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03화 (203/258)

< 203. 아시아 (3) >

"왜 아틀레티코를 떠났어?"

"감독이 바뀌었잖아."

"그래도 1년 만에 이적하는데, 나한테 말을 왜 안 했어?"

"서프라이즈."

산티는 빙글거리며 웃었다.

설마 런던에서 이 친구를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옛날부터 감독이 나를 탐냈다고. 토론토시절부터."

산티가 토론토에 있던 시절부터 탐냈던 사람이 바로 우리 감독이다.

비록 아틀레티코에 뺏겼지만, 아직도 산티를 잊지 못했던 거다.

감독이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산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챔스 4강 1차전에서, 우리를 괴롭힐 때 느꼈지. 제프랑 짝지어 주면 무섭겠구나 하고."

"맞아요, 감독님. 우리는 고등학교에서부터 투톱으로 완벽했거든요."

뭐, 그렇긴 했다만.

산티의 이적은 이번 시즌 최대의 빅 샤이닝이 될지도 모른다.

시메오네 감독이 아틀레티코를 떠났고, 아틀레티코는 그야말로 엑소더스가 발생했다.

"시메오네 감독이 없는 아틀레티코야. 별로 계속 뛰고 싶지도 않았어. 그러던 와중에 엄청 좋은 조건의 제의가 들어왔으니까."

흐음.

이제 역사는 내가 예상치 못하는 시점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아틀레티코의 상징적인 선수가 되어 챔스 우승을 이끌어 낸 산티아고 차베즈는 이제 없다 이거지.

"어쨌든 반가워, 제프. 토론토 시절 폼을 보여 주자고."

"좋아. 여기서 호흡 맞추고 월드컵까지 가면 완벽하겠어."

내 입장에서는 베스트다.

산티랑 클럽에서 호흡을 맞추고 월드컵에 가면 서로 적응할 필요도 없다. 곧바로 뛸 수 있지 않겠나.

새삼 감독의 선택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아무튼, 새로 영입된 선수들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프리시즌에 소집됐다.

레프트백 벤 칠웰은 이전에 말했듯이 훌륭한 선수다. 당장 우리 팀 주전인 에메르송을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할 만한 실력자다.

벤 칠웰을 바라보는 에메르송의 표정이 묘하다. 아무래도 험난한 주전 경쟁을 예감한 거겠지.

미겔 오야르사발은 상당히 의외의 영입이다.

레알 소시에다드 유스 출신이고, 팀의 로컬보이. 흔히 말하는 성골이었으니까.

뭐, 하긴.

요즘 현대 축구에 원클럽맨이란 낭만이 어디 있겠나. 타미도 첼시를 떠나 라이벌 팀인 맨유로 갔는데 뭘.

오야르사발은 윙어로도 훌륭하고, 때로는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소화할 수도 있다.

탁월한 위치선정 능력이 빛나는 선수로, 골 냄새를 잘 맡는 편이다. 주력이 빠르진 않지만, 준족 소리는 들을 만하고, 탈압박과 간결한 볼터치 능력도 좋다.

"험난하군."

풀리시치가 쓰게 웃었다.

"월드컵 가려면 주전 경쟁 확실히 해야 해. 경기 감각 유지하려면."

"알아, 제프. 근데 저 녀석, 발재간 보니 험난할 거 같아."

"열심히 하자고. 나는 저 녀석이 좋은 패스만 해 준다면 도움왕으로 만들 자신이 있으니까."

"흠. 내 패스만 받아 주는 게 어때?"

"진심이면 실망인데."

"빌어먹을. 농담이지. 걱정하지 마. 프리미어리그에선 내가 잔뼈가 더 굵다고."

주전 경쟁이라.

한창 좋을 때다.

나도 주전 경쟁을 언제 해 봤더라.

주전 경쟁의 위기감에 빠진 건 오른쪽 윙어, 오도이도 마찬가지였다.

"끄응!"

오도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쪽에서 가볍게 공을 리프팅하는 아다마 트라오레를 바라봤다.

"제기랄. 경쟁자로 제퍼슨 같은 놈이 왔어."

"감독 취향이 그쪽인가 봐."

"저 녀석하고 몸싸움 한번 해봤지. 제프 정도는 아니어도, 그래도 무시무시한 놈이야."

"무슨 팀이 근육 괴물들로 가득해지는 기분인데."

선수들이 숙덕거렸다.

그들의 말처럼,

아다마 트라오레는 으음.

"너랑 진짜 비슷한데?"

정확히 표현하면 나보다 키가 작은 버전이라고 하면 될 거다.

