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아시아 (2) >
빅클럽이 한 선수를 놓고 영입 경쟁을 펼칠 때는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높은 주급과 가족을 위한 복지. 그 선수만을 위한 특별 계약 사항 등.
물론 계약 외적인 방법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소속팀의 핵심 선수가 '우리 팀으로 오라!'고 말하는 인터뷰다.
괜히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들이 영입 타겟에 '바르셀로나 DNA가 있다'라며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다.
만일 그 선수가 영입 경쟁이 치열한 선수의 롤모델이라거나, 존경하는 선수라거나 하면 충분히 효과가 있다.
그렇게 보면 첼시의 선택은 충분히 탁월했다.
"첼시로 갈 거야."
"으음.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그쪽보단 아스날이 주급을 더 챙겨 줄 텐데."
"원래부터 첼시로 가고 싶었어."
에이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단순 우직한 자신의 고객은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다.
무언가 하나를 결정하면 흔들리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번복하지 않을 남자였다.
"그 친구 플레이를 많이 봤지. 감탄스럽더라고. 내가 배울 것도 많을 것 같고. 그 스피드를 유지한 채 드리블과 환상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도, 내가 배울 수 있는 점이야."
"그렇긴······ 하지."
에이전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요즘 가장 뜨거운 선수하고 유사한 점이 꽤 많았다.
특히 전체적인 하드웨어가 비슷했다. 축구에서는 보기 힘든 유니크한 하드웨어.
헐렁한 트레이닝 복을 입었음에도 터질 것 같은 허벅지. 민소매를 입어 더 부각된 상체 근육.
핏줄이 도드라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꿈틀거린다.
"좋아. 그러면 첼시로 이적을 준비할게. 주급도 최대한 따내겠어."
"고마워."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내려 봤다.
각종 이적 루머가 터져 나오는 인터넷 기사.
오늘 아침에 실린 기사가, 괜히 그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제퍼슨 리, 아다마 트라오레의 아스날 이적 확정적이란 소식에,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 밑으로 들어갑니까?' 웃음.]
남자는 피식 웃었다.
"늑대새끼라니."
언제였던가.
본인의 소속팀 울버햄튼을 혼자 박살내고, 귀여운 강아지들 같다고 인터뷰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자신을 늑대 새끼라고 말해주다니.
그 누가 이렇게 말을 해줬던가.
영입을 위해 일부러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임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게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자는 마음 먹었다.
첼시로 이적하기로.
[울버햄튼의 아다마 트라오레, 이적료 3천만 파운드(450억 원가량)에 첼시 이적 확정]
***
"이제 6개월 남았습니다. 제 고객님은 6개월 후에 보스만 룰에 의거하여 타 구단들과 협상할 권리를 가지게 되죠."
"맞습니다. 그래서 구단에서는 그런 끔찍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4년 계약 연장을 제시하는 바이며, 총 5년 계약을 새로 맺고자 합니다."
"흠. 어렵군요."
"그 어려운 일을 쉽게 풀어나가야하는 일이 우리들이죠."
제크는 담담하게 웃었다.
제퍼슨이 5년 재계약으로 해도 상관없다고 문자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어리석게 먼저 자신의 카드를 내보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지는 많아졌다.'
이쪽에서 양보할 카드가 하나 생겼다.
이제 협상을 질질 끌다가, 선심 쓰는 척 계약 기간을 양보하고, 다른 걸 더 얻어 내면 된다.
물론 상대도 이런 협상에서 도가 튼 양반들이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한 건 저쪽.
칼자루는 이쪽에서 쥐고 있다.
"계약 기간은 3년이 좋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더 좋은 방향이 될 것 같군요."
"우리는 제퍼슨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습니다. 5년 재계약을 하되, 주급 50만 유로(6억 4천만 원)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런. 평행선을 달리는군요. 저는 3년 계약에 55만 유로(7억 1천만 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현재 첼시의 주급체계를 무너뜨리는 요구사항입니다."
"제퍼슨은 첼시의 주급체계에 얽매이지 않을 만한 선수입니다."
"물론 그런 사실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선수에게 55만 유로를 투자한다는 건, 구단으로서······."
"큰 리스크를 안고 간다고요? 글쎄요. 저번 시즌 80골을 넣고, 챔스 4강에서 떨어질 뻔한 팀을 구해 내서 결국 우승까지 시킨 스무 살의 스트라이커라면, 로우 리스크 같군요."
