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00화 (200/258)

< 200. 제프 특 : 그냥 다 잘함 >

유명 게임 시리즈를 출시하는 게임사. 그곳의 직원들은 신작 출시를 앞두고 표정이 묘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여러 모니터에는 제퍼슨 리의 하이라이트 영상, 웹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그리고 아디다스 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이거, 대박이긴 한데요."

"대박이지. 저 친구 네이밍을 일찌감치 선점했으니까."

"올해 초반에 모션 캡쳐도 따 놨잖아?"

몸값이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는 선수가 제퍼슨 리였다. 수많은 광고주가 그를 광고 모델로 쓰기 위해 불나게 전화를 하고 있었고, 여러 대기업도 제퍼슨의 후원사가 되고자 안간힘이었다.

그런 걸 감안하면, 제퍼슨의 유럽 첫 시즌이 끝나고 곧바로 접촉했던 게임 회사의 능력을 칭찬해 줘야 한다.

그때도 몸값이 미쳐 있었지만, 트레블 이후의 지금만큼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이미 네이밍 사용권을 따냈고, 게임에 사용할 모션 캡쳐도 완료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현재 엄청난 인기가 느껴질 때 게임을 출시하면 이번 시리즈도 성공적일 터.

하지만, 이들의 표정이 묘한 이유는······.

"왜 안 돼?"

"저게 어떻게 됩니까!"

"제퍼슨은 되잖아!"

"물리 엔진이 못 따라 준다니깐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은 개발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맞은편에 있던 사람이 분명 상사였건만, 개발팀장은 눈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 댔다.

"우리 물리엔진으로 저런 플레이 구현할 수 없다니까!"

"Fuck! 제퍼슨은 실제로 저렇게 플레이한다고!"

"아오! 이렇게 하면 게임이 버벅거리고 온갖 버그가 다 나옵니다. 그래픽까지 깨지고 모션 안 나옵니다. 불가능해요!"

"팀장이란 놈이 불가능이라고? 아니, 현실에서 제퍼슨의 플레이 특징이 저 역동성인데. 이걸 구현할 수 없다고?"

"게임이 현실이랑 같습니까?"

"현실이 게임을 못 따라가야지. 게임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게 말이 되냐고! 이 월급만 타가는 버러지 자식들아!"

"뭐라고?"

"이 미친놈이!"

"며칠째 집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버러지?"

"개발은 좆도 모르는 저 개자식이 우리보고 버러지라고 한 거야?"

"코딩은 키보드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다! 이 개자식아!"

우당탕!

"어휴."

이번 시리즈의 출시를 담당하는 총책임자는 현장을 보고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개발진과 윗사람들의 의견 갈등은 늘 있었지만,

이번만큼 심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의견 갈등이 아니라 거의 대립 수준이었다.

"근데 저 같아도, 왜 안 되겠느냐고 소리치겠어요."

"때론 현실이 게임보다 더할 때가 많지."

총책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이 제퍼슨의 하이라이트가 흘러나오는 모니터로 향했다.

현재 회사 운영진들이 가장 바라는 건 바로 저런 플레이의 게임화였다.

[제퍼슨 리! 또 한 번 돌파합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이런! 골키퍼까지 제쳐 버립니다!]

그야말로 가슴이 짜릿해지는 역동적인 플레이.

거침없는 터닝 플레이, 전후좌우 속도를 죽이지 않는 드래프트, 공을 뒤로 긁어 버리는 백 스텝. 그 모든 동작이 다이나믹했다.

아마도 게임 유저들은 저런 플레이를 게임 속에서 직접 하는 걸 기대할 거다.

문제는.

"저건 말도 안 됩니다! 기존 물리엔진으로 턱도 없어요! 물리엔진을 갈아엎어야 하고, 제퍼슨의 모션도 다 따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예 새로 개발해야 해요. 곧 출시인데, 지금 어쩌란 겁니까."

개발팀장의 말에 총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게임 출시 일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1년이 지날 때마다 새로 나오는 시리즈였으니까.

결국, 총책임자는 결단을 내렸다.

