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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98화 (198/258)

< 198. 이게 된다고? 되는데요? (3) >

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한 분야에서 정점에 가까운 사람은, 때로는 그 감이 이성적인 판단보다 한없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그런 매클락의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광고는 대박이다!'

두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빙판 위에서 제퍼슨과 끊임없이 싸우는 린드로스의 거친 몸싸움.

어느새 스틱으로 퍽을 치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저 눈빛, 눈빛 제대로 찍으라고!"

분에 가득 찬 린드로스의 눈빛. 무심하게 어깨로 튕겨 내는 제퍼슨의 얼굴. 그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 매클락은 확신했다.

'이거 된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완벽한 그림이다.

대역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날것 같은 생생함이 팔딱거렸다. 여기에 화려한 편집기술이 가미되고, 배경음악이 깔린다면?

매클락의 머릿속에서 파파파팍 하고 광고 영상이 빠르게 재생됐다.

'완벽해.'

특히 막판, 린드로스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쓰러질 때.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제퍼슨이 마스크를 벗고 린드로스에게 손을 쭉 뻗어 주었다. 린드로스는 분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곤 그 손을 잡고 일어설 때. 뭔가, 짜릿한 감정이 느껴지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 모든 그림을 카메라에 담은 매클락은 환호했다.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다가 마지막에 서로가 최고인 걸 인정하는 그 완벽한 그림이 저절로 연출된 것이다!

아무런 연기 주문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좋아요! 컷! 컷컷컷! 퍼펙트! 완벽해!"

한번 분위기를 제대로 타기 시작한 광고 촬영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제퍼슨의 활약에 자극받은 것일까.

아데스타와 랜드 우버, 닉 버크까지.

모두 촬영에 협조적이었다.

그들은 가능하면 본인이 직접 하려고 시도했다. 도저히 안 될 때만 대역을 썼다. 선수들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풍부한 감정이 마구 드러났으며 카메라에 담기는 그림은 완벽했다.

매클락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도통 참을 수가 없었다.

'아으! 귀여운 자식!'

제퍼슨을 바라보는 매클락의 두 눈동자에서는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 저 녀석 때문에 이번 촬영은 성공적이었다.

"좋아, 이제 풋볼이다!"

계속해서 빠르게 이어지는 촬영.

어쩌면 이번 광고의 하이라이트는 풋볼 신이었다.

모든 스포츠가 인기가 많지만, 미식축구의 인기는 궤를 달리한다. 괜히 여기서 닉 버크의 입김이 가장 센 게 아니다.

한데 애초에 계획과 달리, 닉 버크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이번엔 경쟁보단 협력이 괜찮지 않을까?"

"협력이요?"

"제퍼슨 저 친구, 러닝백이었잖아. 내가 공을 패스하고, 러닝백이 돌파하고. 서로 경쟁이 아니라 한 팀으로 협력하는 그림. 그게 더 좋을 거 같은데?"

"흐음."

매클락은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쯤에선 어떤 그림을 찍어도 좋은 게 나올 것 같았다.

닉 버크의 제안도 좋았다. 아니 그의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게 더 좋을 거 같다고.

"그러면 바로 가 볼까요?"

"좋지. 저기 데리고 온 고등학교 친구 중에 디펜스맨들만 좀 뽑아서 연출해 보자고."

스태프들은 빠르게 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된 약식의 세트장엔, 비대한 덩치의 선수들로 가득 찼다.

"흐음."

"자. 러닝백 MVP 출신의 돌파를 보여 주라고, 제퍼슨."

"영광인데요. 슈퍼볼 우승자의 패스를 받고 돌파라."

"흐흐흐."

닉 버크가 실실 웃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스태프들은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현재 약식 세트장에 올라온 디펜스맨들은, 비록 고교리그 선수들이지만 그 덩치는 성인 중에서도 탑이었다.

100kg가 넘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물며 그들도 모두 프로를 목표로 두고 있는 선수들이 아닌가.

한데도 제퍼슨과 닉 버크는 태연했다.

"제퍼슨, 혼자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해 봐야죠. 이건 뭐."

"음, 알겠습니다."

매클락은 다소 불안한 심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액션 사인을 보냈다.

"액션!"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

닉 버크의 괴성이 쩌렁쩌렁 울리고.

휘익!

타원형의 볼이 제퍼슨에게 향했다.

제퍼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헛숨이 절로 들어가는 폭발적인 속도.

한데 닉 버크의 외침이 터져나올 때, 제퍼슨은 상체를 돌리지도 않았다. 아니,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앞만보고 우직하니 달리면서, 팔을 뒤로 쭉 뻗어 날아오는 공을 잡아 품에 안았다.

"맙소사!"

"저걸 저렇게 잡는다고?"

스태프들은 터져 나오는 경악성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켰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차마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숨이 턱 막혔으니까.

휙, 휙!

