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분노조절잘해 (3) >
감독은 윌리안을 이번 경기에 넣지 않았다.
좋은 선수지만, 가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시즌 초반에 더 그랬다. 더구나 상대는 스토크다. 미친 태클과 몸싸움을 즐기는 팀 아닌가.
종종 이성을 잃는 윌리안이 뛰기엔 적합한 경기가 아니다.
대신에 타미가 출전했다. 타미는 길쭉한 몸과 탄력 넘치는 유연성으로, 의외로 몸싸움에도 능했다.
"우우우우우!"
"죽여 버려!"
"저 자식의 대가리를 찍어 버려!"
찰리 아담은 나에게 한 방 먹고 나서도 특유의 거친 플레이를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거친 태클에 하베르츠와 뒤엉켰다. 차분한 하베르츠마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고, 찰리 아담도 마찬가지로 일어나서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우우우우우!"
그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는 꽤 많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짜증 나는 선수다.
그러나 같은 팀일 때는 든든하기 짝이 없는 타입이다.
물론 찰리 아담처럼 유난히 허슬 플레이를 하는 타입은 별로 없지.
스토크는 거칠었다.
저번 시즌과는 차원이 달랐다.
새로 온 토니 풀리스 감독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죽여 버려!"
저 말을 감독이 하는 게 좀 웃긴 일이지만,
선수들은 그 말을 철저하게 이행했다.
"끄억."
삐비빅!
드디어 첫 옐로카드가 나왔다.
아무리 관대한 심판이어도 봐줄 수 없는 게 나온 것이다.
찰리 아담이 도망치는 올리버의 뒤에서 목을 잡으며 헤드락을 걸어 버렸다.
와. 미친놈.
이게 UFC 경기장인가?
심지어 스토크 관중들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히려 휘파람을 불기까지 했다. 대단한 놈들이다.
"끄윽윽!"
"올리버, 괜찮아?"
"이 자식들은, 축구를 하지 않고 있어."
"너 찰리랑 좀 친했다면서?"
"워워. 필드에서는 그런 게 없지. 프로란 그런 거 아니었어?"
나와 올리버의 대화를 들은 찰리 아담이 끼어들었다.
프로란 그런 거라고?
"흠. 그렇지. 프로라면."
아까 전부터 나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양반이다.
좋아. 이게 프로라는 거지?
***
삐빅!
[스토크의 거친 태클입니다! 션 올리버, 오늘 수난을 맞이하네요!]
올리버는 홀딩형 미드필더다.
캉테처럼 필드 전체를 종횡무진으로 활약하지는 못한다. 대신 짧은 패스로 빠르게 볼을 배달시켜 주는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공이 그의 발끝을 떠나던, 말던, 상대 선수가 몸을 던져 부딪쳐 버리니 답이 없었다.
"죽겠군."
이가 절로 갈렸다.
특히 찰리 아담이 문제였다.
옐로카드 한 장을 받았건만 플레이는 여전히 거칠었다.
카드가 쌓이고, 구두 경고가 쌓이고, 파울 수가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토크 시티는 그런 팀이 아니었다.
토니 풀리스가 다시 만들어 내기 시작한 축구는 이런 거다.
"까짓 선수 하나 박살 내고 퇴장당하면 되지!"
카드로는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듯이 스토크는 연신 거친 플레이를 반복했다.
첼시 선수들의 피지컬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스토크의 새로운 선수들은 그야말로 떡대로 가득했다.
뻐어엉!
공을 잡으면 냅다 멀리 차고.
상대 선수를 향해 돌진하고.
투박하고, 화려한 발재간 따위는 없는 축구지만 위협적이었다.
평소 카드를 유도하는 드리블러 유형인 풀리시치도 좀처럼 드리블을 치지 못했다. 여차하면 반칙으로 박아 버리니, 카드를 유도하다간 몸이 부서져 나갈 것 같단 공포가 엄습하는 것이다.
"우우우우우우!"
그나마 첼시의 수비진이 거칠게 스토크의 선수들을 묵사발 내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삐비빅!
"헤이! 레프리! 저 자식들을 보라고! 내 선수들 다리를 분지르려고 하잖아! 안 보여?"
