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또는 아름답게 (4) >
90분 내내 완벽한 팀은 세상에 없다.
흐름은 반드시 넘어가기 마련이다.
점유율이 6대 4든, 7대 3이든.
압도적인 점유율로 공의 소유권을 쥔다고 해도, 상대팀이 3과 4의 점유율 가진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뮌헨에는 그 몇 없는 기회로 변수를 만드는 선수가 존재했다.
[필리페 쿠티뉴가 션 올리버를 가뿐하게 제칩니다!]
왼발, 오른발.
빠르고 현란하게 오가는 공.
올리버는 단순 우직하게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차징을 선택했다 그러나 쿠티뉴는 맞서 싸우지 않았다. 우아한 몸놀림으로 가뿐히 피해 냈다. 중심을 잃은 올리버가 무너지자 공간이 생겼다. 쿠티뉴는 캉테가 접근하는 걸 보고 영리하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패스를 찔러줬다.
[캉테와 카이 하베르츠의 경계선을 꿰뚫어 버리는 좋은 패스! 토마스 뮐러! 공을 잡고 전진합니다!]
라움도이터라는 포지션을 상징하는 선수.
토마스 뮐러는 접근하는 에메르송을 순간적인 방향 전환으로 제쳤다.
아니, 제치려고 했다.
"······!"
[에메르송이 속지 않습니다! 끝까지 토마스 뮐러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뮐러의 예상 밖이었다.
에메르송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쫓아왔다.
그 모습에 뮐러는 적잖이 당황했다. 웬만해서는 이 방향 전환에 속기 마련인데.
'이 자식이 이 정도로 훌륭한 수비수였나?'
뮐러는 몰랐다. 에메르송이 첼시의 훈련장에서 급격한 방향 전환으로 필드를 지배하는 최고의 러닝백과 2년 동안 훈련해 왔다는 사실을.
그것은 토마스 뮐러의 장점이 첼시에게 전혀 통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그 순간 뮐러는 선택했다.
중앙으로 패스를 내주기로.
[뮐러의 돌파가 막히고, 중앙으로 공을 내줍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수비가 자리 잡고, 템포가 죽었······ 오 세상에! 레반도프스키!]
첼시 수비수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
중앙으로 빠지던 공을, 갑자기 나타난 레반도프스키가 잡았다.
그리고 오른발 인사이드로, 그대로 감아 차 버리는 거침없는 슈팅.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레반도프스키의 슈팅이었고, 수비수들은 모두 그를 놓쳤다.
세레모니도 포기한 채, 얼어붙은 수비진 사이로 뛰어가 레반도프스키는 공을 들고 센터서클로 뛰었다.
"경기 아직 안 끝났어!"
[뮌헨이 포효합니다! 그들은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절대로 굴하지 않습니다! 경기 스코어 2대 1! 후반 11분, 레반도프스키가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네요!]
***
흐름을 내준 이후 우리가 어떻게 정비하냐가 중요하다.
그런 걸 고려하면, 홈구장의 이점이 결승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레반도프스키의 추격 골이 터지고, 알리안츠 아레나는 광란의 도가니였다.
"처칠이 죽인 인도인들의 복수다!"
"빌어먹을 런던 놈들아! 너희들은 뮌헨을 정복하지 못해!"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오늘 너희들은 모두 관에 들어갈 거거든!"
거칠고, 격렬한 야유와 욕설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아무리 베테랑 선수여도 공을 터치할 때마다 들려오는 지독한 야유를 무신경하게 넘기기는 어렵다.
골이 들어가 흐름이 완전히 넘어가고, 홈구장의 이점까지 뮌헨에게 향할 때.
심지어 그들에게 행운까지 따라 준다면.
제기랄.
뮌헨에는 다 절실한 크리스천만 있나 보다.
삐비비비빅!
저들에게 행운, 우리에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박스 안에서 돌진해 오는 토마스 뮐러를 막기 위해 각도를 좁히던 케파가 뮐러와 함께 뒤엉켜 넘어졌다.
