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슈퍼히어로의 조건 (5) >
[LIVE! 첼시 2 VS 0 유벤투스]
득점자 : LEE('5), Havertz('22)
ㄴ참교육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날강두 내동댕이잼ㅋㅋㅋㅋㅋ
ㄴ날강두 또 그 표정 나왔죠? 억울한 표정 나왔죠?
ㄴ응 오늘 심판 거의 정의의 여신 디케죠ㄷㄷ
ㄴ우리 형 오늘부터 제프하자
ㄴ날강두=우리 혐 제프=우리 형 ㅇㅈ
ㄴ주작투스 수비가 개판인거냐 제프가 미친 거냐
ㄴ저건 제프가 미쳤지
ㄴㄹㅇ루 8명 돌파하는 거 마라도나 재림인줄
ㄴ솔직히 전성기 마라도나가 와도 지려서 팬티 갈아입을 듯;
ㄴㅇㄱㄹㅇ
ㄴ오늘 제프 해트트릭하냐
ㄴ그건 당연하고 더 넣을지가 주목됨
ㄴ오늘 빨딱 섯는데? 제프 눈빛 봐 존나 살벌함
ㄴ우리 형 하고 싶은 거 다 해 ㅋㅋ
***
두 골이 들어간 이상.
유벤투스는 경기를 무작정 안정적으로만 이끌 수는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라인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우리도 맞불을 놨다. 자연스레 경기가 서로 치고받는 난타전이 유도됐다.
"Blues! Blues!"
우리는 홈과 원정에서 모두 성적이 좋지만, 특히 홈에서는 '극강' 수준이다. 이번 시즌에 패배와 무승부가 몇 없지만, 그마저도 원정경기에서 벌어진 일.
홈에서만큼은 첼시는 레알도, 유베도, 바르셀로나도 두렵지 않은 클럽이었다.
"Yeeeeeeeeeeeeaaaaaaa!"
뜨겁다 못해 광적인 함성소리에 템포는 더 빨라졌다.
"뒷공간을 두려워하지 마! 그 전에 상대를 찢어 버릴 테니까!"
경기는 마약과도 같다.
엄청난 함성과 필드에서 달아오르는 분위기.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벤치의 코치들도 벌건 얼굴로 연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안정적으로 경기를 이끌어야 한다.
상대에게 원정 득점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이 미칠 듯한 분위기에 흐름을 타다보니.
뒤에 뒷공간이 생기는 걸 무시하고 수비진부터 쭉 끌어올리면서, 공격을 퍼부었다.
"Blues!"
우리에게 또다시 공격권이 넘어왔다.
여전히 잔뜩 찡그린 얼굴로 심판에게 항의만 하는 호날두를 태클로 무너뜨린 캉테가 공을 쭉 길게 뺐다.
나 같으면 저기서 항의할 바엔 달려들어서 압박해 공을 빼앗을 것이다. 애도 아니고 말이지.
뭐 어쨌든, 캉테의 패스는 단숨에 오른쪽의 오도이에게, 오도이는 돌파를 시도하다 망설임 없이 중앙으로 올려 줬다.
"떴다!"
"자유롭게 놔두지 마!"
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공중볼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나를 어떻게든 이겨 내려면 선수 두 명이 붙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웬만해선 공을 따낼 수 있다. 더구나 수비 두 명이 붙음으로 인해 내 동료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에 놓인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나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공중볼을 넘겨주고 공간을 막을 것인가.
그들의 선택은 전자였다.
툭!
"끄응!"
데 리흐트와 블레즈 마투이디가 나와 같이 뛰었지만,
공은 내 머리에 먼저 닿았다.
떨궈 준 공을 뒤에서 귀신같이 움직이던 우트가 잡고, 우트는 공간을 치고 들어가다 왼쪽의 풀리시치에게 넓게 벌려 줬다.
뻐엉!
공이 내게 없음에도, 내 주위엔 상대 선수가 두세 명은 붙어있다.
데 리흐트와 미랄렘 퍄니치가 나를 에워쌌다.
수비를 이겨 내는 방법은 피지컬과 테크닉뿐만이 아니다.
필드에서는 늘 심리전이 벌어지고, 치열한 말싸움이 벌어진다. 같은 프로선수여도, 서로에게 못할 온갖 욕설을 쏟아 내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학현으로 살 때, 살아남기 위한 방식 중 하나였다.
"공은 저기에 있다고! 친구들!"
"닥쳐!"
"공이 아니라 선수를 쫓아다니는 건 가장 미련한 수비인데. 유벤투스 수비 수준이 이렇게 떨어졌었나?"
"닥치라고! 이 개자식아!"
"하긴. 나한테 선제골을 쳐먹힐 때 느끼긴 했지. 난 중학생 사이로 드리블 하는 느낌이었다니까?"
"오, 빌어먹을 자식!"
"역시나. 욕하기 전에 그래도 주위를 살펴야지. 어린애도 아니고. 아, 리흐트. 너 좀 어리지?"
