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로드킬 (2) >
골을 넣기 위해선 슈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기회에서, 정확한 방향으로 밀어 넣는 유효슈팅이 아니라면, 단지 난사에 불과하다.
어쩌다 슈팅이 골문을 빗나가는 건 괜찮다.
그러나 그런 난사가 많아지면, 패스를 해 주는 미드필더들도 지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걸 생각하면, 제퍼슨 리는 현재 미드필더들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선수다.
[제퍼슨 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유효슈팅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회를 찾아 들어가, 늘 골대 안으로 정확한 슈팅을 시도하죠!]
맨유를 상대로 넣은 동점골이 그러했다.
"빌어먹을 자식들!"
"리그에서 주급은 가장 많이 쳐 받으면서!"
"20살짜리 애송이 하나를 못 넘어뜨리냐!"
"애송이라기엔 너무 크긴 한데."
올드 트래포드의 관중들은 일제히 수비들을 욕하기 바빴다.
맨유의 수비는 분명 자리를 먼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제퍼슨이 슈팅을 때리는 걸 허용했다. 첫 슈팅이 너무 가볍게 골문을 갈라 버렸다.
"저건 미친놈이야!"
눈썰미가 예리한 관중들은 제퍼슨이 어떻게 슈팅을 때려는지,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고 소름이 돋았다.
"수비를 오히려 이용했지."
"기묘하게 각도를 틀어 버림과 동시에, 태클을 피하는 척하면서 그냥 슈팅 각도를 열어버린 거야."
"맙소사! 저런 공격수가 고작 스무 살이라고?"
"도대체 호나우두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거야!"
"호나우두보단, 그냥 리오넬 메시인데."
맨유팬들이 느끼는 감정은 관중석에서 보이는 반응 그대로였다.
도저히 통제 불가능한 선수를 상대팀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공포감.
과거와 현시점 세계 최고 선수들의 이름이 저절로 떠올려졌다.
제퍼슨 리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선수라는 걸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음투쿠지! 음투쿠지! 음투쿠지!"
"너밖에 없다! 제발 저 자식을 막아 줘!"
그나마 맨유팬들에겐 희망이 하나 있었다.
세네갈 특급 음투쿠지.
전형적인 박투박형 미드필더로, 별명은 아프리카 코뿔소였다. 저돌적인 드리블과 흑인 특유의 유연함과 탄력 넘치는 플레이, 거기에 굵은 팔과 다리에서 터져 나오는 힘까지.
맨유가 그나마 유로파에서 선전하고, 어쨌든 리그에서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노릴 수 있던 것엔 그 선수가 있었다.
[음투쿠지의 맹렬한 돌파에 캉테가 무너집니다!]
[대단하네요. 캉테가 보기보단 아주 다부진 선수인데요. 음투쿠지는 코뿔소란 별명 그대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뭐? 검은 제퍼슨이라고?"
"흥! 웃기는 소리! 제퍼슨이 하얀 음투쿠지지!"
사람들은 늘 싸움을 붙이기를 좋아하고, 줄 세우기를 좋아한다.
제퍼슨은 피지컬 부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선수다.
프리미어리그팀뿐만 아니라 라리가, 리그앙, 터키 리그까지.
그에게 제대로 무너지지 않았나.
그렇지만 자부심 강한 맨유팬들도 내세울 수 있는 선수.
바로 음투쿠지였다.
흡사 전성기의 야야투레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에 힘까지. 몇몇은 야야투레보다 낫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매력적인 선수였다.
[맨유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하베르츠! 오른쪽으로 오도이에게 길게 찔러주는 패스! 오도이 받고, 곧바로 중앙으로 파고드는 제퍼슨에게 짧게 내줍니다!]
"이야아아아아아!"
그런 선수가 있다.
필드에서 단지 공을 잡기만 해도, 엄청난 환호가 쏟아지는 선수가.
공만 잡아도 사람들에게 기대감과 또는 반대편에겐 공포감을 심어 주는 선수.
제퍼슨이 그랬다.
"제기랄!"
"매과이어! 자리 지켜! 내가 견제할게!"
음투쿠지는 짧은 영어로 수비진에게 소리친 뒤, 맹렬하게 몸을 돌려 제퍼슨의 대각선으로 치고 들어갔다.
[음투쿠지가 제퍼슨을 향해 달려갑니다!]
[모든 팬들이 기대했던 장면이죠!]
첼시팬들도 긴장 가득한 눈빛으로 그 싸움을 지켜봤다.
