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파트너 하고 싶은 사람 손! (1) >
첼시 서포터즈들은 근래 이렇게 매일 행복한 날이 있을까 싶었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
"다음 시즌도, 다다음 시즌도, 그 다다다음 시즌도!"
시즌이 시작한 이후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날은 없었다.
저번 시즌에는 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 직전에 무관이었던 걸 고려하면 엄청난 성과다.
지금은 시즌 시작부터 두 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리 몇 연승 째지?"
"7연승이야!"
쾌속 질주였다.
리그 4연승을 포함해, 커뮤니티 실드, 유로파 슈퍼컵, 챔피언스리그 1차전까지.
무려 7경기 7연승이란 압도적인 기세.
첼시 팬들이 어깨를 펴며 위세를 부릴 성적이었다.
이들을 기쁘게 하는 건 성적뿐만이 아니다.
성적이 좋아도, 경기 내용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 그런 마음을 가진 팬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경기 내용마저 모두 완벽했으니까.
심지어 그 대단한 바르셀로나와 리버풀 상대로도 아주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경기력뿐만 아니라 이적시장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카이 하베르츠는 어쩌면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이 될 수도 있어."
"션 올리버도 생각보다 터프하고 괜찮던데?"
"마크 우트도 좋아. 기본기가 탄탄해. 어디다 둬도 제몫은 충분히 할 녀석이야."
"무엇보다 제프가 우리 팀에 남았다는 거지."
첼시팬들은 이적시장 내내 마음을 졸였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PSG로 대표되는 거부들이 끊임없이 제퍼슨을 노린다는 기사가 쏟아졌으니까.
불과 한 시즌이다.
한 시즌 만에 제퍼슨 리는 첼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첼시팬뿐만이 아니다.
비록 제퍼슨을 싫어한다고 해도, 타팀 팬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스트라이커."
몇몇은 챔피언스리그의 경험이 없으니 그 말을 붙이기는 섣부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퍼슨 리는 데뷔전에서 보여 줬다.
[제퍼슨 리, 챔피언스리그 데뷔전 해트트릭 폭발!]
[발렌시아 회장, '비참한 밤이다. 제퍼슨 리를 매 시즌 상대하는 프리미어리그 팀들에게 경외를 표한다.']
90분 내내 시종일관 여유로운 플레이였다.
스트라이커가 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보여 줬다는 평가였다.
특히 스페인 언론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EPL의 진짜 왕, 라리가의 발렌시아를 비탄에 잠기게 하다.]
['파괴자' 그 자체였다. 제퍼슨 리가 발렌시아를 갈기갈기 찢었다.]
제퍼슨의 득점 장면 하이라이트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끊임없이 재생됐다.
특히 제퍼슨이 압도적인 스피드로 공을 잡아 낸 뒤, 무각 지대에서 때려 버리는 원맨쇼에 가까운 득점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최다 추천수를 기록했다.
[이건 성인사이트에 올라가야 해. 그 어떤 포르노보다 강렬하고 짜릿한데? 제프의 이 득점은 완전 포르노 수준이야!]
"세계 최고지."
"아자르가 떠난 후, 아자르보다 더한 친구가 왔어. 우리에겐 행운이야."
맨시티와 리버풀의 수비진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파괴력과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는 두둑한 배짱은 타고난 것이다.
이젠 그 폭발적인 득점력과 10대의 나이에 세계를 지배하는 천재성을 지녔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소중하다 못해 신격화가 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퍼슨이 리그 5라운드 결장 소식이 알려졌을 때 런던의 절반은 뒤집어졌다.
[제퍼슨 리, 챔피언스리그 여파로 부상 의심.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웨스트햄전 명단 제외.]
"뭐?"
"빌어먹을!"
"미친 감독 놈! 7경기를 풀로 굴리니까 이렇지!"
"무슨 부상인데? 심각한 거야? 캉테도 부상인데 제프도?"
난리가 났다.
하나, 다행히 감독의 인터뷰로 성난 팬심은 진화됐다.
[필마르크 감독, 'A매치와 리그, 커뮤니티 실드, 유로파, 챔피언스리그까지. 제퍼슨은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그에게 휴식을 부여한 것.']
저번 시즌과 비교하면, 제퍼슨의 플레이 타임은 거의 1.5배로 늘어났다.
