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72화 (172/258)

< 172. 주인공이 힘을 안 숨김 (2) >

<이미 UEFA에서 실시했던 경기 직후 도핑 테스트 결과에 아무런 혐의점이 없습니다. 추후 악의적인 날조 기사에 관해서는 법적인 조처를 할 것이며······ 제퍼슨 리에게 씌워진 억울한 약물 파동에 관하여 모든 자료를 발표하며······ 중략······ 이른 시일 내로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공식 도핑 테스트 영상을 촬영하여 발표할 예정입니다.>

반격은 순식간이었다.

첼시 구단을 비롯해 북미 대륙의 언론을 동원한 에이전시에서 순식간에 반박 자료를 내놓았다.

제퍼슨의 그간 메디컬 테스트 내용은 도핑 의혹을 불식시키기엔 충분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기사들은 도핑 의혹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하나하나 짚었고, 맨 처음 NFL 선수의 약물파동 기사를 가지고 와 불을 지피던 로베르토는 순식간에 '강력 대응' 당했다.

"고소의 나라 미국이란 말이지."

사생활 침해나 사진 도용만으로 수백억 원의 합의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게 미국 사회다.

에이전시는 회사 소속 법무팀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법무팀을 총동원했다.

제퍼슨의 도핑 의혹을 실었던 기사를 모두 조사해 고소를 시도했다.

"제기랄! 그냥 그 이탈리아인 기사 하나 참고해서 쓴 건데 뭔 고소야?"

"우리 회사는 자네를 지켜 줄 수 없네. 자네가 쓴 기사이니, 자네가 책임져."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맙소사. 기사 하나 잘못 썼다고 수십억 원대의 고소라고? 이 미친놈들이! 고소로 장사하려는 거야?"

"기자들을 적으로 돌려도 멀쩡할 거로 생각해?"

그것뿐만이 아니다.

특히 늘 자극적인 논조로 여러 피해자를 양성해 대던 로베르토는 그야말로 수천억 원에 이르는 고소에 직면했다.

그의 기사로 피해를 본 피해자를 모두 모은 것이다.

"제 기사에 악의적인 날조는 없었습니다! 단순한 의혹 제기일 뿐입니다. 기자가 그런 것도 못 합니까?"

"그거야 법정에서 판단할 문제죠. 당당하면 법원에서 억울함을 주장하세요."

그런 과정은 순탄하다 못해 전격적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 자료들이 연이어 터지고,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스피커'들을 순식간에 삼류 찌라시로 몰아 매장해 버리면서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킨 것이다.

이제 함부로 도핑 의혹을 꺼내는 언론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도핑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건 잠깐입니다. 언제든 다시 그런 의혹이 수면 위로 튀어나올 수도 있어요. 안티팬들은 아닌 걸 알면서도 약물 얘기를 하겠죠."

에이전시와 구단의 대응이 워낙 날이 서 있으니까 모두 잠잠해진 것이다.

추후에 시간이 흐르고 이 사건이 잊힐 때쯤.

제퍼슨이 이전에 보여 준 '허슬 플레이'와 같은 퍼포먼스를 몇 번 더 보여 준다면?

또 어디선가 도핑 의혹이 불거질 것이고, 도핑이 아님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저 자식은 약물이다.' 라고 그저 깎아내리기 바쁠 것이다.

하여 첼시는 구단에서 운영하는 첼시TV를 통해 테스트를 모두 생중계했다.

런던 내 저명한 의사들이 한데 모여서 도핑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결과.

"스포츠 선수에게 금지된 약물 및 스테로이드 계열의 그 어떠한 것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를 매수할 수는 없었다.

우선 저명한 명성을 가진 의사가 한두 명도 아니고, 두어 개의 의료단체가 동시에 진행한 결과를 서로 교차 검증했으니까.

ㄴ이럴 줄 알았어. 제프, 그 자식은 약물 따위에 의지하는 약쟁이가 아니라니까.

ㄴ자. 이제 프리미어리그뿐 아니라 유럽 축구 선수들은 다 해 보자고. 과연 떳떳한 놈들만 있을까?

ㄴ빌어먹을! 저 괴물 같은 신체가 약물 하나 안 쓴 거라고? 맙소사!

ㄴ내추럴 그 자체라니.

ㄴ저게 가능한 거야? 저 자식 조상 중에는 늑대인간이 있는 게 분명해.

