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01화 (201/258)

< 201. 아시아 (1) >

6월 둘째 주에는 광고 촬영.

셋째 주 일요일에는 게임 인터넷 방송 출연.

스케줄은 딱 이렇게 두 개였다.

꽤 괜찮은 휴식이었다.

작년과 비교하면 말이다.

휴식기 때 골드컵을 치른 후, 곧바로 프리시즌에 돌입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긴 시간을 휴식을 보냈다.

물론 그 긴 휴식 시간동안, 행복한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제프.

영국에 있던 타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얼마전부터 끝없는 이적설에 시달리던 타미였다. 타미의 목소리를 듣고 느꼈다. 월드컵을 위해 선택해야 할 것 같다고.

-11월에 월드컵이 시작되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선, 경기를 뛰어야 하고 컨디션을 유지해야 해.

"이해해. 월드컵이잖아."

-물론, 하아. 정말로 난 첼시를 떠나기 싫어.

목소리에 담긴 미련이 느껴졌다.

첼시는 트레블을 완성했다.

이건 단순한 큰 성공이 아니다.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서도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팀은 누구나 원하는 팀이 됐다. 타미의 선택은 구단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게 아니다.

-남자답게, 멋지게 경쟁해서 주전을 따내고 싶지.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네. 남들한테 경쟁을 피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타미의 선택은 현명한 것일지도 모르다.

11월 말부터 시작되는 카타르 월드컵.

시즌 도중에 진행되는 첫 겨울 월드컵이다.

선수로서는 최종명단에 포함되기 위해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월드컵까지 최상의 경기 감각을 유지하려면 경기에 많이 뛰어야 한다. 부상에 대한 염려는 둘째치고서.

부동의 1선발인 내가 있고, 2선발엔 우트가 있다.

타미는 현재 3선발 스트라이커.

우리 감독이 스트라이커를 대거 기용되는 전술을 자주 쓰더라도, 꾸준히 센터 포워드로 출전할 수 있는 것과 로테이션 멤버의 경기 감각에선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타미는 월드컵이란 큰 도전을 직면하고, 선택을 했다.

보다 많은 출전기회를 위해서.

"우리 수비들이 골치 아파지겠군."

-내가 이적하는 팀의 수비수들 생각은 안 하네.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맨유.

"어?"

-감독이 새로 바뀌었고, 그 감독이 날 간절히 원한다더군.

거.

으음.

거기가면 출전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을 거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못 보겠군."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 조심해, 제프. 다음 득점왕은 내가 차지할 테니까.

"음. 타미, 나에게 기세등등하게 도전했다가 살아남은 친구가 있긴 했던 것 같아?"

-후우. 빌어먹을.

타미는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이제 슬슬 이적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팀의 아카데미 출신인 타미의 이적이 팬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축구에서 원클럽맨 같은 낭만은 많이 사라졌다.

축구는 자본의 흐름에 이끌리고 있고, 팬들도 결국 욕을 내뱉더라도 씁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일 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의 타미 에이브러햄 영입 확정. 이적료 5천만 유로. (650억 원가량)]

[아스톤 빌라 수비의 핵, 미국 스타 제임스 로드릭 맨유 이적]

이적시장 초반부터 오피셜을 빵빵 터뜨리는 건 맨유였다.

확실히 저번 시즌 9위의 충격이 컸나 보다.

초반부터 착실하게 보강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의 문제점은 명확하다.

축구계에 도는 흔한 말 중 하나다.

'S급 선수 하나가 A급 선수 3-4명을 영입하는 것보다 확실하다.'

그렇다.

S급 선수는 팀의 방향 자체를 바꿔 줄 수 있는 확실한 자원이다.

우리 팀의 캉테나 하베르츠 같은 친구들 말이다.

S급 선수 하나 살 돈으로 A급 선수 여러 명에게 투자한다고, 그게 경제적일 순 있어도 팀을 승리로 이끌어 주리란 보장은 없다.

로드릭도 A급 선수고, 타미도 퍼텐셜이 충만한 친구다.

우리 팀에서나 3선발이지, 다른 중하위권 팀에 가면 노예 확정이라지만,

그것도 다 중하위권······.

아.

맨유가 중위권이구나.

아무튼,

이적시장이 시작되며 여기저기서 루머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보니, 과감한 도전을 선택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나한테 전활 걸어왔다.

-내가 말라 죽는 꼴을 보고 싶나?

"네?"

