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44화 (144/258)

< 144. 말하는 대로 (2) >

[필마르크 감독, 시즌 18경기 16승 2패! 그의 지도력에 찬사를.]

[첼시, 스완지시티를 2대 0으로 꺾고 1위 자리 유지!]

[제퍼슨 리, 리그 50골을 향한 득점포 폭발! 2골 뽑아내며 스완지를 무너뜨리다!]

[스완지 감독, '첼시는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뛰어난 팀이 아니다. 오로지 제퍼슨 리라는 선수 하나로 인해 팀의 퀄리티가 업그레이드된 팀이다.']

우리 팀의 상승세는 대단하다.

저번 시즌에서도 리그 3위와 세 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경쟁력을 입증하긴 했다.

그때만 해도, 프리미어리그는 아직 리버풀과 맨시티의 양강 체제가 굳건했다.

유럽에서도 첼시는 그렇게 위협적인 팀이 아니었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양강 체제를 깨부수며 1위를 달리고 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만만치 않은 세 팀을 상대로 경쟁력을 입증했다.

"누군가는 첼시를 꺾어야 해."

"도저히 질 것같이 보이지 않아."

"기세가 장난이 아니야!"

어느새 리그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리그 경기를 치를 때마다, 상대팀은 남다른 각오로 경기에 임해왔다.

아무리 약팀이어도 공은 둥근 법이다. 이 악물고 뛰는 선수를 상대로 전심전력하는 것도 심력을 꽤 쏟는 일이라 서서히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승리하고 있고, 좋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성적에 있어 많은 사람은 의외로 감독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감독의 능력이 아니라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라는 의견이 꽤 많았다.

"뭐 맞는 말이지."

그리고 감독은 쿨하게 인정했다.

기자들하고 사이가 워낙 좋지 않은 것도 영향이 있다.

언론에서는 연신 필마르크 감독을 우연히 '날 잘 데리고 온' 운 좋은 감독이라고만 여기고 있으니까.

물론 우리 감독의 수비 전술은 끔찍하다.

시셀도와 뤼디거가 있는데도 클린시트를 유지하기 힘들다. 케파가 아니었으면 팀의 실점은 꽤 높았을 것이다.

하나 다른 면모에서는 특출났다.

오로지 최전방에 힘을 실어 줘서 어떻게든 득점을 만들어 내는 전술에 특화되어 있다.

[필마르크 감독 부임 이후, 첼시의 평균 득점 2배로 상승!]

기량이 낮아도 득점을 낼 수 있게 전술을 짜는 데 도가 텄다고 해야 할까.

"간격을 살펴봐, 간격을! 그리고 공격수는 끊임없이 최전방을 바라보라고.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상상해!"

필마르크 감독은 선수 시절 수비수였다.

그는 상대한 모든 공격수의 유형을 철저하게 분석했단다. 그러다 보니 공격수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스트라이커가 어떻게 움직여야 가장 위협적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그에게 많이 배웠다.

회귀 전에는 2선에서 뛰었으니까.

그런 내가 지금 스트라이커로서 활약하는 데 감독의 조력이 큰 도움이 됐다.

"제퍼슨, 너는 최대한 유기적으로 움직여라. 사실 이젠 너에게 지시할 건 없어. 자유롭게 움직여. 체력이 되면 내려와서 받고, 양옆으로 빠져도 돼. 네 뒤에 있는 미드필더들을 믿어라!"

솔직히 말해 내 폭발적인 득점력의 원인은 이거였다.

오로지 나의 득점을 위해 다른 동료들이 필연적으로 희생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었으니까.

"그게 가장 효과적이지. 세 개의 슈팅을 때려서 두 골을 넣잖아?"

감독은 이것이 가장 위력적이라고 판단했다. 굳이 미드필더가 슈팅을 날리지 않아도,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태가 팀이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여겼다.

뭐, 다행히도 우리 팀 선수들은 순둥순둥한 편이고.

팀 내에서 내 입지가 워낙 절대적이라 대놓고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

"더 뛰란 말이야! 그때는 끊임없이 고개를 돌려! 나와 동료의 간격을 지켜보라고!"

감독은 그 외에도 선수들에게 전술적 지시를 많이 내렸다.

수비 전술에선 낙제여도, 중원에서부터 공격진으로 이어지는 전술적 역량은 대단했다.

'솔직히 대단하군.'

이학현의 지식과 경험이 없었다면 전술의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괜히 회귀 전에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던 감독이 아니다.