제퍼슨을 믿는 팬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도 음투쿠지 특유의 탄력성 넘치는 피지컬은 경계의 대상이었으니까.
제퍼슨은 대각선에서 치고 들어오는 음투쿠지를 흘깃 확인했다.
그 짧은 찰나.
여러 생각이 오갔다.
'저번처럼 기술로?'
저번 시즌, 음투쿠지는 아직 덜 여물었다.
피지컬은 최고였지만 영리한 수비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제퍼슨은 그를 발기술로 농락하며 무너뜨렸다.
'이번에도?'
음투쿠지의 성장은 눈부셨다. 듣기로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탐내고 있다든가.
제퍼슨은 선택했다. 기술로 제치겠다고.
음투쿠지가 어깨를 들이미는 순간.
툭!
특유의 고스트 스텝이 터져 나오며 제퍼슨의 역방향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젠장!"
음투쿠지는 놀랍게도 욕을 내뱉으면서까지 제퍼슨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예측했던 것처럼 그 동작을 따라온 것이다.
'아니지. 예측이 아니라 내 움직임에 곧바로 반응한 거야.'
제퍼슨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표정을 보건데, 순전히 감각과 동물적인 본능에 따라 제퍼슨의 움직임을 따라온 것이다.
'세계 최고의 피지컬 괴물이랬나'
분명 회귀 전에, 그렇게 불렸던 선수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제퍼슨은 묘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곁으로 다시금 다가오는 음투쿠지를 보고 그 자리에서 급정거하듯이 멈추면서 온몸에 힘을 주며 음투쿠지를 등졌다.
그리고.
"Holy Shit!"
"오! 세상에! 제-프!"
"제프! 제프! 제프!"
그것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있는 힘껏 달려간 음투쿠지가 제퍼슨의 몸에 튕겨 나가는 장면은 흡사······.
"로드킬 당하는 거 같은데?"
"근데 코뿔소가 로드킬을 당할 수가 있나?"
"덤프트럭이면 가능할지도."
"그래도 범퍼가 깨지겠지. 지금 제퍼슨은 여유롭게 공을 몰고 가잖아."
"그럼 뭔데?"
"전차에 치였다고 봐야겠지."
첼시팬들의 실없으면서도 진지한 농담에, 바로 옆 섹터에 있던 맨유팬들은 괴성을 내질렀다.
"적어도 필드에 사람이 아닌 녀석을 풀어놓는 게 어디 있냐! 이 빌어먹을 웨스트 런던 놈들아!"
***
음투쿠지를 제치자 멍한 표정을 지은 수비들이 보였다.
아니, 나도 쟤가 저렇게 튕겨 나갈 줄은 몰랐지.
왜 그렇게 다들 괴물 같은 눈빛으로 보는 거야?
"네 이름은 제퍼슨이 아니라 제이슨 일지도 몰라."
매과이어가 그렇게 소리쳤다.
"방금 음투쿠지를 죽여 버렸잖아! 제이슨처럼!"
아아. 그 공포영화의 살인마 제이슨.
이젠 이상한 별명도 잘 붙는다.
그리고 매과이어 이 자식, 조금 귀엽다.
고작 그 찰나. 몇 마디 말을 던져 내 집중력을 빼앗으려는 속셈이다. 앙큼하긴. 그딴 것에 넘어갈까보냐.
선수들 사이의 심리전엔 도가 텄다.
수많은 트래시 토크 속에서도, 내가 상대를 농락하면 농락했지. 어줍잖은 것에 신경을 빼앗길 리가 있겠나.
침착하게 매과이어 앞까지 공을 끌고간 후.
그의 태클을 기다렸다.
오히려 공간을 열어줬다. 발만 뻗으면 공을 쳐낼 수 있을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매과이어는 끝내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발을 쭉 뻗는 스탠딩 태클.
그 타이밍에 맞춰 공을 발바닥으로 뒤로 끌어온 뒤, 망설임 없이 때렸다.
뻐어엉!
"Blues! Blues! Blues!"
협소한 공간에서, 반박자 빠른 슈팅으로 골문 구석에 정확히 두 번째 골을 집어넣고.
여전히 괴성을 질러 대는 원정팬을 지나치며 소리쳤다.
"해트트릭할 테니까, 그때 내지를 함성은 아껴 두세요!"
암.
벌써 목이 갈라지면 안 되지.
***
두 번째 골을 넣으며 2대 1로 역전하자,
분위기는 우리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한때 모든 팀에게 지옥이라고 불렀던 올드 트래포드였건만, 우리는 마음껏 그들을 유린했다.
무언가 웨스트 브롬전이 팀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느낌이다.
