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81화 (181/258)

< 181. 묻고 더블로 가! (5) >

[제퍼슨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리그 49호 골입니다! 이 엄청난 경기에서,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그는 아무런 부담감 느끼지도 않는 것 같네요!]

[이게 놀라운 일인가요? 예,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호들갑은 떨지 않겠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제퍼슨이 제퍼슨답게 제퍼슨다운 골을 넣었을 뿐이죠!]

[리그 49호 골! 시즌 초반 리그에서 50골을 넣겠다고 말했을 때,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치명타를 날리네요! 우리는 역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먼 훗날, 20년 후 제 손자에게 '너는 제퍼슨의 플레이를 못 봤겠지!'하고 으스댈 수 있겠군요!]

[미국에서 온 팬들이 거수경례하며 그들의 캡틴께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미국 팬뿐만이 아닙니다! 첼시의 모든 원정팬이 일어나 그에게 경례하네요!]

[예! 맞습니다! 제퍼슨은 왕이자, 캡틴 아메리카고, 동시에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하며 유럽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임이 틀림없습니다! 리버풀 선수들, 허망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네요!]

***

내가 말했던 적이 있을 거다.

골 넣은 직후가 가장 위험한 때라고.

골을 넣고 분위기는 어수선해진다.

특히나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아주 중요한 골이 터졌을 때 그런 경향이 잦다.

어수선해질 때 누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

애석하게도 리버풀에는 좋은 멘탈을 지닌 선수가 많았다.

파비뉴가 갑작스레 찔러준 볼이 오른쪽으로 빠져나갔고,

피르미누가 흐느적거리며 공을 잡고 움직이면서 수비를 끌어낸 뒤,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타며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린 살라가 깔끔한 슈팅을 밀어 넣으면서 2대 1.

"Yeaaaaaaaaaaaaaaa!"

"런던의 시퍼런 것들은 나가 뒈져!"

"우승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뭐, 요즈음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들이 쓰는 금액을 보면, 어느 누가 저런 말을 듣기는 좀 그렇지.

반 다이크를 얼마에 샀던가, 리버풀이?

하여간 스코어는 좁혀졌다.

2대 0과 2대 1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우리가 앞서나가는 느낌이고, 후자는 앞서나가는 점수지만 쫓기는 기분이 든다.

더구나 하프타임 직전 먹힌 실점이라 더 아쉬운 일이다.

물론, 감독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방금 막 구단주에게 전화가 왔다!"

라커룸에 들어가자마자 감독이 소리쳤다.

"원래 지급하기로 한 승리 수당에 보너스를 쏘겠다는군!"

가끔 이런 게 오히려 잘 먹힐 때가 있다.

어차피 선수들 모두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게 어떤 경기인지,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굳이 똑같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오늘 리버풀을 잡으면 주겠다는 보너스를 묻고! 더블로 달라고!"

호.

거기서 협상까지.

보너스라고 하지만 한두 푼이 아닐 거다.

로만 구단주는 통이 크기로 유명한 양반이니까.

"그러니까 보너스를 받기 위해 싸워! 남은 건 45분이다! 우리가 적어도 세 골을 넣기는 충분한 시간이지! 안 그래? 제프?"

"물론이죠."

"그래! 집중해! 끝날 때까지, 휘슬이 울릴 때까지 집중하고, 또 집중해!"

감독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선수들의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가서 싸워라! 전사들아!"

***

후반전.

하프타임이 끝나고 리버풀은 공세를 펼쳤다.

어쩔 수 없다.

리버풀은 무승부로도 만족할 수 없다.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현재 승점 차는 3점 차.

무승부면 이 3점 차가 그대로 유지될 뿐이다.

첼시는 앞으로 레스터와 본머스전이 남았고,

리버풀은 노팅엄과 아스날전이 남았다.

아무래도 첼시가 유리한 일정이 아닌가?

심지어 패배한다면, 승점은 6점 차이다.

물론 산술적으로 우승 가능성은 남았다.

첼시가 내리 2패하고, 리버풀이 내리 2승을 한다면 말이다.

하나 그것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저 괴물 자식이 있는데 누가 수비를 하겠어!"

안필드의 관중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리버풀이 공세로 나오면서,

첼시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했다.

"Yeaaaaaaaaaa!"

[첼시도 라인을 끌어 올립니다! 시셀도가 최후방에 버티고 양쪽 풀백이 모두 오버래핑을 나갑니다!]

[리버풀도 마찬가지입니다! 맙소사! 양 팀이 라인을 끌어올리네요. 중원이 텅텅 비었습니다!]

[여기서 단 한 번의 미스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중계진의 말대로였다.

서로 라인을 힘껏 끌어올린 포메이션.

중앙의 미드필더들도 모두 공격에 참여하면서, 서로 중앙이 텅텅 빈 것 같은 모양이 그려졌다.

