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75화 (175/258)

< 175. 밸런스 패치 (3) >

[제퍼슨 리 '밸런스를 위해 1차전은 패배한 것. 이제야 게임이 흥미진진하지 않나?']

ㄴ이쉑ㅋㅋㅋㅋㅋㅋㅋ 인터뷰 보소

ㄴ제프 이쉑, 혀 드리블을 본인 축구드리블만큼 존나 잘 치네;;

ㄴ저렇게 말해 놓고 2차전 못 뒤집으면 추잡해지는데?

ㄴ응 역전 가능

ㄴ꼬마 애들 홈에서 최소 실점팀임

ㄴ응 라리가 공격진 수준

ㄴ리오넬 메시(라리가, 발롱도르 7회 수상자): ????

ㄴ응 제프 없는 라리가에서 최소실점팀, 제프 앞에선 의미 없어

ㄴ와 이쉑 제프 본인 아니냐

ㄴ극도의 제프맘ㄷㄷㄷㄷ

ㄴ한국인도 아닌 미국인을 왜케 빠냐

ㄴ응 한국말 너보다 잘함

ㄴ그건 솔직히 인정;

***

홈구장에서 팀의 승리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홈에서는 선수들의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

홈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것.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원정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는 약팀도, 홈에서만큼은 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줄 때가 있다.

괜히 강팀들이 원정경기에서 이변의 희생양으로 깨지고 돌아오는 게 자주 있는 게 아니다.

홈 깡패란 말이 왜 있겠는가.

홈구장에서 쏟아지는 수만 명의 압도적인 응원은 부담감이 될 수도 있지만,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마구 쏟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6만 5천 명이 모여든 여기.

아틀레티코도 마찬가지였다.

-Atleti, Atleti, Atlético de Madrid,

Atleti, Atleti, Atlético de Madrid!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아틀레티코는 어떻겠는가.

경기장을 웅웅 울리는 함성이 경기 시작 전부터 쏟아졌다. 목이 찢어지라고 외치는 함성에는 단순히 흥분을 넘어 귀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처절했다.

"겁먹은 거야."

"맞아."

"제프, 네가 왔단 사실에 마드리드 놈들이 겁먹은 거라고. 그래서 기죽지 않은 거라고 저렇게 응원하는 거지."

"글쎄. 내가 보기엔 화난 거 같은데."

하베르츠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랬다.

아틀레티코의 팬들은 화가 난 게 분명했다.

"1차전 패배가 밸런스를 맞춘 거라니."

"나 같아도 그런 말 들으면 화나겠어."

"제프, 그 말 네가 책임져."

"왜 이러실까. 다들 세 골 정도는 가능하잖아?"

"그렇다고 생각해도, 대놓고 말하는 미친놈은 없지."

"우리 팀에만 있을 거야."

이제 내 성격을 아는 놈들은 그저 가볍게 웃었다.

내가 허세에 찌들어 그저 오만한 말을 하는 게 아님을 안다. 그만한 자신이 있었기에 내뱉은 인터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기자회견장에 나오면서 감독이 나에게 말했다.

"단지 존재만으로 선수단의 의지를 단결시키는 선수들이 있어. 아주 오래된 베테랑들이 간혹 그러는데, 넌 스무 살인데도 그런 기질이 있단 말이야. 도대체 경력이 몇 년이야?"

그 물음에 뭐라 대답하겠나.

사실 제가, 20년 동안 프로 무대에서 날고 긴 놈입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그냥 웃었다.

"어머니 배에서부터 찼습니다."

"조기교육이 철저하군, 하긴 그 정도 경험이 있어야 선수단 사이에서 그런 위치에 설 수 있지."

어쨌건 감독이 나에게 말한 건 명백하다.

은근슬쩍 나에게 차기 캡틴 자리를 권한 것이다.

아스피는 분명 좋은 캡틴이지만, 모범생처럼 팀을 조용히 이끄는 스타일이다.

사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팀 내 핵심이고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같이하고 있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스피가 캡틴 완장을 물려준다면,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할 확률이 무척 높다.

뭐 어쨌거나, 그거야 나중에 차차 순리대로 흐를 일이고.

오늘 경기에 출전할 라인업은 이랬다.

원톱 스트라이커 나.

2선에 풀리시치, 마크 우트, 허드슨 오도이.

중앙에 카이 하베르츠와 션 올리버.

수비진에 에메르송, 뤼디거, 시셀도, 아스필리쿠에타.

골키퍼 장갑은 케파가 낀다.

우리가 현재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라인업이다.

여기서 가장 큰 변화는 아마 올리버겠지.

캉테가 빠지고 올리버가 들어갔다. 특별한 전술은 아니다. 이번엔 캉테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이었다.

"걱정하지 마, 제프. 내가 산티아고? 그 자식을 철저하게 막아 버릴 거니까."

"쉽지 않을 텐데?"

"흥. 그래 봤자 너만 할까."