제퍼슨의 지구력과 체력이 눈에 띄게 성장한 탓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그의 백업 스트라이커다.
"제프를 보고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어."
딜레마였다.
감독으로서 제퍼슨 리를 한번 써 본 이상, 백업 공격수하고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타미 아브라함과 마크 우트, 그리고 지루까지.
하나같이 좋은 공격수다.
다만, 제퍼슨하교 비교한다면?
"아쉽지. 아쉬워! 정말로!"
제퍼슨이 있다면 경기는 정말 쉽게 풀어진다.
영향력이 절대적인 선수란 제퍼슨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마 제퍼슨을 뺄 수가 없었다.
저번 시즌에는 교체로 여러 번 빼줬지만, 제퍼슨의 체력이 월등하게 좋아진바. 욕심을 낸 것이다.
덕택에 7경기 전승이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리그는 길다.
챔피언스리그까지 노리는 이상. 한 번쯤 휴식을 부여해야 했다.
"문제는 누가 대신 나설 것이냐 인데."
지루는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아마 지금 출전한다면 뱃살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을 거다.
타미는 초반 부상으로 이제 슬슬 복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 두 명 다 원톱으로서의 무게감은 다소 아쉽다.
제퍼슨과 같이 뛰면 파괴력이 배가 되지만, 원톱으로는 제퍼슨이 뛰는 것과는 확실히 비교된다.
"흠. 그러면 두 명 다 쓰지."
필마르크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스트라이커 한명으로 파괴력이 약하다고?
그럼 두 명 쓰면 되는 일 아닌가.
자고로 스트라이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게 감독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은데."
둘 다 조력자의 역할은 쏠쏠하게 잘하는 편이다.
문제는 제퍼슨의 조력자로서만 그렇다는 얘기다.
심지어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제퍼슨의 파트너 스트라이커로 누가 뛸 것이냐, 그 문제 때문이었다.
"흠."
잠시 고민하던 감독은, 이내 무언가 떠오른 게 있는지 전화를 걸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제퍼슨에게.
"제프? 혹시 바쁘지 않으면 사무실로 올 수 있겠어?"
***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환자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맙소사! 제프! 몸 괜찮아요? 어디 다친대 없어요? 잠시만요. 이거 정어리로 만든 단백질 캡슐이에요. 우리 할머니가 만들었죠. 몸에 아주 좋아요."
정어리로 캡슐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
"괜찮아요. 한 경기 쉬는 것뿐입니다. 다친 데는 없어요."
"그럼 사진 한 장 찍어 줄 수 있나요?"
남자는 가방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꺼냈다.
준비된 팬이다. 늘 유니폼을 들고 다니는 걸 보니까.
"저는 여기다가 해 주세요!"
때론 곤란한 팬도 있다.
가령 자신의 가슴 부분이나 허리, 엉덩이에나 해 달라는 여성분들도 있다.
물론.
해 준다.
음. 해 달라는 데 해 줘야지.
이번에는 쌍둥이 꼬마 팬이 어머니 양쪽 손을 잡고 나에게 왔다.
양손을 기도하듯이 모으는 모습이 퍽 귀엽다.
"제프. 아프지 마요."
"제발요. 차라리 내가 아플 게요."
"음, 옆에 계신 어머니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란다. 꼬마야."
"맞아. 존, 네가 대신 아플 필요는 없어. 네 아빠가 대신 아프면 되니까."
아이의 어머니는 그러면서 무언가 꺼냈다.
"피로 회복에는 이 꿀만큼 좋은 게 없어요.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꿀이에요. 아주 좋을 거예요. 애 아빠한테 주기는 아까운 것 같고, 제프. 당신에게 필요한 거예요."
음, 멋진 가족이다.
하여튼.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면, 이렇게 내 건강을 걱정해 준다. 고작 한 경기 결장하는 것뿐인데도.
이런 팬들이 있으니, 나도 좀 더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고 느낀다. 프로니까. 다행인 건 내 트레이닝 팀 지시만 착실히 따르면, 정말 불운이 따르지 않은 이상 심각한 부상은 없을 것 같단 자신감이 있다.
"제프, 당신은 누구랑 같이 뛰는 게 좋아요?"
"응?"
