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95화 (195/258)

< 195. 번아웃? 그게 뭔데? (3) >

6월 둘째 주,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찌라시가 돌았다.

"웹플릭스 주식 매수해 놔."

"왜? 무슨 소식 있어? 거기 좀 그렇잖아? 경쟁 플랫폼이 너무 많아."

"그래도 해. 이번 분기는 반드시 올라."

"뭔가 소스가 있나 본데?"

"다큐멘터리 하나 기가 막힌 거 나오거든."

"에이. 콘텐츠 하나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고? 그건 아니지."

"아니, 글쎄 해 보래도."

"됐어. 난 그런 이상한 소문에 내 돈을 버릴 만큼 멍청한 투자자가 아니야."

스스로 멍청한 투자자가 아님을 자신했던, 그 남자는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6월 둘째 주.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리얼 블루스, 첼시 시즌2>가 런칭했다.

시즌 1의 기존 연출자에 이전의 화제성과 영향력에 매력을 느낀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다큐멘터리치곤 엄청난 제작비가 사용되었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인력이 대거 투입된 결과물은, 런칭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리얼 블루스 첼시, 웹플릭스 다큐멘터리 재생 횟수 중 1위!]

[웹플릭스 발표 결과, 미국 가입자의 67%가 리얼 블루스 첼시를 감상한 것으로 알려져.]

[진중한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저 상업용 영화 같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웹플릭스 가입자 급등!]

[하반기 끝나기 전에 상반기 예상 가입자 수 웃돌 듯.]

[웹플릭스 주가 상승, '리얼 블루스, 첼시' 런칭 효과?]

단순 다큐멘터리 하나가 인기를 얻은 것치곤 다소 과하게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의 골드컵 우승을 기점으로 북미 내 축구의 인기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특히 미국인들은 '히어로'에 열광하기 마련이다. 미국은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 대부분이 상위권이었지만, 사실 축구만큼은 변방국 취급을 받아 왔었다.

한데 제퍼슨 리라는 새로운 선수가 나타났다.

미국을 이끌고 최대 라이벌 멕시코를 꺾고 우승했으며, 캡틴 아메리카란 별명에 가장 어울리는 '위대한 아메리카'라는 인터뷰를 했다.

히어로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제퍼슨의 유럽 활약에 옮겨 갔고,

이번 시즌 제퍼슨의 활약은 단지 잘한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콧대 높은 유럽 축구계가 제퍼슨을 인정하다 못해 치켜세웠다.

[리오넬 메시와 호날두의 뒤를 이은 새로운 시대의 이름, 제퍼슨 리]

[시즌 득점 84골 31어시스트. 누가 그를 비판하는가?]

[유럽 축구계를 뒤흔들어 버린 미국 출신의 천재 스트라이커.]

[아프리카, 남미, 유럽의 내로라하는 수비수들을 박살내는 미국산 전차.]

[트레블의 실질적 주력, 제퍼슨 리.]

유럽에서 쏟아져 나오는 반응은 곧바로 미국으로 전해졌다.

신속하고 정확했다.

유럽에서 기사가 뜨면, 고작 몇 분 만에 미국에도 퍼져 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크 팀장이 손을 한번 쓰면, 북미 스포츠계 언론이 순식간에 움직였으니까.

그러나 여기까지 그쳤으면, 제퍼슨은 그저 미국을 들썩이게 한 새로운 스포츠 스타에 멈췄을지 모른다.

하나, 미국인들이 제퍼슨에게 열광하는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직 우승컵이 남았는데 벌써 소감 말하긴 그렇죠. FA컵 우승하고 같이 말할게요.]

[세계 최고란 소리를 들을 때 어떤 기분이냐고요? 글쎄요. 너무 당연한 사실을 수백 번 들으면 아무런 감흥 없지 않나요?]

[완벽한 게 아니라, 유일한 것.]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명 '제퍼슨 어록'이라고 퍼지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

미국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BADASS' 같은 캐릭터.

타고난 재능, 완벽한 실력, 잘생긴 외모, 거기에 근육질의 마초적인 느낌까지.

하물며 조금도 빼는 구석 없이 들이박아 버리는 그 저돌적인 성격의 인터뷰 스킬까지.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점만 모여 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제퍼슨을 단순히 스포츠 스타로만 바라볼 수 없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곧바로 관심을 끌었고, 당연히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축구 구단에서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다큐멘터리의 퀄리티도 상당히 좋았으니까.