-도대체 재계약 소식은 언제쯤 들려 줄 건가?

"음. 글쎄요."

제크 팀장이 휴식기 내내 런던에서 재계약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만 계약 기간이 문제였다.

첼시는 최대한 긴 시간 동안 나를 잡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내 가치를 위해 계약기간을 현명하게 3년쯤만 하려 했으니까.

하나, 이런 재계약 논의는 잠시 뒤로 물렸다.

할리가, 떠났다.

***

장례식은 최대한 담담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물론 그렇다고 애도하는 마음이 적은 건 아니다.

지중해의 섬에서 가족과 휴가를 즐기던 아스피는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로 하늘만 바라봤고,

유소년 시절부터 할리를 봐온 타미는 맨체스터에서 곧바로 날아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아직 오피셜만 안 떴을 뿐, 프랑스 리그로 복귀했던 지루는 자신이 딴 메달을 관과 함께 묻었다.

"어쩌다 보니 선수단이 다 소집됐군."

감독의 목소리엔 씁쓸함이 느껴졌다.

본래 소집일보다 일주일이 이르다.

첼시 선수단은 멀리 휴가를 나가 있던 몇 선수 빼곤 모두 런던에 돌아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단 직원들부터, 유소년 친구들까지.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애써 감췄다.

"로만 구단주가 할리를 위해 4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고 했어. 엠버서더는 물론이고, 경기 시작 40분이 지나면 추모시간을 갖겠다는군."

꽤 낭만적인 일이다.

그러고 보니 로만도 할리와 꽤 친했다고 들었다. 할리가 대놓고 쓴소리를 했던 적도 있다던가.

"있었지. 아스피가 말하더라고. 옛날엔 할리가 라커룸에 그만 좀 들어오라고 면전에서 소리친 적도 있다고."

"하하. 그 할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날선 말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내 듣기로는, 나이 먹고 성격이 유해지신 거라던데. 한창때는 게으름 피는 선수들에게 온갖 욕을 했다고."

할리는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갔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울까.

구단의 평범한 전속사진사에서, 클럽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영구결번이라니. 참.

새삼 로만의 선택이 고맙다. 나 역시 그에게 빅이어를 선물했지만, 로만은 할리가 훗날 지금은 태어나지도 않은 어린 첼시팬들에게 기억되게 만들었으니까.

"오늘 아침 구단주가 다녀가면서 말하더라고. 재계약 소식이 빨리 귀에 들려오면 좋겠다고."

"그건 감독님 속마음 같은데요."

"잘되는 팀은 구단주하고 감독의 뜻이 일치하는 법이지."

감독은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런 낭만적인 팀이라면.

3년이 아닌 5년 계약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만이 할리를 위해 이렇게 해 줬는데, 나 역시도 어느 정도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난 제크 팀장에게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재계약 빨리 진행해 주세요. 5년으로 늘려도 상관없습니다.

***

프리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이적 확정 기사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우리 구단은,

음.

뭐라 해야 할까.

트레블 팀 치고는, 나가는 선수가 많았다.

"감독이 칼을 갈았지."

션 올리버가 유유자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칼을 갈았다고?"

"계약기간이 끝난 선수들은 재계약 없이 내보내고, 구상에 없는 선수들은 다 이적에 동의하고 있잖아. 새판을 아예 짜는 거지."

"흐음. 트레블로 감독의 권위도 확실해졌다. 이젠 자기가 원하는 선수로 구성하겠다는 건가?"

그러니까.

우리 팀을 떠나는 선수들의 숫자를 보고,

몇몇 팬들은 '엑소더스'란 단어를 외치기도 했다.

[윌리안, 자유계약으로 첼시 떠나. 다음 행선지는 스페인 유력]

[첼시 조르지뉴, 콘테의 인테르로?]

[올리비에 지루, 자유계약으로 프랑스 리그앙 복귀 확정적]

사실 우리 팀 선수들은, 주전급인데도 백업으로 뛰었던 선수가 꽤 있다.

같은 급의 빅클럽에 가면 주전을 뛰진 못해도, 중하위권 팀에선 노예 확정인 선수가 꽤 있다.

가령 조르지뉴가 그랬다.

작년엔 주전이었고, 올해 조금 밀린 감이 있었지만.

그도 타미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 월드컵을 위해 최대한 많이 뛸 수 있는 팀을 선택했다.

"사실. 조금 허망한 마음이 들기도 해."

"허망해?"