"으음! 물론 동의합니다만. 벌써 그만한 주급을 받는다면, 그가 더 나이를 먹은 후에는."
"첼시는 더 거대한 클럽이 되어 있을 거고, 더 많은 주급을 챙겨 줄 수 있겠죠."
제크는 거기까지 말하고, 슬쩍 진동하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이런. 잠시만요. 급한 전화가 와 있었네요. 잠시 통화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아, 물론이죠."
"으흠. 예, 로베르토 씨. 예. 바르셀로나는 날씨 어떤가요?"
멈칫.
통화에서 들려오는 바르셀로나란 얘기에, 구단 직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하하. 런던은 뭐 뻔하죠. 우중충하니, 비도 내리구요. 바르셀로나가 지내기엔 날씨가 좋긴 하죠. 이런. 제가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라,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네.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제크는 넉살 좋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 묘한 분위기가 회의실에 감돌았다. 구단 직원이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사전 접촉하시는 겁니까?"
"사전 접촉이요? 하하! 그럴 리가요. 제 고객 중에, 현재 바르셀로나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고객님이 있어서요. 그 부문 때문에 통화한 것입니다."
"으음!"
"이런. 레알 마드리드하고 계약 진행 중인 고객님도 있는데, 이건 이번 회의 끝나면 통화하기로 하죠."
제크는 담담하게 구단 직원들을 압박했다.
칼자루는 이쪽이 쥐고 있다.
그러나 구단에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한 클럽의 주급체계가 박살 난다는 건 쉽게 넘길 사항이 아니다.
구단의 전반적인 운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지금은 로만의 투자와 구단의 자체적인 자금 동원이 가능하지만 먼 미래는 모른다.
아니, 당장 3~4년 후만 해도 모르는 일이다.
제퍼슨으로 인해 주급체계가 바뀐 상황에서, 구단에 무언가 일이 터져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된다면?
트레블의 찬란한 업적을 세운 구단이 어느 순간 바닥으로 처박힐지 모르는 일이다.
하물며.
'주급이 55만 유로면, 1년이 52주니까. 연봉이 2860만 유로(370억 원가량)군. 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제퍼슨에게 그만한 돈을 매년 투자하는 게 옳은 것인지, 구단 측 사람들의 얼굴에 모호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 표정을 캐치한 제크 팀장이 파고들었다.
"현재 미국과 한국, 중국에서 들어오는 후원사의 후원금 내역입니다. 물론 제퍼슨이 첼시 입단 후에 새로 들어온 후원이구요. 그 외에도 웹플릭스 다큐는 제퍼슨이 아니면 시즌3은 찍지 않겠다고 했고, 흐음, 또 제퍼슨 관련 유니폼 및 각종 굿즈의 해외 판매 통계입니다. 여기에 제퍼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를 계산하면. 한 이 정도가 되네요."
제크는 잘 정리된 문서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구단 직원들은 침음을 삼켰다.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
제퍼슨으로 인해 첼시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이점까지. 그 방대한 자료를 압축하고, 정리해 놓은 문서였다.
슬슬 분위기를 가져온 걸 느낀 제크 팀장이 쐐기를 박았다.
"물론, 5년 계약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만."
"네?"
"주급은 55만 유로에, 여러 세부사항을 조율해 봐야겠죠."
"으음! 세부 사항이라면······."
"일단, 수당부터 확인해 볼까요?"
제크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 싸움은, 이겼다.
***
첼시는 벤 칠웰과 아다마 트라오레를 영입했다. 사용한 비용은 천억 원이 약간 넘는다.
미쳐 가는 이적시장에서, 이 정도라면 아주 저렴하게 좋은 A급 선수 두 명을 데리고 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아다마 트라오레는 오도이와 좋은 경쟁을 펼칠 선수였고, 벤 칠웰도 훌륭한 선수다.
다음 시즌에는 시즌 중간 월드컵까지 치러야 하는 일정. 스쿼드는 두꺼워야 한다.
스쿼드 보강에 나선 건 비단 우리 팀만이 아니다.
맨시티, 리버풀, 맨유, 아스날 등등.
많은 팀이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며 스쿼드 보강에 나섰다.
우리 구단은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하되, 기존의 선수들을 최대한 지킨다는 방침을 가져갔다.
