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56화 (156/258)

< 156. 챔피언스리그의 외래종 (2) >

제퍼슨의 더블 해트트릭.

3골 3도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경기에 해트트릭을 두 번 터뜨린 사건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주목을 받았다.

축구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이 한 경기에서 6골을 넣는 건 절대 흔한 사건이 아니다.

한 경기 6골은 제퍼슨 개인에게도 최다 득점 경기였다.

제퍼슨의 무시무시한 골 폭격이 매 경기 이어지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이제 담담하게 느껴지게 됐다. 익숙해진 것이다.

[제퍼슨 리, 첼시 팀 내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자와 타이기록!]

[100년 만에 깨진 한 경기 최다 득점, 제퍼슨 리. 첼시에 전설을 써 내려 간다.]

[제퍼슨 리, 평점 10점. FA컵 2경기 8득점, 랭킹 1위!]

첼시팬들은 제퍼슨의 활약에 고무되었고, 상대팀들은 모두 혀를 찼다. 부러움이 잇따르고 시기와 질투가 쏟아졌지만, 이제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퍼슨 리는 교란종이지."

"리그를 지배했던 수많은 선수 중에, 이렇게 무서운 선수는 처음이야."

"수아레스나 아자르, 다 대단했지만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단 생각이 있었단 말이지."

"그치만 저 자식은······대체 어떻게 막는 건데?"

"필마르크 개자식! 첼시 쓰레기 자식들! 프리미어리그에 외래종을 풀어놓다니!"

프리미어리그 팬들은 해탈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이제 첼시를 상대해야 할 챔피언스리그 클럽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리그라지만, 제퍼슨의 활약은 센세이셔널한 것이니까.

특히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첼시를 맞상대할 레알 마드리드의 입장은 꽤 복잡했다.

"하!"

현재 레알마드리드 감독은 포체티노. 토트넘을 이끌었던 그 포체티노가 맞다.

레알 마드리드의 새 지휘봉을 잡은 지도 벌써 반년.

독이 든 성배라는 감독직에도 불구하고, 포체티노는 그래도 제법 잘 싸워 왔다.

"하지만 쉽지 않았지."

포체티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레알은 토트넘과는 전혀 다른 팀이었다.

선수 모두가 슈퍼스타였다.

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뚫고 갈 정도였다.

그 어떤 감독도 레알 마드리드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권력은 무지막지했으며, 감독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들 때 대놓고 들이박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체티노는 선수들과 어느 정도 신경전을 하면서도, 팀을 이끌어왔다.

라리가 3위.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

썩 좋은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포체티노는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슈퍼스타인 만큼, 스스로 동기부여를 잘하는 놈들이지."

라리가에서 레알은 약팀에게 덜미를 잡히는 모습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포체티노는 온갖 비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는 달랐다.

선수들이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레알은 조별리그에서 6경기 전승, 15득점 2실점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16강에 올라왔다.

'스타들일수록 트로피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

슈퍼스타들이 모인 팀인 만큼, 빅이어에 대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것임을 느꼈다.

자신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빅이어를 들고자 내심 마음먹었다. 심지어 낙관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16강 상대로 첼시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빌어먹을! 라리가까지 왔는데 제퍼슨 걱정을 또 해야 한다니!"

입이 바싹 말랐다.

제퍼슨 리.

토트넘을 지휘할 때, 고작 1년이지만 제퍼슨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과 공포를 심어 줬다.

"그 자식을 막아야 할 고민을 해야 한다니!"

라리가에는 그만한 선수가 있긴 하다.

리오넬 메시.

그를 상대할 때 포체티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제퍼슨이란 괴물을 상대하면서 조금 담담해진 영향이다.

막말로 그는 제퍼슨이 차기 발롱도르, 올해의 발롱도르 수상자로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포체티노의 입술이 시퍼렇게 질렸다.

최근 제퍼슨의 경기를 일부러 찾아봤다.

누군가 해머로 머리를 후려친 것 같은 둔중한 충격이 강타했다.

'1년 전보다 더 괴물이 되었구나!'

