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You're Fired! (1) >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첼시 5대 0으로 유벤투스 완파!]
[제퍼슨 리 4골 1도움, 평점 10점으로 MOM 선정]
[디에고 마라도나의 재림, 8명을 제치고 선제골을 넣은 제퍼슨 리.]
[유벤투스 감독, '실망스러운 경기력. 팬들에게 죄송하다.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역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첼시 감독, '유벤투스에겐 호날두가 있었고, 우리에겐 제퍼슨 리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이긴 이유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인터뷰 거절 후 곧바로 홀로 토리노행 비행기에 올라.]
[유벤투스 선수단 불화? 익명의 선수, '호날두와 키엘리니가 라커룸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웠다.']
"어째서 마지막 세레머니를 한 것이죠?"
믹스트 존에 들어가자마자 훅 들어온 인터뷰는 바로 그것이었다.
세레머니라.
"어떤 세레머니를 말한 거죠? 오늘 네 번이나 해서 잘 모르겠네요."
기자들이 일순 피식 웃었다.
나에게 집중된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시선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저들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본다.
어쩌면 나는 기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선수일지도 모른다. 늘 인터뷰 때마다 화제가 될 만한 말 한마디를 툭 던져 주니까.
"네 번째 골을 터뜨리고 호날두의 시그니처 같은 세레머니를 따라 했죠. 어째서인가요? 호날두의 팬인 건가요?"
아하, 그거.
그냥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세레머니 중 하나니까.
"호날두는 대단한 선수죠. 10년 동안 메시와 세계 축구계를 양분했으니까요. 존중할 선수입니다. 그에겐 수많은 팬이 있고, 그의 플레이를 좋아하고, 그의 세리머니를 좋아하는 팬들이 TV밖에도 있죠."
내가 호의적으로 평하자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경기 내내, 내가 호날두와 신경전을 펼치고 일부러 몸싸움을 거는 모습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나와 호날두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호날두를 대뜸 칭찬하니 뭔가 이상하겠지.
근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그래서 했습니다. 오늘 호날두가 영 별로였거든요. 그 친구가 골문 밖으로 난사한 슈팅이 두 자릿수가 넘죠? 수많은 팬의 그의 세레머니를 보고 싶을 텐데, 못 보여 줄 거 같아서, 그냥 제가 대신 보여 준 겁니다. 호날두 팬들을 위해서 말이죠."
***
어쨌거나.
우리 선수들은 모두 좋아했다.
5대 0이란 스코어는 쉽게 나올 스코어도 아니고, 2차전에서 쉽게 뒤집힐 스코어도 아니다.
무엇보다 저들이 원정에서 단 하나의 득점도 올리지 못했다는 게, 우리에겐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다.
"솔직히 별거 아니던데? 차라리 연습경기서 제퍼슨의 상대팀으로 뛰는 게 더 힘들어."
시셀도가 웃으며 그런 말을 내뱉을 정도니까.
근래 우리 수비진이 정말 열심히 해 주고 있다.
뤼디거는 거의 매 경기 출장하면서도, 체력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한때 부상 악령에 시달리던 모습은 전혀 상상도 못 할 정도다. 시셀도는 이제, 점점 내가 알던 회귀 전의 '철조망' 시셀도가 되어 가고 있다.
월드클래스의 범주에 올라서고 있단 얘기다.
감독은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었는지, 휴가를 줬다.
"좋아, 친구들. 우리 딱 하루만 쉬고, 내일부터 훈련하자고. 다음엔 FA컵 4강전이 있으니깐 말이야!"
4일 후에는 무려 FA컵 4강전, 맨유와 경기가 남았다.
촉박한 일정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하루 휴가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휴가라고 해 봤자, 어디 멀리 갈 수는 없었다. 가볍게 하루 쉬면서 몸을 다스려야지.
런던의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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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는 무료야?"
"억울하면 너도 영웅이 되던가."
"아니, 경기에 나가야 영웅이 되지."
올리버가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끙.
워낙 외모가 되는 놈이라 그런지, 처연한 표정을 지으니 절로 동정심이 생기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주전으로 뛰고 싶으면 캉테가 못하는 걸 하는 걸 어때?"
"캉테가 못 하는 게 있어?"
사실 캉테는 사기적인 친구다.
