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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49화 (149/258)

< 149. 박싱데이 (2) >

안필드가 침묵에 잠겼다.

소리를 내는 건 오로지 첼시의 원정팬들뿐.

홈팬들은 모두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중계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연신 소리쳤다.

[너무나 치명적인 골입니다. 이건 너무 위험한 골입니다.]

경기 양상은 치열했다.

현재 리그 1위와 2위의 맞대결인 걸 증명하듯이, 서로 공이 부딪치는 지점에서는 치열하게 싸웠다.

다만 홈 경기장이란 이점을 살린 리버풀의 공격이 더 날카로웠고, 조금씩 분위기가 리버풀로 향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퍼슨이 보여 준 움직임은 대단했다.

[마치 베테랑이 팀을 지휘한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팀이 밀리고 있을 때,

활력을 불어넣고 열정적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선수가 바로 베테랑이다.

한데 제퍼슨이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패스는 하베르츠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다.

그러나 중계진은 그 패스의 중심은 하베르츠가 아니라 제퍼슨임을 꿰뚫어 봤다.

[제퍼슨이 손을 들고, 제퍼슨이 소리치고, 그가 뛰어가는 대로 선수들은 움직입니다. 오로지 제퍼슨의 플레이에 맞춰 움직이죠.]

첼시의 첫 번째 골이 그렇게 터졌고.

이어지는 플레이에서도 제퍼슨이 중심이 되었다.

팀 전체가 제퍼슨에게 초점이 맞춰진 듯한 플레이.

모든 선수가 제퍼슨의 움직임에 따라 파고들고, 넓게 펴지길 반복했다.

[제퍼슨 리라는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이제는 알겠습니다.]

리버풀의 피르미누가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공을 몰고 파고들었다.

수비들을 끌어 내는 움직임.

툿!

"······!"

그러나 토모리의 영리한 태클로 공만 빼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토모리의 생각지 못한 호수비에 원정팬들이 일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왼쪽으로 달려 나가는 풀리시치에게 다이렉트 로빙패스.

수비진에서 공격진까지 한 번에 전개되는 급박한 상황.

그 상황에서 중계진은 오히려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보시죠. 시작부터 긴장 가득했던 토모리가 아주 여유롭게 공을 빼냅니다. 그 피르미누를 상대를요. 토모리의 실력이 30분 만에 성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팀에 제퍼슨이란 믿음직한 선수가 있다는 사실, 그 사실로 인해 부담감이 사라진 것이죠.]

풀리시치에게 도달한 다이렉트 패스는, 받자마자 중앙으로 파고드는 제퍼슨에게 툭 찔러졌다.

"놓치지 마!"

제퍼슨 리와 반 다이크, 조엘 마티프가 공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선수 세 명이 부딪치는 광경.

둘째가라면 서러울 엄청난 체격의 선수들이 부딪치는 장면은 헛숨을 들이켤 정도로 박력이 넘쳤다.

반 다이크가 어깨를 밀어 넣고 공간을 열고, 그 사이에서 조엘 마티프가 공을 빼낸다.

그것이 수비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놀라웠다.

[제퍼슨 리는 스트라이커가 가져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춘 선수입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졌을 뿐더러, 그걸 이용하는데 완벽함을 보여 주죠.]

반 다이크의 압박을 버텨 내고, 오히려 손을 써서 마티프를 밀어 내면서 어떻게든 공을 소유하는 데 성공했다.

반 다이크와 마티프의 표정이 일순 와락 일그러졌다.

이 말도 안 되는 힘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특히 여러 번 제퍼슨을 상대한 반 다이크의 소감은 남달랐다.

'1년 전 보다 더!'

저번 시즌에는 그래도 할 만하다고 느꼈다.

벽에 부딪힌 느낌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버틸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숨이 턱 막히고 어깨부터 전해지는 둔중한 충격. 자신이 늙었음인가? 그럴 리가.

'이 괴물이 더 진화한 거지.'

반다이크는 질린 눈빛으로 제퍼슨을 바라봤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피지컬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피지컬을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순간적인 센스와 테크닉으로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걸 즐기죠.]

투웃!

공을 왼쪽으로 빼듯이 몸을 기울였다.

