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번아웃? 그게 뭔데? (1) >
누군가 말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 축구의 인기는 저물 거라고.
그건 축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었다.
비디오 게임 등을 비롯한 자극적인 콘텐츠가 생산되면서,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의 인기가 허물어지리란 예상은 과거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축구는 축구로 남았다.
인기는 저물지 않았으며, 4차 산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물결이 들이닥친 먼 미래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탬포드 브리지는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거대해졌으며,
끝내는 낡은 경기장을 폐쇄하고 새로운 경기장을 설립했다.
그 경기장의 이름은 이렇다.
제퍼슨 리 스타디움(Jefferson LEE Stadium)
현재 8만 7천석을 자랑하는, 런던의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었다.
그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경기장 동쪽에는 첼시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한 명장 필마르크 감독의 동상이 있었다.
반대편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몇 년 전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계를 떠났던 전설적인 플레이어.
그 누구도 감히 비교조차 못 하고,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
아직도 런던의 노인들이 끊임없이 회자하는 축구선수, 제퍼슨 리의 동상이 서 있었다.
스포츠 경기장은 해외 관광객의 인기 투어 장소였다. 그것도 미국과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에겐, 이곳이 바로 필수코스였다.
"2021-22시즌은 첼시 역사상 가장 찬란했고 화려했던 시즌으로 평가받습니다."
일단의 관광객 무리 앞에서, 파란 정장을 입고 투어를 진행하는 여성 가이드의 가슴에는 '줄리아나'라는 명찰이 패용되어 있었다.
그녀의 설명에 관광객들은 흥미 어린 눈동자로 집중했다.
"현재 미국에는 종교도 있다죠? 말 그대로 축구의 신, 제퍼슨 리가 당시 84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득점기록을 갈아 치웠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려 25골을 집어넣는 기염을 토했죠. 비단 제퍼슨 리의 득점기록뿐 아니라, 첼시는 당시 유럽 역사에 있어서 여덟 번째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었으니까요. 무려 20년 전 일이네요."
줄리아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관광객을 이끌었다.
"여기, 당시 세 개의 트로피가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FA컵이죠."
관광객들이 일제히 감탄을 터뜨렸다. 줄리아나가 웃음을 머금었다.
그들 대부분 미국이나 아시아에서 왔다.
제퍼슨 리가 직접 들어 올렸다는 세 개의 트로피를 보고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관광객들과는 달리, 제퍼슨이란 이름만 튀어나오면 이 미국인들은 거의 정신을 반쯤 놓는다.
줄리아나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애써 웃음을 감췄다.
"그리고 이쪽엔, 그 유명한 할리의 추모관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는 '그랜파관'이라고 하죠."
"할아버지관이라니, 좀 이상한 별명이네요."
줄리아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는 잘 알려진 일화대로, 첼시에서 40년간 근무했던 전속 사진사였습니다. 당시 선수들에겐 그랜파라고 불리며 친할아버지처럼 인기가 많았죠."
줄리아나는 할리관 중앙에 걸려 있는 대형액자를 가리켰다.
역사를 이룩했던 블루스의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휠체어에 앉아 있는 늙은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은 채 빅이어를 들어 올리고 있는 사진.
"트레블을 달성한 순간 찍힌 사진이죠. 이 사진은 비단 축구계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사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할리는 40년 동안 첼시를 위해 일하며, 평생의 소원이었던 빅이어를 본인이 직접 들어 보는 인생의 마지막 행운을 누렸죠."
거기까지 말한 줄리아나는 한 차례 호흡을 골랐다.
늘 그랬듯이.
이 부분을 얘기할 땐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무언가 올라오려는 걸 꾹 참고 설명을 이어 갔다.
"첼시 구단은 이후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선수가 아닌 사람을 처음으로 클럽 엠버서더에 임명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40년간 일했다는 걸 기리는 차원으로 등번호 40번을 영구결번으로 남기는 선택을 했죠."