뭐라 표현해야 할까. 서너 명의 거구가 양팔을 벌리며 덮쳐 드는데, 제퍼슨은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그 안으로 돌진했다.

피하는 것 따위는 없었다.

정면 승부.

그들이 부딪칠 때, 여자 스태프들은 깜짝 놀라 입을 가릴 정도였다.

그 압도적인 속도감, 폭발력, 압박감.

그 사이에서 제퍼슨은 공을 품에 안고 말도 안 되는 기괴한 움직임으로, 지그재그 스텝을 밟으면서 순식간에 벗어났다.

"미친!"

경악한 디팬스맨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제퍼슨을 놓치고 바닥에 굴러 넘어졌다. 마지막까지 쫓아가던 110kg의 거구가 붕 떠서 날아올랐다. 몸으로 아예 덮치려는 속셈이다.

그 순간 스태프들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다치면 큰일 난다!'

자칫 깔아뭉개진다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을 터! 그럼 남은 촬영은 모두 취소될 게 뻔했으며, 보상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그런 아찔한 감정이 매클락의 뇌리를 관통할 때.

빠아악!

제퍼슨이 상체를 크게 들어 올리면서, 거구를 말 그대로······.

튕겨 냈다.

누가 봐도 거대한 체격의 상대를,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는 고등학생 선수라고 해도, 그들의 상식에선 믿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

"이게 된다고?"

그리고 다시 한번 스피드를 터뜨리며, 깔끔한 터치아웃.

"What the Fuck!"

"······컷, 컷!"

매클락은 뒤늦게 컷 사인을 보냈다.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마치 홀린 기분이었다.

미국인들은 모두 NFL을 본다. 여기 에 모인 스태프들도 풋볼에 열광하는 사람이 한가득하다.

때문에, 방금 보여 준 제퍼슨의 퍼포먼스에 모두가 비명을 내질렀다.

"휘이이이이이익!"

"최고다!"

"제퍼슨 리! 와아!"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스태프들은 참지 못하고 박수세례를 쏟아 냈다.

참았던 숨을 겨우 내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짧았다.

엄청난 스피드. 패스 이후 순식간에 디펜스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한두 명은 몸으로 튕겨 내는 그 순간은 극히 짧았다.

그랬기 때문에 더 압도적이었다.

스태프들은 진짜 괴물을 보는 시선으로 제퍼슨을 바라봤다.

'야구에, 아이스하키에 풋볼까지.'

'대체 뭐야?'

'이건 말도 안 돼.'

'이게 된다고?'

그런 시선을 의식한지 제퍼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음, 생각보다 잘되는데요?"

***

빠악!

"끄아악!"

뻑!

"컥!"

빠각!

"악!"

음.

그러니까, 이게 일종의 복수전인가?

링 위에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하나는 챔피언 아데스타, 하나는 얼음 신 린드로스.

빙판에서 당했던 치욕을 갚아 주는 것처럼, 아데스타는 쉼 없이 린드로스를 두들겼다.

린드로스도 한때 격투기를 꿈꿨던 만큼 자신 있는 싸움꾼이었고, 실제로 아이스하키에서 인포서(Enforcer: 플레이 도중 상대 선수와 직접 폭력을 쓰며 대결하는 룰)를 수행할 정도로 주먹을 잘 썼다.

하지만.

빠악!

"항복! 시발! 시이발!"

뻐억!

"제발!"

빡!

"오, 지져스!"

멈칫.

린드로스가 그렇게 외치고 나서야.

아데스타는 씩 웃었다. 감독의 컷 사인도 무시하던 그가 지저스란 소리가 나올 때야 주먹을 멈췄다.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오늘도 죄 많은 양을 주님 곁으로 인도했군."

"미친놈!"

제대로 깨진 린드로스는 한숨을 내쉬며 링을 내려왔다.

"다음!"

아데스타가 신난 채 소리쳤다.

닉 버크는 린드로스가 멍든 꼴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난 대역을 쓰지."

"나도."

랜디 우버가 냉큼 동의했다. 아데스타가 실망했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제퍼슨! 한번 올라와!"

으음.

나도 내 입에서 지저스란 소리 내긴 싫은데.

그래도 일단 링 위에 올라갔다. 대역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전적이 있으니까.

"나는 싸워 본 적이 없는데."

"그 덩치로?"

"음, 없어."

누가 이 덩치를 보고 시비를 걸겠나.

"평화주의자였군."

"그래도 뭐 잔기술 몇 개는 아는데."

지켜보던 매클락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일단 합만 한번 맞춰 볼까요?"

주먹을 쓰는 것이니까 좀 위험하다.

일단 합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혹시 모르니까, 합 맞추는 것도 카메라로 찍을게요. 신경 쓰지 말고 한번 해보세요."

매클락은 우연찮게 좋은 영상이 담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카메라를 켰다.

