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76화 (176/258)

< 176. 밸런스 패치 (4) >

제퍼슨의 작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상대가 준비한 걸 초반부터 흔들어버리겠단 계획.

계획과는 달리 6분 만에 내준 선제 실점.

아틀레티코는 눈에 띄게 흔들렸다.

하나 흔들리는 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들은 금세 중심을 잡았다.

"이 개자식들아! 망아지 같은 쓰레기 자식들아! 똑바로 하란 말이다! 취한 것처럼 흐느적거리지 말라고!"

"그렇게 흐느적거릴 거면 내가 아주 뼈를 뽑아 주마! 그럼 오징어처럼 되겠지!"

"뛰어! 뛰어! 뛰어! 죽기 싫으면!"

디에고 시메오네와 엄청난 덩치의 헤르만 부르고스 수석코치가 성난 얼굴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권위로 선수단을 장악한 코칭스태프의 고함.

살벌한 기세에 선수들은 눈에 띄게 긴장하며 이 악물고 뛰었다.

하나 제퍼슨의 계획은 현재진행형이었다.

"한 골로 안 된다고? 그럼 두 골 먹고도 안 흔들리나 보자고."

지극히 간단명료하면서도 단순한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만큼 효과적인 계획은 없었다.

[제퍼슨 리! 공을 치고 달립니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일순 높아졌다.

토마스 파티와 사울 니게스 사이를 순간적으로 치고 달리는 제퍼슨 리.

"돌아버리겠네, 진짜!"

"왼쪽으로 치고 나갈 때 막아! 뒤는 내가 막을게!"

"너무 빨라서 막을 수가 없어!"

그들은 상당히 고전했다.

제퍼슨 리는 심기일전하여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이 뿜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꺼냈다.

"도대체 이 새낀 몸이 왜 이래?"

"저 근육덩어리가 저렇게 빠를 수가 있냐고!"

세상엔 완벽한 밸런스의 피지컬을 지닌 선수가 꽤 많다.

엄청난 하드웨어를 지닌 선수들 말이다.

한데 그런 축복받은 조건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선수가 대다수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너무 구식인 것이다.

하나 제퍼슨은 달랐다.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

"뚫렸다!"

더구나 그런 제퍼슨을 도와주는 하베르츠의 환상적인 패스.

1차전에서도 간간히 번뜩이던 패스가 터져 나왔다.

1차전에서 아틀레티코는 수비들이 몸을 던졌다. 그야말로 걸레 같은 육탄방어였다.

하나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호세 히메네스가 제퍼슨과 어깨싸움을 시도합니다! 맙소사! 월드 클래스의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히메네스도 제퍼슨을 이겨 내지 못합니다!]

아틀레티코의 수비가 강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비라인.

두 줄로 이뤄진 강력한 압박.

선수 개인의 수비 기량까지.

그러나 그들 모두 쓴맛을 느끼고 있었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챔피언스리그 4강에 만족해라! 거지 깽깽이들아!"

하베르츠의 천재적인 패스는 견고한 조직력을 단 한 방에 무너뜨렸고, 제퍼슨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단단한 근육은 수비수의 개인 기량까지 그저 찍어 눌렀을 뿐이다.

[제퍼슨 리가 아틀레티코를 유린합니다!]

마지막 남은 골키퍼 얀 오블락.

1차전에서 기적적인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며 평점 8.9를 받았던 그는,

짐승적인 본능으로 미리 위치를 잡고 제퍼슨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슈팅을 언제 때린 거지?'

뻐어엉!

이미 그의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슈팅을 보며.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르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그리고 끔찍하기까지 한 엄청난 슈팅이 골문을 갈랐다.

[제프으으! 엄청난 골을 넣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 터져 나온 무회전 슈팅이 골문을 갈라 버립니다! 치명적인 골입니다! 아틀레티코는 오늘 철저하게 당하고 있습니다. 1차전의 그 아틀레티코가 맞나요? 아니면 제퍼슨이 오늘 그들을 처참하게 유린하는 것일까요?]

[완벽하고, 아름답고, 치명적인 골입니다! 아틀레티코 홈 관중이 모두 머리를 쥐어뜯고 있습니다! 허망한 표정의 얀 오블락 골키퍼와, 박스 안에 쓰러진 수비수들의 얼굴을 보세요! 그들의 얼굴엔 공포가 담겨 있습니다!]

[제퍼슨 리는, 상대에게 지독한 공포를 주는 괴물입니다! Wonderful! 그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틀림없습니다!]

제퍼슨 리는 오블락의 멍한 표정을 보며 공을 들고 센터서클로 뛰었다.

전반 19분, 제퍼슨의 두 골.

양 팀 총합 스코어는 3대 3.

이대로 끝난다면 원정 다득점으로 아틀레티코가 결승에 진출한다.

그러나 필드의 모든 선수는 직감했다.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제퍼슨은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한 골 더 남았다고! 귀여운 아가씨들!"