조금은 더러운 파이터 스타일로 변화하는 션 올리버. 산티아고를 상대하기엔 적격일지도 모른다. 산티아고도 겉으론 티가 나지 않지만, 상당히 다혈질인 녀석이니까. 살살 건들면 평정심을 흔들 수도 있을 거다.

"산티 이 녀석, 보기보단 다혈질이야. 신경을 슬슬 건드려 봐."

"네 친구 아니야?"

"축구장에 친구가 어디 있어?"

"이상한 데서 프로의식이 투철하네."

올리버의 파트너로 출전할 하베르츠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캉테는 거의 만능형에 가까운 육각형 미드필더지만, 올리버는 수비에 특화된 친구니까.

하베르츠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 더 많아졌다.

"패스는 나만 하겠군."

"걱정하지 마, 카이. 딱 세 번만 패스 찔러줘. 그럼 세 골 넣을 테니까."

"······신중하게 패스해야겠어."

카이의 패스는 번뜩이는 센스가 돋보인다.

그가 정말 마음먹고 신중하게 패스한다면, 견고한 수비벽을 가르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 패스를 잘 받는 것이지만,

하베르츠는 그 부분에 있어서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때 아나운서가 소리쳤다.

"사아아아아아아안티아고!"

이어지는 관중들의 화답.

"차아아아베에에즈으으으!"

원래 아틀레티코의 별명은 공격수 사관학교였다.

늘 최정상의 스트라이커를 배출해 내기로 유명했다.

지금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선수는 바로 산티아고다.

여러 선수의 이름이 계속해서 불렸지만, 산티만큼 큰 함성이 들려오는 선수는 없었다.

터널에서 산티를 잠깐 만났었다.

"조심해, 친구!"

"뭘?"

"내 동료들이 널 죽여 버리겠다고 아주 다짐했거든!"

"그래? 그럼 동료들에게 전해 줘. 죽을 각오는 하고 덤비라고."

"너무 살벌한데? 대표팀에선 든든했는데, 적으로 만나니 무섭네."

"그넌 나도 동감이야, 산티. 1차전에 우리팀을 아주 힘들게 했더라?"

"네가 오늘 우리 수비애들 괴롭히는 것보다 심할까. 가끔 내가 스트라이커인걸에 감사하고 있어. 수비수였다면 전날에 잠도 못 잤을 거야."

"설마, 내가 친구를 패대기치겠어?"

"로드릭이 그러던데? 널 만날 때마다 이가 갈린다고. 영국 간 게 가장 후회스러울 때가 너랑 경기할 때래. 1년에 두 번은 해야 하니까 죽겠다는데?"

"로드릭이 원래 엄살 심한 거 알잖아."

"맙소사. 설마 너하고 부딪친 선수들이 다 엄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건 너무 잔인한데."

산티와의 짧은 대화는 상당히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뛰었고, 대표팀에서도 가장 뜻이 잘 통하는 파트너니까.

산티도 많이 성장한 게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긴장은 느껴졌을지언정,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하기야.

원정에서 3득점을 올렸는데 비교적 여유롭겠지.

삐이이이익!

"Atleti! Atleti!"

시작은 아틀레티코의 선축이었다.

4-4-2의 포지션.

양 측면 미드필더가 메짤라처럼 뛰면서 좀 더 중앙에 힘을 써주는 포메이션이다. 왼쪽 측면의 코케가 중앙으로 툭툭 공을 치면서 토마스 파티와 엑토르 에레라와 공을 주고받는다.

올리버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압박하지만, 그들은 아주 적절하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전진해 온다.

"침착해!"

흠.

탐색전인가.

저들은 원정 득점의 우위만 지키면 된다.

무리할 이유가 하등 없다.

지키고 지키다가, 잘하는 역습 한 방에 무너뜨리면 게임은 끝난다.

저들의 계획은 그렇다.

이런 상대를 할 때 중요한 건,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을 단번에 흩뜨려 놔야 한다는 것이다. 계획을 일찌감치 부서뜨린다면, 상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점수를 지키고자 하는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초반에 아주,

망가뜨려야 한다.

"좌우로 넓게 뛰어!"

중앙으로 공을 몰아 숨도 쉬지 못하게 압박하는 플레이. 하면 반대로 파고들어야 한다.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도 전에, 감독은 이미 이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벤치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선수에게 전달되는 것보단, 같이 뛰는 선수가 악을 지르는 게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뛰어!"

풀리시치가 순간적으로 수비 사이로 치고 나가며 측면으로 빠졌다.

오도이도 수비 뒷공간으로 달렸다. 두명다 순간적인 속도는 상당한 수준.

"자리 지켜! 놓치지 마!"

하베르츠가 로빙패스를 하려는 듯 자세를 잡았다.

단 한 순간이다.

아틀레티코의 수비는 지능적이며 견고하다.

때문에, 하베르츠의 패스를 먼저 읽고 대비하려 한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기회가 된다.

중앙으로 좁혀 오는 압박이, 일순 양쪽으로 크게 벌어지니까.