아데스타는 애당초 카메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휙휙 날리며 간단히 설명했다.

"주먹은 이렇게 빠르게, 곧게 뻗어야 해. 어정쩡하게 내지르면 오히려 손목이 부러질 수도 있지."

아데스타는 무시무시한 외모와는 다르게 무척 친절했다.

"좋아, 느낌 좋은데? 이거 격투를 정식으로 배웠으면 꽤 날았을 텐데?"

"칭찬 고마워."

"아니야. 진짜야. 뻗을 때 실리는 힘이 묵직해. 음, 좋아. 한번 자유롭게 해 볼까?"

"이런, 맞기 싫은데."

"난 방어만 하지. 공격해 봐."

"괜찮겠어?"

"내 걱정하는 거야? 설마 내가 축구선수의 주먹 하나 못 피할까 봐?"

물론 그건 아니다.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종합격투는 진짜 내 분야가 아니다. 아데스타가 작정하면, 난 여기서 곤죽이 되어 나갈 거다.

그만큼 아데스타는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럼 부담 없이 한번 해볼까.

휙휙!

과연.

내 주먹이 날카롭다고 스스로 여기진 않지만, 아데스타는 아무런 문제없이 쉭쉭 피했다. 감탄스럽다.

그러다가 문득.

음.

나도 모르게, 상체를 휙 비틀며, 발을 들어 올렸다.

휘익!

빠아악!

"······."

어.

좆 된 거 같은데.

***

빠아악!

"헉!"

"어어?"

아데스타는 솔직히 말해, 당황했다.

주먹을 빠르게 뻗다가, 거기서 몸을 회전시키며 발차기를 내지를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깔끔한 뒤돌려 차기.

순간적인 본능으로 팔을 들어 올려 발차기를 막았다.

그제야 아데스타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았다.

'위험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렸지만, 팔뚝에서 느껴지는 둔중한 충격은, 심상치 않았다.

제대로 맞았으면.

'최소 PKO.'

자신의 맷집이어도, 저 헐크 같은 허벅지에서 나오는 힘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을까.

한 차례 침묵이 내려앉은 뒤, 다소 미안해하는 제퍼슨의 얼굴을 보며 아데스타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너 이거 뭐야?"

"미안해. 어릴 때 아버지한테 배운 태권도가 저절로 나왔네."

"아버지가 세계 챔피언이라도 되나?"

"어떻게 알았어? 올림픽 챔피언인데."

"Fuck! 내가 본 킥 중에 가장 위험한 킥 세 개 중 하나로 꼽을 만했어."

아데스타는 자기도 모르게 제퍼슨을 꽉 껴안았다.

"이봐. 나랑 종합격투기 같이할 생각 없어?"

***

NBA 라이징 스타, 조 우드락은 매니저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여유로웠다.

"아니, 늦었다니까 그러네!"

"맞아. 늦었어. 근데 그게 뭐?"

"제기랄! 조! 저 안에는 엄청난 스타가 있다고! 그 대단한 닉 버크가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각이라니!"

"에이. 같은 스포츠 선수끼리 뭘. 농구 선배도 아닌데."

"허."

조 우드락은 거만했다. 어린 나이에 NBA에서 최고 유망주로 뽑힌 라이징 스타였다. 몇 년 내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거라고 평가받는 선수다.

하나, 매니저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오늘 같이 촬영하는 선수들은,단지 라이징 스타가 아니라 이미 그 분야에서 최정점에 오른 선수들이 아닌가.

이 거만함이 거기서도 통할까?

그러나 그런 매니저의 걱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조 우드락은 거리낌 없이 촬영장에 들어갔다.

"Oh, 늦어서 미안해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과 제스처.

감독 매클락이 붉어진 얼굴로 다가왔다.

"왜 이리 늦었습니까? 다른 씬 촬영 다 끝났는데. 농구만 남았습니다."

"아하. 다행이네요. 난 농구만 하면 되잖아요?"

"······콘티 설명해 드렸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다른 종목에도 도전하는 모습을 찍겠다고."

"에이. 난 농구만 하면 되죠. 어서 찍읍시다. 뒤에 스케줄이 있어서요, 늦으면 안 돼요. 지금도 지각했다고 이렇게 화내시는데."

"허."

매클락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른 출연자들을 바라봤다.

랜디 우버하고 닉 버크는 여길 흘깃 보곤 그냥 웃어넘기고 있었고,

린드로스는 기가 죽은 표정으로 그냥 앉아 있었다. 아데스타는 여전히 관심 없는 표정이었고.

제퍼슨만이 다소 좀 짜증나는 눈빛으로 지각한 조 우드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너 아까 점프하는 거 보니 장난 아니던데. 저 친구에게 교육 좀 해 주지?"

닉 버크가 제퍼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제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쭐 내주죠, 뭐."

< 198. 이게 된다고? 되는데요?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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