"우와아아! 구단 보드진들이 썩 낭만적인데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이건, 음, 당시 제퍼슨의 영향이 커요."
"제퍼슨이요?"
"숨겨진 비화 같은 건데요. 음! 좋아요, 특별히 말씀해 드리죠. 당시 제퍼슨은 할리를 정말 좋아했고, 할리가 트레블 이후 췌장암으로 작고하자, 그를 기리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구단에 무언가 요구했죠. 영구결번 같은 건 아니더라도, 할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있냐는 것이죠."
"아아! 역시! 제퍼슨이라면!"
"캡틴 아메리카니까!"
미국인 관광객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제퍼슨 리의 전기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미국인들은 제퍼슨을 우상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줄리아나에게는 그게 충분히 납득되는 일이었다. 당시 제퍼슨은 우상화할 만할 정도로 유일한 스트라이커였으니까.
"구단 보드진은 당연히 난색을 보였죠. 하지만 그때 첼시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로만 구단주가 결단을 내립니다.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줬을 뿐만 아니라, 경기 시간 40분이 되면 할리를 추모하는 박수를 팬들이 1분 동안 하는 걸 진행하게 만들었죠. 그런 로만의 결단에 제퍼슨도 보답을 보입니다. 당시 제퍼슨은 3년 재계약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지만, 곧바로 5년 재계약을 맺었죠."
숨겨진 이야기에 관광객들은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
이런 건 영화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영구결번에, 팀의 상징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고작 2년 계약 연장인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글쎄요? 제퍼슨이 그 2년 동안 가져온 트로피가 몇 개일까요? 그때 로만 구단주의 선택을 신의 선택이라고 부르는 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죠."
줄리아나가 즐겁게 웃었다.
이젠 그 이후의 역사를 가볍게 얘기해 줄 차례였다.
그런데 그때.
줄리아나의 가이드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미국인 관광객이 손을 들어올렸다.
아직은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소년이었다.
"그러면 이때 제퍼슨은 월드컵에서 어땠나요?"
리그에서의 활약도 좋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당연히 월드컵이다.
월드컵이라.
줄리아나는 생각했다.
그때, 유러피언 트레블을 이루고, 월드컵에 출전했던 제퍼슨이 어땠었나?
물론 기억했다.
당시 줄리아나는 영국을 응원하기 위해 카타르에 갔던 게 아니라.
제퍼슨을 응원하기 위해 따라갔으니까.
줄리아나가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첼시 얘기하고는 상관없지만, 그 얘기를 좀 해 볼까요?"
"네!"
"트레블의 첼시는 당시 하베르츠, 캉테, 마크우트, 뤼디거, 시셀도, 아스피, 케파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죠. 세간에서는 제퍼슨 원맨팀이라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선수들이 조력자로서 뒷받침해 줬죠. 그런 그에게 월드컵은 큰 도전이었을 겁니다. 미국 국가대표엔 풀리시치와 산티아고, 로드릭이 있었지만, 캉테와 하베르츠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제퍼슨의 첫 월드컵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길이 남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줄리아나가 한 차례 호흡을 고르고 얘기했다.
오늘은, 첼시 투어 가이드로서 영 빵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퍼슨의 얘기를 하는데,
그깟 직업이 대수랴.
"세계에게 진짜 '원맨팀'이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줬으니까요. 그 얘기를 짧게 한번 해 볼까요?"
***
빅이어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온 순간.
우리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유러피언 트레블.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FA컵.
3관왕.
이 엄청난 업적을 유럽 전체를 통틀어 8번째로 이룩해 냈으며,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그 전설적인 퍼거슨의 맨유 이후 두 번째였다.
런던으로 돌아온 빅이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퍼레이드 카로 모여들었다.
"This is Big Ears!"
풀리시치가 빅이어를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모두가 휘파람을 불면서 환호했다.
그러자 결승전에는 교체로도 아쉽게 출전하지 못한 마크 우트가 자신의 유니폼 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This is Mark Uth!"