그리고 심판은 케파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Oh, Holy Shit!"
"Fucking referee!"
"이건 사기야! 저게 어떻게 레드야?"
"심판 개자식!"
첼시 원정팬들은 야유하고, 뮌헨 홈팬들은 박수를 쏟아 냈다.
결정적인 판정이 될 수도 있던 터라 심판은 VAR까지 확인했다.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Yeaaaaaaaaaaaaaa!"
반칙이 맞다. 케파가 뮐러에게 각도를 좁히던 순간 양팔로 발목을 잡아 끌었다.
명백한 반칙이고, 레드카드였으며, 페널티킥이었다.
"끙!"
새하얗게 질린 수비수들과 대비되는 뮌헨 공격진의 기쁜 낯.
필드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
케파가 퇴장당하고 올리버 대신 윌리 카바예로가 들어갔다.
카바예로를 투입시키면서 필마르크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카바예로라면 페널티킥을 잘 막지. 믿어 보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필드는 미쳐 가고 있었다.
골키퍼가 퇴장당할 줄은 누가 알았으랴.
그것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말이다. 케파가 손을 뻗어 뮐러의 발목을 잡은 건, 공을 잡으려다가 잘못 잡은 걸로 보였다.
그러나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반칙이었다. 만일 놓쳤다면, 어쩌면 골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판정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단, 필마르크는 다음 내용에 집중했다.
[레반도프스키가 키커로 나섭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왼쪽 구석으로 강하게 때립니다! 이런! 카바예로가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는데, 완벽하게 속았군요!]
"Wuaaaaaaaaaaaaaaaaa!"
카바예로도 PK를 잘 막기로 유명한 스폐셜리스트였지만, 레반도프스키의 노련함이 더 돋보였다. 골키퍼를 완전히 농락하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뮌헨이 끝내는 자신들의 홈그라운드,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동점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챔피언스리그 파이널이군요! 아직, 유럽 챔피언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Goaaaaaaaaaaaaaaaal!"
"------!"
75,000의 관중들이 일제히 괴성을 질러 댔다.
스코어는 동점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가끔 경기에선 말도 안 되는 펠레 스코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원인은 바로 이 흐름이다.
추격 골에 이은 동점골.
거기까지 도달한 시간은 고작 8분여.
첼시는 후반 55분까지 2대 0으로 앞섰지만, 단 8분 만에 2대 2로 동점을 허용했다.
제아무리 베테랑인 선수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정신 차리고 집중해! 흔들리지 마! 겨우 동점이야! 똑같은 조건이라고!"
아스필리쿠에타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지만, 한번 내준 분위기는 쉽게 찾지 못했다.
하물며 한 명이 없다.
4-2-3-1의 포메이션에서, 4-2-3의 포메이션으로 변경.
이런 중요한 경기, 실력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비등한 팀에서 선수 한 명이 부족하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리고 뮌헨은 그 치명적인 걸 이용해 공격의 템포를 끌어올렸다.
[뮌헨의 공격이 매서워집니다! 한 명이 더 많은 이점을 살리겠다는 것이죠!]
[흐름이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첼시, 공을 쫓느라 바쁩니다!]
카이 하베르츠의 침착했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티아고 알탄카라가 하베르츠의 패스를 끊습니다! 곧바로 공격을 시도하는군요!]
중원에서부터의 볼 흐름이 끊겼다.
그 침착했던 하베르츠마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이것이 현재 첼시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알려 주는 일면이었다.
[그래도 제퍼슨이 공을 잡으면 무척 위협적입니다! 제퍼슨의 돌파! 이런, 태클에 넘어지네요! 반칙입니다. 프리킥을 선언하는데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제퍼슨이 프리킥을 얻어 냈다.
골문까지 대략 36m.
직접 득점을 노리기에는 먼 거리다.
제퍼슨이 슬쩍 손을 들어 하베르츠를 불렀다.
"기억해?"
"뭘?"