"제-프!"

하베르츠는 긴 패스를 날리는 척, 페이크를 넣고는 나에게 짧은 패스를 내줬다.

살짝 등진 채 공을 받고, 달려가는 하베르츠에게 리턴.

하베르츠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토마스 파티를 제친 뒤, 수비 다리 사이로 툭.

"큽!"

견고했던 아틀레티코의 수비가 순간 흔들린다.

아틀레티코의 수비가 양쪽으로 크게 벌어졌고, 그 사이로 마크 우트가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파고든다. 하베르츠도 나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파고든다.

"제기랄!"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의 시선이 일순 분산된다.

지금이다.

스피드를 단 한순간 터뜨려야 할 때.

모든 근육을 쥐어 짜,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속도를 터뜨려야 할 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뛰어야 한다.

오로지 앞만 보고 직선으로 쭉 내달렸다.

내 눈앞에 가장 먼저 확대되어 보인 상대는 호세 히메네스.

차세대 월드클래스 수비수이며 대인마크, 태클, 제공권, 지능적인 수비까지. 거의 만능형에 가까운 수비수다.

하나 수비는 늘 상대적인 법이다.

툭, 탁!

"흐읍!"

히메네스가 헛숨을 들이킨다.

순식간에 벗겨 냈다. 왼발바닥으로 공을 안쪽으로 긁어내며 히메네스의 중심을 앞으로 기울게 하고, 오른 발로 공을 다리 사이로 쭉 빼낸다.

"Wuuuuaaaaaaaaaaaa!"

들리는 건 함성.

보이는 건 눈앞의 상대.

빠르게 고개를 돌려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한다.

'지금은 한 번 더 치고.'

이제 앞에 남은 건 페널티 박스의 새하얀 선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왼쪽에서 풀백 키에런 트린피어의 태클이 들어온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는 순간.

이미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사실 이걸 뭐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본능? 반사 신경?

어쨌거나 내 몸은 내 이성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때가 많다.

그것이 상대 수비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미친 새끼!"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속도를 줄이고, 공을 발바닥으로 긁어내며 백 스텝.

"Wuuuuuuuuaaaaaaaa!"

그 순간, 경기장의 모든 긴장감과 시선이 나에게 쏠려지는 게 느껴진다.

이것이 부담되는가?

'전혀!'

아니, 짜릿하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이.

살 떨리는 팽팽한 긴장감이 내 피부를 미친 듯이 찌를 때.

팽팽한 긴장감에는 나를 향한 온갖 악의와 적의가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금 내 플레이를 한층 더 예민하게, 날카로운 칼날처럼 벼려 준다.

박스엔 수비 셋, 측면 미드필더 하나.

우리 쪽 공격수도 풀리시치와 오도이, 우트까지 넷.

판단은 짧고 정확하게,

행동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크게 한 걸음 툭 치고 전진하는 순간, 양쪽에서 들어오는 태클.

공을 쭉 빼내며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며 대각선으로 사이드 스텝을 밟아 빠져나간다.

"······!"

고스트 스텝을 쉽게 여기고 따라붙다가 놓치는 건 흔한 일. 스피드에 자신 있는 풀백 헤난 로디가 달라붙는 순간.

몸을 빠르게 한 바퀴 돌면서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집중해! 집중!"

그 움직임에 오도이를 견제하던 코케가 이쪽으로 달라붙는다.

어느새 박스 안.

둘러싸인 수비수 사이.

팽팽한 긴장감과 쏟아지는 적의 속에서.

기회를 엿보는 건 단 한 순간이다.

모든 수비가 각자의 위치에서 흔들릴 때 생기는, 아주 조그마한 틈.

견고하다고 한들, 성벽에도 분명한 틈이 있기 마련이고.

나는 그 틈을 봤다.

판단은 짧고 정확하게,

행동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반박자 빠르게 밀어 넣는 슈팅.

뻐어어엉!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는 건 타이밍이다.

모두 각자의 리듬이 있고, 흐름이 있으며 타이밍이 있다.

그걸 내 것으로 만든다.

오로지 내 움직임만 쫓게 만들어 내 리듬을 따라 하게 한다. 그리고 그 리듬을, 순간적으로 내 마음대로 바꾼다.

그것이 타이밍을 빼앗는 슈팅이다.

"Yeaaaaaaaaaaaaaaaaaaa!"

"The Bluuuues!"

"Jeff Goal! Jeff Goal! Jeff Goal!"

허망한 표정으로 골대 그물에 걸린 공을 바라보는 골키퍼, 얀 오블락.

"제프!"

"좋았어! 아주 좋은 골이야!"

"이 자식, 왜 입꼬리만 쓱 올라가?"

"기분 좋으면 웃으라고!"

글쎄.

아직 크게 웃긴 좀 그렇지.

저 골키퍼의 표정을 최소 두 번은 더 봐야 하지 않겠어?

< 175. 밸런스 패치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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