ㄴ오, 친구. 내가 흥미로운 한국의 신화를 알게 됐어. 한국인들의 조상은 바로 곰이라고 하더라고. :D

ㄴ맙소사.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졌군.

ㄴ제프의 반쪽은 한국인이잖아?

ㄴ곰의 후손이라면 저 파워가 이해가 되네.

ㄴLOL

만일 여기까지만 생중계가 진행됐으면, 그래도 '혹시나'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첼시 구단과 에이전시는 다음 단계도 당연히 준비했다.

"현재 조금의 금지약물도 검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상황에서 제퍼슨 리는 본인의 신체 한계를 여기서 테스트할 예정입니다."

"이 테스트는 테크닉이 아닌, 오로지 피지컬 테스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건 벤치프레스였다.

225파운드(102kg) 벤치프레스.

제퍼슨 리는 무려 27회를 성공했다. 역대 NFL 최고 기록이 51회고, 현재 NFL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선수들 대부분이 20~35회를 기록하는 것에 비교하면 제퍼슨의 수준은 최상위였다.

그리고 축구 선수만 바라본 일반적인 축구팬들의 시선에서는······

ㄴ??????

ㄴ몇 회라고?

ㄴ27번? 225파운드를? Oh, Fuck!

ㄴ어, 내가 운동 안 해 봐서 그런데 저게 어려운 거야? 친구들?

ㄴ저 정도는 못 해도 어느 정도 하는 사람들 피트니스 센터에 한두 명은 있음.

ㄴ개소리하지 마. 그놈들은 다 약 빨고 하는 거니까.

ㄴOMG!

그리고 이어진 것은 100m 전력질주와 40야드(36M) 전력질주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경악성이 방송을 지켜보는 채팅창에서가 아니라, 피지컬 코치들과 의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미친!"

"측정이 잘못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핸드 측정이 아니고 전자식이라고! 컴퓨터가 측정하는데 오류 날 수가 없어!"

"맙소사!"

40야드(36m) 기록 4.46초.

그리고 100m 전력 질주 10.48초

ㄴ맙소사.

ㄴ저 녀석 아시아계 혼혈 맞지?

ㄴ아냐. 조상 중에 분명 흑인 유전자도 섞여 있을 거야.

ㄴ아니, 단거리 선수도 아닌 축구 선수가 저 기록이라는 게 말이 돼?

ㄴ이로써 인류학자들의 이론이 완벽히 증명됐어! 모든 인류의 시작은 흑인이라고!

이어지는 건 경악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제퍼슨은 이후에도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하나같이 괴물과도 같은 측정기록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지켜보던 의료팀과 피지컬 코치들은 자신들이 아는 일반적인 상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흐흐! 아주 좋아! 이거지! 이거야말로 스포츠 선수지!"

물론 그 광경을 지켜보러 온 트레이닝 팀의 아놀드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뿐만 아니라 율리아겐도 은근히 미소 짓고 있었다.

"1년 전보다 기록이 더 잘 나오고 있죠?"

"맞아요. 다 성장했어요."

"1년 만에 이렇게 발달할 수 있다는 게 믿기 어렵네요."

"괴물 같은 신체니까요, 디 파코."

"그것도 있지만, 무언가 제프가 지금 있는 힘을 다 드러내는 것 같지 않아요?"

디 파코의 말에 율리아겐이 고개를 돌려 제퍼슨을 바라봤다.

확실히 제퍼슨의 얼굴엔 평소에 보기 힘든 지독한 독기가 어려 있었다.

제퍼슨의 피지컬은 훌륭하다 못해 경이롭다. 타고난 신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과정 중에는 제퍼슨의 노력이 상당했다.

율리아겐은 그간 보아 온 수많은 사람 중에, 제퍼슨처럼 지독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맹세컨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온몸의 힘을 모두 쥐어짜 내는 것처럼, 언뜻 보기엔 자신의 신체를 혹사하는 듯했다.

스무 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지독했다. 흡사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이렇게 물었다.

이미 타고난 신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만 해도 완벽에 가까울 텐데 왜 이리 운동에만 집착하느냐고.

그때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었다.

'원래 내 것이 아니니까요. 이게 꿈일지도 모르죠. 남의 것이었으니까, 그걸 망칠 수는 없어요. 더 잘 만들어야죠. 더 완벽해져야죠. 더 지독해져야죠.'

