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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69화 (169/258)

< 169. You're Fired! (2) >

감독은 경기 전 우리에게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트로피 세 개를 따내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지. 오늘 여기서 하나를 놓치면, 기자들은 날 물어뜯을 거야."

맞다.

감독은 시즌 초에 트레블이 목표라고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린 적이 있었다.

꽤 쇼킹한 광경이었다.

"그때 감독이 미친 줄 알았어. 별안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길래."

나도 동감이다.

기자회견장에서 갑자기 기자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일순 당황해하는 기자들을 보며 능글스럽게 웃더니, 이내 양옆의 손가락 두 개를 더 올렸다.

처음에 욕하는 줄 알았다.

어쨌든 그렇게 손가락 세 개를 피면서 트레블이 목표라 했으니.

감독과 기자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유명하다. 기자들이 물어뜯기 좋게 빌미를 제공해 준다.

몇몇 선수는 굳이 왜 그러느냐고 싶지만,

몇몇은 직감하고 있었다.

일부러 감독 본인이 '욕받이'가 되기 위해서 그런다는 사실을.

"난 욕먹기 싫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반드시 오늘 이겨줬으면 좋겠군! 제군들!"

경기에 지거나, 트로피에 실패하면 그날 경기에서 최악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비난이 향한다.

한데 감독은 일찍부터 기자들과 일부러 신경전을 펼치면서, 막상 패배하면 기자들이 자신을 조롱하게끔 세심하게 마련한 장치인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이번 시즌 패배한 몇 경기와 리그컵 탈락 때, 선수에게 향한 비난은 얼마 없었다.

기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난 얼굴로 연신 우리 감독을 조롱하고 비난하기 바빴다.

덕택에 선수들은 비난과 조롱에서 자유로웠다.

그것이 선수들이 부담 없이 경기를 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좋은 감독이지.'

감독은 전술적으로 천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스트라이커 활용방법에 있어서 괴짜를 넘어 가끔 천재적이다 싶을 때도 있긴 하다.

그러나 명백히 필마르크의 스타일은 덕장이다.

아버지 같은 느낌보단, 내 동생들을 아끼고 지켜주는 큰형님 같은 스타일이랄까.

이제 선수들도 다 알았다.

필마르크가 일부러 기자들과 싸운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감독에 대한 지지는 높아졌다. 우선 팀의 핵심인 내가 늘 감독의 말에 철저하게 따라간다는 점이 주효했고, 선수들도 감독을 신뢰했다.

이것이 우리 팀이 잘 나가는 이유 중 하나다.

"감독이 기자 놈들한테 조롱당하는 건 볼 수 없지."

"축구도 볼 줄 모르는 놈이 기사만 써 댄단 말이야."

"그딴 놈들에게 욕먹을 감독이 아니야."

"우리가 완벽하게 이겨야 해."

"트레블을 다 따내야지. 그리고 남은 경기에서 모두 이겨야 해!"

한마디로 감독이 기자들에게 조롱당하는 걸 보기 싫단 생각이 선수단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우리 감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뛸수록, 상대팀은 감독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솔샤르 OUT! OUT!"

그러니까 내가 선제골을 넣고.

맨유 팬들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

축구에 있어 열정은 필수요소다.

그리고 열정을 잃은 팀은,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지금의 맨유가 그럴지도 모른다.

첼시 선수들은 필마르크 감독이 단지 언론에 물어뜯기는 게 싫어 열정을 갖고 뛰었다.

그러나 맨유 선수들은, 솔샤르가 명백히 경질 위기에 놓였음에도 열정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았다.

"반드시!"

맨유의 괴물, 음투쿠지는 자신을 맨유로 이끌어 준 솔샤르를 좋아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하필 상대가 매번 패배를 안겨 줬던 제퍼슨 리였단 사실이다.

빠악!

"좋았어!"

캉테 대신 출전한 올리버가 중앙에서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다소 한 박자 늦은 패스.

공은 힘을 잃고 음투쿠지가 걷어 내려는 찰나.

제퍼슨이 벼락같이 득달해 어깨싸움을 걸어왔다.

"오!"

"What the fuck!"

꽤 볼만한 광경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제퍼슨과 피지컬 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선수가 있다면, 딱 둘이다. 리버풀 반 다이크와 맨유의 음투쿠지.

그러나 제퍼슨은 단순히 피지컬만 좋은 게 아니다.

투욱!

음투쿠지의 발끝이 도달하기 전에.

