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48화 (148/258)

< 148. 박싱데이 (1) >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난 커뮤니티에서 때로는 찬양을 받고, 때로는 온갖 비난을 받는다.

팬들이 많아진 만큼, 안티팬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건 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커뮤니티 반응을 자주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수 없지 않나.

그러나 오프라인에서는, 날 비난하는 사람을 쉬이 찾기 어렵다.

설령 그것이 런던의 다른 팀들이라고 해도,

아스날과 토트넘, 웨스트햄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쪽 팬들도.

막상 현실에서 날 보면 사인과 사진을 부탁한다.

"고마워요, 제프. 역시 팬 서비스가 좋다는 소문이 진짜네요."

"소문이요?"

타 팀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무시하거나 사인하지 않는 선수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나는 그들과 달리, 막상 다가오면 다 친절하게 대해 주려는 편이고.

그 때문인지 그런 소문이 돌았나보다.

하여튼 나에게 사인을 받은 타 팀 팬들은 꼭 이런 말을 내게 해 줬다.

"내년에는 아스날로 오는 게 어때요?"

"사전 접촉은 불법입니다."

원래 축구판이란 게 이렇다.

라이벌 팀의 아주 정말 싫은 선수라도. 실력만 있으면 내 팀으로 오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혹시 모르지.

나에게 유쾌하게 웃으며 사인을 부탁하고 아스날로 오라는 이 팬도,

인터넷에서는 조롱과 비난을 할지도.

"그런 점에 있어서, 너는 정말 통달한 거 같아. 어린 자식이 말이지."

요즘 아스피와 자주 대화를 나눈다.

"왜요?"

"요즘 애들은 말이야. 시종일관 SNS만 하는데도 거기서 오는 여러 욕설을 무시를 못 한다니까?"

라떼는 말이야.

이건가.

아스피는 살짝 툴툴거리는 어조였다.

"그에 반해 넌 아니잖아.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지. 이런 널 누가 갓 스무 살로 보겠어?"

어린 선수가 한시즌 반짝일 수는 있어도, 여러 시즌 동안 같은 실력을 입증하는 게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다.

여기저기서 찬양하고, 홈팬들은 뭘 해도 우쭈쭈해 주고.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이 된 것처럼 허파에 바람도 들어가고.

그러다가 어쩌다 실수 한 번 하면 온갖 조롱과 욕설이 쏟아진다. 그런 와중에 멘탈을 챙기라고 어린 선수에게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널 보고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다고 한다니까."

"······하하하."

"혹시 알아? 네 몸속에 들어있는 게 스무 살짜리가 아니라 마흔은 넘은 귀신일지?"

"······."

뭐야, 무당인가.

***

리버풀은 시즌 초반 흔들리긴 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건,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3위로 탈락했단 사실이다.

"······."

리버풀의 신임 감독, 알레그리는 수많은 비판과 비난, 그리고 조롱에 휩싸였다.

"제기랄."

사실 그로서도 억울한 면은 있다.

부임한 첫해,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난 상대가 AT 마드리드와 PSG라니.

팀을 아직 완벽하게 휘어잡지도 못했고, 자신의 색깔을 입히지도 못한 상태였다.

결국 조 3위로 유로파행.

하지만 알레그리는 절치부심했다.

무리해서 자신의 색을 입히려는 시도를 포기했고, 팀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남들은 '꾸역승'이라고 하지만 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현재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 첼시와는 승점 4점 차.

챔피언스리그도 놓친 마당에 리그를 놓칠 순 없다.

리그 절반이 딱 지난 시점에 만난 첼시.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런 각오가 깃들었건만, 그의 표정은 쉬이 펴지지 않았다.

"막을 방법이 없다!"

감독으로서 그런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전술을 활용해서 대응하더라도.

도저히 저 선수는 막을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아냐. 아예 없지는 않아."

알레그리는 제퍼슨이 무득점을 하거나, 또는 저조한 활약을 펼쳤을 때의 경기를 찾아봤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 경기는 몇 개 없었으니까.

그런 경기의 대부분 공통점은 몇 가지가 있다.

"팀의 전체 컨디션이 엉망이군."

지쳤는지, 피로가 누적됐는지.

제퍼슨 리뿐만 아니라 팀 전원의 체력이 부족할 때.

"또는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이걸 막는다고?' '와! 또 막아?'라고 소리치게 만드는 슈퍼세이브의 연속.

화려하고 엄청난 수비들이 연이어 나오는 경기.