"스트라이커를 완벽하게 만드는 건 미드필더의 소임이라고 말했던 거?"
"······."
여기서 왜 그 말이 나오는가 싶었던 하베르츠였지만, 제퍼슨은 짓궂게 웃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당황해하며 점점 말려들고 있는 가운데.
제퍼슨만이 유일하게 담담했고, 오히려 웃고 있었다.
'미친놈.'
우습게도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스코어는 동점이지만, 분위기는 뒤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하물며 한 명이 퇴장당해 수적 열세이건만.
이 자식은 여전히 빙글거리며 웃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선수들의 패스가 급해지고, 플레이에 잔실수가 많아지는데도.
제퍼슨은 침착하게 공을 잡고 움직였고, 이렇게 프리킥까지 얻어 냈다.
순간 하베르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은 무얼 하고 있는가?
'경기를 조율하는 사령관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나다.'
그게 일반적인 미드필더의 역할이다.
왜 괜히 그에게 플레이 메이커라는 포지션의 이름이 붙였겠는가.
현재의 플레이를 만들어 가는 게 그란 얘기다.
하지만 하베르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뮌헨의 공격적인 전개에 말려들어 수비하며 걷어 내기에 급급하지 않나.
하베르츠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 그러나 왠지 모르게 살짝 노기가 섞인 어조로.
"박스로 들어가. 프리킥은 내가 찰게."
"좋은 생각이야, 카이."
"제프. 널 믿어도 되겠지?"
박스로 향하려던 제퍼슨은 하베르츠의 다소 긴장한 목소리에 몸을 돌려 휙 웃었다.
"난 늘 내 자신을 믿고 있어. 카이."
제퍼슨이 어깨를 툭 치고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 하베르츠가 공 앞에 섭니다. 하베르츠의 킥력이 아주 좋죠.]
[직접 노리기에는 애매한 거리입니다. 아마도 띄워서 동료에게 좋은 공을 내줄 것 같은데요.]
거리는 약 36m.
페널티 박스 오른쪽 바깥. 직접 노리기엔 슈팅의 궤적이 좋지 않다. 벽을 향해 동료의 머리로 향해 주는 것이 베스트.
그러나 무난하고, 평범하면 막힐 염려가 크다. 박스에 모든 수비가 우글거리고 있었고, 노이어는 짐승처럼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면.
"캡틴! 공을 줄 테니까 바로 내줘."
약간은 특별하게.
하지만 문제는 이 세트피스를 훈련장에서는 연습하지 않았다는 것.
카이는 입술을 깨물고 제퍼슨을 바라봤다.
'믿을 건 제퍼슨의 골에 대한 본능이다.'
세트피스는 본래 약속된 플레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 하베르츠는 순전히 제퍼슨의 골 감각을 믿고, 모험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아스필리쿠에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짝 앞으로 나오고,
하베르츠는 망설임 없이 공을 툭 내줬다.
툭!
그리고 하베르츠가 수비벽을 향해 빠르게 뛰어나갔다. 동시에 아스필리쿠에타는 하베르츠가 짧게 내준공을 가볍게 밀어줬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균열.
아스필리쿠에타를 쫓아 나오느라 벽의 일부가 흩뜨려졌고,
하베르츠는 망설임 없이 슈팅을 날렸다.
"······!"
아니, 페이크였다.
페이크 슛 모션 이후 공의 밑동을 찍어 차올려 버리는 로빙 패스.
[공을 찍어 수비벽을 넘깁니다!]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수비벽.
슈팅인줄 알고 몇몇 수비가 뛰어올랐지만, 로빙패스는 골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른쪽 박스 골라인 바깥쪽으로 향하는 공.
왜 굳이 저기로 공을 올렸나?
이란 의문이 선수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순간.
[제퍼슨이 튀어나와 공을 향해 그대로 발을 갖다 댑니다! 오, 세상에!]
중앙에 있던 제퍼슨이 마치 그 패스의 흐름을 읽었던 사람처럼 오른쪽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그 순간 뮌헨 선수들은 기함했다.