그렇게 말하던 제퍼슨의 입가에 떠오른 건 처연한 미소였다.

제퍼슨의 과거를 알 수 없던 율리아겐은 그저 제퍼슨의 지독한 노력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겠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제퍼슨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본인의 노력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 이에게 도핑 의혹이라니?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제법 속이 상했으리라.

때문일까.

제퍼슨은 마음껏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신의 피지컬'을.

"이 쇼의 주인공은 제퍼슨이죠. 그리고 제퍼슨은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고 있어요. 다들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 말고 보고, 인정하고, 닥치라는 것이죠."

"주인공이 힘을 숨기지 않는다라. 그거 좀 무섭네요."

"우리가 그 힘에 약간의 조력이 된 것도 기쁜 일이죠."

트레이닝 팀이 그렇게 흐뭇하게 웃는 사이.

채팅창은 경악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ㄴWhat the Fuck!

ㄴJeff is Fuck!

ㄴ서전트 기록이 몇이라고? 109Cm?

ㄴ오, 세상에. 저거 측정 방식이 제대로 된 거 맞아?

ㄴ정확해. 서전트 측정은 저런 방식으로 한다고. 수직 점프해서 봉을 밀어내는 거.

ㄴHey, NBA 선수들 기록은 어떻게 돼?

ㄴ그거 알아? NBA 역사상 109cm 이상 기록한 선수는 역대 딱 열 명이란 사실?

ㄴ제퍼슨이 그중 하나라고?

ㄴ믿기지 않아.

ㄴ나도 마찬가지야, 친구.

ㄴ자 그럼 결론은 뭐지?

ㄴ제프의 몸엔 흑인의 유전자와 곰의 후손인 한국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ㄴ그것의 결론은?

ㄴ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 이건가?

ㄴ인류학자들이 옳았어.

ㄴ제프에게 노벨 뭐시기를 줘!

***

결론부터 말하자면, 뭐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풀렸다.

도핑 의혹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쓰던 로베르토를 비롯한 몇몇 기자들은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그 부분에 있어서 에이전시 측에게 일임하고 애써 기억에서 밀어냈다.

알아서 잘하겠지.

고소의 나라, 미국의 법무인들 아닌가.

뭐 그들에게서 엄청난 합의금을 뜯어내겠다, 이런 생각보단.

그냥 날 건들지 못하게 제대로 혼쭐내주는 것이 목표였다.

어쨌건 매우 바빴다.

경기 훈련이라도 해야 할 시간에 여기저기 심력을 쏟느라 말이다.

덕택에 이어진 두 번의 리그 경기는 1승 1무로 끝났다.

문제는 2위 리버풀이 유로파 16강에서 탈락하며, 현재 남은 대회가 오로지 프리미어리그뿐이란 사실.

그런 이유로 리버풀은 리그에 전력투구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전승에 가까운 기록으로 우리를 승점 3점 차로 바짝 쫓기 시작했다.

8점 차까지 벌어졌던 점수가, 우리가 FA컵과 챔피언스리그에 신경 쓰는 사이 오로지 리그에만 집중하는 리버풀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는 상황.

"트레블! 개 같은 트레블! 빌어먹을 일정!"

감독이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건 선수단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다.

어찌 됐건.

우리는 이제 모든 리그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아니 남은 모든 대회에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리그에선 맨유와 맨시티, 그리고 리버풀과의 맞대결이 남아있다는 점.

그 모든 경기에서 다 이겨야 한다.

상대적으로 리버풀은 앞으로 중하위권 팀과의 일정만이 남았으니까.

"이대로 가면 37라운드가 결승전이야."

37라운드는 리버풀전이다.

그 경기의 승자가 아마 우승을 차지하리라.

물론 그 전에 어느 한 팀이라도 패배를 겪어 승점을 얻지 못한다면, 그전에도 결정될 수도 있으나.

양 팀의 팬들은 알고 있었다.

그전까지 어느 팀도 쉬이 패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 37라운드에서 결판이 나리라는 판정.

"FA컵 결승전과 리그,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 남았다! 제군들! 모두 끝까지 집중하자고!"

감독의 외침 아래 다시 의욕을 다지는 사이.

우리에게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 다가왔다.

상대는.

-이봐, 내 친구. 드디어 우리가 적으로 만났군!

산티아고 차베즈와의 맞대결.

AT 마드리드였다.

< 172. 주인공이 힘을 안 숨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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