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12화 (212/258)

< 212. World Cup (2) >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는 미국 축구협회의 목표는 명확했다.

"무조건 16강 이상이다!"

그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16강.

하지만 그들은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조 편성 잘 되면 8강은 가지 않을까?"

"제퍼슨도 있고, 산티아고도 있어. 공격력은 세계 탑이잖아! 피파 베스트 일레븐 공격수 두 명을 우리 미국이 가지고 있다고!"

현실적 목표는 16강, 내심 바라는 목표는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애시당초 16강 진출이란 기존 목표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미국, 뉴질랜드.

"미친!"

"쉽지 않은 조야."

"포르투갈에, 크로아티아라니!"

"크로아티아는 저번 월드컵 준우승 팀이잖아!"

"포르투갈은 2016 유로에서 우승도 했지!"

조 추첨 직후, 축협은 마른침을 삼켰다.

톱시드 포르투갈, 2포트 크로아티아, 3포트 미국, 4포트 뉴질랜드.

뉴질랜드야 조 최약체라 미국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크로아티아는 위상이 전혀 다른 팀이다.

두 팀다 유럽팀이고, 유럽에서도 상위권 팀이다.

이러한 추첨 결과에 현실적으로 16강도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미국 대표팀이 포기한 건 아니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앞서, 우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둬야만 합니다!"

"MLS 일정을 전격 조정하겠습니다! 10월 이전에 리그를 끝내도록 하죠!"

"잠깐 휴식기를 가진 이후 10월 중순부터 MLS 선수들부터 합숙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무조건 조직력입니다! 상대적으로 선수단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조직력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이건 유럽 외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 중 하나였다.

유럽 리그가 월드컵 직전까지 진행되고 있어, 유럽 리그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선수단을 소집해 발을 맞추는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그에 반해 북중미, 남미, 아시아는 일찌감치 리그 일정을 끝내고 선수단을 소집했다.

미국은 자국 리그를 본래 일정보다 한 달 반 정도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내기까지 했다.

대표팀 선수 절반 이상이 자국 리그 소속이기 때문에, 그 결정은 조직력에 있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축구는 팀 스포츠다!"

"모두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해!"

"연습! 서로 발을 맞추고 눈빛만 봐도 생각이 통할 정도로 미친 듯이 팀플레이를 연습해!"

"체력을 철저하게 만들어! 16강에 가게 된다면, 월드컵은 힘든 스케줄을 따라가야 한다!"

유럽과 달리 북중미나 아시아는 대표팀이 대부분 자국 리그 소속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남미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를 제외하고도, 자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수준이 상당했기 때문에, 대표팀 상비군까지 소집해 일찌감치 발을 맞췄다.

이미 북미에서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월드컵이 다가오자 기대가 커졌다.

대표팀 훈련캠프에는 팬들과 카메라도 몰려들었다.

스포츠 언론에서는 연신 월드컵에 대비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 열기에 미국 축구협회는 예상보다 더 엄청난 지원을 받게 됐다.

"생각해 보세요. 골프 선수 한 명에 붙는 코치가 일곱, 여덟 명입니다. 컨디션 관리부터, 세세한 기록 관리까지. 수많은 사람이 붙죠."

"자. 그러면 축구팀을 봅시다. 한 팀에 코치와 피지컬 트레이너가 몇 명이나 있죠? 스무 명이면 많은 겁니다. 근데 축구 선수는 몇 명이죠? 스무 명이 넘습니다!"

"선수 한 명에게 여러 스태프가 붙어야 합니다! 한 명, 한 명 집중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엔 예산이 부족합니다!"

"예산이 왜 없습니까? 투자 받으면 그만인데."

여기서 맨 처음 손을 든 건 웹플릭스였다.

제퍼슨의 다큐멘터리, 정확히는 첼시의 다큐멘터리로 시가총액까지 상승한 웹플릭스는 이번 월드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자 하였고 축협에 거액의 지원금을 제시했다.

그 금액을 바탕으로 축구협회는 이례적으로 비대한 코치진을 꾸렸다.

"선수 한 명에게 다섯 명 이상의 트레이너가 붙어야 합니다!"

"아주 자잘한 부상까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유럽, 남미팀하고 경쟁해서 이길 건 그것밖에 없어요!"