그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더한 위기감이 심어졌다.

***

레알 마드리드의 훈련이 다소 격렬해졌다.

선수들은 훈련 스케줄에 미간을 좁히면서도 일단 훈련에 임했다.

그러나 선수단 사이에 불만이 점점 고조됐다.

평소 훈련보다 더 격렬할 뿐더러 감독과 코치의 주문도 더욱 날카로워졌던 것.

거기까지였으면 선수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챔피언스리그가 다가오는 만큼 스태프들이 예민해질 수 있으니까.

모두 자존심 강한 슈퍼스타들이고, 제멋대로라지만 그래도 경기를 뛰는 프로선수들이다.

그 정도 프로의식은 다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술훈련에 들어가면서 선수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건······."

"완전 역습 축구군."

"마치 우리 팀을 상대로 하는 약팀들처럼 말이야."

물론 이런 전술도 연습을 하긴 한다.

바르셀로나나 AT 마드리드를 상대할 땐, 전술적으로 유연함을 주기 위해 때로는 역습으로 전환할 때가 많으니까.

"더 뛰어!"

"이 악물고 뛰어! 첼시는 쉬운 상대가 아니야!"

코치와 감독의 끊임없는 주문에 선수들은 미간을 좁혔다.

레알 마드리드의 슈퍼스타들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

첼시가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코칭스태프 전원이 노심초사해야 할 상대인가?

그런 의문은 자연히 뒤따라오게 됐고,

몇몇 선수들은 그 의문에 크게 공감했다.

"훈련 강도도 턱없이 세. 다음 경기가 엘 클라시코인거야?"

"첼시가 챔스 우승 경험이 있지만, 그건 무려 10년 전이야."

"최근에 아주 잘한다고 들었어. 프리미어리그 1위라고.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갔잖아?"

애당초 라리가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보단 라리가의 위상을 더 높게 쳤다.

최근에는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국제대회 성적이 더 대단했지만, 그래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클럽이란 명성을 지닌 만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다.

때문에 코칭스태프의 반응에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던 것.

포체티노는 변해 가는 분위기에 한숨을 쉬었다.

선수단 장악을 제대로 못한 것이 이런 상황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모두 안으로 모여!"

포체티노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그가 토트넘 시절부터 제퍼슨을 막기 위해 분석한 영상자료들을 선수단에게 보여 준 것.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선수인 그들은 영상 속 제퍼슨의 플레이를 보고 이내 자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허."

"저 녀석을 2천억에 사온다는 소문이 돌았던 이유가 있었군."

"세상에. 저기서 골을 넣는다고?"

"제기랄, 저 속도는 뭐야?"

"하늘을 지배하고 있어. 반 다이크가 저렇게 쉽게 당하는 선수였나?"

"아니지. 절대 아니지."

"······."

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경지에 오른 선수들인 만큼, 영상 속 제퍼슨의 플레이가 얼마나 환상적인지 누구보다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소문으로만 들었고, 경기 영상을 이렇게 철저하게 분석한 적은 없었다.

그냥 '대단한 놈' 하나 나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끙."

"어때? 넌 막을 수 있겠어?"

세르히오 라모스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최전성기 때였으면 몰랐을까. 지금의 나는 저 피지컬을 못 막아."

주장이자 레알 마드리드 수비를 오랫동안 책임져 온 라모스의 말에 선수단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것은 분명 제퍼슨에 대한 걱정이었지만, 이내 호승심으로 바뀌었다.

포체티노는 선수단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속으로 웃었다.

'내 선수들은 토트넘의 선수들이 아니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재능을 가진 슈퍼스타들의 모임.

그리고 스스로가 동기부여하고, 마음가짐을 다 잡는 진짜 월드클래스로 구성된 선수진.

포체티노는 눈을 크게 뜨며 스크린을 바라봤다.

[제퍼슨 리, 여섯 번째 골을 터뜨리며 레스터를 철저하게 무너뜨립니다!]

"이번엔, 막는다."

***

노리치 시티의 계획은 간단했다.