***

전반 30분도 안 돼서 아틀레티코의 견고한 수비를 찢어 버리는 제퍼슨을 보는 시메오네는 말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저 녀석을 미국에서 데리고 왔어야 했다.'

그간 수많은 감독과 빅클럽이 했던 후회를, 시메오네 역시 똑같이 반복했다.

제퍼슨 리의 영입을 그토록 원했던 사람 중 하나가 시메오네였다.

"뭐, 밸런스를 맞춘 거라고?"

그 인터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던가.

화는 안 났다. 어처구니가 없었을 뿐이다. 그 대단한 바르셀로나도, 레알 마드리드도 아틀레티코를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시메오네가 수년간 구축한 아틀레티코는 부침은 있었지만, 늘 강팀으로 군림했으니까.

하여 선수들은 분노로 불타올랐고, 시메오네는 오히려 그걸 이용했다. 제퍼슨과 싸우라고 끊임없이 부추겼다. 싸우고 또 싸워서 혼쭐을 내주라고 말이다.

"그런데······."

한데 제퍼슨을 만나면 위축된 채 제대로 된 몸싸움도 못 하는 수비들을 보라.

흡사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다.

저런 표정을 자신의 선수들이 내보인다고?

"이 개자식들아! 정신 차려! 겁먹지 마! 제퍼슨을 무서워서 피하면, 경기가 끝나고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시메오네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다.

그 카리스마가 아틀레티코가 강팀이 될 수 있던 이유였고, 11명의 선수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의 가장 큰 근거였다.

그러나 수비들은······.

[제퍼슨 리의 돌파! 수비들과 부딪칩니다! 이런! 제퍼슨이 또 한 번 이겨 내는군요!]

[수비들이 제퍼슨을 쉽사리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긴, 그럴 수밖에요! 저 무지막지한 돌파를 저지하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깐요!]

감독의 카리스마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제퍼슨과 부딪치는 걸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타앗!

그때 수비진을 유린하는 제퍼슨의 패스가 하베르츠에게 향했고,

하베르츠는 가볍게 선수 한 명을 벗겨 내고는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툭 밀어 넣었다.

"Yeaaaaaaaaaaaaaaa!"

다시 한번 번뜩이는 센스가 빛나는 아름다운 패스.

그 패스가 찔러지는 순간.

벤치의 시메오네도 감탄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감탄사는 이내 장탄식으로 바뀌었다.

하베르츠의 패스를 아주 우아하게 공을 돌려 세워,

타이밍을 한 번 죽인 뒤.

튀어나오는 골키퍼를 침착하게 노려보며 다리 사이로 쭉 때리는 강슛.

뻐어엉!

전반 37분.

1대 3이라는 극도로 불리한 스코어를,

하프타임이 다가오기도 전에 뒤집어버리는 제퍼슨 리를 바라보며 시메오네는 화조차 내지 못했다.

'밸런스 맞췄다고?'

그가 한 인터뷰가 머릿속을 스쳐 간다.

순간 울컥하고 억울한 감정이 솟구쳤다.

"밸런스 맞출 거면 두 골 정도는 더 내주고 그딴 말을 했어야지!"

시메오네는 원정석을 향해 뛰어가 팬들의 품에 안기는 제퍼슨을 보며, 그저 억울함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

하프타임은 감독에게 있어 팀을 바꿀 엄청난 기회다.

하프타임의 기적, 또는 마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시메오네는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의 마법을 부린 것일지도 모른다.

사울 니게스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올리버의 짧은 패스를 끊어낸 사이.

내려앉아 수비하던 아틀레티코의 미드필더와 수비라인이 순간적으로 전진했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들이 튀어나가 수비하려는 틈을 타, 반박자 빠른 패스가 박스로 향했고, 골 냄새를 맡는데 천부적 감각을 지닌 산티아고가 골을 집어넣었다.

"아틀레티코! 아틀레티코! 아틀레티코!"

이로써 총합스코어 4대 4, 원정 득점까지 동점인 완벽한 동점 상황이 되었다.

"하프타임 때 감독한테 맞은 건 아니지? 산티?"

"욕은 많이 먹었어, 제프. 네가 전반전에 너무 미쳐 날뛰어서 말이지."

"미안해, 산티."

"뭐? 갑자기 안 어울리게 왜 진지하게 사과를 해?"

"경기 끝나고 또 욕먹게 될 거 같아서."

"무슨 소리야. 우리가 결승전 갈 건데."

"내가 또 미쳐 날뛸 예정이거든. 네 동료한테 전해. 은퇴하기 싫으면 내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고."

"······."

뭐.

필드 위에서 친구가 어디 있나.

산티!

***

아틀레티코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승부의 추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이젠 불리한 건 명백히 아틀레티코였다.

관중들 역시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AT가 추가골을 넣는다고 해도, 첼시가 곧바로 동점골을 터뜨리면 결승 진출은 실패한다.

여기는 그들의 홈구장이었고, 첼시에게 있어선 원정이었으니까.

