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88화 (188/258)

< 188. 또는 아름답게 (1) >

[트레블이 코앞으로, 첼시 맨시티를 꺾고 FA컵 역전 우승!]

[프리미어리그, FA컵, 남은 건 챔피언스리그 하나.]

[퍼거슨의 맨유 이후 두 번째 트레블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탄생하나?]

[첼시 필마르크 감독, '승리의 맛은 달콤하고 중독적이다. 이 맛을 챔피언스리그에서 또 한 번 느낄 것.']

[후반 92분 바이시클 킥으로 극적인 역전골을 넣은 지루. 노장의 면모를 보여 주다!]

[올리비에 지루, '제퍼슨의 어시스트가 절묘했다. 경기 전 훈련장에서 나에게 해 준 그의 조언이 역전골을 만들었다.']

['할리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한다.' 세레모니의 속뜻은? 첼시 전속 사진사가 현재 병마와 힘겨운 싸움 중.]

[FA컵 대회 MVP 선정 제퍼슨 리, '오늘 지루는 완벽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대단한 스트라이커다.']

@Jack_Herald

-첼시의 엄청나고도 대단한 시즌. 첼시는 모두 대단한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우리는 알 것이다. 지금까지 제퍼슨 리가 주인공이었다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지루가 주인공이다. 수년간 첼시에서 헌신해 온 그의 아름다운 노력이 오늘 우승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첼시의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남았고, 그 경기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

이제 유럽의 축구 경기는 단 하나가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물론 어떤 리그에서는 승강 플레이오프가 진행되기도 하고, 아직도 컵대회가 열리는 리그도 있다.

하나 모든 시선이 주목된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란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못 한다.

6월 5일.

마지막 5일이 남았다.

FA컵 결승전이 끝나고,

난 리그 시상식에는 불참했다.

"무려 5관왕이라고! 수상 때마다 너 이름이 불렸는데, 우리 수석코치가 계속 대리 수상하는 게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시상식에 참여했던 지루는 그때 상황이 웃긴지 연신 웃었다.

이번에도 내가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작년하고 비교하면 영플레이어 상만 못 받았을 뿐이다.

나이로 따지면 받을 만했지만, 내 활약이 단지 '영플레이어'로 보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여러 상을 받았다.

시즌 최우수 선수상, 선수 노조 올해의 선수상, 팬 선정 올해의 선수상, 심판협회 올해의 선수상, 베스트 일레븐 올해의 스트라이커까지.

지금 내 집 트로피 전시장에 잘 모셔져 있다.

"내가 몇 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도 받지 못했던 상을 그냥 창고에 처박아 놓다니."

"창고는 아니에요. 잘 모아 놨어요."

"나였으면 끊임없이 또 닦고 닦아서 거실 진열장에다가 아주 잘 모셔놓을걸?"

"뭘 굳이 그럴 것 까지야. 내년에 또 받을텐데."

"오, 미친놈!"

지루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소리를 들은 사람마냥 크게 웃었다.

그는 FA컵 결승전 이후로 얼굴이 몹시 밝아졌다.

밝아지다 못해, 마치 새로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작년에 봤던 유쾌하고 장난스런 모습이 보였다.

부담감을 모두 떨쳐 낸 모습이다.

"아 맞다. 그 인터뷰는 뭐야? 감동받았잖아?"

"무슨 인터뷰요?"

"세계에서 가장 두 번째로 대단한 스트라이커라면서 날 존경한다고 했잖아?"

"립 서비스죠."

"제프, 나중에 자서전을 쓸 때 꼭 그 인터뷰 내용을 넣어."

"허 참."

"이미 나는 내 자서전에 그 인터뷰를 넣었으니까."

"벌써 자서전을 써요?"

"그 표정은 뭐야? 주책 부린다고 힐난하는 거 같은데?"

"독심술도 익히셨네요."

"오, 세상에. 잠깐만. 그러면 첫 번째로 대단한 스트라이커는 누구야? 내가 두 번째면?"