반박자 빠르게 제퍼슨의 발이 움직였다.

공의 밑을 살짝 차올리면서.

몸으로 음투쿠지의 돌진을 버텨 내고, 오히려 강하게 달려오는 힘을 역이용해 부드럽게 터닝.

그야말로 눈이 휙 돌아갈만한 완벽한 테크닉.

"Blues!"

음투쿠지를 단 하나의 동작으로 제쳐 낸 제퍼슨의 화려한 무브먼트에, 첼시 관중들이 벌떡 일어났다.

"가서 죽여 버려!"

음투쿠지는 생각했다.

여기서 끝내 제퍼슨을 놓친다면,

저 미친 괴물은 쐐기골을 박아 넣을 거라고.

하면 그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목젖이 튀어나올 정도로 뛰어서 제퍼슨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뛰었다.

타앗!

흡사 코뿔소가 아프리카 초원을 내달리는 것처럼, 거칠 것 없는 속도는 제퍼슨의 드리블조차 위협했다.

"Gooooooo!"

"Kill! Kill! Kill!"

결론을 말하면, 음투쿠지의 압박은 절반만 통했다.

제퍼슨이 드리블을 포기하고 오른쪽 대각선으로 길게 패스했으니까.

[제퍼슨 리! 드리블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길게 패스를 보냅니다!]

[음투쿠지의 처절한 압박이 통했습니다!]

그러나 절반만 통했다는 사실은,

절반은 실패라는 얘기였다.

제퍼슨은 그 순간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펼쳤다.

대각선으로 내지른 패스는 단숨에 수비진을 부쉈고, 측면을 내달리던 오도이의 발끝에 도달했다.

"Blues!"

측면이 순식간에 비어 버린 것이다.

축구에 있어 가장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인 득점 루트.

완벽한 타겟터가 있다면 가능한 그 플레이.

높은 크로스, 그리고 높은 타점의 헤더.

'맙소사!'

음투쿠지는 다음 플레이를 뒤늦게 깨달았고,

무작정 제퍼슨과 몸을 부딪치며 뛰었다.

투욱!

길게 올라오는 궤적의 크로스.

음투쿠지는 자신 있었다. 자신은 러닝 점프였고, 제퍼슨은 스탠딩 점프였으니까.

제아무리 제퍼슨이 타점이 높다 한들, 타고난 유연성과 탄력으로 음투쿠지도 그에 비견됐다.

하물며 러닝 점프인데, 헤더를 따내지는 못하더라도 방해할 수 있으리라.

하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첼시에는 제퍼슨을 도와줄 선수야 차고 넘쳤으니까.

[션 올리버가 공을 향해 뜁니다!]

[공중볼 경합! 제퍼슨과 음투쿠지, 그리고 올리버가 동시에 뛰었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션 올리버가 같이 뛰었다.

공 하나를 두고 선수 세 명이 뛰는 모양새.

그러나 음투쿠지는 올리버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점프력은 한심했으니까. 다만 목표는 수정했다. 헤더를 따내는 게 아니라 제퍼슨의 헤더를 방해하는 것으로.

하나 그것 역시 올리버를 너무나 얕본 것이었다.

"끄억!"

순간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음투쿠지는 부릅떠진 눈으로 밑을 내려다 봤다.

같이 뛴 올리버가 어느새 손을 돌려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으니까.

순간의 통증에 고통을 내비친 사이.

제퍼슨은 여유롭게 헤더에 성공했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가.

철럭-!

[제퍼슨이 쐐기골을 집어넣습니다! 맨유 관중들이 솔샤르 감독의 아웃을 외치며 분노를 토해 냅니다! 제퍼슨 리! FA컵 결승을 향한 쐐기골입니다!]

맨유가 무너지고 있음이었다.

***

맨유는 분명 세계 최고의 클럽이었다.

그러나 그 클럽이 휘청이는 사실 역시 명백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솔직히 말해 나도 잘 모르겠다.

선수진의 약화?

글쎄.

꼭 그렇지도 않다. 분명 재능 있는 선수도 많다. 여기 나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뛰는 음투쿠지도, 회귀 전 역사대로라면 훗날 세계 최고 중 하나가 될 괴물이었으니까.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

선수들끼리 융화가 안 되거나, 조합이 안 맞거나, 감독의 지휘력이 부족하거나.

어쩔 수 없다.

축구는 때로는 너무나 잔인한 법이다.

오늘 이 경기가, 솔샤르 감독의 마지막 경기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제프!"