그럴 땐 유효슈팅이 열 배 차이가 나는데도 경기를 지는 경우가 있다.

아주 적지만, 제퍼슨도 그러해서 무득점을 한 경기가 분명 있었다.

그렇게 공통점을 분석한 알레그리는 이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결국, 운에 따라야 한다는 건가?"

선수를 막을 방법이란 게 그런 것이라니.

분석 결과에 알레그리는 쓰게 웃었다.

"믿을 건 공격력이야."

하지만 첼시는 최근 자신들을 상대로 라인을 올린 상대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모습을 보였다.

아스톤 빌라가 그런 예다.

하나 리버풀은 다르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완벽한 팀이니까. 설령 제퍼슨에게 한두 골을 내주더라도, 우리 공격진이면 첼시의 수비진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

첼시의 주전 센터백인 시셀도의 부상으로 경기 출장 불가.

그 틈을 노려야 한다.

아무리 강한 팀이어도, 수비 조직력은 다른 문제니까.

차라리 한 골 내주고 골을 더 넣겠단 생각을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그것이 첼시와 제퍼슨 리를 상대하는 가장 알맞은 방법인 것 같으니까.

***

[첼시의 션 올리버, '리버풀의 우승? 유로파리그 우승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난 저렇게 말한 적이 없어!"

올리버가 황당한 얼굴로 드레싱 룸에서 소리쳤다.

사실상 리그 결승전이라고 언론에서 붙일 정도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경기인데. 그 포문을 올리버가 인터뷰로 열어젖힌 것이다.

"난 분명, 챔스에서 떨어진 리버풀이 유로파 우승을 할 거라고 칭찬한 거란 말이야!"

뭐, 기자들의 장난질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우리는 웃으며 그의 이야기를 받아 줬다.

어쨌거나 올리버의 인터뷰로 시작한 경기는 당일까지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첼시와 리버풀.

승점 4점 차이.

여기서 우리가 리버풀을 이기면 리그 우승에 더 가까워지는 걸 의미했다.

물론 아직 절반이 남았지만,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상위권팀에게 승점 7점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 때문일까.

프리미어리그에서 원정 지옥으로 통하는 안필드는 그야말로 비장미가 넘쳤다.

"런던 놈들을 쓰레기통에 갖다 박아 버려!"

"제퍼슨의 머리를 저 자식의 항문에 꽂아 버리라고!"

아니, 어디에다 뭘 꽂아.

리버풀 홈팬들은 격렬하고 공격적인 외침으로 우리를 맞이해 줬다.

우승경쟁 중인 팀은, 특별한 더비 관계가 없어도 치열하고 또 치열할 수밖에 없다.

지역 경찰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경기장에 입장했고, 우리도 긴장한 얼굴로 터널을 통과했다.

[모하메드 살라, '션 올리버? 나는 축구 선수에 대해 얘기하러 왔지, 모델에 대해 얘기할 내용은 없다.']

이건 오늘 아침에 나온 뉴스다.

올리버가 터널에서 맞닥뜨린 살라를 흘깃 보고는 나에게 와서 말했다.

"저 자식을 죽여 줘."

"쟤 공격수야. 나랑 맞닥뜨릴 일 없어."

그러자 올리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징그럽게 왜 이래?"

"마음 다잡고 축구하려는데 모델이라잖아."

"네가 잘생겨서 그런가 봐."

그러자 그 말에 또 헤실거리며 웃는다.

얘도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놈이 분명했다.

어쨌든.

뭐 올리버의 인터뷰가 무례하긴 했지만.

어차피 이 판은 내로남불 아니겠나.

"세트피스 상황에서 반쯤 죽여 줄게."

공격수인 그를 맞닥뜨릴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흠.

어떻게 죽여 줘야할까?

"종이처럼 아주 접어 버려."

사람을 어떻게 그럴 수가.

어쨌든.

터널 밖으로 나오자 온갖 들려오는 욕설 속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첼시 원정팬들은 이제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고 외친다. 구석에서 우리 올리버를 비난한 살라를 연신 조롱하고 놀리기 바쁘다.

"토모리! 침착해! 공을 봐! 피르미누한테 속지 마!"

그리고 감독은 잔뜩 긴장한 3, 4옵션 센터백인 토모리에게 외치고.

토모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버풀의 대단한 공격력.

시셀도가 있었다면 안심하겠지만, 오늘 토모리라서 조금 불안하다. 어쩔 수 없다.

"카이! 기회 한번 열어 줘!"

선제골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제골을 위해선, 적어도 리버풀의 수비들 상대로는 약간의 방심도 허락지 않는다.