선수들이 미쳐 날뛴다.
오도이는 맨유의 왼쪽을 찢어 버리고 있었고, 풀리시치는 물오른 감각을 제대로 선보이며 수비들 한둘쯤은 간단히 제쳤다.
툭!
"제프!"
나에겐 많은 파트너가 있다. 우트, 타미, 오도이, 하베르츠까지.
하지만 여전히 호흡 면에선 풀리시치가 최고다.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발을 맞추니까.
그는 박스 안으로 가볍게 공을 띄워 줬다.
"미친!"
누군가는 그 킥의 높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릴 터.
조금은 느리고, 위로 붕 뜨는 공.
골키퍼가 튀어나와 처리할 수도 있는 공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뛰어오른다면 다르다.
예측했던 것처럼, 그 지점으로 먼저 가면서 뛰어올랐다. 골키퍼가 반박자 느리게 손을 쭉 뻗으며 뛰지만.
뻐엉!
왼발, 오른발 그리고 지금 헤더까지.
이마에 정확히 맞은 헤더 슈팅은 직선으로 레이저처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Yeaaaaaaaaaaaaaaa!"
나에게 달려오는 선수들을 떨치면서 원정석으로 달려갔다.
살면서 받아 온 모든 스트레스를 쏟아 내는 것처럼, 공룡처럼 함성을 꽥 질러 대는 원정팬들에게 다가갔다.
아까 봤다.
저번에 경기장 밖에서 나한테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하던 그 꼬마 팬.
우리 감독에겐 누구세요? 라고 하던 그 꼬마 팬이 웃으며 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사연을 SNS를 통해 들었다. 병을 앓고 있다던가.
"제프! 너무 멋졌어요!"
"오늘만?"
"아니요! 골 넣을 때마다요!"
"그럼 매일 넣어야겠네."
난 피식 웃으며 축구화를 벗었다.
"자. 오늘 해트트릭한 축구화야. 잘 간직해."
꼬마 팬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울 거 같은 표정이다.
"평생 가보로 보관할게요!"
가보까지야.
"아니면 나중에 제퍼슨 박물관이 생기면, 거기에 기증할게요!"
흠.
꿈이 야무지구나.
***
[첼시, 맨유를 짓밟으며 리그 최선두자리 지켜.]
[제퍼슨 리, 2경기 연속 해트트릭 폭발! 3슈팅 3골!]
[제퍼슨 리에게 슈팅할 기회를 내주는 것 자체가 패배의 단초.]
[첼시 감독, '내가 벤치에 없어도 문제가 없다. 제퍼슨이 필드에 있지 않나?']
***
리그에선 감독은 벤치에도 앉지 못했지만, 챔피언스리그는 다르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마지막 6차전 경기, 발렌시아를 홈으로 불러들인 우리는 나를 제외한 지루, 타미, 우트라는 쓰리톱을 내세우면서 박살 내 버렸다.
"그렇지! 이제야 축구가 축구다워 보이네!"
감독은 그렇게 환호했고.
관중들도 그의 의견에 상당히 동조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덴마크 감독의 축구가 재밌단 말이야."
"맞아. 제프가 없어도, 일단 스트라이커를 제대로 쓰잖아?"
"경기가 재밌어. 제프가 챔스에 안 나온다고 해서 좀 아쉬웠는데, 우리 팀 스트라이커들이 이렇게 다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첼시 팬들도 이젠 필마르크 감독의 스트라이커 활용에 감탄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첼시는 스트라이커다운 스트라이커가 없던 팀이 아닌가.
그런 팀에서 스트라이커 네 명이 고루 득점을 올려 주고 있으니.
참 감회가 새로울 거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 첼시. 리그 전반기 압도적인 질주!]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레스터 시티 상대로 5:2 승리!]
[프리미어리그 17라운드, 첼시 3대 1로 에버튼 격파!]
[제퍼슨 리, 17라운드까지 리그 득점 27득점! 2위 해리 케인의 13점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며 득점왕에 한걸음!]
FA컵 일정이 발표되고, 그동안 우리는 연이어 리그팀들을 격파했다.
그리고 모든 팀들이 살 떨려하는 순간.
오직 프리미어리그에서만 즐길 수 있는, 그 빌어먹을 일정이 다가왔다.
"박싱데이다!"
그리고 그 박싱데이의 초입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만난 팀은.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리버풀이었다.
[미리 보는 결승전? 1위 첼시 VS 2위 리버풀]
[커뮤니티 실드에 대한 복수전, 리버풀은 첼시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 147. 로드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