제퍼슨 리라는 캐릭터 하나가,

웹플릭스 주가를 들썩이게 할 정도라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수많은 광고주의 엉덩이가 들썩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고 경쟁 속에서, 제퍼슨의 선택을 받은 건 딱 하나였다.

***

-제 생각보다도 다큐가 잘 뽑혔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보면서 감탄했네요."

-이거야 원. 여기저기서 연락이 미친 듯이 옵니다. 광고 계약부터 스폰서가 더 필요하지 않냐는 전화까지. 어휴.

"광고는 딱 하나만 하겠습니다. 휴가가 그리 길지는 않거든요."

제크 팀장은 참 능구렁이 같다.

은근슬쩍 광고를 더 끼얹을 생각을 하다니.

그래도 제크 팀장은 같이 일하기 좋은 상대다.

내가 선을 딱 긋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단념했다.

-물론이죠, 제프. 아디다스 광고하나만으로도 저에게 떨어지는 수수료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솔직해서 좋네요."

-그럼요. 미국인은 돈 얘기를 철저하게 해야죠. 하하. 광고 콘티는 받으셨죠?

"음, 네. 흥미롭네요."

-꽤 많은 스타가 나오죠. 원래는 호날두를 선택하려고 했다지만, 8강 유벤투스전 이후로 마음을 바꿨다네요.

내가 받은 아디다스 광고는 꽤 흥미로운 콘셉트였다.

출연하는 스타들의 이름값도 장난 아니었다.

슈퍼볼 2회 우승의 쿼터백, 더 쿨(The Cool) 닉 버크.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의 얼음 신, 린드로스.

NBA의 라이징 스타, 조 우드락.

작년 사이영 수상에 빛나는 MLB의 빅 핸드(Big Hand) 랜디 우버.

UFC 미들급 챔피언인 아프리카 출신의 아데스타.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MVP, 차기 발롱도르 후보 나까지.

-그 선수들 몸값만 해도 장난이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NFL이나, NHL, MLB, NBA 북미에서의 단일리그지만, 그 단일리그가 곧 세계 최고 리그였다.

리그의 최강자란 사실은 곧 각 종목의 최강자에 가깝단 뜻이다.

한 마디로 작정을 하고 찍는 광고가 이번 건이었다.

들어오는 금액도 만만치 않았고, 에이전시에서도 상당히 좋은 광고라고 판단해서 나에게 이 광고를 찍을 것을 권유했다.

나 역시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뭐, 돈도 많이 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일이 있겠는가.

어차피 딱 하루 찍고 마는 건데.

이틀까지 길어진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다른 선수들 몸값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그게 하루만 더 연장돼도 토해 내는 금액의 수준은 천문학적이리라.

-근데 대역을 안 쓰셔도 되겠습니까?

연출가와 잠깐 미팅을 했었다.

연출가는 광고 콘티를 알려 주면서, 대역으로 몇몇 아마추어 선수들을 섭외했다고 전달해 줬는데.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요."

-으음. 저도 그 콘티를 봤는데, 대역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흐음. 글쎄요. 전 필요 없을 것 같던데요."

굳이 대역이 없어도 될 것 같던데 말이지.

***

매클락을 부르는 별명은 많았다.

가령 광고계의 마틴 스콜세지라던지, 칸느 국제 광고제에서 미디어부문 금사자상(최고상)을 수상해 칸느의 제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예술적인 광고를 찍는 감독이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별명이 붙었는데,

광고계의 마이클 베이다.

타고난 연출 능력이 있는데도, 최근에 상업적인 광고에만 매달린다는 걸 비꼰 별명이었다.

하나 매클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예술적인 광고니 뭐니 떠들 때도, 아무런 감흥 없었다. 자신은 그냥 돈 받고 광고를 찍은 거니까.

그렇지만, 그는 프로페셔널이었다.

받는 돈만큼, 최고의 작품을 찍는다.

이번 아디다스가 내건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하여 그는 최고의 연출을 위해 콘티를 짰고, 준비했다.

"근데 뭐? 대역이 필요 없다고?"

출연하기로 한 스포츠 스타들은 하나같이 괴팍하거나, 거만하거나 또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다들 고집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 중, 매클락의 심사를 건드린 건 가장 마지막에 만난, 축구스타 제퍼슨 리였다.

