수가, 그들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선수라니!

제퍼슨에 대한 과도한 애정이 더 치솟는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8강 진출에도,

세간의 주목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독일 스웨덴 2대 1로 격파하고 8강 진출. 잉글랜드와 운명적인 결전]

[잉글랜드 멕시코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격전 끝에 8강 진출]

[리오넬 메시, 더블 해트트릭 폭발! 3골, 3어시스트로 터키를 찢어 버리며 8강으로 아르헨티나를 견인하다]

[브라질, 네이마르의 선제골로 1대 0 폴란드 격파. 8강에서 아르헨티나와 단두대 매치]

[나이지리아, 스위스 상대로 2대 1 역전승!]

[크로아티아, 콜롬비아를 3대 1로 꺾고 8강에서 나이지리아와 맞대결]

[이탈리아, 2명이 퇴장당한 한국을 상대로 4대 1 박살내며 8강행 열차 탑승.]

16강의 결과.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8강 매치업.

또는 잉글랜드와 독일의 매치업이었다.

한편으로는 나이지리아가 스위스를 꺾는 이변으로, 8강에 오른 유일한 아프리카팀이 되었다는 것.

그래도 이런 사실보다 더 시끄러운 건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 경기 내용이었다.

[한국의 퇴장 징계, 정당한 징계였나? 오심 논란 불붙어.]

[퇴장당한 한국 선수 '그 이탈리아 선수가 먼저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모욕적인 발언, 인종차별? 이탈리아 축구협회 '그런 사실 없다.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흔한 말다툼이었을 뿐이다.']

[3명의 부상자와 14개의 카드가 나온 경기. 월드컵에서 가장 난폭했던 축구.]

[거친 반칙에 매너와 결과에서 모두 패배한 한국.]

ㄴ시발;;;

ㄴ아니 우리 선수들 코뼈가 부러졌는데

ㄴㅈㄹㄴ

ㄴ어이가 읎네;;

ㄴ야 저거 피케이 내준 거 할리우드 아니냐

ㄴ빼박 할리우드임 ㄹㅇ

ㄴVAR을 뒷통수로 쳐봤나 아 ㅋㅋ

ㄴ와 진짜 화가 안 풀린다

ㄴㅉㅉㅉ조센징들 이게 너희들 수준이구요.

ㄴ응 조별리그 꼴찌로 탈락한 느그일뽕은 전설의 1군이나 찾으세연

반응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뉴스 기사로만 봐서는 왜 이리 심각하나 해서 경기를 한번 돌려봤더니.

"흐으음."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저기 한국 선수가 갑자기 화를 내는데? 이탈리아 애가 뭐라 중얼거리는데, 욕한 거 아니야?"

"거칠게 멱살 잡았으니까 경고 누적으로 퇴장은 맞긴 한데. 그 전에 뭐라고 욕했는지를 알아야겠는데."

때마침 우리의 8강 상대가 이탈리아였기에,

선수들은 나와 같이 경기를 분석하듯이 지켜봤다.

처음 이탈리아 선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동료들은 점점 표정이 묘해졌다.

"야. 이거 분위기가 좀."

"심판이 약간 이탈리아 쪽에 편파적인데?"

"두 팀 다 경고를 받고 있긴 한데. 이탈리아 선수 애들은 반칙해도 구두 경고만 날리고 그다음 경고를 줘. 한국 선수들은 곧바로 카드를 꺼내고."

"흐음. 묘하네. 이러니까 선수들이 불만이 쌓이고 거칠어지지."

"저거 PK는 오심인 것 같은데?"

특히 PK 상황.

한국 선수의 태클에 레드카드로 퇴장을 명령하고, PK를 선언하는 장면.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

"저건 할리우드지."

"어디서 미국인들 앞에서 할리우드를 써?"

동료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도, 그리고 내 동료가 보기에도.

할리우드 액션임이 분명했다.

확실히 한국으로선 너무 억울한 장면이 아닌가. 저 장면을 기점으로 선수 한 명이 부족해지고, 이어지는 거친 태클에 반응하다가 또 한 명 퇴장당하고.

그렇게 우르르 무너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 골을 넣었고, 몇몇은 얼굴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그 모습이 내 동료들에게 퍽 감동적이었나보다.

"목숨을 거는 전사들 같군."

"헤이, 제프. 저기 한국 사람들은 다 전투적이야? 휴전국이라 그런가?"

"월드컵이 그만큼 큰 의미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잖아?"

선수들에겐 월드컵은 그런 가치를 지닌 대회다.

