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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39화 (139/258)

< 139. 이제 스무살 (1) >

첼시는 스토크를 1대 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도 꽤 잡음이 흘러나왔다.

첼시에선 션 올리버가 부상으로 1주에서 2주 아웃.

스토크에선 두 명의 선수가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수비수 쇼크로스와 찰리 아담은 나에게 크게 당해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나올 정도다.

경기가 끝나고도 시끌벅적하더니, 결국엔 문제가 발생했다. 조금 큰 문제가.

[잉글랜드 축구협회, 8라운드 제퍼슨의 비신사적 행위에 대해 사후징계를 고려 중]

"어처구니가 없군."

"정작 반칙을 무수히 저지른 놈들이 누군데?"

억울할 일이었다.

내로남불이긴 하지만, 내가 보여 준 한 장면이 카메라에 딱 잡힌 게 문제였다.

막판에 찰리 아담과 부딪치다가 크게 팔꿈치를 썼다.

그건 명백한 보복행위다.

나 역시도 그걸 각오했다. 당시 심판이 안 보는 사이 타미를 끔찍하게 쓰러뜨리던 찰리 아담의 행태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뭐가 끊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옐로카드 받으면 된 거 아냐?"

"그렇긴 한데."

현장에서 옐로카드를 받았다.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찰리 아담이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으니까.

다만 그것이 사후징계감인가는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사항이었다.

"뭐, 사항에 따라선 사후징계가 나올 수도 있지."

어쨌거나 내가 손을 쓴 건 명백한 사실이다.

빡빡한 규정을 들이밀고 깐깐한 양반들이 머리를 맞대면 사후징계는 나올 수 있다.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나도 이번 경기는 깨끗하게 한 게 아니니까.

징계를 받아들일 만하지.

한데 스토크는?

"이것들이, 누굴 호구로 보나."

스포츠는 공정해야 하는 법이다.

하나, 세상사가 늘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는 억울한 판정에 희생되고, 누군가는 그 판정으로 인해 혜택을 받는다.

한데 사후징계 얘기가 나오자마자 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필드 위의 반칙왕 제퍼슨, 파울 횟수 리그 10대 선수 중 1위!]

"리그에 10대 선수가 얼마나 있다고 기준을 저렇게 잡아?"

[제퍼슨 리. 거만한 천재의 표본인가? SNS 할리우드 여배우와 염문설.]

[잉글랜드 풋볼을 짓밟는 미식축구 스타의 거친 플레이, 제퍼슨 리. 사후징계는 당연한 일.]

"아주 작정하듯이 나오는군."

선수단도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제프. 이 기자 놈들은 내가 목을 분질러 버릴 테니, 신경 쓰지 마라."

감독도 콧김을 씩씩 내뱉으며 소리칠 정도였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세계 최고가 됐다는 거 아니겠어요?"

세계 최고는 수많은 질시와 시기를 동시에 받는다.

인정할 건 인정하지만, 실력 외적인 부분에서 그 선수를 조롱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이때다 싶은 거다. 평소 우리 감독은 기자들과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으며, 나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거기에 내가 지금까지 보여 준 몇몇 강렬한 워딩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꽤 있었다.

티는 안냈지만 나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지금이 기세 좋은 나와 첼시를 흔들기 딱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너무 뻔한 의도라서 한숨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다. 실력 좋은 선수 중에, 언론들의 포화에 멘탈이 무너져 한 시즌을 날려 버리는 선수도 비일비재한 게 이 판이다.

나도 멘탈이 강한 편이지만, 언론이 이런 식으로 비꼬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제가 해결할게요. 사후징계도 마찬가지고요."

"뭐?"

"제 문제니까요."

이것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려 줄 생각이다.

"제크 팀장님?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시죠?"

***

[첼시, 프리미어리그 13개 구단과 함께 축구협회에 성명서 제출, '스토크 시티와 찰리 아담의 위험한 플레이'에 대한 정식 문제 제기.]

제퍼슨의 에이전시는 일이 터지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소속된 선수의 이미지 관리도 에이전시에서는 중요한 일.

이대로 가다간 거만하고, 인성도 좋지 않은 10대 선수로 각인될 수도 있기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당장 모든 자료 모아서 정식으로 문제 제기해!"

그동안 에이전시가 유럽에 구축한 정보망은 대단했다.

북미대륙의 스포츠 에이전시를 잠식한 자본을 끌어와 여기저기 손을 뻗었고, 그것이 빛을 발했다.