필마르크 감독은 대기심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어이. 심판한테 압박하지 마!"
"뭐라고? 이 개자식이!"
"개자식이라 했나? 빌어먹을 자식아!"
삐빅!
[이런, 벤치에서도 신경전이 벌어지네요!]
[첼시와 스토크의 감독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핏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필드뿐만 아니라 벤치까지 점점 거칠어지고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스토크 벤치의 반응이었다.
토니 풀리스는 이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거, 공 차다가 서로 좀 얼굴 붉힐 수 있는 거지. 감독이란 양반이 왜 이리 흥분해?"
감독 간의 심리 싸움도 중요하다.
토니 풀리스는 20년간 감독 생활을 해왔고, 비교적 초짜 감독인 필마르크의 신경을 제대로 긁어 버렸다. 감독이 이성을 잃으면 제대로 된 전술 지시가 될 리가 만무하다. 노련한 토니 감독은 그걸 노린 것이다.
다만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뿐이다.
***
"머리통을 날려 버려!"
수비수를 등진 채, 저 멀리 날아오는 롱볼을 지키려고 하자 수비수가 뒤에서 팔꿈치로 찍으려고 했다.
심판의 시야가 닿지 않는 절묘한 위치다.
하면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켜 공을 잡기 위해 빠져나오는 척, 팔을 휘두르며 놈의 어깨를 가격했다.
빠악!
"꺽!"
삐비빅!
휘슬이 울리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고 판단한 심판은 경고를 주지 않았다.
"이 개자식이!"
나에게 당한 수비수가 열을 올렸다.
"널 죽여 버릴 거야!"
"여긴 축구장이라고, 친구.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전쟁터로 가야지."
가나 출신의 이 수비수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너 같은 놈은 아프리카에 오면 총 맞아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그 나라는 미군의 미사일 폭격을 맞을걸?"
"이 개자식이!"
내 유들유들한 대응에 눈이 뒤집혔다.
나는 그를 가볍게 피해서, 선수들의 거친 태클 속에서도 어떻게든 압박을 피해 내고 패스를 찔러주는 하베르츠와 원투 패스를 펼치며 파고들었다.
툭, 툭툭!
일부러 약 올리듯이, 과한 액션으로 드리블을 쳤다.
상체를 크게 흔들고, 발은 화려하게 스텝오버를 펼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그랬다.
그러자 가나 출신 수비수는 눈이 뒤집혀 달려왔다.
거기까지다.
뻐어엉!
빠악!
"······!"
"어우."
"아 이건······."
한 박자 빠른 강력한 슈팅.
문자 그대로 미사일 같은 슈팅이 직선거리로 날아가다가 막혔다. 달려오던 가나 수비수는 자기 몸을 던지는 살신성인으로 슈팅을 막아 냈다.
다만, 그 막은 부위가 영 좋지 않은 곳이란 건데······.
놈은 눈이 뒤집힌 채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로 일어나지 못했다.
"어윽, 억억."
괴상한 신음을 흘려 대며.
심판은 잠시 망설이다가 벤치를 향해 들것을 가져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너 일부러 그랬지?"
"전혀."
찰리 아담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뭐, 어쩔 건데.
"너네 멋지다. 슈팅을 사타구니로 막아서라도 수비하려 하다니! 너무 열정적인데?"
"······."
찰리 아담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말한 탓에 이게 진심인지, 조롱인지 헷갈리는 표정이었다.
필드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스토크 선수들은 모두 께름칙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심판은 관대하다. 그리고 여기는 스토크의 홈구장이다. 대놓고 손과 발로 폭력을 쓰는 게 아니라면 웬만해서 넘어간다. 스토크는 이걸로 홈깡패가 됐다.
토트넘, 아스날, 레스터가 여기서 무너진 이유는 명확했다.
다만 그것이 저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을 줄은 몰랐을 거다.
"이 자식!"
일부러 더 격렬하고 화려하게 드리블을 쳤다.
수비수가 바싹 접근해 왔다.
툭!
오른쪽 발등으로 공을 살짝 들어 올리고,
왼발을 뒤로 쭉 빼면서 공을 양옆으로 잡은 다음에,
뒤로 흘리면서 뒤꿈치로 그대로 공을 푸듯이 끌어올렸다.