"죽여 버려! Run! Run! Run!"

경기 템포는 점점 빨라졌다.

공이 쉼 없이 양 진영을 오갔다.

슈팅과 슈팅이 이어지고, 긴 패스와 짧은 패스를 쉼 없이 주고받았다.

뻐엉!

골키퍼는 계속해서 몸을 날렸고, 슈팅은 빗나가거나 번번이 선방에 막혔다.

[제퍼슨 리의 슈팅! 알리송이 잡아냅니다!]

[알리송, 후반전 들어 각성한 것처럼 막아 내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제퍼슨이라고 해도 모든 슈팅을 골로 연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아니 유럽의 모든 리그를 통틀어 유효슈팅 대비 득점이 가장 높은 건 제퍼슨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골키퍼가 제퍼슨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리송 역시 그랬다.

'손목이 아작 날 거 같아!'

방금도 슈팅을 잡았지만,

그건 정말 운이 따라 준 것일 뿐.

품에 안았음에도 손목에 전해지는 짜르르한 고통은 등골이 서늘했다.

'미친놈.'

제퍼슨을 바라보는 알리송의 눈동자에 얼핏 공포가 스친다.

슈팅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머리를 맞으면, 골통이 깨질지도 몰라.'

우스운 생각은 아니었다. 알리송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물론 상념은 거기까지다. 알리송도 프로였고, 유럽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선수다.

그는 침착하고, 또 빠르게 공을 전개했다.

현대 축구에 있어서 빌드업의 시작은 골키퍼부터다.

알리송은 그 역할에 충실했다.

[알리송이 길게 던집니다! 오른쪽으로 내달리는 사디오 마네에게 단 한 번에 연결됩니다!]

텅텅 비어 있는 중원.

서로 뒷공간을 무시한 채 라인을 끌어올렸고,

사디오 마네는 그 한 번의 기회를 완벽한 찬스로 만들 스피드를 갖고 있었다.

"마아아아아아아아네!"

"사디오! 사아아아디오!"

리버풀 팬들이 모두 다 일어나 소리쳤다.

이거다.

완벽한 역습 찬스다.

이 골이 들어간다면,

승부의 추는 동점! 2대 0에서 2대 2, 그리고 3대 2까지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하나 모든 역습 찬스가 득점이 될 순 없다.

"Nooooooooo!"

알리송이 각성한 듯 슈팅을 잡아내는 것처럼,

첼시의 케파 골키퍼의 집중력도 현재 최고조 상태!

하물며 엄청난 부담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던 마네의 슈팅에는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케파는 야생짐승 같은 반사 신경으로 공을 쳐 내는 게 아니라, 잡아냈다.

"제기라아아알!"

"XXX-XX!"

괴성과 야유, 욕설이 쏟아지는 것도 찰나.

그 욕설은 이내 끊겼고, 다급한 목소리로 이어졌다.

공을 잡자마자 중앙으로 크게 던져버리는 케파.

"Yeaaaaaaaaaaaaaaaaaaa!"

역습에 이어지는 재 역습.

극도로 빠른 템포는 관중들의 고개가 휙휙 돌아갈 정도였다.

[케파가 단번에 중앙으로 던집니다! 풀리시치가 내려와서 받습니다! 역습입니다! 풀리시치! 달려드는 파비뉴를 한 차례 속이고! 오! 이 미국 선수의 테크닉이 빛을 발하네요! 그대로 왼쪽 대각선을 향해 긴 패스를 보냅니다!]

[에메르송! 에메르송! 오버래핑을 시도합니다! 리버풀! 수비해야죠! 이런,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에메르송이 태클이 들어오기도 전에 앞으로 찔러줍니다! 라인을 타고 맙소사! 제퍼슨 리입니다! 제퍼슨 리가 공을 향해 뛰고 있습니다! 아아!]

제퍼슨에게 공이 전달되는 데 필요한 패스는 단 세 개였다.

그 세 번의 패스가 첼시의 페널티 박스에서, 리버풀의 페널티 박스까지 이어졌다.

리버풀의 역습에서 마지막 패스가 사디오 마네에게 닿았다면,

첼시에서는 제퍼슨 리였다.

그것이 어쩌면 이번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마네가 쏟아지는 부담감과 긴장감에 제대로 된 슈팅을 때리지 못했다면,

제퍼슨은 과연 어떨까.

[반 다이크의 속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역습 상황! 반다이크만이 박스 안에서 제퍼슨에게 따라붙습니다!]

"······!"

그 순간,

두 선수는 서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붙었고, 똑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지금이 우승이 갈리는 순간이다.'

반다이크는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

더 좋은 위치도 반다이크가 먼저 자리 잡았다. 그는 알리송과 눈빛을 교환했다.