"너보다 나이 많아!"
"그럼 나한테 집중하지 말고 경기를 보라고!"
"뭐?"
이런 식으로.
상대의 집중력을 흩뜨려 놓는 사이.
풀리시치의 긴 크로스가 올라왔다.
데 리흐트의 얼굴이 일순 창백하게 질린다.
어라, 좀 긴데?
공은 중앙이 아닌, 정 반대편 우트에게 향했다.
풀리시치로서는 정확한 선택이다.
나에게 수비가 집중된 사이. 마치 일부러 존재감을 지운 듯한 우트가 공간에 혼자 우뚝 서 있었으니까.
"제기랄! 막아!"
"몸을 날려! 날리라고!"
우트는 솔샤르 특유의 폼을 보여 줬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노려보는 폼.
절대 슈팅이 아니라, 마치 숏패스인 것만 같은. 그러나 유베 선수들은 속지 않았다.
역시 철저하게 분석을 해 왔다. 데 리흐트는 날 버려두고, 키엘리니와 함께 우트 앞에서 바로 몸을 날렸다. 슈팅을 몸으로라도 차단하겠단 의도.
그러나 그 의도는 잘못됐다.
저 자식은, 일대일 찬스에서도 패스를 하는 이상한 놈이었으니까.
투욱!
"······!"
슛이 아닌 정확한 숏패스.
완전히 비어져 있는 골대 안으로.
설마 내가 이걸 놓칠까.
"Wuuuuuuuuuuuuuuu!"
유벤투스 팬들의 야유와 폭언이 쏟아진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다.
나는 홈팬들이 아닌 원정섹터로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양팔을 겨드랑이에 팔짱을 낀 채, 어디 더 해 보라는 듯이 오연하게 쳐다봤다.
***
[Live! 첼시 3 VS 0 유벤투스]
ㄴ제프 표정 존나 거만하네ㅋㅋㅋㅋ
ㄴ존나 멋있음
ㄴ와 미쳤다ㅋㅋㅋㅋㅋ
ㄴ카메라 각도 미쳤다. 난리브루스 치는 주작투스 애들 앞에서 저 등판에 새겨진 9번 존나 멋지네
ㄴ일당백으로 싸우러가는 전사같누
ㄴ와ㅋㅋㅋㅋ카메라 구도ㅋㅋㅋ
ㄴ무슨 좀비 떼 막는 히어로같눜ㅋㅋㅋ
***
전반전에만 3득점을 만들어 내는 제퍼슨 리를 보면서 사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2골 1어시스트.
그 폭발적인 활약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선수들이 왜 이리 힘을 못 쓰는지 그것이 의아했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내내 들리는 저 응원가 때문인가.
"개 같군. 포체티노가 인터뷰로 지옥의 장송곡 같단 이유가 있었어."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알 법한 박자와 리듬감.
거기에 아주 간단한 노래 가사까지.
제퍼슨이 너희를 죽일 거라는 둥, 엿 먹일 거라는 둥의 아주 노골적인 가사는 듣기 괴로울 정도였다. 문제는 제퍼슨이 그 응원가가 들릴 때마다 여지없이 수비진을 붕괴시킨다는 점이다.
"정신 차려! 이 개자식들아!"
라커룸에 들어간 사리는 고성을 냈다.
하나 선수들은 오히려 감독보단 옆에서 혼자 분을 못 이겨 씩씩대는 호날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사리는 느꼈다.
'이거, 틀려먹었다.'
라커룸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수비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세 골이나 먹혔다고! 그깟 애송이 하나 못 막아서!"
끝내 터졌다.
호날두가 제 성질을 못 참고 동료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
문제는 그 수비진에는 키엘리니가 있단 사실이었다.
05년도부터 유벤투스에서 뛰어 온, 상징적인 선수.
500경기 이상 출장기록을 가진 선수.
그리고 성격 역시 괄괄하다 못해 한 성깔 하는 선수.
"닥쳐! 크리스티아누! 네 녀석 징징대는 거 듣기도 역겨워! 네가 놓친 슈팅이 몇 개야? 혼자 슈팅 열 몇 개를 때려 놓고 골도 못 넣었잖아? 아깐 디발라에게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네가 슈팅을 날렸지!"
라커룸이 일순 갈라졌다.
사리는 재빨리 개입했다.
"닥쳐! 모두 입 닥치고 후반전에 집중해! 싸울 거면 경기 끝나고 싸워! 이 머저리들아!"
물론 둘 다 프로선수고, 산전수전 다 겪었기 때문에 파국까지 치닫진 않았다.
하지만 사리는 분명히 느꼈다. 잔뜩 붉어진 얼굴에 드러나는 살벌한 표정들. 결코, 같은 동료를 쳐다보는 시선과 얼굴이 아니었다.
'후반전은······ 끝났군.'
그랬다.
***
"LEE Will, LEE Will Kill you!"
사리 감독의 얼굴은 썩다 못해 푸르죽죽해졌다.