"트레블을 이루니까. 다 월드컵만 바라보는 거지."

올리버의 지적은 정확했다.

트레블이란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다.

아마도 평생 동안 이만한 커리어를 추가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 없으리라. 자연히 월드컵이 욕심이 날 거고, 그 월드컵을 위해 출전 기회를 노리는 선수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타미의 이적도 그러하고, 세리에A로 돌아가려는 조르지뉴도 그러했다.

조르지뉴가 떠난다는 사실에 파트너로 오래 뛰었던 캉테는 무척 아쉬워했다.

듣기론 캉테에게도 레알 마드리드와 PSG에서 엄청난 오퍼가 왔다고 들었는데,

캉테가 전부 퇴짜를 놓았다고 했다.

아무튼.

이게 축구다.

늘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친한 동료여도, 단 한순간에 헤어질 수도 있다. 당장 나만해도 회귀 전에 저니맨이란 소릴 들었으니까.

"나도 아스날에서 여러 연락이 왔었지만. 여기에 남기로 했어."

"그거 참 고마운 얘기야, 올리버."

"······왜 대답에 영혼이 없어?"

"응. 네가 첼시에 남아서, 이번 시즌 큰 힘이 될 거야."

"하."

올리버를 가볍게 놀리는 건 재밌다.

떠날 사람은 떠나가고,

새로 올 사람은 새로 오기 마련이다.

[첼시, 레스터로부터 벤 칠웰 영입. 수비라인 보강. 이적료 600만 유로 (780억 원 가량)]

알찬 영입에 성공했다.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 중 하나가 바로 풀백이다. 또 그만큼 희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자원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영입을 시도했던 벤 칠웰이 끝내는 첼시로 오게 됐다.

그래도 아직은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많다.

메이슨 마운트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타미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갈지, 안 나갈지는 확률이 반반이다.

그가 나간다면 우리는 미드필더에서도 새로운 선수를 구해야 한다.

또 공격진도 필요하다.

타미와 지루가 빠졌으니, 감독은 스트라이커를 찾기 위해 벌건 눈으로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으리라.

그리고 오른쪽 윙어도 필요하다.

오도이가 이젠 주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풀 시즌을 치르기엔 무리가 있다.

흐음.

이거야 원.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팀이 약해지는 걸 누가 원하겠나.

그래도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건 기대할 만했다.

우리는 명실상부 트레블 팀이 아닌가?

선수들이 가장 선망하는 팀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늘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이라고 세계에 홍보가 됐으니까.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 선수도 많으리라.

또 다른 팀과 영입 경쟁이 붙으면, 아무래도 우리가 유리할 거다. 물론 상대팀이 레알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면 모르겠지만.

그러던 와중에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한 친구를 영입하려고 노력중인데 말이야.

"네."

-아스날과 경쟁이 붙었어.

"수월하게 영입하겠군요."

-큭! 원래대로라면 그렇겠지.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아무래도 선수들은 우리 팀에 흥미를 보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영입이 쉽지 않다면,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될 거다.

"높은 주급을 제안했나 보네요? 그도 아니면 그 선수가 아스날 팬이거나."

-그쪽에서 주급을 크게 질렀어. 우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긴 한데, 기존 주급 체계란 게 있지 않나.

쩐의 전쟁에서 아스날이 첼시보다 주급을 더 제시했다는 건,

정말 그 선수를 원하는 것이란 얘기다.

흠.

근데 그래서, 나한테 왜 전화를?

-자네가 이제 우리 팀의 부캡틴이니까.

"······난생 처음 듣는 얘긴데요."

-방금 내가 그러기로 결정했거든. 코치진도 아마 동의할 거다.

뭔가 얼렁뚱땅 되는 거 같은데.

-그 얘긴 프리시즌 때 천천히 하고. 중요한 건, 내가 영입하려고 하는 이 친구가 너의 엄청난 팬이라는 소식을 접했지.

"엄청난 팬이라고요?"

-뭔가 너랑 느낌이 비슷하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한번, 음 얘기해 보라는 건가요?"

-그래 주면 정말 고마울 거 같아.

뭐,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할리의 장례식 때문에 일주일 이르게 런던에 왔기에 딱히 약속도 없다. 그냥 집에서 이렇게 올리버나 데리고 운동하는 것밖에.

흠.

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고 부캡틴 운운한 건가.

하여튼 이 양반도, 은근히 앙큼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좋아요. 그 선수가 누군데요?"

< 201. 아시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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