"일단 구현할 수 있는 모션을 최대한 만들어. 물리엔진이 허락하는 한에서 말이야. 그리고 능력치도 최대 능력치로 설정해."

"네?"

"그러면 너무 사기인데요?"

"그럼 저건 사기 아니고 뭔데?"

총책임자가 가리킨 하이라이트.

80M 거리를 단독 드리블하고, 백 힐킥으로 수비 사이에서 골 넣고, 수비수 네다섯 명을 몸으로 튕겨 내는 제퍼슨이 있었다.

"음."

"그렇군요."

제작진들은 곧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욕먹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랬다.

어차피 게임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어차피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간 모든 시리즈에서 그랬다. 제퍼슨 뿐만 아니라, 각 선수의 능력치가 공개 될 때마다 그러했다.

"최대 능력치로 나온다고? 그러면 또 욕먹겠지. 삼십년, 사십 년 전의 펠레, 마라도나를 데리고 와서. 얘들하고 비교질하겠지."

"크읍!"

"그러면 최대 능력치보다 조금 부족하게 설정하면?"

"반다이크 두들겨 패고, 조 우드락보다 점프 높게 하고, 린드로스보다 빙판에서 몸싸움 잘하는 제퍼슨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말이 되냐고 욕하겠죠."

"맞아. 어차피 욕먹는 건 똑같아. 최대 능력치로 설정하면 그래도 물리엔진이 허락하는 한의 플레이는 가능하잖아?"

"네. 유저들이 놀랄 정도는 됩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자고. 그리고 우리가 언제부터 축구게임이었어?"

"네?"

개발진은 얼굴은 순간 떨떠름해졌다.

게임 이름부터가 피파 시리즈인데,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우리는 카드깡 게임이지."

"아니 그건······."

"제퍼슨 뽑힐 확률 조정해. 아주 극악으로 하라고. 제퍼슨을 쓰면서 이래도, 저래도 욕한다면, 차라리 제퍼슨을 못 쓰게 만들어 주지. 겸사겸사 돈도 벌고 말이야."

이 상황에서 돈을 쓸어 담을 생각하는 총책임자를 보며, 개발팀장은 자신이 하는 일에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다.

***

[아, 형님들. 오늘은 제퍼슨 챌린지, 진짜 제대로 성공하겠습니다!]

ㄴ응 아냐.

ㄴ지금 한국 피파 유저 중에 제프 뽑은 사람 있음?

ㄴBJ나 스트리머 중에는 없음ㅋㅋ

ㄴ저번에 제퍼슨 뽑은 사람이 영상 올렸는데 ㅈ되더라.

ㄴ개좋음 ㅋㅋㅋ능력치 씹사기

[제가 말이죠. 진짜. 하. 제퍼슨 챌린지. 우리 제프 하나 뽑겠다고 여기에 지른 돈이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ㄴ어차피 방송하는 동안 본전 뽑음

ㄴ사실 우리가 카드깡 대신해 주는 거지

ㄴㄹㅇ ㅋㅋㅋ

ㄴ샛기야 엄살 부리지말고 카드나 뜯어 ㅡㅡ

[알겠습니다. 뭐 첫빠 바로 가보죠. 이게 원래 초반에 안 뜨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뜨더라구요.]

ㄴ이건 맞지

ㄴ처음에 안 뽑히면 방송 끝날 때까지 안 뽑힘

ㄴ제퍼슨챌린지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ㄴ집문서 박을 때까지 안 나올 듯 ㅋㅋ

[자! 갑니다!]

ㄴ가즈아아ㅏㅏㅏ

ㄴ제프가즈아ㅏㅏㅏ

[<미국 국기> 어 시발? 미국?]

ㄴ엌 미국ㅋㅋㅋㅋㅋㅋㅋㅋ

ㄴ드디어?ㅋㅋㅋㅋㅋ

ㄴ설마!

ㄴ미국 국깈ㅋㅋㅋㅋ성조기 감동적이다

ㄴ미국 땅 한번 안 밟았는데 독립전쟁 시절 워싱턴 된 기분ㅋㅋㅋ

[ 어어어? 어? 시발? 미국에 포워드? 어?]