찰리 아담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과거 행적을 철저하게 파헤쳤다. 그저 거친 축구로 표현되는 비열한 반칙까지 모조리 긁어냈고, 피해를 본 선수들의 자료도 전부 다 모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첼시 구단 수뇌부와 뜻을 맞춰 협회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사실 스토크뿐만 아니라 모든 구단이 거친 플레이를 자주 하긴 하지만, 스토크는 그 도를 넘는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최근에 주전 선수를 꽤 잃은 여러 구단에서 첼시에 동조하는 뜻을 보였고, 공동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이르렀다.

"언론들 싹 다 움직여!"

그것뿐만이 아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형평성, 제퍼슨 리에게만 가혹한 잣대.]

[자국 선수 살리기 위해 제퍼슨 죽이기 나서나?]

[캡틴 아메리카가 영국 축구에서 받는 차별]

미국 스포츠 언론이 일제히 기사를 쏟아 냈다.

에이전시가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날선 기사들이 연신 쏟아졌다.

기사들의 격한 논조에 오히려 당황한 건 이 상황을 부탁한 제퍼슨이었다.

-너무 격렬한 거 아닌가요?

"제퍼슨 리라는 이름은 단순한 미국 축구선수가 아닙니다. 여기 미국 시민들한테는 스포츠 영웅이죠. 벌써 할리우드에서는 추후에 영화로 만들겠다는 사람들도 있는 판인데 말이죠."

제퍼슨은 본인이 자각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더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멕시코에게 두 번이나 치욕을 선사한 선수였으며, 골드컵을 되찾아 왔다. 그뿐인가? 모든 스포츠에서 1등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이다. 하나 제퍼슨은 유일하게 힘쓰지 못하는 종목인 축구를, 그것도 종주국인 잉글랜드에서 씹어 먹다시피 하며 엄청난 활약을 이어 가고 있지 않은가.

"제퍼슨이 부당하게 징계를 당한다고?"

"미쳤군!"

"이거 길들이기야. 길들이기. 감히 누굴 길들이려고?"

미국팬들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흉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퍼슨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미국에선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응원하는 게 아주 흔한 일이다.

특히 미네소타주와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이런 모습이 더 활발했다.

골이라도 넣는다면, 그날 하루는 온갖 술집과 거리,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퍼슨과 관련된 얘기만 올라온다. 근래에는 미식축구 뉴스와 더불어 스포츠 일간지에 제퍼슨에 대한 기사가 연신 실리니 오죽한가.

"그의 이미지는 우리 회사 이미지지."

"슈퍼스타는 슈퍼스타로 남아야 해. Badass라면, 미워할 수 없는 놈이어야 된다고."

그다음에는 제퍼슨의 후원사들이 나섰다.

"만일 우리가 지금 제프를 안 도와주면?"

"다음 스폰십 계약때 탈락하겠죠."

"제프에게 후원을 해주고 싶단 기업이 지금 어디 한 둘입니까?"

제퍼슨의 이미지가 곧 후원사들의 이미지에 직결되는 건 당연한 일.

더구나 제퍼슨을 후원하기를 원하는 회사는 수도 없이 많았다. 자칫 이번 일에서 제퍼슨이 몇몇 후원사에서 마음이 떠난다면, 그 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제퍼슨에게 이상한 말 지껄인 신문사들에 넣은 광고 다 빼!"

그간 미국 자본은 유럽 축구계에 많이 스며들어 있었다.

중국과 중동의 자본만큼은 아니어도, 엄청난 미국 자본이 유럽 축구계에 흘러가고 있었다. 후원사들과 미국 기업들이 일제히 움직이자 제퍼슨에게 날선 비판을 벌이던 영국 언론들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스토크와 찰리 아담의 도 넘은 반칙.]

[스포츠 정신 실종, 협회는 공평한 잣대가 필요하다.]

[축구계에서 없어져야 할 비열한 반칙. 제퍼슨 리는 오히려 피해자]

스토크와 찰리 아담에게 비난의 방향이 바뀌었고, 축구협회의 형평성 없는 잣대에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축구협회는 제퍼슨에게 사후징계를 3경기 정지에서 2경기 정지로 바꿨다.

거기에 스토크 시티에게 벌금이 부과됐고, 찰리 아담을 비롯한 2명의 선수가 3경기 정지 징계를 받았다.

공평하게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내가 팔꿈치로 찰리 아담을 공격한 건, 경기 중 보복을 위해 한 짓이다. 그 행동에 반성하고, 징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제퍼슨은 사후징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간 그에게 쏟아지던 비난의 포화를 완전히 반전시켜버렸다.