온몸이 부서져도 뛰어야만 하는. 선수 생명은 논외로 치고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대회.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럴 거다. 오직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만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뛰고, 또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16강만 해도 엄청난 성과지만, 그 아름다운 도전이 씁쓰름한 반칙과 오심으로 끝났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으리라.

특히, 한국 기사 마지막 댓글을 보고 씁쓸해졌다.

ㄴ와 진짜 제프만 있었으면.

ㄴ제프 미국 대표되기 전에 이중국적이었으니까. 울 축협이 델고만 왔으면

ㄴ진짜 아쉽네

ㄴ야ㅋㅋㅋ제프 한 명 있다고 어카냐. 저렇게 반칙 쓰고 대놓고 오심인데.

ㄴ그래도. 그래도. 뭔가 해 줄 거란 기대감을 만들어 주잖아ㅠㅠ

뭐,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우리 8강 상대는 이탈리아다.

굳이 한국의 복수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다만, 이탈리아를 반드시 이겨야하는 99가지의 이유 중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일 뿐.

***

코치진은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회의를 시작했다.

불과 42시간의 시간이 주어진 뒤 시작되는 8강전.

준비할 게 너무 많았고, 시간은 부족했다.

"멤버 교체라니?"

"분석팀과 닥터, 피지컬팀의 종합 의견입니다."

"으음!"

"맥케니와 풀리시치의 체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4강에 간다는 확신도 없는데 체력 보전이라니."

버홀터 감독은 미간을 좁혔다.

유럽리그를 뛰다 온 맥케니와 풀리시치의 체력이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은 월드컵의 전 경기를 다 풀타임으로 뛰었다.

서서히 체력적인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들, 여기서 체력 보전이 과연 큰 의미가 있는가?

그것도 4강에 진출한 뒤에나 가능하다. 체력 아낀다고 핵심카드를 아끼다가 4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분석팀의 자료를 본 코치진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이탈리아는 더 지쳤습니다. 조별리그 3경기 동안 바뀐 멤버는 딱 한 명이었죠. 16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쪽 소식통에는 이미 핵심 네 명이 자잘한 부상을 안고 뛰고 있다는군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랍니다."

"소식통?"

버홀터가 고개를 모로 꺾자, 분석팀의 팀장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음. 따로 첩보팀을 운영한다고 생각해 주십쇼."

"첩보팀?"

"확실한 정보입니다. 신뢰도도 높아요. 저번 크로아티아 비밀훈련 영상 따온 친구가 물어온 정보입니다."

"그래? 그러면 흐음."

버홀터 감독의 미간이 좁혀졌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분석팀과 피지컬팀의 보고를 들으니 무언가 머릿속에서 퍼즐이 조합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분석팀 생각은 거칠게 플레이를 만들자? 이건가?"

"맞습니다. 이탈리아는 한국을 상대로 시종일관 거친 플레이를 시도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한국이 체력적으로 절대 지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죠. 덕택에 90분 내내 서로 치열하게 반칙하고, 싸우고, 으르렁거렸습니다. 덕택에 이탈리아도 경고자가 많고요. 다친 친구도 많죠. 지친 선수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지치고, 다친 선수들. 이탈리아 선수들의 퀄리티는 우리보다 높습니다. 그런 이탈리아를 격파하기 위해선, 마치 짐승처럼 그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죠. 고통스럽게."

"하면 맥케니와 풀리시치 대신 조 맥과 팀클라인을 넣자는 얘기군?"

"맞습니다. 두 명 다 거친 태클 능력과 활동량이 인상적인 친구죠."

"경고를 받을 수도 있지 않나? 둘 다 거친 플레이가 특기지만, 때론 자제가 안 돼."

감독의 의견도 맞는 말이었다.

거친 플레이가 특기인 두 선수를 넣는다고 하면,

이탈리아의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두 명은 MLS에서도 거칠고 터프하기로 유명한 터프가이들이니까.

"그 점은 제퍼슨이 조절해 주겠죠."

"응?"

"제퍼슨에게 얘기하십쇼. 얘들이 정신 놓으면 따로 불러내서 혼내라고. 캡틴이지 않습니까."

"에이. 그래도 그 터프가이들을 제프가 어떻게······ 할 수 있겠군. 음. 맞아. 제프라면. 음음."

"하하하! 거기에 이탈리아는 경고자가 많습니다. 8강에서 경고를 받으면 4강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무려 네 명입니다. 우리가 거칠게 해도, 저들은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공을 스틸하고 기회를 더 가져올 수 있단 거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맥케니와 풀리시치가 빠진다면, 창의성이 너무 떨어져. 혹시 제퍼슨을 미드필더로 쓰잔 의견인가?"