이미 원정 득점은 3점으로 같은 상황.

첼시는 골을 터뜨릴 때마다 원정득점을 늘려가는 셈이니,

첼시가 한 골을 넣을 때마다 아틀레티코는 두 골을 넣어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빌어먹을 섬나라 놈들을 지중해에 처박아 주십쇼!"

팬들은 간절했다.

실점은 절대 없어야 하고, 아틀레티코는 득점을 올려야 한다.

그들은 유기적인 플레이보단, 조직적인 플레이에 더 힘을 실었다.

계획대로, 약속대로만 패스를 주고받았고 창의성을 철저하게 죽인 채 기계처럼 움직였다.

아틀레티코란 팀이 하나의 기계처럼 말이다.

그 기괴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움직임은 어느 한순간 필드의 중앙을 잠식해 가기 시작했다.

"뛰어! 선수를 보라고! 집중해!"

"거기 자리 비잖아!"

"라인 유지해! 라인 유지해!"

처절한 움직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때로는 선수의 능력보다 더한 결과를 보여 줄 때가 있다.

"아틀레티꼬!"

아틀레티코의 사울 니게스가 일순 공을 받고 돌파를 시도했다.

기계적으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움직이던 조직이, 일순 허물어지면서 사울 니게스가 튀어나온 모양새.

그 순간적인 움직임을 카이 하베르츠가 놓쳤다.

[사울 니게스의 돌파! 단숨에 선수 하나를 벗겨 내고, 오! 산티아고에게 볼이 배달됩니다!]

박스 안으로 매섭게 파고드는 산티아고의 움직임.

그러나 그 순간, 션 올리버가 강력한 차징 동작으로 산티아고를 밀어냈다.

"끄읍! 반칙! 심판!"

누가 봤을까.

올리버가 공을 빼내는 척 어깨를 팔꿈치로 슬그머니 찍는 장면을.

하나 올리버는 뻔뻔하게 소리쳤다.

"심판 찾을 시간에 공이나 찾아! 이 멍청아!"

올리버는 그렇게 소리치곤 따낸 공을 곧장 오른쪽으로 아스필리쿠에타에게 연결했다.

아스필리쿠에타는 성큼성큼 전진하다가, 별안간 긴 로빙패스를, 아니 거의 70m에 이르는 긴 롱패스를 전개했다.

뻐엉!

단 한 방.

시원하게 크게 내지르는 다이렉트 패스 한 방.

그 패스 한 방이 중앙으로 미친듯이뛰어가던 우트의 발끝에 도달했고,

우트는 공을 끌지 않고 왼쪽으로 바로 내줬다.

[제퍼슨이 받습니다!]

제퍼슨이 받고, 다시 내주고.

우트는 그 패스를 받은 뒤에 다시 한 번 리턴.

그 물 흐르듯 이어지는 광경은 순식간이었다.

고작 십 몇 초나 될까.

시원한 전개는 순식간에 아틀레티코의 수비를 박살 냈으며,

제퍼슨이 빠르게 침투를 시도했다.

[제퍼슨! 우아한 몸놀림으로 공을 잡고는, 마치 치타처럼 내달립니다! 역습입니다!]

선수들의 번뜩이는 재치가 빛나는 역습 전개.

"뛰어! 달려! Run! Run! Run!"

"죽여 버려!"

응원하는 첼시 팬들과.

"저 개자식의 다리를 부러뜨려!"

"제발 막아!"

간절한 아틀레티코의 외침.

그 순간 마지막 최후방 수비수, 필리페 루이스가 한 발짝 앞서 태클을 시도했다.

어쩌면 조금은 위험한 슬라이딩 태클.

그러나 무아지경에 빠진 제퍼슨은 그 태클을 오로지 스피드로만 따돌려 냈다.

마치 태클이 어느 타이밍에, 어느 지점으로 어떻게 들어올 것인지 미래를 본 사람처럼.

오른쪽 대각선으로 공을 길게 쭉쭉 뽑아내며 내달렸다.

"맙소사!"

"제발!"

순식간에 모든 수비를 무너뜨린 제퍼슨이 박스에서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한 순간까지 이른 시간은.

16초.

그야말로 역습의 정수가 절절히 녹아 있던 그 전개의 마지막 방점은,

튀어나온 얀 오블락을 팬텀드리블로 벗겨 내버린 제퍼슨이 빈 골대를 향해 툭 밀어 넣는 모습이었다.

그의 네 번째 골.

"Yeaaaaaaaaaaaaa!"

"We are Blues!"

아틀레티코 팬들은 차마 야유도 터뜨리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했으니까.

쐐기 골이나 다름없는 실점을 당했다는 자각이 들기도 전에,

제퍼슨은 이미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셀레브레이션을 펼치고 있었다.

완벽한 역습 전개에 완벽한 골.

그 순간, 필드의 모든 사람은 부르르 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대체 쟤를 어떻게 막아?"

< 176. 밸런스 패치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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