커팅 능력뿐만 아니라 드리블, 패스, 몸싸움에서도 그에 필적할 선수는 얼마 없다.
캉테와 포지션 경쟁자인 올리버로서는 이기기 힘든 상대.
그러나 올리버도 분명 재능이 있다.
한때 벵거 감독이 아스날 유스로 직접 데리고 간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
"비교 대상이 너무 강한 것뿐이야. 너도 지금 당장 중상위권 팀 어딜가도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그렇지만 여길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그럼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봐야지."
"방법이라."
"몸을 더 키워."
"나 지금도 엄청나게 커졌어."
"적어도 나랑 부딪쳐서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
올리버는 잠깐 침묵하고는 날 바라봤다. 진심이냐는 듯한 눈빛. 내가 표정 변화 없이 마주 보자, 그는 '허!'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맞다.
적어도 나랑 부딪쳐서 넘어지지 않을 정도라면, 필드에서 어떤 몸싸움에서도 중심을 잡을 기본이 된다.
"그리고 상대를 꼬집는 연습을 해."
"뭐?"
"은근슬쩍 정강이를 까거나."
"어?"
"옆구리를 찌르는 기술도 가르쳐 주지."
"반칙왕이 되라는 거야?"
"이 정도는 기본이야."
"흐음."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반칙이 아니라, 승리를 위해 이 정도 반칙은 해야 한다고 봐야 해. 물론 그에 대한 보복을 당하는 건 감당해야겠지만."
축구는 늘 깨끗하고 공정한 스포츠가 아니다.
일반 관중이 보지 않는 위치에서, 선수는 거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패륜에 가까운 욕설뿐 아니라 비열한 반칙도 서슴없이 주고받는다. 상대를 대놓고 골로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공의 소유권을 쟁탈하기 위한 반칙.
이 정도는 필드에서 다 수용된다.
물론 그에 대한 보복은 본인이 감당해야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면, 올리버는 캉테처럼 너무 깨끗하게 태클로만 커팅하려는 욕심이 있다.
본인이 캉테가 아니란 걸 자각했으면, 차라리 '더러운 파이터' 같은 느낌으로 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뭐, 팀에 그런 선수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너의 조언이라면······. 근데 카드를 받지 않을까?"
"안 걸리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지."
"누구한테?"
누구긴 누구야.
"내일 훈련장에 두 시간만 일찍 나와. 제대로 가르쳐 주지."
"······."
***
[반갑습니다. 데일리 풋볼의 미첼 헨더슨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잭 해럴드 씨.]
[오랜만입니다. 방송국에서 불러준 지 정말 오랜만이네요.]
[하하하! 그러니까 경기 리뷰하면서 욕설을 너무 했던 거 아닙니까.]
[흠흠. 뭐, 축구 볼 때 욕도 할 수 있는 거죠.]
[네, 맞습니다. 헤럴드 씨. 오늘도 한 주 동안 있었던 경기들에 관해 얘기할 건데요. 우선 챔피언스리그를 볼까요?]
[우선 바이에른 뮌헨이 맨시티를 3대 1로 잡았죠. 1대 0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80분부터 10분 동안 해트트릭을 몰아친 레반도프스키는 과연 대단하더군요.]
[과르디올라가 옛날 팀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었죠.]
[물론 과르디올라의 옛날 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는, 파리 생제르맹을 4대 3으로 잡았습니다. 단지 캄프 누에서 원정 득점을 무려 3점이나 내줬다는 것이 불안요소지만요.]
[이런! 바르셀로나로서는 2차전이 엄청 중요하겠네요.]
[사실 모든 팀이 그렇죠. 뮌헨도 2점 차이지만,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바르셀로나는 1점 차이니까 언제든 뒤집힐 수도 있고요. AT 마드리드와 나폴리는 1대 1로 1차전이 끝났습니다. 2차전에서 판가름해야죠.]
[자, 그에 반해 헤럴드 씨가 좋아할 소식의 경기도 있었죠?]
[제가요? 하하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어떤 축구클럽의 팬도 아닙니다. 축구 칼럼가로서 중립을 지키거든요.]
[이런, 정정하겠습니다. 하면 제퍼슨 리의 소식입니다.]
[제퍼슨 리는 유벤투스와의 1차전에서 무려 4골 1도움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죠. 그 막강한 유벤투스를 5대 0으로 박살냈으니까요!]