저 응원가 가사대로, 제퍼슨은 끝내 선수 하나를 죽여 버렸다.
물론 완전 반칙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수비수가 먼저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몸싸움을 이겨 내지 못하고 넘어지다가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사리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 제 혼자 넘어졌는데 내가 경고라고?"
제퍼슨은 오히려 옐로카드를 받았다.
너무 강한 푸싱에 상대가 넘어졌다는 판정.
그 어처구니없는 판정에 제퍼슨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만일 옐로카드 세 장이 퇴장이었다면, 너희 중 하나는 또 실려 갔을 거야."
농담 같지 않은 농담.
그 말에 유벤투스 수비진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기랄! 침착하게 골을 넣으란 말이야!"
수비진에서 무너진다면,
적어도 공격진에서 한 건 해 줘야 한다.
원정 득점을 성사시켜야만 2차전에 희망이 있다.
기회는 적지만 분명 찾아왔다. 축구는 90분의 스포츠고, 90분 내내 한 팀이 주도권을 쥘 수는 없다.
더구나 첼시도 여전히 공격을 위해 라인을 올린 상황.
파울로 디발라가 환상적인 플레이로 캉테를 제쳐 내고 돌파에 성공했다.
호날두가 재빠르게 중앙으로 파고들었고, 디발라가 패스해 준다면 어쩌면 일대일 찬스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디발라는 패스가 아닌 슈팅을 선택했다. 나쁘지 않았다. 거기서 슈팅해도 충분히 골이 나올법했으니까. 그러나 케파는 슈퍼세이브를 선보였고, 호날두는 자신에게 패스하지 않았다며 디발라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망했군."
몇 없는 공격 기회가 선수단의 불화로 날아간 사이.
타앗!
하베르츠의 긴 스루패스가 단숨에 수비진을 갈라 버렸고.
제퍼슨이 앞에서 달려가던 수비진을 스피드로 제쳐 버린 뒤.
오로지 패스 하나와 스피드 하나만으로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 낸 제퍼슨이, 골문을 향해 슈팅을 때렸다.
뻐어엉!
결국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해트트릭.
제퍼슨이 터뜨린 해트트릭은, 유벤투스의 참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경기는 후반전에 더 잘 풀렸다.
호날두와 디발라가 서로 욕설을 내뱉는 것뿐만 아니라.
선수단 사이에서 서로 짜증이 난 얼굴로 쳐다보는 것부터, 불화가 시작되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악랄하게도, 그 불화를 이용해야만 했다.
"받아!"
툭!
이미 해트트릭을 터뜨렸지만,
스트라이커는 골을 많이 넣을수록 좋다.
더구나 상대는 팀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고 무너지는 상황.
가끔 축구계엔 그런 날이 있다.
브라질이 독일한테 7골을 먹히고 지거나.
과거 첼시가 맨시티에 6대 0으로 지거나.
도저히 믿기기 힘든 대량득점과 대량실점이, 서로 비슷한 수준의 강팀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우.
어쩌면, 오늘이 그런 날일지도 모른다.
"Blues!"
오른쪽의 오도이가 맹렬하게 질주했다.
하베르츠의 패스를 이어받은 오도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쥐어 짜냈다. 측면을 찢어발기는 속도에 유벤투스의 풀백이 무너져 내렸다.
"Ruuuun!"
오도이가 달린다. 나 역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날 둘러싸는 미드필더의 압박을 피해 잽싸게 중앙으로 뛰었다.
오도이는 풀백을 벗겨 내고, 거의 코너라인까지 순식간에 질주했다.
크로스에 대비한 데 리흐트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어깨를 밀어 넣는다.
"이번만큼은 절대!"
아무래도 더는 실점을 내주지 않겠단 의지겠지.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의지만으로 안되는 게 충분히 널렸거든.
가령 지금처럼.
오도이는 날 봤다. 나도 오도이를 봤다.
오도이의 잘 감긴 크로스가 박스로 날아왔다. 데 리흐트가 왼쪽에서 압박해 들어오고, 키엘리니가 거의 몸을 날리듯이 먼저 뛰어올랐다.
두 명의 수비 사이에서 뛰어올라 헤더하는 것?
그게 쉽다면 헤더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가 많겠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많지 않은 헤더골을 넣는 스트라이커 중 하나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데 리흐트를 완전히 밀어 넘어뜨리고, 크게 날아올라 키엘리니보다 한 뼘 더 높은 지점에서.
뻐엉!
"Yeeeaaaaaaaaaaaaaaaaa!"
"제---퍼슨!"
"제프! 제프!"
굳이 골대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될 거 같다.
황망해하는 수비진의 표정.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 이름을 연호하는 홈팬들.
그럼 뭐, 뻔하지.
난 웃으면서 달려오는 동료 선수들을 피해 카메라 쪽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이거 한번 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진짜로.
크게 뛰어올라, 몸을 180도 돌리면서!
"호---우!"
< 167. 슈퍼히어로의 조건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