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묻고 더블로 가! (1) >
[첼시 4 : 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제퍼슨 리 4골 폭발, 혼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만들다.]
[레알 마드리드에 이어 아틀레티코마저 격침한 제퍼슨 리, 마드리드 시민의 악몽이 되다.]
[산티아고 차베즈, '믿기 어려운 선수다. 친구이자, 국가대표팀의 절친한 동료지만 그는 볼 때마다 더 성장해 있고 무서워져 있다. 나는 그를 만나 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빅이어를 향한 도전에 또다시 실패한 아틀레티코, 다음 시즌 제퍼슨 리 영입 시도? 시메오네 감독, '구단주와 깊은 얘기를 나눴다. 반드시 그를 데리고 와 달라고.']
[아틀레티코 구단주, '우승할 수 없으면, 우승을 만들 수 있는 선수를 데리고 오겠다.']
[첼시 로만 구단주, '그의 가치는 현금으로 측정 불가하다. 그 누가 신을 현금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가?']
[10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첼시, 빅이어를 다시 들어 올릴 수 있을까?]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에게 총합 스코어 1대 2 패배! 레반도프스키 2골 폭발!]
[유럽 2021-2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바이에른 뮌헨 VS 첼시 매치업 성사]
[구세대와 신세대를 대표하는 '컴플리트 포워드'의 맞대결 성사!]
[첼시 팬들, 'AGAIN 2012!'를 외치다.]
***
"제프! 어때? 오늘 하루 푹 놀자고!"
런던에 도착한 후, 올리버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슬쩍 보니 그와 뜻이 맞는 몇몇 선수가 떠들썩하니 웃고 있었다.
하긴.
신날 만도 하다.
1차전에서 패배했고, 2차전에서 그걸 완전히 뒤집었으니까.
몇몇 언론은 벌써 '기적'을 썼다고 호들갑이었다.
그렇게 부를 정도긴 했다.
최근 5경기 동안 2실점, 그리고 홈구장에서는 1실점도 내주지 않은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3득점 이상을 해야만 하는 암울한 상황이 아니었나.
그런 상황을 모두 이겨냈으니까.
본래대로라면 감독은 선수단 관리를 하겠지만, 그도 함부로 간섭하지 못했다.
경기 직후 휴식을 주는 건 당연했고, 분위기가 완전히 들떠 있으니까.
하나.
나는 적어도 벌써 풀어질 생각은 없었다.
"미안하지만 마사지 받으러 가야 해."
"마사지?"
"응, 마사지 받고, 스트레칭하고 요가 좀 해야지."
올리버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운동하러 가겠다는 의미인 거야? 오, 맙소사!"
"운동이라니. 경기 끝나고 몸을 풀어놔야 하는 건 기본이야."
"그거야 그렇긴 한데."
"놀고 싶으면 가서 실컷 놀아. 다만 3일 후에 맨시티전인 건 알지? 그거 지면 우리 리버풀하고 승점 동률 될 확률이 아주 높은 것도?"
"······후우."
올리버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에 온갖 감정이 다 느껴졌다. 아쉬움, 섭섭함 같은 것들?
"좋아. 파티는 나중에 즐기지. 모든 컵을 다 얻고 나서 말이야."
올리버가 파티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이거 감동해서 눈물이 나겠네.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고는 같이 떠들던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집에 가서 쉬라고! 제기랄! 파티는 나중에 하자고! 그때까지 기대해! 내가 유럽의 슈퍼모델들을 모조리 불러 줄 테니까!"
시무룩해 하던 몇몇 선수가 이내 반색했다.
어쩌면 이게 올리버 활용법일지도 모른다.
유치한 남자들 사이에서, 그가 가끔 내놓는 탐나는 과실에 열을 올리는 선수들이 꽤 많다.
"제대로 된 파티를 준비할 테니까, 그 전에 모든 경기를 다잡자고!"
어쨌거나 팀은 이렇게 해산했다.
아마 내일부터 다시 훈련이 시작되리라.
다음 리그 경기가 35라운드, 맨시티전이니까.
***
[첼시의 션 올리버, 아스날의 다음 여름 이적 시장 타깃]
[3순위 스트라이커로 밀린 타미 아브라함, 웨스트햄에서 러브콜]
[제퍼슨 리의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PSG,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첼시, 제퍼슨 리를 붙잡기 위해 거액의 재계약 준비 중]
이적 시장이 열리지 않을 때도, 루머는 자주 터져 나온다.
보통 에이전트가 수를 쓰는 게 많다. 몸값을 부풀리기 위해 여러 구단을 거론하면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잘되고 있는 팀을 어떻게든 분열시키려고 루머를 만드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있었다.
"올리버, 아스날에 갈 생각이야?"