"우와아!"
"미친!"
"이, 이익!"
프로 무대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사포.
상대 선수를 능욕할 때나 쓸 법한 플레를, 나는 망설임 없이 사용했다. 다만 네이마르와는 다르게, 일단 공을 띄어놓고 그저 탱크처럼 우직하게 몸으로 밀고 들어갔다.
순간적인 사포, 그리고 빠른 드리블.
잠시나마 넋을 놓은 수비수들 사이로.
빈틈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그저 미친 듯이 맞고 죽으라는 것처럼 강하게 때렸다.
내가 슈팅 모션을 취하자 수비수들이 움찔거린다.
수비수들은 막으려고 아래보단, 먼저 몸이 움츠려졌다. 지금껏 당한 탓에 겁에 질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골을 집어넣을 공간을 만들어 냈다.
강하게 때리는 척, 가볍게 툭.
골문 구석을 향해 정확히 빨려 들어가는 선제 득점.
"Yeaaaaaaaaaaaaa!"
"Gooooooaaaaaaal!"
"제-퍼-슨!"
답답했던 경기 양상을 한 번에 뻥 뚫어 버리는 득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원정섹터가 아닌 홈섹터를 향해 달려가 세레모니를 펼쳤다.
당연히 스토크 팬들은 미친 듯이 발광했다.
"저 개자식을 죽여 버려!"
"머리통을 날려 버리라고!"
"개자식! 개자식!"
"빌어먹을 놈아!"
흠. 이렇게 오물을 던지면,
구단에 벌금이 부여될걸?
***
[제퍼슨 리의 슈팅! 맙소사! 라이언 쇼크로스, 얼굴에 맞았습니다!]
[강력한 슈팅이었는데요, 아 코피를 흘리는군요. 지혈이 필요합니다.]
[제퍼슨의 슈팅은 여전히 매섭습니다만, 오늘 약간 영점이 안 맞는 느낌이네요. 계속해서 약간씩 빗나가 수비수들이 막아 내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알 만했다.
제퍼슨은 평소보다 많은 슈팅을 때렸다. 골문 구석을 노리는 정확한 슈팅보단, 일단 맞고 뒈져라 같은 강력한 슛들이었다.
"흐흐흐."
필마르크 감독은 실소를 흘렀다.
이젠 누가 봐도 다 알았다.
지금 제퍼슨이 일부러 저런다는 것을.
필마르크는 실실 웃으며 스토크 벤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뜩 새빨개진 스토크 감독의 얼굴이 볼 만했다.
제퍼슨은 정말 필드 위에서 날뛰었다.
스토크는 실수한 거다.
제퍼슨은 누구보다 이런 플레이를 잘할 줄 아는 선수다.
미식축구에서 러닝백이란 포지션이 그렇다.
러닝백 자체도 피지컬이 괴물이지만, 120kg은 가볍게 넘는 라인맨들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약하지는 않다.
그런 라인맨들을 돌파하고, 또는 힘으로 이겨 내는 러닝백은 무게 중심을 이용하는 기술에서 천부적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달려오는 수비수를 가볍게 흘려보내거나.
뻐억!
"꺼억!"
또는 강하게 밀쳐 내면서.
상대가 고통스러워하고 순간적으로 중심, 또는 호흡을 잃게 만드는 바디 체킹은 아주 기본적인 기술이다.
뻐억!
"으흑!"
너무나 절묘하게 이어지는 제퍼슨의 돌파.
어깨를 먼저 밀어 넣고 가볍게 무게 중심을 역전시키면서.
그리고 아무도 못 보게 가슴을 지그시 누르거나 옆구리를 쿡 찌르는 적절한 손짓까지.
스토크의 수비수들이 갈대처럼 우수수 쓰러져 나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저 미친 자식.'
찰리 아담은 제퍼슨과 부딪쳐 날아가는 수비수를 보고 으슬으슬 떨었다.
평생 축구 선수 생활을 해 오면서 저런 선수는 처음 본다.
보통 수비수를 피지컬로 무너뜨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공격수보다 더한 피지컬을 가진 게 수비수니까.