반 다이크는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을 그쪽으로 기울였다. 판단 하에 이뤄진 수비가 아니다. 수비수로서의 본능적인 반응.

하지만 그건 제퍼슨의 함정이었다.

오히려 제퍼슨에겐 반 다이크 같은 선수를 상대로 페이크를 쓰는 걸 즐겼다.

판단보다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일 정도로, 아주 예민하고 대단한 선수.

제퍼슨은 발바닥으로 공을 드래그하면서 다시 순간적으로 반대방향으로 틀었다.

반 다이크의 반응속도를 월등히 뛰어넘는 제퍼슨의 피지컬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리버풀의 수비진을 박살 내는 방법.

"끄응!"

"제기랄!"

욕설을 지껄이며 급히 따라붙으려하지만.

이미 속도가 붙기 시작한 제퍼슨의 스피드는 압도적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속도로 제퍼슨을 이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제퍼슨의 피지컬이 정점에 달한 순간이 아닌가. 폭발적으로 달려 나가는 제퍼슨의 뒷모습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압박을 버티는 피지컬, 순간적인 센스로 제치는 재능, 그리고 일대일 상황에서의 제퍼슨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수입니다. 일대일 찬스는 골키퍼와 스트라이커 두 명 다 부담스럽지만, 제퍼슨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완벽하게 집어넣는 이 상황을 아주 많이 즐기죠. 보세요. 웃으면서 슈팅하잖아요?]

뻐엉!

알리송을 또 한 번 무너뜨리는 깔끔하고도 정확한 슈팅으로 정점을 찍었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제퍼슨은 연쇄살인마나 다름없죠. 프리미어리그 팀의 나머지 19개 팀을 모두 죽여 버렸으니까요.]

중계진은 듣기에 따라 조금은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나 그 음성에 담긴 감정은 명백했다.

순수한 감탄과 선망만이 깃든 목소리였다.

[자, 보시죠. 제퍼슨 리가 해트트릭을 할지, 안 할지를요.]

[할지, 못할지가 아니라 안 할지라고요?]

캐스터가 그 점을 지적했지만, 해설은 그저 웃었다.

[해트트릭이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제퍼슨이 안 한 거죠. 지금 컨디션을 보세요. 리버풀은 4골을 허용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겁니다.]

***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몸의 근육이 하나같이 살아있다고 느껴질 때.

생각하는 대로, 근육이 작동하고 몸이 움직여지는 날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되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날이.

"그게 오늘이란 말이지!"

리버풀은 두 골을 먼저 내줬음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연신 공격을 퍼부었고, 뤼디거는 토모리의 실수까지 커버하며 어떻게든 막아 냈다.

그렇게 몇 번을 막아 내자, 기회는 다시 첼시에게 찾아왔다.

"무서워하지 마!"

반 다이크, 조엘 마티프, 파비뉴까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대단한 선수들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제퍼슨은 그 셋으로도 막을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제퍼슨 본인조차도 오늘 왜 이렇게 컨디션이 좋을까 싶을 정도니까.

탁!

달려드는 파비뉴를 비해 측면으로 공을 흘러 주고 내달린 뒤.

오른쪽의 오도이가 툭툭 치면서 드리블을 시도했다.

하나 풀백 앤드류 로버트슨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 오도이는 몇 번 드리블을 시도하다가 민첩하게 공을 돌려서 왼쪽 측면으로 길게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수비의 시선이 일순 흔들린 사이.

박스 내부가 헐거워진 틈을 타. 그사이로 제퍼슨이 냅다 달렸다. 풀리시치는 길게 오는 공을 원터치로 곧바로 박스로 향해 툭.

원정팬들의 엄청난 함성이 일순 안필드를 가득 채웠다. 홈팬들의 목소리를 순간적으로 압도했다.

"제-------프!"

"Yeeeeaaaaaaaaaaaaaa!"

홈에서 원정팬들에게 환호 소리로 잠식당한다는 기분은 어떨까.

한 성격하는 안필드 홈팬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더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놓치지 말라고!"

벌써 두 골을 허용한 알리송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퍼슨이 박스로 침투 후에 가볍게 공을 돌려세워 놓고 있었다.