타미가 떠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를 잡기 위해 구단이 부단히 노력했다고 들었다. 비록 타미는 떠났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재계약에 속속 성공했다.
캉테가 2년 계약 연장에 동의했고, 아스피도 1년 계약 연장에 사인했다.
뤼디거와 시셀도도 재계약에 성공.
메이슨 마운트는 에버튼, 아스날, 토트넘, 맨유의 오퍼에 시달렸지만, 끝내 팀에 남기로 했다.
서서히 팀의 구성이 갖춰지고 있었다.
"다 들었다. 재계약이 거의 확정이라고?"
"네."
"후우, 다행이다. 만일 너까지 못 잡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설마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신 감독님이라면, 이겨 냈겠죠."
"어디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흠흠!"
입꼬리 다 올라가는 거 보입니다, 감독님.
어쨌거나, 내 재계약은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다.
제크 팀장이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여러 조건도 엄청나게 좋아졌다.
-주급은 52만 유로 정도로 될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높은데요?"
-그런가요? 전 60만 유로까지 노렸습니다만.
"하하. 어차피 함께할 구단인데, 너무 얼굴 붉히는 것도 좋진 않잖아요."
-네. 일단 계약금은 8백만 유로 정도 선에서 확정될 것 같습니다. 득점 보너스는 대략 6만 5천 유로(8,400만 원가량)쯤 될 것 같습니다. 미교체 보너스를 낮추는 대신, 출장 보너스를 대략 13만 유로(1억 6천만 원가량)로 높였습니다. 제프, 당신이라면 벤치에 앉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거든요.
"출장 보너스를 낮추되 득점 보너스를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런, 하긴. 한 경기에 출전해서 두세 골을 넣는다면, 그게 더 이득이겠네요. 그럼 이렇게 하죠. 출장보너스를 그대로 두고, 득점 보너스만 높이는 거로요.
"······그게 됩니까?"
-CF에서 했던 말 있죠? Impossible is nothing. 그 정도는 불가능의 범주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만만하시네요."
-저야 수수료 보고 달려드는 거죠. 또 여기에 각종 로열티를 삽입할 예정입니다. 올해 월드컵이 있죠? A매치 출전 경기 수에 따른 보너스, A매치 득점에 따른 보너스도 삽입할 예정입니다.
음.
이 정도면 거의 사기를 치고 있나 싶은데.
뭐, 나야 상관없다.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최고다. 어차피 내가 좋은 계약을 해야, 제크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도 늘어날 터. 본인이 수수료를 더 타내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계약을 따낼 거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무리할 거로 생각하진 않는다.
적정선을 지키겠지.
아무튼.
내가 재계약 준비를 하는 동안, 첼시는 계속해서 선수들을 영입했다.
흠.
전력 보강 착실한데.
좀 이상하다.
벤 칠웰, 아다마 트라오레.
둘 다 알짜배기 자원이지만,
우리 감독은.
스트라이커를 원할 텐데?
***
[첼시, 프리시즌 돌입과 동시에 이적시장 철수 선언! 필마르크 감독, '원하는 선수진을 완벽하게 구성했다.']
IN
아다마 트라오레 RW (울버햄튼)
벤 칠웰 LB (레스터 시티)
웨스턴 맥케니 MC (샬케04)
미겔 오야르사발 LW (소시에다드)
풀리시치와 오도이 밖에 없던 측면 윙어에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아마다 트라오레와 미겔 오야르사발이라는 즉시 전력감의 선수를 영입했다.
또한,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선수로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인 웨스턴 맥케니를 수혈해 조르지뉴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벤 칠웰의 영입으로 풀백 품귀 현상에 빠진 현 축구계에서 아주 훌륭한 영입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아직 마지막 이적이 남았다.
타미와 지루가 떠난 빈 스트라이커 자리.
그 자리에 마지막 선수가 프리시즌 소집 일에 맞춰, 런던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신입생의 첫 시작은, 꽤 떠들썩했다.
"제프! 당장 튀어나와!"
[첼시, AT 마드리드의 빛나는 별, 산티아고 차베즈 영입 확정!]
[빅 샤이닝, 이적료 1,250만 유로(1,620억 원가량)에 첼시 이적을 확정지은 산티아고 차베즈.]
< 202. 아시아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