'약속된 플레이다!'
약속된 세트피스다. 그러지 않으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할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위치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하나 이건 순전히 제퍼슨의 센스였다. 공을 끝까지 노려보던 집중력, 그리고 공이 향하는 패스를 향해 순간적으로 터뜨리는 엄청난 스피드.
그것이 제퍼슨이 가장 공에 근접할 수 있던 이유였다.
다리를 쭉 뻗어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공을 우아하게 붙잡고,
급하게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알라바를 공을 한 번 더 살짝 띄워 피하고,
[엄청난 속도로 달라붙는 뤼카 에르난데스!]
우아하게 공을 잡고, 수비의 태클을 피하고.
각도가 없지만 분명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었다.
오른쪽 골포스트 바깥.
슈팅을 때릴 유일한 각도는 노이어가 막고 있다.
이런 일대일 상황은 스트라이커에게 아주 좋지 않다. 하물며 발 빠르기로 유명한 뤼카 에르난데스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발을 쭉 뻗었다.
그 순간, 제퍼슨은 이 태클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태클에 당해 페널티킥을 유도할까? 했지만 너무나 불확실했다.
하여 그 태클을 피하면서, 왼쪽으로 공을 투욱 길게 찼다.
"제---퍼---슨!"
"제발, 막아! 막---아!"
환호와 고통스런 절규가 동시에 교차하면서.
왼발로 툭 치며 태클을 피한다.
그 찰나 사이에 노이어의 머릿속은 심각하게 뒤엉켜 있었다.
방금까지 각도가 없었건만, 저 스트라이커는 태클을 피하면서 각도를 만들어 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거기서 태클을 피하는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무각지대에서 슈팅을 때리기 쉬운 위치로 이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촌각에 불과한 순식간에!
노이어의 사고가 일순 정지된 것처럼 혼란스러울 때.
제퍼슨의 슈팅은 이미 발을 떠나 있었다.
뻐엉!
오른쪽 골포스트에서 각도를 좁히던 노이어였기에,
제아무리 리치가 길고 반사 신경이 대단하다고 한들,
역동작에 걸렸다. 하물며 제퍼슨의 슈팅은 지독하게도 빨랐다.
[첼시 축구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저녁입니다! 그들은 뮌헨의 홈에서, 뮌헨의 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그들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그렇습니다. 빅이어, 축구의 성배를 10년만에 되찾아올 준비를 끝냈습니다!]
"Gooaaaaaaaaaaaaaaaaaaalll!"
"LEE Will, LEE Will Fuck you!"
제퍼슨이 너희를 엿 먹일 거다.
그 지독히도 노골적인 가사가,
허무한 얼굴로 쓰러진 노이어의 귓가에 비수처럼 꽂혀 들었다.
***
"제기랄, 그 패스를 받는 게 말이 돼?"
세레머니를 하는 도중에 달려온 하베르츠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 이 자식이. 패스를 받아 줘도 불만이야.
"네가 말했지. 완벽한 스트라이커는 미드필더가 만들어 주는 거라고. 근데 넌 뭐야? 솔직히 말해 네 움직임이, 내 패스를 완벽하게 만들어 준거라고."
그랬나.
흐음. 확실히 나도 아슬아슬하게 잡은 공이긴 했다.
발끝으로 나갈 법한 공을 간신히 돌려 세웠으니까.
"이미 완벽한 스트라이커를, 내가 뭘 해 봤자 더 완벽해질 게 있을까?"
하베르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있었다.
"물론, 있지. 카이."
"응?"
"100%의 완벽함에, 네가 단 1%의 아름다운 패스 한 번만 해 준다면, 그게 뭐가 되는 줄 알아?"
"······101%? 제기랄. 뭔데?"
"완벽한 게 아니라, 유일한 것이 되지."
"······."
"난 유일한 거야, 카이."
카이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간신히 한 마디를 남기고 센터서클로 돌아갔다.
"미친놈."
< 191. 또는 아름답게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