"그걸 제 입으로 말해야 해요? 독심술 익혔으면 알아맞히셔야죠."

지루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이마를 '탁' 쳤다.

"요, 앙큼한 것. 그 빌어먹을 자신감이 참 부럽다!"

"젊음의 특권이죠."

"늙었다고 조롱하는 거야?"

"원래 나이 들면 사람 성격이 꼬입니까?"

"세상에. 한마디도 안 지는군."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제기랄!"

지루는 결국 한숨을 내쉬곤 툴툴거리며 앞장섰다.

난 그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듣기로는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고향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림도 아름답기는 하지.

회귀 전 지루가 언제까지 뛰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관심이 있던 선수가 아니었고, 대단하다고 느꼈던 선수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FA컵 결승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립 서비스라곤 말했지만,

사실 그때만큼은 진심이었다.

할리를 응원하는 유니폼 세레머니.

지루는 오로지 그걸 보여 주기 위해서 종료 직전까지 골을 넣기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이리저리 두들겨맞으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성공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대단한 스트라이커였다.

첫 번째는?

뭐, 굳이 말해야 하나.

어쨌건, 지루와 내가 찾아온 건 할리의 병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할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왔군! 우리 영웅들이!"

"그랜파! 얼굴이 훤하시네요? 사진 찍기 귀찮아서 그냥 병실에서 꾀병 부리는 거 아닙니까?"

지루의 농담처럼, 할리는 이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안색이 좋아 보였다.

"이게 골 좀 넣었다고 보이는 게 없나보네?"

"그랜파, 그 골이 아니었으면 이런 메달도 못 땄을 겁니다."

지루는 실실 웃으며 메달을 두 번째 헹거에 걸어 놨다.

그 모습에 할리는 퍽 감동한 눈치였다.

"오셨어요?"

"아, 줄리아."

때마침 어딜 다녀왔는지 줄리아나가 병실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우승하는 거 TV로 보고 아주 좋아하셨어요."

"그거 다행이네. 좀 좋아지신 거 같은데?"

"네. 많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고맙긴 뭐가."

"결승전 보고 나서 좀이 쑤신다면서 당장 경기장에 나가고 싶다고 성화이신걸요."

줄리아나는 정말 기쁜 낯으로 웃었다.

그간 심적으로 억누르던 부담감이 많이 해소된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할리의 상태가 호전된 게 보였으니까.

슬쩍 보니, 지루와 얘기하는 할리는 연신 껄껄 웃어 댔다.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눈빛도 또렷했다. 겉모습으론 당장 내일이라도 퇴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이 헹거에 걸 메달은 딱 한 개 남았네요, 그랜파."

지루가 프리미어리그, FA컵의 메달이 걸린 행거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마지막 남은 헹거.

그건 딱 하나다.

유럽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

"아니. 필요 없다."

"네?"

갑자기 튀어나온 할리의 단호한 말에 우리는 일순 멈칫했다.

할리는 슥 우리를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너희들이 번거롭게 뮌헨에서 여기까지 와서 메달 걸게 만드는 건 좀 그렇지. 줄리아!"

"네."

"가서 내 카메라 렌즈 좀 닦아 놔라."

허.

"경기장에 가시게요?"

"끙. 10년 전에도 놓친 경기인데, 이번에도 놓칠 순 없지. 역사적인 순간이지 않으냐. 너희들이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순간만큼은, 내 손으로 찍어 주마."

이거야 원.

무조건 빅이어를 들어야겠네.

***

바이에른 뮌헨이라.

내가 회귀 전, 상대해 본 몇 안 되는 유럽팀 중 하나다.

내가 그나마 유럽생활을 좀 버텼던 것이 분데스리가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바이에른 뮌헨을 몇 번 상대했던 귀중한 경험이 있다.

그간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바이에른 뮌헨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독일 특유의 단단함이라고 해야할까?'