하베르츠는 공을 몰고 왼쪽 측면으로 빠졌다. 미드필더부터 시작하는 강력한 압박. 하베르츠는 그 압박 속에서도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일순 패스를 쭉 찔러줬다.

툭.

내 발끝에 도달한 패스는 단 1초도 붙어 있지 않았다. 곧바로 돌려주는 리턴패스.

하베르츠는 그 패스를 반대방향으로 공격 전개를 전환했다.

"오-도이!"

오도이는 가볍게 공을 트래핑하고 툭툭 치며 측면을 내달렸다.

그러다가 수비 두 명이 앞과 옆을 막아서자 무리하지 않고 다시 중원으로 공을 돌렸다.

패스는 하베르츠를 중심으로 오갔다.

하베르츠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패스를 받아냈고, 또 강력한 압박에도 깔끔한 패스를 성공시켰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리버풀 선수들의 얼굴에 짜증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런 짧은 패스로 상대를 흔드는 것.

우리 팀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제-프! 파고들어!"

누군가는 그저 점유율만 올리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점유율을 가져간다는 건, 골을 넣을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비들이 패스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틈.

높은 곳에서 보는 관중들도 보기 힘든 그 틈을, 하베르츠의 패스가 딱 한 번 찔러졌다.

탓!

놀라운 일이다.

선수 세 명 사이를 가로지르고 나에게 도착하는 패스.

"달라붙어!"

"공간 내주지 마!"

경기 중에 스트라이커에게 찬스가 단 한 번도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일 수도 있다.

하베르츠라는 든든한 패서가 보내 주는 이 패스는,

단번에 찬스를 만들어 주는 찬스메이킹이었으니까.

우글대며 몰려드는 수비수.

그 중에는 반 다이크가 있다.

찰나.

반 다이크는 내가 움직일 길을 예측하고 한 발짝 움직였다.

대단한 놈이다.

내 자그마한 몸짓만 보고도 방향을 예측하다니.

그러나 내 몸은 일반적인 축구선수의 신체가 아니다.

극도로 짧은 딜레이.

온몸의 모든 근육이 작동하면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려던 몸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틀어졌다.

"······!"

수비들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는 사이.

왼쪽으로 크게 한번 치고 들어가면서.

단숨에 공간을 열어젖혔다.

슈팅 직전에 아놀드의 몸을 날린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온다.

다소 위험을 감수한 태클.

하지만 깔끔하고, 좋은 태클이다. 일반적이었으면 공을 놓쳤을 태클.

하나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슛하려던 공을 발바닥으로 뒤로 빼내며 백스텝.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홱 제치고.

"미친!"

동요하는 수비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봤다. 기회다. 이 자식들은 이제 내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한다. 섣불리 예상하고 움직이지 못한다.

나보다 먼저 움직여야 날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움직이는 걸 보고 움직이면?

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툭!

한 번 접고, 방향 틀고. 수비들이 우르르.

그리고 다시 방향 틀고, 어깨 들이밀고.

"미친놈!"

오로지 반 다이크만이 시뻘게진 눈으로 끝까지 쫓아온다.

와, 징하다.

어쩔 수 없다. 어깨를 들이밀면서 무게 중심을 살짝 앞으로 이동시키고, 손으로 그의 가슴을 지그시 밀었다.

"흡!"

축구선수는 발뿐만 아니라 손도 잘 써야 한다.

그리고 러닝백은, 공을 품에 안고 한쪽 팔로는 선수들을 밀쳐 내기 때문에.

누구보다 손을 잘 쓴다.

상대의 무게 중심을 조금이라도 틀어버리는 내 손짓에 반 다이크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Yeaaaaaaaaaaaaaaaaaaa!"

그때서야 내 귓가에 함성소리가 들렸다.

마치 음소거에서 갑자기 소리가 켜진 것처럼.

모든 수비가 무너지고 공간이 열렸다. 남은 건 알리송 골키퍼 하나.

여기까지 수비수를 다 제쳤다.

설마 골키퍼 하나를 두고 내가 찬스를 놓칠까.

뻐어어엉!

"제-프!"

골키퍼가 손을 댄다고 한들,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강한 슈팅을 때려 박아 버리면서.

몰려드는 동료들의 격한 포옹에 몸을 맡겼다.

"미친놈!"

"금방 뭐야? 대체?"

"수비수들을 왜 얼간이로 만드는 거야? 미친 자식아!"

뭐.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이리 호들갑을.

< 148. 박싱데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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