[특히 선제골 상황을 보세요. 흡사 마라도나의 재림이라고 부르는 장면이죠. 이런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현 시점, 제퍼슨 리는 세계 최고 선수입니다. 부정할 수 없어요.]
[세계 최고라! 제퍼슨이 이제 스무 살인걸 감안하면, 놀라운 평가가 아닌가 싶은데요.]
[흐음. 글쎄요. 현재 제퍼슨이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죠. 본인이 한 시즌 80골을 넣겠다고 했던 걸 기억하시나요? 제퍼슨은 그 기록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4강 진출이 유력하네요. 그 사이에 끼인 FA컵 4강전인 맨유전이 다가와 있습니다만, 본래대로라면 2차전 준비로 인해 로테이션을 돌렸겠지만······.]
[맨유로서는 슬픈 소식입니다. 챔스 2차전은 로테이션으로 갈 확률이 높거든요. FA컵은 전력을 다하고요. 그러면 현재 리그 9위, 맨유로서는 아주 크나큰 도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공공연히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이젠 솔샤르 감독의 마지막 기회라고요.]
[제퍼슨 리가, 한 사람의 직장을 잃게 할지, 아주 흥미로운 경기가 되겠군요.]
[축구는 때로는 슬프죠, 제퍼슨 리는 악덕 기업가처럼 솔샤르에게 해고통지를 할 것입니다. FA컵 4강전에서 말이죠.]
***
FA컵은 사실 엄청난 명성을 지닌 대회다.
아마추어와 프로팀이 모두 참여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축구 대회'였으니까.
원래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챔피언스리그 1차전, 2차전 사이에 FA컵 4강이 있지. 어쩌면 우리는 열정으로 4강을 치렀어야 했어."
FA컵이 아주 중요한 대회라고 한들, 양옆에 있는 챔피언스리그 8강전이 더 중요했으니까.
본래대로라면 FA컵은 백업과 로테이션 멤버로 과감하게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1차전에서 유벤투스를 5대 0으로 박살 내면서, 여유가 생겼다.
2차전을 로테이션으로 가동하되, 중간에 있는 FA컵 4강전에 전력을 다한다.
이것이 바뀐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프, 너는 2차전에도 나가고 싶을 거야."
"물론이죠."
"혹시 유벤투스와 악연이 있나?"
"음, 아니요."
"흐음, 그래?"
감독은 팔짱을 끼며 날 바라봤다.
"좋아. 2차전에도 출전시켜 주지. 하지만 FA컵 4강전에도 나가야 할 거야. 자네 체력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주진 않겠어."
"시간이란 늘 상대적인 거죠. 90분 동안 한 골도 못 넣은 선수가 있고, 10분만 있어도 충분한 선수도 있죠."
"아주 좋아. 60분을 주지. 맨유를 박살 낼 수 있겠어?"
60분이라.
딱 적당하다.
그 정도면 체력도 보전할 수 있고,
무엇보다.
"골 넣기에는 많은 시간이죠."
***
맨유는 FA컵이 마지막 남은 보루다.
리그가 후반기에 치달았음에도 9위.
유로파리그 출전권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
이미 몇 년 전부터 팬들은 솔샤르 아웃을 외치고 있지만,
솔샤르는 여태껏 버텨 왔다.
하나 이젠 정말 한계다.
여기서 FA컵 타이틀을 따내지 못한다면, 그는 경질당할 게 틀림없다. 아니, 이미 경기 전에 얘기를 들었다. 트로피를 들어올려야 다음 시즌 구상에 관해 얘기할 수 있다고.
하여 솔샤르는 이를 악물고 필드를 노려봤다.
다만 그는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제퍼슨 리가 빠른 움직임으로 음투쿠지의 바디체크를 피해 내고 달립니다!]
[폭발적인 스피드입니다! 그 누구도 따라붙지 못합니다! 매과이어가 발끝을 갖다 대지만, 오, 이런! 어림도 없습니다! 제퍼슨은 이미 예측하고 있어요!]
[빠르게 스쳐가는 제퍼슨 리! 골문을 향해 강하게--! 밀어 넣습니다!]
[제퍼슨 리가 경기 시작 8분 만에 선제득점을 터뜨리는군요!]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솔샤르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 경기가 끝나고.
'사무실에 내 탁자가 사라지겠군.'
처연한 웃음이 떠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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