미국이 자랑하는 스포츠 시스템은 뭐가 있나.

바로 압도적인 인재풀이다.

"미식축구 출신 트레이너, NBA 출신 트레이너하고 대학 스포츠 재활센터의 의료진까지 모두 축구 대표팀에 보내!"

"아직 대회가 진행 중인 곳도 있고, 다음 시즌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 있나? 구단에 잠깐 빌리겠다고 전해!"

"그 양반들 받는 돈이 웬만한 스포츠 선수급이야!"

"우리에겐 돈밖에 없어!"

"빌어먹을 정도로 감동적인 얘기군!"

수많은 인력이 대표팀으로 향했다.

오히려 많은 인력이 쏟아져 나와서, 대표팀은 그중에서도 고급 인력만을 가려서 뽑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10월 말쯤엔 제퍼슨의 개인 트레이너였던 율리아겐과 디 파코가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제퍼슨의 트레이닝 팀이 조명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미국 대표팀에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제퍼슨 개인 트레이닝 팀,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스태프로 합류>

제퍼슨으로서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프리미어리그는 월드컵 시작 전까지 전반기 일정이 마무리 돼가고 있었으니까.

미국 축구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금액을 트레이닝 팀에게 제시했으니, 월드컵 기간에만 율리아겐 등이 대표팀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월드컵은 단기간에 수많은 경기를 뜁니다. 하물며 미국 대표팀은 8개월 동안 MLS 40경기를 뛰었죠. 휴식기는 2주였습니다. 2주 동안 8개월간 뛴 피로가 회복됐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완벽한 컨디션을 만들고 카타르로 가야 합니다!"

"제퍼슨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는 체력적으로 유럽 선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저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율리아겐, 디 파코등의 합류로 대표팀의 트레이닝은 더 정밀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져 갔다.

월드컵 시작 전에도 각국의 대표팀 선수가 훈련과 평가전을 치르며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런 경우가 미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선수 한 명에게 붙은 스태프 평균 5.6명!

선수 한 명의 세세한 습관까지 관리하며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선수단의 체력과 몸상태를 끌어올리면서.

조직력을 점검하기 위해 미국은 각국의 대표팀과 친선전을 펼쳤다.

[미국, 칠레와의 평가전. 2대 1 석패

[미국 호주 상대로 1 대 0 신승! 뉴질랜드전 대비]

[덴마크와의 평가전에서 1대 1 무승부를 맞이한 미국. 유럽팀 파훼법 찾아야.]

[끈끈한 조직력의 미국, 그러나 수비와 공격에선 글쎄?]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일단 미국은 확실한 팀컬러를 보여 줬다.

웬만해선 밀리지 않는 끈끈한 축구.

상대하는 팀마다 쉽지 않다고 마른 침을 삼키는, 그런 축구 말이다. 괜히 상대하기 껄끄러운 느낌의 팀컬러였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이 대두됐다.

첫째는, 철저하게 실리를 노린 축구지만 승리를 얻어 내기 힘들었다는 점.

속 시원한 다득점이 나오지 못했다.

"답답해!"

"점유율을 가져가면 뭐 해? 빌어먹을 점유율론자들! 득점이 필요하다고!"

"오, 제프가 그리워!"

우선 수비와 점유율에 중점을 두고 조직력으로 승부하다 보니, 기회가 자주 오지 않았을 뿐더러 기회가 오더라도 제퍼슨과 산티아고가 없는 공격진은 답답했다.

둘째는 수비력이었다.

"제기랄. 월드컵에 탈락한 국가들에게도 버티지 못하는 수비진이야."

"월드컵 나가서 세계적인 선수들 만나면 그냥 아주 자동문이겠구먼!"

"제프가 와서 정강이를 까 주면 좋겠어!"

먼저 선제골을 넣어도, 그걸 지키지 못해 후반부에 집중력이 무너져 실점을 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끈끈한 조직력은 있지만, 공격과 수비에선 부족한 점이 많이 노출된 것.

이런 평가전에 미국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뭐야? 왜 이리 재미가 없어?"

"다큐로 봤을 땐 재밌었는데."

"왜 이렇게 지루해?"

현재 월드컵을 기대하는 미국팬 중 상당수가 제퍼슨 때문에 유입된 경향이 짙다.