직전 4강전에서 바르셀로나를 꺾은 그들의 축구는 숨 막히는 조직력의 정수, 그 자체였다.

화려한 패스 플레이와 리오넬 메시의 퍼포먼스를 군대 같은 규율과 조직력으로 무너뜨렸다.

그 경기를 TV로 지켜본 나도 감탄했다.

메시는 수많은 드리블 돌파에 성공했고, 빅 찬스를 창출시켰으며, 직접 엄청난 슈팅을 여러 번 성공시켰다.

그러나 뮌헨은 그 모든 걸 조직력으로 막고, 무너뜨렸으며 끝내는 레반도프스키의 시원한 슈팅이 바르셀로나를 침몰시켰다.

우리는 그런 뮌헨을 상대해야 한다.

[2011-2012 바이에른 뮌헨은 복수를 꿈꾸고 있다.]

[10년 전과 똑같은 매치업과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벌어지는 2021-2022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경기.]

[분데스리가 챔피언과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의 맞대결!]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컴플리트 포워드, 레반도프스키와 제퍼슨 리.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뮌헨은 홈그라운드에서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왜 뮌헨의 홈구장에서 결승전을 하냐고도 할 수 있겠다.

애석하게도 상황이 공교롭게 됐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장은 중립 경기장으로 선정된다. 몇 년 전에 일찌감치 확정된다.

아마 19년에 알리안츠 아레나가 선정됐을 거다.

한데 뮌헨이 결승전까지 뚫고 올라올 줄은 어찌 알았겠나.

한마디로 뮌헨에게는 최고의 기회다.

홈에서 들어 올리는 트로피라니,

얼마나 짜릿하겠어?

"그거는 들어 올린다는 보장이 있어야지!"

투욱!

우트는 뤼디거와 몸싸움하면서 소리쳤다.

맞다.

홈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면 짜릿하겠지만,

퍼억!

이번엔 뤼디거가 드리블해 오는 우트를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홈에서 트로피를 상대팀에게 내준다면 그거야말로 끔찍한 일이지."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리 팀에 우호적인 팬이어도, 홈에서 트로피를 넘겨주는 모습을 본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아이러니한 건, 뮌헨은 그런 경험을 한번 했다.

그것도 첼시에게 말이다.

2011-1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드록바의 극적인 동점골로 코앞에 뒀던 빅이어를 놓쳤다.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말이다.

따라서 이번 경기는 여러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뮌헨팬들은 복수를 외치고 있었고, 트로피를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들의 동기 부여는 상상초월이리라.

하나 동기 부여로 따지자면 우리도 밀리지 않는다.

"트레블! 트레블! 임마! 시셀도! 그딴 식으로 뚫리면 트레블이 날아간다고!"

"어허! 저 자식 봐라! 지금 저 똥볼이 방금 트레블을 똥통에 갖다 처박은 거나 다름없어!"

"오, 빌어먹을! 공을 차는 게 아니라 빅이어를 뻥 차 버리는군!"

트레블이란 역사적인 업적을 앞둔 코치진들이 눈이 벌게진 채 소리쳤다.

역사상 진짜 트레블이란 업적을 달성한 클럽은 단 일곱이다.

셀틱, 아약스, 아인트호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바이에른 뮌헨.

이 업적을 달성하는 순간,

필마르크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경력에 엄청난 역사가 새겨지는 것이다.

코치뿐이겠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후욱, 훅!"

여기저기서 훈련에 힘쓰는 선수들의 땀 냄새와 거친 호흡이 끊이질 않는다.

여기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경험했던 선수도 거의 없다.

그만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란 업적도 대단한 것인데, 하물며 우리는 트레블이란 역사적 도전 앞에 서 있다.

선수들의 의욕이 엄청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너무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면 좋지 않다.

그렇다고 풀어지고 방심하는 것도 좋지 않다.

딱 중간.

그 적절한 중간을 유지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어려운 일이지만,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좋아, 모두 모여 봐!"

삐익!