후반전, 오도이와 교체한 우트가 활발하게 뛰었다.

공을 받고, 내주고, 다시 뛴다.

수비진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한다.

독일의 솔샤르라고 불리는 것처럼.

그는 오늘 솔샤르의 선수 시절 플레이를 그대로 보여 줬다.

바로 표정이 잔뜩 구겨진 솔샤르 앞에서 말이다.

'저 녀석도 잔인해.'

이상한 놈이라 그런지, 잔인하다.

어쨌거나 하베르츠는 오늘도 엄청난 패스를 보여 줬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일순 경기장이 울릴 정도로, 절묘한 패스.

선수 세 명 사이를 가르면서 오른쪽으로 절묘하게 휘어지는 아웃프런트 패스는, 수비 셋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잔디를 가르면서 지르는 패스가 아니라, 바닥을 살짝 치면서 굴절된 패스는 정말 절묘한 위치로 우트에게 떨어졌다.

'의도한 거야?'

그랬다면 이 자식은 미친놈이다.

하베르츠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맞네.

의도한 거다. 저 굴절까지.

하면 나도 그 생각에 놀아 줘야지.

우트가 더 날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음투쿠지는 우트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내가 더 위협적이라 판단했는지 내 쪽으로 온다.

좋은 선택이다.

우트는 드리블을 시도하다 막혔고, 나에게 공이 돌아왔으니까.

"안 놓쳐!"

짧은 영어로 소리치는 음투쿠지는 험악한 얼굴로 어깨를 밀어 넣었다.

묵직한 힘이다.

나도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이 흔들릴 정도로.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밀고 나간다면, 다른 선수까지 밀착할 터.

그러면 기회는 없다.

차라리 지금 버티고, 무리더라도 때려야 한다.

뻐어엉!

그런데 때로는 운이 따를 때가 있다.

"Yeaaaaaaaaaaaaaaaaa!"

"마르크- 우트!"

공을 차는 선수도 확신하지 못하는 비교적 이상한 궤적의 슈팅이.

도저히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튀어나온 우트의 허벅지를 맞고.

굴절되어서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운이 아니고 뭐겠는가?

"아니지! 내가 엄청난 위치선정으로 골을 넣은 거라고!"

우트가 미친 듯이 내지르며 달렸다.

허.

이건 솔샤르가 아니라 인자기 수준인데?

***

[첼시 3대 1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격파! 제퍼슨 리 2골 1도움, 마크 우트 1골!]

[OFFICIA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솔샤르 감독 성적 부진으로 경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코치 임시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 치를 예정.]

[제퍼슨 리의 해고 통지, 솔샤르 감독을 수렁으로 빠뜨리다.]

[첼시, 맨유를 꺾고 FA컵 결승 진출 확정!]

[웸블리로 향하는 파란 투사들, 또 한번 트로피를 쟁취해낼까?]

[유벤투스, 인테르 전에서 1대 3 패배. 리그 3위로 추락. 경질 가능성 대두.]

[유벤투스 운영진은,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사리 감독이 보여 줄 경기력을 보고 신임 여부 판단할 예정]

[제퍼슨 리, 2경기 연속 감독에게 해고 통지를 날릴까?]

[연쇄 감독 살인마, '제이슨 리']

***

축구는 꽤 잔인하다.

솔샤르 감독이 쓸쓸하게 올드 트래포드에서 퇴장했다.

어쩔 수 없다.

프로축구는 결국 성적과 결과를 내야 하니까.

솔샤르 감독의 마지막을 내가 장식한 건, 뭐.

살짝 미안하긴 한데,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으니까. 상대를 이겨야 하는 스포츠에서 상대에게 동정심을 갖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또 있을까.

때문에, 다음에 다가온 유벤투스전에서.

나는 또 한 번 잔인해져야 할지도 몰랐다.

애당초 유벤투스와 호날두를 좋아하진 않지만,

사리 감독도 마찬가지다.

굳이 내가 싫어할 이유는 없다만 그렇다고 썩 좋아하는 감독은 아니다.

그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것도, 뭐 미안함을 느낄 것 같진 않다.

"그냥 죽여 버려. 축구에서 동정은 값비싼 사치야."

감독은 내게 말했고, 나도 동의했다.

누구보다 잔인해져야 하고, 이기적이어야지.

그래야 우승컵을 얻을 수 있다.

흠.

정말로 잔인해져야지.

진짜로.

< 169. You're Fired!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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