"스무 살에 세계 최고가 됐다고 자기가 만능 스포츠맨이라도 된 줄 아나 보지? 허참!"

대역을 준비한 이유는 이번 광고 콘셉트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각기 분야의 최고 선수들이 모여 가벼운 대화와 식사를 한다.

그러다가 은근히 서로 이룩한 업적을 자랑하는데, 모두가 자기가 최고라는 프라이드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보니, 누가 더 뛰어난 스포츠맨이니 하면서 말싸움이 붙기 시작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무리 다 큰 남자여도, 서로 지기 싫어하는 엄청난 승부욕.

그게 설령 조금 유치해 보여도 말싸움으로 시작한 사소한 다툼이, 점점 커지는.

그런 콘셉트였다.

결국, 잘났다고 떠들던 스타들이 서로 다른 분야로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가령 미식축구의 쿼터백이 투수처럼 공을 던지거나.

아이스하키 선수가 격투기를 하거나.

격투기 선수가 축구 경기 중에 몸으로 거칠게 싸우거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대역이 필요했다.

"비교 대상이 그 분야 최고란 말이지!"

이들은 모두 스포츠맨이다. 그 분야의 최고다. 그러니까 운동신경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 잘 안다. 아마 조금만 연습해도 거의 프로선수처럼 곧잘 흉내를 잘 낼 거다.

하지만 매클락의 계획은 이랬다.

가령 쿼터백이 야구공을 던진다고 해 보자.

그러면 옆에서 출연하기로 한 진짜 투수가 공을 던지면서 경쟁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감탄하고, 끝내는 인정하는, 이런 그림이다.

그러니까 대충 그럴듯하게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분야의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역으로 구해 놨다.

한때 프로였거나, 또는 아직 고등학교, 대학 무대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신인들로 준비됐다.

한데, 제퍼슨은 그 모든 대역이 필요 없다고 얘기했다.

그 말이 뜻하는 게 뭐란 말인가.

"자기가 그만큼 해낼 수 있다는 거지. 진짜 프로선수처럼."

얼마나 어이없던가.

그래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미식축구와 농구의 경우, 그 종목에만 있는 기술과 자세로 경쟁할 거라고.

그걸 다 듣고 난 제퍼슨의 반응은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흠. 그 정도면 좀만 연습하고 나오면 되겠네요. 집에서 연습 좀 할게요. 그림으로 그린 콘티 있죠? 그것 좀 주세요."

오히려 너무 뻔뻔하게 말하는 투를 보라.

미팅 때를 떠올린 매클락은 갑자기 뒷골이 당겨 수염이 뻣뻣해지는 기분이었다.

"뭐? 조금만 연습하고 나오면 된다고? 무슨 소리야. 지가 NBA 라이징 스타만큼 덩크를 잘한다는 거야 뭐야? 어? 사이영상 수상자만큼 공을 잘 던진다는 거야 뭐야? 아오!"

성격 같아선 그 뻔뻔한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매클락은 참았다. 그의 몸값이 자신이 평생, 아니 손자들까지 평생 벌어도 벌 수 없는 걸 들었으니까.

절대로.

제퍼슨의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근육질이란 사실에 겁먹은 게 아니었다.

"후우. 그래도 막상 하다가 안 되면 알아서 백기 들겠지. 같이 출연하는 스타들도 대역을 쓰는데, 계속 NG 내면 자기가 별 수 있겠어?"

매클락은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애써 긍정했다.

이번에 출연하는 스타들은, 한 명, 한 명이 세계 제일의 선수들. 그들을 다루면서 광고를 찍는 사실만으로도, 여러 심력이 소모된다. 하물며 오늘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하니.

애써 마음을 다스리던 매클락은, 갑자기 달려온 조연출의 얼굴을 보고 순간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감독님!"

"왜?"

심상치 않다.

다급한 얼굴의 조연출.

불길한 느낌이 든 매클락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대기실에 가 보셔야겠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어······분위기가, 지금."

차마 상황을 설명 못하던 조연출의 말을 끝까지 들을 시간은 없었다.

빠아아악!

"우아아아아아왁!"

그때 출연자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우지끈하니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괴성과 함께 말이다.

매클락은 파리해진 얼굴로 대기실로 뛰어갔다.

"Fuck! Fuck! Fuck! 빌어먹을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자식들!"

< 195. 번아웃? 그게 뭔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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