훈련에 힘쓰던 선수들을 감독이 휘슬을 불며 모았다.

"여기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해 본 사람?"

몇몇이 손을 들었다.

카이 하베르츠, 마크 우트 등등.

"그럼 말해 봐. 그들이 무섭나?"

"무섭진 않죠. 제가 뮌헨에게 두 골은 넣었으니깐요."

"나도 한 세 골 넣었었나? 3년 동안?"

카이가 먼저 대답하고, 우트가 이어 대답했다.

감독이 피식 웃었다.

"뭐, 솔직히 상대를 무시할 순 없지. 하지만 낯선 상대인 만큼, 너희들은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지금껏 상대해 온 팀 중에 약한 팀이 어디 있었나.

리그에선 리버풀과 맨시티와 싸웠고,

챔스에선 레알과 아틀레티코, 유벤투스와 싸웠다.

그리고 늘 이겨 왔다.

리버풀과 맨시티는 익숙하다. 하나 낯선 상대는 그만큼 두렵다. 우리가 챔스에서 만난 팀들이 그러했다.

"뮌헨 선수들은 모두 강력하다. 하나같이 대단하지. 좋은 테크닉과 독일 특유의 힘과 스피드, 그리고 묵직한 조직력까지 갖춘 팀이다. 심지어 레반도프스키? 이 자식은 나이가 몇인데 올해 40골을 넣었다는군!"

허어.

역사와 달리 율리아겐이 뮌헨으로 가지도 않았건만.

레반도프스키는 최절정의 폼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것도 나로 인해 바뀐 역사일지도 모른다.

카이 하베르츠와 마크 우트.

두 명 다 원래는 뮌헨으로 갈 운명이었다.

그들이 뮌헨으로 감으로써, 레반도프스키에게 몰린 공격 루트가 많이 분산됐다.

특히 카이의 패스는 그걸 가능케 했었다.

하나 이 둘이 가지 않음으로, 뮌헨의 모든 공격의 마무리는 레반도프스키가 해결했다.

한마디로 레반도프스키에게 몰아주기가 되어버린 것.

뭐, 그런 걸 감안해도 현재 가장 무서운 스트라이커라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컴플리트 포워드.

정통 9번 공격수다운 모습으로.

"지루! 보고 배워! 너랑 나이 비슷하지 않아?"

"흐음. 감독님. 그 친구가 FA컵 우승컵을 가져다주진 않았잖아요? 제가 훨씬 낫죠."

"제기랄. 한마디도 안 지는군."

지루와 감독의 농담으로 긴장감이 좀 풀렸다.

감독은 웃음을 터뜨리는 선수들을 슥 둘러봤다.

"뮌헨에 아무리 대단한 선수가 많다지만, 그들은 다 인간이지. 사람이야. 그냥 공 잘 차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다르잖아?"

저 양반이 또 뭔 말을 하려고.

날 바라보나.

"우리에겐 괴물이 있고, 슈퍼히어로가 있어.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시즌 40골? Fuck! 우린 80골을 넣은 공격수가 있어!"

선수들이 고개가 휙 틀어졌다.

"지금 아마 뮌헨은 코치들이 선수들 모아 놓고 소리치고 있을 거야!"

"저기엔 80골 넣은 미친놈이 있다고! 그걸 막아야 한다고!"

누군가 휘파람을 불면서 '제프!'라고 소리쳤다.

"흥! 그건 정답이 없지. 맨시티하고 리버풀이 몰라서 못 막았나? 안 그래, 제프?"

감독의 말에 난 그저 웃었다.

"훈련장에서 제프를 막는 수비수들이 바로 너희들이잖아? 가서 뮌헨의 공격을 단단히 틀어막아! 어차피 제프가 공을 받고 넣어 줄 테니까! 각자 맡은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러면 빅이어는, 우리가 들게 될 거야! 우리를 위해서도, 그리고 할리를 위해서라도!"

< 188. 또는 아름답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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