"무슨 소리야. 에이전시에선 그런 얘기 없었어. 구단 측에도 연락 없었어."
"타미는?"
"걔 성격 몰라? 승부욕하면 미친놈이야. 최근 우트에 밀린 것 때문에 제퍼슨의 집까지 찾아가서 같이 운동하잖아."
"그럼 이 기사들은 뻔하군."
기사의 논조를 살펴보면 의도가 뻔히 보였다.
가령 올리버는 훈련에 지각이 잦고 불성실하다는 점. 선술 사이가 갈라져서 이적을 모색하고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타미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주전 경쟁에서 밀려 팀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내용이다.
선수들이 보기엔 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베르츠가 냉소를 지으며 툭 중얼거렸다.
"팀을 흔들려는 의도야."
"리그 막판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지."
하나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찾아보던 우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제프 기사는?"
"······그건 사실 같은데."
"후우!"
제퍼슨 리를 영입하겠단 기사가 터져 나온 건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와는 뭔가 달랐다.
우선 레알 마드리드는 구체적인 금액을 첼시 구단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루머인줄 알았건만, 코칭 스태프 사이에도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까.
"2억 파운드(한화 3,000억 원가량)?"
"미친!"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야."
물론 첼시는 가차 없이 거절했다.
하나 구단의 영입 의지는 본격적이었다.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할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는 확실한 영입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레알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클럽들이 단순히 루머만 흘러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였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엄청난 활약 때문이다.
리그에서 활약이 좋았다고 한들,
챔피언스리그라는 대회에서 증명되지 않은 이상, 2억 파운드에 가까운 금액을 선뜻 제시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모두 제퍼슨의 신들린 능력을 봤다.
레알 마드리드는 16강에서 처참하게 박살 났다.
아틀레티코는 준결승에서 제퍼슨에게 가장 끔찍한 역전패를 당했다.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 득점 경신, 제퍼슨 리. 22골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제치다.]
[시즌 초 밝힌 한 시즌 80골이란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제퍼슨, 리그 46골, 챔피언스리그 22골, FA컵 8골! 시즌 통산 76골 폭발!]
[리오넬 메시의 12-13시즌 통산 득점기록 90골. 제퍼슨 리가 넘보나?]
현재 지구상에서 제퍼슨 리만큼 득점을 넣고 있는 선수가 없단 사실이 가장 컸다.
심지어 그의 나이 20세.
큰 부상이 없으면 앞으로 최소 10년간 축구계를 지배할 유일한 선수가 될 게 분명했다.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는 분명 끝나 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뒤를 이을 수많은 선수 중에, 제퍼슨이 독보적이란 걸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직시한 것이다.
"메시는 호나우지뉴의 뒤를 이어 팀의 상징이 되었어. 그 뒤를 이을 선수로는 제퍼슨이 적격이지."
"생각해 봐! 메시와 제퍼슨이 같이 뛴다면?"
"맙소사! 끔찍한 일이야!"
바르셀로나는 준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일격을 당하며 그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루이스 수아레스의 노쇠화, 점점 다가오는 메시의 황혼까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탈락하면서 현재가 더 크게 대두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퍼슨 리라는 확실하고 치명적인 무기가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명백히 우승후보가 아니었던 첼시가 결승까지 진출한 걸 지켜본 파리 생제르맹은 눈에 불을 켰다.
"우승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그러면 우승을 만들어 주는 선수를 사면 돼지!"
"2억 파운드를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고?"
"Oh, 스페인은 돈을 쓸 줄 모르는군."
"2억 5천부터 제시해 봐!"
이렇듯 이적 시장이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는데도,
빅클럽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된 이유였다.
첼시도 이쯤 되면 재계약을 해서 제퍼슨을 묶어 두기 위해 시도했다.
그러나 제퍼슨은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몸값이 절정에 치닫고 있는데, 트레블까지 달성하면 좀 더 제시할 조건이 많아질 게 분명하다. 에이전시의 조언을 들은 제퍼슨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움직임을 차단한 채 오로지 훈련에 매진했다.
***
우리는 리그 35라운드에서 맨시티를 만난다.
맨시티는 현재 리그 3위.
우리와는 승점 5점 차이다.
아직 FA컵 결승전이 남아 있어서, 맨시티도 더블에 대한 열망은 아직 끄지 않은 상태다.
만일 우리가 맨시티에게 잡힌다면, 맨시티도 분명 우승을 포기하지 않을 만한 상황이었다.
"자만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경기야. 리버풀 놈들은 지금 맨시티를 응원하고 있겠지. 하지만 너희는 스스로가 완벽하다는 건 알고 있을 거야. 너흰 내가 아는 최고의 선수들이다. 다만 자만은 하지 마!"
감독의 요지는 간단하다.