다큐멘터리와 첼시에서의 활약.

그들이 본 건, 축구의 90분이 아니다.

다큐멘터리가 영화처럼 만들어 낸 그림, 그리고 제퍼슨의 하이라이트로만 지켜본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는 오프사이드 룰조차 모르는 이도 많았다.

한마디로 '축알못'이 많다는 것.

그 때문일까.

제퍼슨의 화려한 축구, 역동적인 플레이. 미식축구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 거칠고 적극적인 축구.

그것들을 상상한 일반 팬들에겐 미국 대표팀의 평가전은 기대 이하였다.

<유럽파 없는 미국 대표팀, 월드컵 16강은 무리다.>

이렇듯, 안팎으로 잡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할 때.

11월 13일.

카타르 도하에 제퍼슨이 입국했다.

***

공항에 월드컵 취재를 나온 미국 기자들이 몰렸다.

미국 기자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 취재를 온 특파원들도 몰려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미국 대표팀의 핵심선수이자, 동시에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현 시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닌가.

제퍼슨이 게이트를 나오자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카타르까지 응원을 나온 미국 원정 시민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제프! 제프!"

"Sir! Captain!"

"산티아고!"

제퍼슨 리, 산티아고 차베즈, 로드릭, 웨스턴 맥케니, 풀리시치 등. 영국에서 뛰고 있는 미국 대표팀 선수가 일제히 카타르에 도착했다.

선수들 전부에게 플래시가 터졌지만, 그래도 그중에 가장 주목받는 건 제퍼슨이었다.

그건 제퍼슨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일단 그가 미국 대표팀의 캡틴이었단 사실이 유효했다. 더구나 캡틴 아메리카란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대표팀이 안팎의 잡음으로 여러모로 흔들리는 사이.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 캡틴 아메리카란 존재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잠시 인터뷰 좀 부탁하겠습니다!"

팀의 캡틴인 만큼, 제퍼슨이 대표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제퍼슨은 비행의 피로를 애써 감춘 채 담담한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섰다.

"현재 미국 국가대표팀은 연이어 치른 평가전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축구는 늘 이길 수만은 없습니다. 그리고 평가전은 평가전일 뿐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많은 걸 배우고, 실전에서 보여 주면 그만입니다."

"끈끈한 축구라지만, 다소 지루한 축구로 비판을 받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혹자는 지루하다고 하지만, 이기는 축구는 지루해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저도, 여기 제 동료들도 합류합니다. 지루하지 않은 축구를 보여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후로도 질문은 계속됐다.

제퍼슨도 대표팀 캡틴으로서 인터뷰이기 때문에, 최대한 정석적인 답변 위주로 진행했다.

그러면서 제퍼슨은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며칠 전 대표팀의 그렉 버홀터 감독과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가진 자원으로 최대한 팀컬러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반응은 좋지 못하니 그에 대해 여러모로 압박감을 느끼는 듯했다.

감독이 압박감을 느낀다면, 밑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들이 속한 H조 팀 상대들이 만만치 않지 않나.

기자도 그 점을 꼬집었다.

"미국은 16강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상대인 포르투갈은 유럽의 강팀이고, 크로아티아 역시 월드컵 준우승 팀입니다. 현실적으로 16강이 가능하다고 여기십니까?"

이쯤에서 제퍼슨은 팀 분위기를 살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떻게?

미국인답게 말이다.

제퍼슨은 한 차례 숨을 고른 뒤, 자신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던 기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현실적으로 16강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그 세 팀에게도 똑같이 물어봐야죠. 그들은 제퍼슨이 있는 미국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

"특히 수비수들은 잔뜩 긴장해야 합니다.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월드컵을 경험할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요. 그거, 좀 창피하잖아요?"

제퍼슨의 연이은 인터뷰에 기자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제퍼슨은 포토라인을 떠나기 전에 한마디를 더 붙였다.

"아, 현실적으로 16강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셨죠?"

"네? 네."

"미국인 기자 맞으세요?"

"맞습니다. 뉴욕 에미리 스포츠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크게 잡아야지."

"······."

"세계 최고의 자리가, 위대한 아메리카의 자리가 아니겠어요? 그게 좀 더 현실적이죠."

"헉!"

"와!"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 우승입니다. 북중미팀 최초로."

< 212. World Cup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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