ㄴ헐ㅋㅋㅋㅋ

ㄴ뜨냐? 이제 진짜?

ㄴ미국에 포워드면 제프지;;

ㄴ진짜 제프 나오냐?

ㄴ와씨!

[<첼시 엠블럼>우와아아앜! 시발! 나 첼시! 제퍼슨! 제퍼슨!]

ㄴ않이;;;;레알임?

ㄴ와 여기서 제프가 뜬다고?

ㄴ제프가 나온다고? ㄹㅇ?

ㄴ근데 이쉑 맹구팬 아니었나

ㄴ첼시 엠블럼보고 환호하는 거 보소ㅋ

[<풀리시치> 아 씨발.]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않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방송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풀리시치 잼

ㄴ표정 봐랔ㅋㅋㅋㅋ왜 우리 풀리식 기죽이고 그래요!

ㄴㅋㅋㅋㅋㅋ무슨 모든 심정이 시발 하나로 다 표현 가능하냐

ㄴ미국 국기 뜰 때 어 시발? 첼시 엠블럼 뜰 때 오 시발!!! 풀리시치 딱 뜨니까 씨발;;;

***

"그냥 간단합니다. 나와서 게임만 좀 하시다가, 가시면 돼요."

이런저런 광고는 다 거절했지만,

이건 꽤 재밌을 것 같았다.

축구 게임으로 유명한 회사에서 날 섭외한 것이다.

정확히는 그 게임을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스트리머와의 인터넷 방송으로부터다.

함께할 방송인은 이 게임의 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력이 제법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단지 실력보단 콘텐츠 제작 능력, 기획 능력, 특별한 리액션으로 더 유명했다.

"반갑습니다, 조이닉입니다."

"아, 네. 반가워요."

조이닉은 굉장히 재미있는 방송인이었다.

유능하기도 했다.

ㄴ(UK)제퍼슨이다!

ㄴ(US)세상에. 제퍼슨을 조이닉 방송에서 볼 줄이야.

ㄴ(KO)엌ㅋㅋㅋㅋ 제프닼ㅋㅋㅋㅋ 제프가 게임 방송에도 나오누ㅋㅋ

ㄴ(FR)와. 비시즌기인데도 몸이 단단해 보이네.

"채팅이 정신없네요."

"하하하. 그러게요. 제 방송은 미국에서나 인기 많은데, 오늘 이렇게 많은 언어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방송이 시작됐는데, 채팅은 국제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언어도 보였다. 아랍 쪽 언어는 아예 못 읽겠고.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조이닉은 조금 당황해 보였으나, 이내 능숙하게 방송을 이끌어 갔다.

방송 시간은 대략 두 시간.

한 시간 정도는 인터뷰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얘기하고.

나머지는 간단히 게임을 하는 일정이다.

여러 국적의 채팅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영어권하고, 한국어 채팅이었다.

내가 눈에 띄는 한국어 채팅을 읽자, 채팅창은 금세 한국어로 좌르륵 도배됐다.

"한국에 언제 오냐고요? 아 일정 안 떴나요? 이번 프리시즌 때 한국도 갑니다."

ㄴ(KO)와 한국어 유창한 거 뭐야

ㄴ(KO)당황했다;

ㄴ(KO)한글 읽을 줄 모르고 개쌍욕했는데

"네, 욕 하는 거 봤어요. 날강두가 저보다 낫다고 했죠? 닉네임 기억했습니다."

ㄴ(KO)엌ㅋㅋㅋㅋㅋㅋㅋ

ㄴ(KO)아니 날강두가 뭔지도 아네?ㅋ

ㄴ(KO)호동생들한테 테러받겠누;;

조이닉은 올라오는 한국어 채팅에 잠시 넋 놓고 있다가, 이내 능숙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격식 차린 인터뷰는 아니었다.

뭔가 그냥 앞에 맥주 한 캔 놓고 대수롭지 않게 하는 얘기, 그런 느낌으로 진행됐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떠들다보니, 조이닉이 흘깃 시계를 바라보고 기지개를 켰다.