무시무시한 주력. 낮은 무게중심과 넘어지지 않는 바디 밸런스. 무지막지한 완력과 각력, 숄더링을 자랑하는 선수.

그가 나를 보고 살짝 손을 흔들었다.

음.

눈이 부리부리한데.

"제프, 오랜만이야."

그리고 수줍게 인사를 해 오는 선수.

바로 샬케에서 이적해 온 웨스턴 맥케니다.

낯선 얼굴은 아니다. 미국 대표팀으로 몇 번 봤으니까.

다만 부상이 잦아서, 자주 보진 못했다.

재능은 분명 뛰어난 유망주인데, 자주 부상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더구나 수줍어하고 낯설어하는 성격이라, 몇 번 못 마주친 대표팀에서도 친해지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미국 대표팀 같은데?"

산티는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나와 풀리시치, 그리고 맥케니까지.

미국 대표팀 선수가 여기에서 네 명이나 뛰는 거니까.

"잘 부탁해, 제프. 너처럼 튼튼한 피지컬을 갖고 싶어서 왔어. 이번엔 부상 없이 무탈하게 보내고, 월드컵에 꼭 가고 싶거든."

웨스턴이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흐음.

솔직히, 맥케니라면 반드시 월드컵에 함께 가야 하는 친구다. 솔직히 우리 미국 대표팀 미드필더 중에서, 이 친구만큼 패스를 잘 주는 녀석은 없으니까.

좋아.

"날 믿어, 웨스턴. 특훈이다."

"맙소사."

"끔찍하군."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올리버가 입을 틀어막았고,

풀리시치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맥케니를 바라봤다.

맥케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해맑게 웃었다.

"부탁할게, 제프! 어떤 것이든 따라 할 준비가 되어 있어!"

흠.

좋은 자세야.

***

소집일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아시아 투어를 떠나기 전.

우리는 훈련장에서 굵은 땀을 흘렸다. 트레블을 이룩해낸 빅클럽 첼시의 훈련 모습. 치열하고, 장난기는 조금도 없는 매서운 분위기.

······라고 생각했던 영입생들은 다 묘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산티아고는 이상한 소리를 해 댔다.

"받아! 제프!"

골문을 코앞에 두고, 굳이 뒤에 있던 나에게 패스하는 마크 우트.

산티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일대일 찬스에서 왜 패스를 해?"

타고난 스트라이커인 산티아고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 결국 산티는 이렇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양보하는 친구인가? 투톱으로 뛰면 좋겠네."

그리고 내가 빠지고 산티아고와 우트의 투톱.

"헤이! 패스! 이봐! 패스해!"

뻐어엉!

"아니! 내 앞에 비었는데 왜?"

뻐엉!

"······왜 나한텐 패스 안 해?"

"넌 제프가 아니잖아."

"······."

산티가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쟤 왜 이렇게 이상해?"

쯧.

우트의 이상한 병이 또 도졌다.

시즌 후반기엔 슬슬 골 욕심을 내더니.

다시 저번 시즌 초반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모습이다.

"산티가 와서 그렇지. 타미하고 경쟁할 때도 그랬잖아? 너하고 호흡이 잘 맞는 걸 자랑하려고 무조건 너한테 패스 내준 거."

하긴, 우트는 저번 시즌에도 그랬다.

나야 부동의 선발이고, 파트너로 호흡이 잘 맞는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해 우트가 하던 짓이니까.

뭐, 영악하긴 하지만, 이것도 살아남는 방법이다. 우트도 독일 대표로서 월드컵 출전을 꿈꾸고 있으니까.

신입생들은 알게 모르게 훈련장에 잘 녹아들고 있었다.

"허어!"

"둘 다 내 눈으로 안 보여."

"저 두 명은 그냥 육상으로 보내는 게 어때?"

"아니, 몸이 저렇게 근데 저리 빠를 수가 있나?"

"그래도 제프가 대단해. 트라오레도 빠르다고 느끼는데, 제프가 훨씬 앞서잖아?"

"글쎄. 내가 보기엔 트라오레가 엄청 대단한 거야. 제프하고 그래도 저 정도로 속도로 비빌 수 있다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미친 듯이 뛰어본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새로 합류한 아다마 트라오레는, 정말 빨랐다. 셔틀런 훈련에서 나와 어깨를 거의 나란히 하면서 달리는 선수는 이 친구가 유일했다.

물론 마지막에 앞섰던 건 나지만.

이 친구라면 상대 측면을 아주 완벽히 찢어발길 수 있으리라.

그가 순수하게 감탄을 터뜨렸다.