반다이크가 오른쪽을 차단하면서, 제퍼슨이 슈팅 각도를 왼쪽으로 기울게 한다.

그리고 그 왼쪽 각도를 알리송이 막는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온 최정상급 수비수와 골키퍼의 교감.

'됐다!'

양 팀 모두 필사적이었다.

리버풀은 막기 위해서, 그리고 첼시는 어떻게든 쐐기 골을 때려 박기 위해서.

제퍼슨도 이들의 수비방식을 파악했다.

하나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진 않는다.

방법은 반다이크를 억지로 밀어내는 것.

또는 개인기로 제치는 것.

그러나 그것들을 성사시키는 순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는 수비수들이 몸을 날릴 거다. 몸을 날려 골문 앞에 벽을 쌓으리라.

찰나의 시간, 수많은 판단이 겹쳐지고 또 겹쳐지면서.

제퍼슨은 휘릭 돌아 공을 긁어내며 소유했다.

'슈팅 각도를 한쪽만 열어놓겠다?'

반다이크의 의도는 왼쪽으로만 때려라.

그러면 알리송이 거기서 막는다.

이거였다.

지금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각도는 그 부분이 전부였다. 하나 제퍼슨은 그들의 의도대로 놀아 줄 생각은 단 조금도 없었다.

역습 상황에서 마무리에 실패했던 사디오 마네와 제퍼슨 리의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 번뜩인다는 것이고.

스륵!

발바닥으로 공을 긁고,

툭!

왼발로 공을 살짝 띄우고.

두 번째로는 그 발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력과 재능을 가졌단 점이다.

"흡!"

오른쪽을 막고 있는 반 다이크를 최대한 밀어내면서.

30cm가량 띄워진 공을, 오른발로 툭.

"······?"

반 다이크는 생각했다.

제퍼슨이 자신을 밀어내는 순간.

아마도 제퍼슨은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저 살짝 띄워진 공을 때리리라.

그가 의도적으로 열어 준 왼쪽 각도로 말이다.

하나 그 생각이 철저한 오판이었음을 깨달았다.

제퍼슨은 오히려 오른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오른발로, 오른쪽 반 다이크가 막고 있는 위치로.

'백······ 힐킥?'

발뒤꿈치로 밀어내 반 다이크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

순간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상상조차 못 한 움직임.

공을 띄워 백힐킥으로 밀어 넣는다?

그것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3년째 꼽히고 있는 자신에게?

저런 굴욕적인 슛을······ 성공시킨단 말인가? 아니 시도할 생각을 어찌했단 말인가.

툭!

"Fucking! No! Noooooo!"

리버풀 팬이 절규했다.

그리고 0.5초 정도의 딜레이 후에, 첼시 팬들의 함성이 터졌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제----------프!"

아무도 생각지 못한,

감각적으로 터진 제퍼슨의 발뒤꿈치를 이용한 백 힐킥.

[Oh My God! Lovely Finish! Fantastic Finish! 제퍼슨 리가 마법을 부렸습니다! 오, 세상에! 대체 제가 무엇을 봤을까요! 너무나 아름다운 골입니다. 미쳤습니다! 이건, 이건 너무 치명적입니다! 리버풀이 무너집니다! 제퍼슨이 오늘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리그 50호 골을 신고합니다!]

***

믹스트 존에 나온 제퍼슨은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사실상 우승 확정이니까.'

'대단했어.'

기자들은 모두 수긍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 첼시가 3대 1로 리버풀을 눕혀 버리면서 승점 6점 차로 벌어졌다.

이제 리버풀이 남은 두 경기에서 승점 1점만 얻어도 첼시는 우승을 확정을 짓는다.

"오늘 경기로 인해 거의 우승이 확실시되는 상황입니다. 해트트릭을 터뜨리면서 팀의 우승으로 이끌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퍼슨은 다소 호흡을 고른 뒤에 대답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상대인 레스터시티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노리고 있고, 38라운드 마지막 상대인 본머스는 강등 탈출을 위해 필사적입니다. 우리는 집중하고 남은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그 이후에 우승 소감을 얘기하겠습니다."

기자들이 살짝 감탄을 터뜨렸다.

'스무 살짜리가 무슨.'

'팀의 주장이나 다름없군. 인터뷰로 집중을 요구하다니.'

'난놈이긴 난놈이야.'

그러나 제퍼슨은, 겸손해하면서 본인 특유의 BADASS다운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뭐, 프리미어리그 우승 하나로 기뻐하긴 좀 이른 것 같습니다."

"네?"

"리그가 끝나면 FA컵 결승전이 남았죠. 일단 리그 우승은 묻어 두고, FA컵 결승까지 더블로 간 뒤에 소감을 말씀드리죠."

그건 착각이었을까.

기자들은 어쩐지 그렇게 반드시 되리라는 아주 확실한 예언을 들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181. 묻고 더블로 가!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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