이따금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고 수비수를 압도하는 때도 있다. 그들의 특징은 피지컬뿐만 아니라 절묘한 반칙도 곁들여 단점을 보완한다.
아무도 모르게 수비의 옆구리를 찌르거나 허벅지를 툭 치거나 하면서 중심을 무너뜨리는.
한데 찰리 아담이 본 제퍼슨은 전혀 아니었다.
'그냥 몸으로 찍어 누르고 있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인가.
미스테리하다.
스토크의 건장한 수비수들은 그야말로 떡대다. 그들을 오로지 피지컬로 부숴 버리는 광경에 몸이 떨렸다.
그는 애써 침착하게 시선을 돌렸다.
우측으로 빠져나가는 타미 아브라함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애송이야.'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것?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더한 피지컬의 괴물이 나올 수도 있고, 나이가 들면 그게 안 통할 수도 있다.
'너무 순해 빠졌지.'
찰리 아담이 본 제퍼슨은 그랬다.
그저 우직하니 피지컬로 부수는 스타일.
적절한 반칙도 써 줘야 한다. 비열하다고?
그렇게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찰리 아담은 확고했다. 자신은 그렇게 살아남았으니까.
빠악!
모든 시선이 중앙에서 돌진하는 제퍼슨에게 쏠린 사이.
찰리 아담은 타미 아브라함에게 다가가 그를 쓰러뜨렸다. 어깨싸움을 거는 척 옆구리를 크게 쳐 버린 것.
"끄으윽!"
심판도 제퍼슨에게 시선이 쏠렸던 터라 아무도 못 봤다.
"심판! 저 개자식이! 저 개자식이!"
벤치에서는 그걸 보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
이미 목적한 바는 이뤘다. 타미 아브라함은 쓰러졌으니 패스할 길이 없다. 찰리 아담은 씩 웃었다.
'이렇게 반칙을 제때 써 줘야 한다고.'
그는 시선을 돌렸다. 이제 패스 길이 막힌 제퍼슨이 어디까지 돌파할 것인가.
하나 시선을 돌린 순간, 찰리 아담은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
성난 눈빛으로.
제퍼슨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찰리 아담은 급히 피하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 자식. 혼쭐을 내줘야지.'
까짓것 경고 한 장 먹을 각오로 지금 저 녀석을 한번 쓰러뜨려야 한다. 그래야 스토크의 기세가 살아날 수 있다. 그렇게 결심한 순간.
찰리 아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아주 대놓고 들어오는 팔꿈치!
"야 엘보를 날리는 건 아니······ 커억!"
빠아악!
"오, 저 개자식! 저 개자식이 내 선수를!"
스토크 감독이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소리치자, 필마르크는 그저 웃으며 유들거리는 목소리로 지껄였다.
"거, 공 차다가 서로 좀 얼굴 붉힐 수 있는 거지. 감독이란 양반이 왜 이리 흥분해?"
***
ㄴ쇼크로스 제퍼슨이 뛰어오니까 도망침ㅋㅋㅋㅋㅋㅋ
ㄴ찰장군 전반전 미친 모습 왜 안 보이냐
ㄴ제퍼슨에게 몇 번 쥐어터지더니 얼씬도 안함ㅋㅋㅋㅋㅋㅋ
ㄴ스토크쉑덜 올리버 괴롭히다가 제퍼슨 쫓아오니까 허겁지겁 도망행ㅋ
ㄴ근데 존나 무섭겠다. 제퍼슨이 정면에서 돌진해오면 개지릴 듯.
ㄴ찰장군 제프 뛰어오니까 겁에 질린거 봐ㅋㅋ얼굴 새하얗게 질림
ㄴ분노조절장애에서 분노조절잘해ㅋㅋㅋ
ㄴ사람 봐가면서 개짓거리하는거 보소
ㄴ엌ㅋㅋ제프 팔꿈치로 찍었는데?
ㄴ이건 걸렸지 심판 코앞에 있었는데
ㄴ제프도 손 모으고 심판한테 미안하다고 하는거 봐
ㄴ제프도 분노조절잘해ㅋㅋ
< 138. 분노조절잘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