"수비수 5명 집어넣어. 그냥 비긴다. 무조건 비긴다. 그게 유일한 답이다."

그들의 계획은 꽤 잘 먹혔다.

전반전은 무리 없이 0대 0으로 끝났다.

후반전도 똑같았다.

다만 후반 80분.

체력 비축을 위해 벤치에 있던 제퍼슨이 필드에 올라오는 순간.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막아!"

"누굴? 저기 괴물 같은 놈을 막으라고? 내 손엔 총도 없는데?"

노리치 수비수가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제퍼슨은 단숨에 수비진을 헤집고는 강력한 슈팅을 욱여넣었다.

골키퍼가 손에 거의 아슬아슬하게 잡았지만.

"아아!"

그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제퍼슨! 그대로 욱여넣었습니다! 골키퍼 팀 크룰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합니다! 맙소사, 달리면서 그대로 슈팅을 날려 버리네요! 엄청난 힘입니다! 저 슈팅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정말로 환상적인 슈팅입니다!]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골네트를 찢어 버리듯이 꽂혔다.

"제-퍼슨이 또 넣었네!"

"LEE Will, LEE Will Kill you!"

"승점 3점을 바쳐라!"

프리미어리그 25라운드, 노리치는 잘 준비했지만 제퍼슨을 막지 못한 채 침몰했다.

***

"휴식을 줄 생각이었는데, 결국 널 쓸 수밖에 없었네, 제프."

감독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레스터와의 FA컵이 끝나고, 나는 체력 조절에 들어갔다.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이렇게 골 감각을 유지해야죠. 너무 쉬면 감각을 잊을지도 몰라요."

"글쎄. 넌 평생 안 잊을 거 같은데?"

"저도 사람입니다, 감독님."

"······태어나서 가장 웃긴 소리를 들은 기분이야."

"······."

아직도 삐지셨나.

레스터전에 6연속 몸통 박치기당하고, 지갑을 탈탈 털어 선수단 회식까지 했더니.

감독은 날 볼 때마다 다소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어쨌거나.

우리는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25라운드 노리치를 조금 힘겹게 이기고 나서,

FA컵 5라운드는 2부 리그의 볼튼을 상대해서 무난히 승리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직전 경기 26라운드는 과감히 전원 로테이션을 돌리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그건 조금 안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첼시 챔피언스리그 대비 로테이션 가동, 스완지에게 0대 2 충격 패]

[PK 1골, 프리킥 1골, 첼시 세트피스에서 무너져.]

"후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수는 없죠. 우리는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완지는 충분히 우리를 이길 자격이 있었고, 우리는 부족해서 패배했을 뿐이죠.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우리는 다시 최고의 모습을 보여 줄 겁니다."

충격 패였지만 반응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스완지 정도는 잡아야 되지 않겠냐는 팬들도 있었지만,

애당초 승점 차도 벌어진 상태.

리그에선 어느 정도 여유가 확실히 있었으나 챔스 16강 상대는 결코 여유롭게 준비할 상대가 아니었다.

[세르히오 라모스, '우리는 이것이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뛸 것이다.']

[스탬포드 브리지로 향하는 레알 마드리드, '또 다른 엘 클라시코를 치르는 각오로 왔다.']

심지어 상대팀은 우리를 경시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직전 리그 경기에서 주전을 다 빼는 로테이션을 감행했다.

최고전력의 상태로 경기를 치르겠다는 것.

뭐.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은 그런 팀이니까.

하지만.

"이 생각은 저 녀석들도 가지고 있을 거다. 우리를 상대한다고? 레알 마드리드는 우리를 16강에서 만난 걸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을 거야."

감독의 다부진 목소리에 동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우리에게도 레알은 껄끄러운 상대이지만,

저들에게도 똑같은 심정이겠지.

뭐, 솔직히 지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이겨서 결승전까지 가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단 마음 하나뿐.

흠.

"레알 애들은 수비를 얼마나 잘하려나."

궁금한 건 바로 확인해 봐야지.

< 156. 챔피언스리그의 외래종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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