"너 저거 다 이해했어?"

"응."

"······역시 대단해."

우트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얼굴이다.

스트라이커로서 잔뼈가 굵은 그도 감독의 지시를 따르긴 하지만, 완전히 이해는 하지 못했다.

우트뿐만이 아니다.

스트라이커를 위해 뛰어야 하므로, 미드필더도 기존의 전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임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의미야?"

미드필더에서 경쟁력 있는 캉테와 하베르츠, 그리고 조르지뉴는 전술적 이해도가 뛰어나다. 완벽히 이해하고 그걸 훈련에서 나타내려고 했다.

다만 올리버는 좀, 이해도가 떨어졌다.

"오케이. 알겠어."

우트가 한참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유레카를 외치는 환한 표정이다.

"결국엔 제프한테 패스하라는 거잖아?"

어.

그게 그렇게 되나.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그 세부 내용이 다 생략된 거 같은데.

그 말을 한참 생각하던 하베르츠가 떨떠름한 얼굴로 끄덕였다.

"······맞아, 그게 핵심이야."

하베르츠는 차마 그 세부 전술을 설명하기 어려운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긴. 어쨌거나 핵심을 짚은 우트였다.

감독의 전술은 결국 내가 좀 더 확실한 득점을 넣을 수 있게 지원하라는 것이었으니까.

"오! 우트! 똑똑한데?"

"올리버. 내가 이래도 분데스리가에서 날고 기었던 몸이었어."

올리버에게 어깨를 펴는 우트의 모습에 하베르츠는 혀를 쯧쯧 찼다.

"하베르츠, 너는 불만 없어?"

하베르츠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미드필더면서도 시즌 20골을 넣던 괴물 같은 선수다.

팀의 중심이 되던 선수다. 그런 선수가 나에게 맞춰줘야 하는데, 하베르츠는 감독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르는 편이다.

"전혀."

"그래? 네가 원하는 플레이가 있을 거 아냐?"

"지금이 더 편해. 레버쿠젠에서처럼 직접 골을 넣으려고 돌파하는 것보단 나아."

그런가.

"패스만 하면 넣어 주는데. 이제야 내가 미드필더인 것 같아."

하베르츠는 그답지 않게 옅은 미소까지 띄웠다.

흠.

뭔가 팀이 이상하게 잘 돌아가네.

***

첼시와 아스톤 빌라의 13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당일.

아스톤 빌라 팬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홈구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그놈은 수비해서 막을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차라리 우리 팀처럼 공격만 퍼붓는 팀이 첼시를 잡을 수 있어."

"맨시티도 그 자식을 못 막아서 무너졌잖아?"

"그래. 제프를 막을 생각 따위는 버리는 게 좋아. 차라리 미친 듯이 공격만 퍼붓는 우리가 오히려 확률이 높아!"

빌라팬들은 현재 팀의 성적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6승 5패라는 성적.

골득실차 +2점이라는 성적.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득점 3위 팀이라는 것까지.

심지어 파울 수는 스토크 시티 다음으로 높을 정도다.

어쨌거나 빌라는 강등권 팀이라는 예상을 무색하게, 중위권으로 상당히 잘나갔다.

화끈한 공격력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 전진. 그리고 무승부 따위는 버리는 진짜 마초적인 축구를 보여 주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첼시도 무서운 상대가 아니다.

제퍼슨을 막기 위한 수비 비책?

"그딴 게 세상에 있을 리가!"

"그냥 골을 더 많이 넣어서 이기는 걸 생각해야지!"

아스톤 빌라는 홈구장에서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랜드 감독의 '전진, 또 전진!'을 외치는 축구인 만큼, 홈에서는 그 고삐를 늦추는 법이 없다.

"오, 이런! 제퍼슨이 또 나왔군."

"제퍼슨이 시즌 80골을 넣겠다고 했나?"

"미친 자식이지!"

"저번 시즌 우리 팀 전체 득점이 50골이었는데 말이야."

모두가 그 인터뷰를 봤다.

리그에서 50골을 넣겠다는 그 화끈한 인터뷰.

의외로 빌라 팬들은 호감을 느꼈다.

팀의 성향과 맞물려 빌라 팬들도 거침없는 성격이었는데, 제퍼슨의 인터뷰가 남자답다고 느낀 것이다.

"좋아. 이번 시즌 우리 팀이 더 많은 득점을 할지, 아니면 제퍼슨이 많이 할지 보자고!"