"여기 오길 잘했어! 친구. 솔직히 네가 날 늑대 새끼라고 말하면서 아스날에 가지 말라고 인터뷰했을 때, 정말 감동했다고."

뭘 감동까지야.

트라오레와 몇 번 훈련을 같이하고, 목을 빼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 하베르츠와 함께 있는 맥케니가 보였다.

웨스턴 맥케니는 하베르츠에게 특훈을 받고 있었다.

"간단해. 공격수가 들어가는 지점을 예측하고, 수비수가 막을 수 없는 궤적으로 공을 보내면 돼."

"······네?"

"보여 줄게. 어이, 제프! 뛰어 봐! 뤼디거, 시셀도! 거기 한번 막아 봐!"

카이는 별안간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박력에 이끌어 골대를 향해 뛰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뤼디거와 시셀도도 얼렁뚱땅 박스 앞에 섰다.

그리고 그사이.

투욱!

시셀도와 뤼디거, 두 명이 커버하고 있는 수비 영역의 절묘한 경계선.

그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낮고 빠르게 스루패스가 깔렸다.

이거다.

박스 안으로 뛰면, 공이 온다.

"오!"

"알겠지?"

"네?"

"간단해. 이렇게만 패스하면, 제프가 알아서 넣을 거야. 그럼 넌 도움왕이 될 거고. 참 쉽지?"

"아니, 그······."

맥케니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흠.

카이가 좀 재수가 없긴 하네.

한쪽에서는 벤 칠웰과 아스피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첼시에서 풀백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뭔지 알아?"

"음. 수비라인 지키고, 오버래핑 때 튀어나가고, 적당한 시점에 복귀하는 거요?"

무난한 답변.

하나 아스피는 미간을 좁혔다.

모범생 같이 조용한 캡틴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걸 피력했다.

"그런 것들도 중요하긴 하지만. 첼시의 풀백이 갖춰야 하는 건, 크로스야."

"네?"

"첫째, 박스를 향해 공을 뻥 찬다."

"······?"

"둘째, 제프의 머리에 공이 맞는 걸 확인한다. 셋째, 골이 들어갔으면 세레머니하고, 들어가지 않았으면 빨리 수비라인에 복귀한다."

벤 칠웰은 입을 쩍 벌렸다.

으음.

이거 좀 살짝 부끄러워지는데.

이게 우리 팀 전술이라니.

더 창피한건, 뭔가 반박할 거리가 없다.

저게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아스피가 올려주던 얼리크로스가 해법이긴 했다.

뭐.

성적만 내면 되지 않겠나.

***

아시아 투어.

작년 미국 투어에 이은, 첼시의 프리시즌 일정은 아시아 투어였다.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시아 3국을 도는 일정이었다.

맨 처음 일정은 중국이었다.

"중국에서 내 인기는 장난 아니야."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

션 올리버가 별안간 그렇게 자기 자랑을 늘어놨다.

물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아직 선수단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한 벤 칠웰과 맥케니만이 올리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두 명 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는데,

올리버가 유난히 서글서글하게 말을 잘 붙여 줘서, 금세 친해졌다.

"중국에서?"

"내가 사업할 때, 상하이에서 런웨이에 선 적이 있어. 크으. 그때 중국 유명 여배우들하고 스타들이 다 모여들었는데 말이야. 아마 출국장 나가면 좀 혼잡스러울 거야."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상하이 공항에 입국하는 첼시 선수단을 향해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물론 벤 칠웰과 맥케니는 어설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제-프!"

"제퍼슨! 제퍼슨! 제퍼슨!"

"제프!"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환호세례.

그중에는.

"올리버, 네 이름은 전혀 들리지 않는데?"

"크흠. 내가 패션쇼 했던 곳이 생각해보니 대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공항은 오로지 제퍼슨만 연호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시아계 선수란 점과 저번 시즌,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한 스트라이커였으니까.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첼시는 중국에서 프로리그 팀과 두 경기 친선경기를 치렀다.

제퍼슨은 경기마다 45분씩 출전했지만, 출전할 때마다 2골, 4골을 때려 박으며 화끈한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중국에서 인기는 의외인데."

"인구가 많은 만큼 축구팬도 많거든."

중국은 축구 인프라가 상당한 좋은 편이었다.

상하이 축구 클럽의 훈련장은 유럽 빅클럽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첼시는 만족스럽게 상하이에서 친선경기와 훈련을 겸하며 선수단의 훈련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2박 3일간의 중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첼시의 비행기는 한국, 서울로 향했다.

< 203. 아시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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