[제퍼슨 리, '사후징계 합당하다. 필드에서 그런 플레이는 없어져야 한다. 반성하며, 앞으로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ㄴ캬 인터뷰 깔끔하누.

ㄴ딱 좋다.

ㄴ솔직히 지금까지 제퍼슨이 가장 억울하지

ㄴ덩치 크고 몸싸움 잘한다고 오히려 제퍼슨 반칙당해도 휘슬 안 불어 주는 경우 존나 많잖누

ㄴㅇㄱㄹㅇ;; 저번엔 옷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데도 반칙 안 불더라

ㄴ제프 못 막으니까 다 손쓰면서 더럽게 수비하더만. 그것까지 다 감내하면서 골 넣는 클래스 미침

에이전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방을 날렸다.

그간 제퍼슨이 당한 반칙 영상들을 편집해서 공개한 것이다.

[누가 희생자인가? VAR 도입으로도 소용없는 불공평한 심판들의 잣대. 심판협회도 각성해야 할 것.]

경기마다 제퍼슨을 막기 위해 거칠고 살인적인 태클이 쏟아졌다.

몇몇은 정당한 경고를 받았으나, 일부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제퍼슨이 과한 액션을 보이면 시뮬레이션 경고가 떨어지는 예도 있었다.

이 영상이 공개된 이후에는 제퍼슨 동정론까지 퍼져 나갔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제퍼슨이 된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첼시의 선수진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미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저 사후징계를 받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마치 한 선수를 위해 움직인 느낌이었으니까.

이런 과정을 지켜본 타 구단 선수들도 신음을 삼켰다.

특히 지금까지 제퍼슨을 막기 위해 공공연하게 반칙을 저질러 오던 수비수들의 얼굴은 거무죽죽해졌다.

"저 자식을 화 나게 해선 안 되겠는걸."

***

스토크는 제대로 혼쭐이 났다.

남자의 축구라고 불리며 미화되던 거칠고 저열한 반칙들은 언론에 샅샅이 해부되어 공개됐다. 그리고 많은 지탄이 쏟아졌다.

그간 스토크에게 당했던 클럽들이 참았던 걸 일제히 터뜨린 탓이다.

[첼시, 아스날과의 런던 더비에서 2대 1 패배]

[타미 아브라함의 득점에도 불구하고 후반전 2점 연속으로 내주며 무너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첼시 2 : 1 울버햄튼]

스토크를 혼내 준 첼시는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살짝 흔들렸다. 캉테는 아직 복귀 못 했고, 션 올리버는 스토크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됐다. 거기에 제퍼슨 리의 징계가 3경기 정지에서 2경기로 완화되었지만, 팀의 주포가 빠진 건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 제퍼슨과 캉테가 동시에 복귀합니다!]

[오늘 첼시는 시즌 초반 막강했던 베스트 일레븐을 그대로 들고 왔습니다. 2경기 징계를 마치고 돌아온 제퍼슨 리와! 한 달간의 부상을 털어 낸 은골로 캉테가 동시에 복귀하네요.]

[맨시티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겠어요. 원래 쉽지 않은 상대인데, 하필 '맨체스터 킬러' 제퍼슨 리가 복귀했으니까요!]

첼시팬들은 기대 어린 시선으로 필드를 내려다 봤다.

제퍼슨 리를 맨체스터 킬러라고 부르는 건 사실 웃긴 일이다.

"제퍼슨은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팀을 죽였지!"

"고작 맨체스터 킬러가 아니야. 그냥 킬러야. 누구든 죽일 수 있어!"

아스날와의 더비전에서 패배, 울버햄튼 상대로 보였던 답답한 공격력.

그 모든 건 제퍼슨이 없어서였다. 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제퍼슨의 복귀는 관중석을 들뜨게 했다.

반면에 상대팀으로선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다.

"제기랄. 3경기 징계나 당하지."

"왜 하필 우리 팀하고 붙을 때 돌아와?"

"심지어 캉테도 복귀야!"

이번 시즌 8승 2무, 승점 26점으로 무패를 달리지만, 역대급 우승경쟁 레이스다. 리버풀은 승점이 똑같았고, 첼시는 9승 1패로 승점 27점이 아닌가.

맨시티는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였다.

이기면 1위 자리가 바뀌니까.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제퍼슨과 하베르츠가 중앙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전개됐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맨시티 입장에서는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응원가와 함께.

< 139. 이제 스무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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