자신감을 가지되, 자만은 금물이다.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오히려 맨시티라 다행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질 것 같단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자신감은 충분하다. 그렇다고 쉽게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만심이 들 수는 없다.
이 적정선이, 오히려 우리가 더 확실하게 경기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일 상대가 리그 강등권 팀이었으면, 자만했다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을지도 모르지.
[Welcome to Manchester!]
[Welcome to the Hell!]
맨체스터 시티 원정.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
[첼시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89골을 터뜨렸습니다. 그중에 절반 이상을 제퍼슨이 차지하고 있죠.]
[제퍼슨은 홀로 46골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를 막는 것이 이 경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죠.]
툭, 툭!
선축은 맨체스터 시티였다.
홈구장에서 벌어지는 경기인 만큼, 그리고 세계적인 선수로 구성된 선수진들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후좌우.
짧게 툭툭 차는 패스는 첼시의 캉테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차단하기 어려운 종류였다.
[공이 계속해서 맨시티 진영에서 돌고 있습니다.]
[맨시티는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있어요. 공을 주고받으면서 점유율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첼시는 강력한 전방 압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맨시티의 선수들은 그 압박 속에서도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하죠.]
경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개인 기량으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 수준인 맨시티가 아닌가. 그들은 공을 빠르게 돌리면서 점유율을 서서히 끌어올렸고, 첼시는 압박을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빠르게 체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길 30분.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진이 순간 무언가 깨달은 지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렇군요. 맨시티의 무의미한 점유율로 보이지만, 과르디올라의 작전은 명백합니다. 공을 계속 돌려 첼시 선수들의 체력을 소모하면서, 제퍼슨에게 공이 단 조금도 흘러가지 않게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네요. 공을 오히려 오래 소유할수록, 첼시가 공을 잡는 횟수는 극도로 적어지고, 그중에서도 최전방인 제퍼슨에게 향하는 확률은 턱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제퍼슨은 분명 위력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 아니, 가장 무서운 스트라이커죠. 하지만 스트라이커 골을 넣기 위해선, 공을 잡아야만 하거든요!]
번번이 제퍼슨에게 쓴 물을 들이켰던 과르디올라.
그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
과르디올라가 제퍼슨을 대비한 방법은 간단했다.
'제퍼슨에게 공이 가지 않아야 한다.'
제퍼슨에게 공이 닿는 순간.
그것은 범접할 수 없게 된다. 전혀 경기를 통제할 수 없다. 제퍼슨은 컨트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면 어떻게 공이 안 가게 만드는가?
'상대에겐 좋은 패서가 있어. 압박 속에서도 패스할 줄 아는 놈이지.'
카이 하베르츠는 과르디올라도 탐내던 자원이었다.
그는 쏟아지는 압박에서도 제퍼슨에게 패스를 보내 줄 재능을 가지고 있다.
패스를 중간에 차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르디올라는 생각했다.
"점유율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점유율에 집중한다.
사실 점유율이 높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점유율이 낮아도 기회 한 번으로 상대팀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과르디올라가 의도한 건 이거였다.
"공을 오래 소유하고 있으면, 상대가 패스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무의미한 패스로 점유율만 올릴지언정,
공만 소유한다.
그것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축구가 되더라도 말이다.
상대팀은 어떻게든 공을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뛸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맨시티는 패스에 특화되어 있다. 바르셀로나 시절부터 패스에서만큼은 확연한 전술 색채를 지닌 과르디올라였다.
맨시티 선수들이 작정하고 패스만 돌리며 점유율만 끌어올리자, 첼시 선수들은 빠르게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제퍼슨도 무리할 수 없다.'
일반적이라면, 제퍼슨이 압박해 공을 따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스피드와 피지컬은 수비를 단숨에 패대기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첼시는 극악의 일정을 진행 중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그도 리버풀과의 사실상 결승전이 남은 상황이 아닌가?
분명 체력을 보존해 두어야 하는 상황.
"제퍼슨이 압박해 오면 무조건 공을 돌려!"
그렇게 한두 번, 제퍼슨이 스프린터를 터뜨린다고 해도.
맨시티는 그저 무의미하게 공만 돌렸다.
만일 제퍼슨이 너무 빠르게 다가와 공을 뺏길 거 같으면, 차라리 첼시의 다른 선수들에게 공을 넘기라는 주문까지 했다.
'다른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제퍼슨이 잡으면 막을 수가 없다!'
그것이 결론이었고.
경기 30분까지 과르디올라의 의도대로 훌륭하게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맨시티 홈팬들에게도 지루하다며 야유가 쏟아진다고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게 만족스러운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그의 눈동자가 일순 부릅떠진 건.
전반 43분, 하프타임 직전이었다.
"지금······ 어떻게 된 거지?"
제퍼슨이, 공을 잡았다.
< 177. 묻고 더블로 가!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