"맞습니다. 음, 아니 정확히는 프리롤에 두잔 겁니다. 2선에 놓고 공격할 땐 스트라이커답게. 공을 돌릴 땐 미드필더처럼. 제퍼슨은, 그게 가능한 친구입니다. 그 제퍼슨이 아닙니까?"

코치진의 어조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굳건한 신뢰.

버홀터는 코치진과 분석팀, 피지컬팀을 쭉 둘러봤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별안간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 얼마나 재밌는 광경인가.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선수가 팀에 있다는 게.

전술이 바뀌어도, '이 녀석이라면 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을 주는 선수.

그런 선수가 자신의 팀에 있다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언론들이 말하던 진짜 행운일지도 모른다.

"좋아. 제퍼슨을 프리롤을 둬보자고. 그런데 말이야. 이건 피지컬팀 의견 좀 듣고 싶은데, 미스터 율리아겐?"

"예. 말씀하시죠."

피지컬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율리아겐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내가 대표팀에서 제프를 처음 뽑을 때 말이야. 체력적인 문제가 가장 큰 약점이었지. 프리롤에 두면 이 약점을 극복 가능한가? 더구나 지금까지 전 경기를 다 뛰었는데?"

맞는 말이다.

맥케니와 풀리시치가 지친 상황에서.

제퍼슨이라고 다르겠는가?

물론 포지션이 스트라이커니까 좀 다른 얘기다. 아무래도 미드필더와 윙어보단 활동량이 떨어지니.

그래도 프리롤에 두면 얘기는 달라진다.

8강은 괜찮아도, 4강, 어쩌면 그 이상까지 체력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퍼슨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영리한 선수입니다."

"응?"

"아시다시피 지금도 제퍼슨 리의 활동량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가끔 사람들은 말합니다. 제프, 저 자식은 저런 몸에 저렇게 미친 듯이 뛴다고?"

버홀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으니까.

공이 흐를 때. 갑작스럽게 나타나 흐름을 빼앗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었나.

"데이터를 분석하면 제퍼슨은 그렇게 높은 활동량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체력적으로 데뷔 초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하긴 했지만요. 아무튼, 핵심은 이겁니다. 다른 선수들이 100 정도 움직여서 90에서 100만큼의 영향력을 끼친다면, 제퍼슨은 50만큼 뛰어서 110의 영향력을 끼치죠."

"아하!"

"그러니까. 지독하게도 영리합니다. 움직여야 할 순간에만 움직입니다. 가야만 할 곳에만 갑니다. 공을 끊어야만 할 때 끊습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입니다. 이건, 솔직히 말해······."

"천재죠. 타고난 천재입니다."

"괴물 같은 피지컬이 늘 부각 돼서 가려질 뿐. 그는 천재입니다. 필드에서 흐름을 읽는 천재요."

코치진이 동감한다는 듯이 모두 한마디씩 덧붙였다.

분석팀도 그간 데이터로 제퍼슨을 봐 왔기에, 그들의 말에 공감했다.

천재였다.

마치 컴퓨터처럼, 지독하게 계산된 움직임.

그 때문에 제퍼슨은 많은 경기를 뛰면서도 체력적인 문제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버홀터 감독은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

그는 제퍼슨에게 시선을 돌렸다.

팀의 캡틴이기에, 이 회의에도 참석해 묵묵히 앉아 있던 제퍼슨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웃으면서 일어났다.

"저는 이 전술에 찬성합니다, 감독님."

가장 중요한 선수가 그리 결정하자, 버홀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렇게 준비하지."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포메이션 짜고 선수들에게 의견 주지시켜!"

"선수 한 명씩 달라붙어서 세심하게 지도해!"

"시간이 없어! 당장 움직여!"

코치진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문득, 버홀터 감독은 하나 걱정이 드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애들 수비력 하나만큼은 알아주는데. 4경기 동안 고작 2실점인데 말이야."

"감독님."

"응?"

"제가 인테르와 유벤투스를 상대하면서, 그 특유의 빗장수비를 여는 방법을 깨달았죠."

제퍼슨이 그렇게 말하자, 회의실을 나가려던 율리아겐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안이 벙벙한 버홀터 감독이 제퍼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미국인들은 문을 열쇠 따위로 열지 않죠."

"그게 무슨······허어?"

"머신건으로 갈기거나. 발로 차거나. 어깨로 부수거나."

"허?"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죠. 문을 여는 것쯤은. 거기에! 여긴 미국인들밖에 없습니다."

제퍼슨이 씩 웃었다.

"미국인 11명이 문을 여는 방법이야. 뭐,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 222. Fucking American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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