몇몇 이들이 실없이 웃으며 이상한 내기를 시작할 무렵.

경기는 휘슬과 함께 시작됐다.

"전진하라! 빌-라!"

아스톤 빌라는 빠른 축구를 신봉한다.

"백패스는 절대로 하지 마!"

그리고 토론토를 이끌고 우승컵을 수집했던 그랜드 감독의 철학이 여지없이 묻어나는 축구가.

뻐엉!

서로 시작하자마자 슈팅을 두어 개 주고받으면서 오늘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보여 줬다.

"우우우우우우!"

제퍼슨이 공을 잡는 순간, 빌라 파크는 그야말로 야유로 가득했고.

"죽여 버려! 저 자식들을!"

"Goal! Goal! Goal! Goal!"

빌라 선수가 공을 잡으면 연신 골을 외쳤다.

시작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선제득점은 뒤도 안 보고 전진하던 아스톤 빌라가 먼저 터뜨렸다.

"그렇지! 제프! 봐라! 이게 축구지! 응? 공격 축구 하고 싶으면 이 팀으로 오라고!"

그랜드 감독은 옛 제자였던 제퍼슨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제퍼슨은 피식 웃었다.

"바둑 알아요? 감독님?"

"응?"

"한 점 정도는 내주고 해야 맞는 경기가 있는 법이죠."

바둑은 몰랐지만, 빌라의 그랜드 감독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은 느낄 수 있었다.

"음. 아무리 프로무대라지만, 좀 살살하지?"

하나, 제퍼슨 리는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선수였다.

"Yeaaaaaaaaa!"

하베르츠가 공을 잡고 돌파를 시작했다.

모나코전 이후로 하베르츠에게도 변화가 왔다. 단순히 패스만 찔러주는 역할이 아니라, 때로는 엄청난 탈압박과 드리블을 보이며 상대의 전형 자체를 흩트려 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동료들에게 기회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퍼슨과 하베르츠는 축구 천재라고 불리는 센스를 타고난 선수들.

그저 간단히 공을 서로 주고받으며 전진하는 것인데도, 아스톤 빌라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제기랄!"

"아무리 우리가 수비가 약해도, 허수아비를 세워 놓은 건 아니잖아!"

간결하면서도, 그리고 빠르게 전진한다.

공은 선수와 선수를 오가지만, 점점 빠르게 그리고 간결하게 어태킹 서드까지 파고들었다.

"달려! 달려!"

"Goal! Goal! Goal!"

소수의 첼시 원정팬이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둘 다 선수 한둘쯤은 그저 아주 감쪽같이 벗겨 내는 발재간과 센스가 있지 않은가.

제퍼슨의 패스를 하베르츠가 받고, 하베르츠의 패스가 양 날개를 오가고.

빌라의 수비진이 허둥지둥 무너지다가.

단 한 번.

그 누구도 보기 힘든 유일한 패스 궤적을.

하베르츠가 찔러주는 순간.

제퍼슨만이 오로지 그 궤적을 예측한 것처럼 움직일 뿐이다.

"미친놈!"

패스를 준 순간, 그리고 그걸 받아 내는 제퍼슨의 뒷모습을 본 순간.

하베르츠는 그렇게 감탄을 터뜨렸다.

"미친놈!"

그리고 그 순간에 빌라에서도 욕을 터뜨리는 선수가 있었다.

"제기랄. 널 상대하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기분이야!"

제임스 로드릭이 격렬하게 외치며,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Yeaaaaaaaaaaaaaaaaaaa!"

"Blues! Blues! Blues!"

누군가는 그런 의문을 가진다.

제퍼슨은 눈이 6개쯤 되는 거 아니냐고.

예측하지 못한 우측에서 들어오는 태클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순간적인 딜레이로 툭 끊어 내면서.

아주 가볍게 골문을 흔들어 버리는 제퍼슨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제에에에에프!"

고작 5분 사이에 터져 버린 동점골.

"몇 골 남았더라."

제퍼슨은 얼마 전 인터뷰를 떠올렸다.

리그 50골.

말하는 대로 이뤄지려면 이제 앞으로 몇 골을 더 넣어야 할까.

지금까지 올린 득점기록을 계산하던 제퍼슨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넣다 보면 넘겠지."

스트라이커는 스트라이커답게.

그저 우직하게 골을 넣다 보면, 결국 말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다.

< 144. 말하는 대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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