헐거워진 수비 틈.

이미 볼 키핑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제퍼슨은, 어떤 패스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완벽하게 지키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간결하게 툭 치면서, 달려드는 마티프를 가볍게 벗겨 내고.

한 번 더 드리블.

극도로 협소하고 좁은 박스 내부의 공간.

거기서 펼쳐지는 제퍼슨의 환상적인 플레이에 양 팀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대비됐다.

"미친 자식!"

"저 자식 때문에 내 심장이 터져나갈 거 같아!"

이것은 첼시의 반응이었고.

"오! 신이시여!"

"제발 저 개자식의 다리뼈가 부러지게 해 주소서!"

리버풀은 그를 저주했다.

수비들의 얼굴이 일순 다 새하얗게 질렸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한 경기에서, 한 선수에게, 세 번이나 똑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것도 세계 최고 팀 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리버풀에게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강팀을 무너뜨렸던 제퍼슨의 위협적이고도 극도로 짧은 미세한 마이크로 컨트롤.

그의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 다시 한 번 골대 안으로 향했다.

뻐어엉!

강력한 슈팅이 다시 한번 골대를 가르고.

원정팬들은 모두 일어나 어깨동무한 채 노래를 불렀다.

"프리미어리그의 왕이 안필드를 무너뜨렸다!"

"제프! 제프! 제프! 제프!"

세 개의 슈팅.

그리고 해트트릭.

단 세 개의 유효슈팅으로 스코어를 석 점 차로 벌린 이 광경 속에서.

제퍼슨은 환호하는 원정팬 사이로 뛰어가 포효했다.

***

"좀 쉴 생각 있어?"

반칙으로 인해 경기가 잠깐 중단된 사이.

물을 마시려 터치라인 쪽으로 가자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

"박싱데이잖냐. 이제 쉬엄쉬엄해도 될 거 같은데."

하긴.

지금이 후반 70분이니까.

평소라면 여기서 교체아웃되고 쉬었을 것이다. 더구나 해트트릭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내키지 않는다.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다.

지금도 지친다는 생각이 없다. 아드레날린이 너무 뿜어져 나온 것일까. 몸이 무겁다거나 고통스러운 느낌은 하나도 없었다.

왠지.

한 골 더 넣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감독님. 한 골만 더 넣고요."

"뭐?"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어젖혔다.

"오늘 넌 리버풀이 가장 싫어하는 선수가 될 거야."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좋아. 절대 널 뺄 생각은 없으니까, 아예 짓밟아 버려!"

그래.

분위기 탔을 때 해야지.

***

결국, 그 날 경기는 종료 직전 제퍼슨이 다이빙 헤더로 한 골을 더 뽑으며 4골을 기록한 채로 끝났다.

경기가 끝나고 최고 수훈선수(MOM)은 당연히 제퍼슨 리가 지목됐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필마르크 감독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늘 기자들하고 말싸움하는 회견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리그 2위 팀인 리버풀을 4대 0으로 침몰시키며 분위기를 제대로 탔다.

상대를 완전히 압도했고, 이 경기는 앞으로 잔여 일정을 치르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제퍼슨은 미쳐 날뛰었습니다. 그는 모든 수비진을 찢어발겼습니다. 심지어 3경기 동안 무려 10골을 터뜨리는 엄청난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의 플레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도 차마 오늘의 경기력에 문제를 삼을 게 없었는지.

제퍼슨의 플레이를 일일이 연거하며 찬양하듯이 질문을 던졌다.

평소 기자와 으르렁거리는 필마르크도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적입니다. 정말로 환상적입니다. 저한테 이 선수가 있다는 건, 신이 내린 선물이나 다름없죠."

흡사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

기자들은 피식거리면서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적이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이상의 표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선수다. 기사에 어떻게 서야 제퍼슨 리의 플레이를 온전히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기자는 한숨을 내쉬며 타자를 두들겼다.

모니터에는 단 하나의 문구가 삽입되어 있었다.

<리오넬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를, 제퍼슨 리가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퍼슨 리의 시대다. 적어도 앞으로 15년 이상은 말이다.>

< 149. 박싱데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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