"우우우우우!"
가끔 우리 팬은 짓궂고 장난스러울 때가 많다.
우트가 소리치자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야유를 터뜨리는 게 아닌가.
우트는 그것이 장난임을 알면서도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우는 모양을 해 댔다.
이상한 놈.
그러더니 별안간 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소리쳤다.
"This is King!"
"Yeaaaaaaaaaaaaaaaaaaaa!"
순간 퍼레이드 카가 흔들리는 것 같다고 느껴진 건 착각이었을까.
모두들 경찰이 만들어 놓은 라인 바깥에 있었건만.
시민들이 일제히 외치는 함성에 차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장난스럽게 내 손을 들어 올렸던 우트도 이 정도의 함성은 예상 못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올리버는 부러운 눈길로 내 어깨를 때렸다.
"빌어먹을 놈. 네 인기의 10%만 내게 줘도 나는 슈퍼스타가 됐을 거야."
"올리버. 그건 아니지. 내 인기의 5%만 가져도 1억 5천 명의 인기를 가져갈걸?"
"1억 5천?"
"지구 총 인구가 60억이니 절반 정도?"
"이 미친 새끼!"
올리버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지구 절반의 인기를 받고 있다는 소리를 해 댔으니, 얼마나 웃기겠는가.
하나 이게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이 아닐 거다.
북미에서의 내 인기는 절정이었고,
모든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에서의 인기는 곧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하물며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아시아에서의 내 인지도와 인기도 절대 낮지 않으리라.
뭐.
나도 아직 아시아에는 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구단주가 프리시즌 때 아시아 투어를 간다는군. 네 생각은 어때? 한국에 간다는데?"
"그래요? 작년엔 미국이었으니, 올해는 아시아인가."
감독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아시아 투어라.
그것도 꽤 괜찮겠다.
저번 시즌 미국 투어는 꽤 성공적이었다. 첼시의 북미 내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고,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합격점이었다.
그 이후 첼시를 후원하는 미국 기업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니까.
미국의 인기를 얻은 로만 구단주의 다음 진출 시장은 바로 아시아였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일본이라는 매력적인 스포츠 인프라.
거기에 나와 연관이 깊은 한국까지.
로만의 선택은 탁월하다.
직접 느낀 건 없지만, 첼시가 아시아 국가에서 인기가 많은 건 능히 짐작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감독이 프리시즌 때 아시아로 간다는데?"
"오! 좋아! 아시아라.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나와 감독의 이야기를 들은 몇몇 선수가 떠들썩하게 웃었다.
어쨌거나, 프리시즌까지는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남았다.
시즌이 늦게 끝난 만큼, 프리시즌도 평균적인 날짜보다 일주일 늦게 시작하기로 결정 났다.
고로 한 달 동안 휴식기라는데.
아 물론, 중간에 A매치를 생각하면 쉬는 날은 고작 20일도 안되겠네.
"휴식기에 뭐 할 거야?"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올리버가 툭 찔러 왔다.
"글쎄. 몇 개 스케줄이 있긴 한데."
"난 좀 쉬어야겠어. 내 평생 이렇게 열심히 축구를 한 건 처음이야. 마치 번아웃이 온 것 같다니까. 넌 안 그래?"
번아웃 증후군이라.
뭐 한 가지 직무에 미친 듯이 매달리던 사람이 피로를 느끼면서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거,
그거 말하는 건가?
그러면 나야 뭐.
사실 번아웃을 느끼기엔 아직도 많이 바쁘다.
"번아웃? 당장 다음 주부터 스케줄이 있는데?"
"뭔데?"
어,
뭐 뭐 있더라?
내가 대충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 주자.
올리버는 입을 쩍 벌렸다.
"빌어먹을! 왜 너만 해? 나는?"
"슈퍼스타가 아니니까."
"제기랄."
쯧.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더 열심히 하지.
< 193. 번아웃? 그게 뭔데?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