"저번 시즌은 타미하고 호흡이 좋았잖아요. 풀리시치야 원래 베스트 프렌드고. 하지만 이번엔 우트하고는 호흡이 좋아 보이던데요."
음.
그러고 보니,
타미도 슬슬 컨디션 회복하고 폼을 끌어올리는 상태다.
우트와 타미.
둘 다 장점이 명확한 선수다. 파트너로 같이 뛰기에 다 좋은 선수다.
그나마 편한 건 타미이긴 하다. 우트는 약간 좀 또라이 같아서.
하지만.
"누구든지 상관없어. 어차피 골은 내가 넣으니까."
이건 진심이다.
***
"그래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달라? 이거죠? 그 두 명을?"
"그래."
감독님의 얘기는 요컨대 이거였다.
우트와 타미가 투톱으로 나설 것이다.
하지만 둘의 호흡에 대한 의문점은 존재.
여기서 내가 개입해서, 둘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사이로 만들라는 것.
이게 무슨 소린가 했지만.
"제프. 이틀 휴가받은 거 아니었어? 왜 훈련장에 왔어?"
"제-프! 제---프!"
두 명이 동시에 달려오는 꼴을 보니.
뭔지 알겠다.
타미는 내가 여러 조언을 해 준 이후, 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
가끔은 부담스러워도, 그저 축구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모습이라서 호감인 친구다. 우트야, 이상한 놈이니까 굳이 얘기할 게 없다.
둘은 반가운 얼굴로 달려오다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서로를 쳐다보더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우트가 독일어로 말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야."
이번엔 타미가 영어로 말했다. 참고로 우트는 아직 영어를 잘 못 한다.
"저 녀석, 마음에 안 들어."
음.
이게 동족 혐오, 그런 건가.
서로 비슷한 성향이다.
그리고 조금 과도하게 날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고.
서로 비슷한 성향의 선수가 한 팀에 있는 건 의외로 흔하다.
성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호흡이 잘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랑 똑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걸 잘만 이용하면,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잘 아는 만큼, 좋은 호흡을 보일 수 있다.
선의의 경쟁의식.
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것이다.
"자자. 친구들."
두 명의 어깨를 잡고 서로 마주 보게 했다.
"다음 경기에서 서로 발 잘 맞춰 봐."
"뭐?"
"얘랑?"
"응. 감독이 나랑 파트너할 사람을 이번 경기 보고 정하겠다더군."
"!"
"!"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둘이 잘 한번 해 보라고."
파트너 할 사람 손!
***
[제퍼슨 리 결장에도 불구하고, 첼시 웨스트햄 상대로 4대 2 승리!]
[리그 5연승 쾌속 질주!]
[마크우트 2골 2도움, 타미 아브라함 2골 2도움, 환상의 호흡!]
[환상의 투톱, 제퍼슨 리의 공백을 메꾸다!]
***
"그래서, 다음 경기 선발은 어떻게 되는 거죠?"
감독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골치가 아픈 티가 팍팍 났다.
그럴 수밖에.
이 두 명은 사이좋게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서로에게 어시스트까지 선물해 주는,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 준 것이다.
차라리 누구 한 명이 압도적으로 잘했으면, 보상 겸 다음 경기 선발로 내보낼 수 있건만.
두 명 다 잘해 줘서, 누굴 내보내야할 지도 모른다.
감독님은 날 쳐다봤지만 난 애써 모른척했다.
괜히 끼어들기 싫다.
"선발명단은 감독님의 고유 권한이죠."
"고맙군, 제프."
감독의 원망 어린 시선을 피하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소리쳤다.
"쓰리톱이다! 세 명 다 출전이야!"
맙소사.
내가 이 감독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어.
두 명은 완전히 만족스러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프, 걱정 마. 내가 아주 멋진 어시스트를 해 줄 테니까."
"내가 저번 시즌처럼 대신 미친 듯이 뛰어다닐게. 제프, 넌 골만 넣어."
이 우스운 광경을 지켜보던 하베르츠가 묘한 표정으로 한숨을 뱉었다.
"너희 스트라이커 아니야? 왜 골 욕심이 없어?"
그러게.
"상관없어."
"스트라이커는 때로 양보할 줄 알아야지."
패스 셔틀이 두 명이나 생겼다.
하베르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친놈들."
< 134. 파트너 하고 싶은 사람 손!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