"자, 그럼 게임 한판 하시죠?"

"뭐 간단한 내기라도 할까요?"

"오오! 자신 있으신가 보네요?"

"제가 플레이할 팀에 제 캐릭이 있다고 들었죠."

"아하. 제퍼슨 캐릭터를 쓰면 질 리가 없다?"

"그러지 않겠어요?"

ㄴ(US)조이닉이 그래도 게임은 잘하는데.

ㄴ(US)이 게임만 방송하는 놈이니까.

ㄴ(US)프로는 아니어도 세미프로는 되는 놈이지.

ㄴ(KO)지금 뭐라는 겨. 통역병 없냐

ㄴ(KO)제프가 조이닉 좆밥이래

ㄴ(KO)엌ㅋㅋㅋㅋㅋ

이 게임은 사실 나도 자신 있었다.

축구 선수들도 다 즐기는 게임이 바로 이 시리즈다. 이번에 게임사에서 나에게 이 스케줄을 제안한 건 이거다. 제퍼슨이 사용하는 제퍼슨 캐릭터. 게임 홍보도 하고, 현재 과열되고 있는 일명 '제퍼슨 챌린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전략.

실제로 내 캐릭터 카드를 뽑아서 제대로 사용하는 방송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하긴. 아버님이 한국인이시죠? 그럼 게임 잘하겠네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버지도 게임은 거의 안 하시는 그냥 스포츠맨이시구요. 또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게임 다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ㄴ(KO)야 근데 제프 거의 한국인처럼 말하는데

ㄴ(KO)ㄹㅇ ㅋㅋㅋㅋ

ㄴ(KO)거의 본인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듯

"이런, 우리가 아는 그 제프치곤 너무 약한 소리인데요. 하긴. 그래도 게임은 제가 제프보단 잘할 겁니다. 전 밥만 먹고 이거만 하거든요."

조이닉이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흠.

갑자기 승부욕을 건드시네.

***

"어?"

조이닉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타타탁!

패드를 쥔 손에 순간 힘이 쭉 빠졌다.

ㄴ(US)3대 0이야 :D

ㄴ(US)조이닉이 탈탈 털리는데.

ㄴ(US)제프가 사기야!

ㄴ(US)어떤 제프? 게임 속 제프? 게임 하는 제프?

ㄴ(US)둘 다 사기야;;

조이닉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이렇게 잘해?'

자신이 프로급은 아니어도,

이 게임만 스트리밍하는 전문 스트리머였다. 비록 입담이 실력보다 더 낫다고 시청자들은 말하지만, 영어권 스트리머들은 기본적으로 실력이 받쳐줘야 게임 방송으로 먹고살 수 있다.

하물며 조이닉은 게임회사로부터 직접 지명받은 스트리머가 아닌가.

한데 조이닉은 말 그대로 탈탈 털리고 있었다.

3연패.

아무리 제퍼슨이 사용하는 선수 캐릭터, 제퍼슨이 사기적인 카드라고 해도.

죽도 못 쓰고 있었다.

조이닉은 떨떠름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어으음. 잘하시네요. 이제 플레이 스타일 잘 알겠습니다. 한판 더 하시죠."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조이닉 씨."

하나 이어지는 게임에서도 조이닉은 쉽사리 제퍼슨을 압도하지 못했다. 아니 철저하게 무너졌다.

ㄴ(KO)조이닉 얘 피파 스트리머 맞음?ㅋㅋ

ㄴ(KO)제프가 그냥 다 털어 버리네

"아니. 게임 너무 잘하는데? 못한다면서요?"

"음. 못하는 것 맞긴 한데. 그쪽이 더 못하는 게 아닐까요?

ㄴ(KO)한국인특: 게임 잘 못해요.(그래도 넌 이겨요)

ㄴ(KO)흑인 특: 저 랩 못해요. 농구 못해요.(그래도 너보단 잘해요) 이거랑 똑같은데ㅋㅋㅋㅋ

ㄴ(KO)제프 특: 그냥 다 잘함 ㅋㅋㅋ

< 200. 제프 특 : 그냥 다 잘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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