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30화 (130/258)

< 130. 잘생긴 놈은 매가 약 (3) >

올리버에게 있어서 축구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자신의 사업과 인기를 위한 하나의 과정.

축구가 주업이긴 했지만, 그는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냥 놀고, 춤추고, 마시는 걸 좋아했다.

심지어 어제도 쫓아다닌 여성팬들과 실컷 술을 마시지 않았던가.

'굳이 경기에 뛰지 못해도 슬퍼할 건 없어.'

리그 3경기 선발명단 제외는 그렇게 마음 아픈 일은 아니었다.

다른 선수였으면 감독에게 따지던가, 아니면 훈련에서 선발 출전 의지를 보여주겠지만 올리버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주급 정지 징계를 받았음에도 그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데 감독이 다시 불러 말했다.

"다음 경기 출전이다. 캉테 대신 네가 뛸 거다."

드디어 리그 첫 선발이지만, 특별히 감회가 새롭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그다음 이어지는 말에 조금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프가 훈련을 도와줄 거다."

올리버가 흘깃 제퍼슨을 바라봤다.

단단한 수비로 유명한 뤼디거가 제퍼슨와의 어깨싸움에서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보이자 목소리가 절로 흔들렸다.

"굳이 그럴 필요는······."

"오랜만에 선발이라고 걱정 많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 제프하고 훈련하다 보면, 제프만 막을 줄 알면 다른 팀의 공격수를 막는 건 일도 아니니까."

"아니, 그······."

"너무 고마워 안 해도 돼. 제프가 착해서, 자기가 직접 같이 훈련하고 싶다고 했거든."

"아니요, 저기 감독님!"

"제프! 여기다!"

"감독님!"

필마르크는 웃으며 몸을 돌렸다.

"션? 훈련해야지?"

그리고 어깨에 척 내려앉는 단단하고 무거운 악력.

올리버는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고 느꼈다.

***

솔직히 내가 션의 정신머리를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진 못한다. 그건 선수 자체를 갱생시키는 일이나 다름없으니까.

션 올리버.

그에게 부족한 건 독기였다.

이적 후, 리그 3연발 선발제외다.

출전 자체를 하지 못했다. 벤치만 달구다가 끝났다.

커뮤니티 실드와 슈퍼컵까지 포함하면 다섯 경기 선발 제외, 교체로 한경기 6분 정도 뛰었다.

프로선수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감독에게 찾아가 다음 경기에 출전시켜 달라고 싸우기라도 해야 한다.

그도 아니면 훈련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다 보여주며 어필해야지.

"션은 그런 친구가 아니야. 그에게 축구는 부업이지."

하베르츠는 조용하면서도 관찰력이 뛰어났다. 어찌 보면 하베르츠와 올리버는 성향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베르츠 역시 축구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달려들진 않는다.

올리버도 마찬가지다.

다만 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베르츠는 해야 할 건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해낸다는 것.

공과 사가 뚜렷했고,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선수다.

반면 션은?

"축구는 그냥 그 녀석이 하고 싶은 일에 부가적인 것이야."

주업이 축구선수라지만, 실제로 올리버가 더 열정을 보이는 건 패션사업과 모델이다.

툭툭.

볼을 가볍게 발바닥으로 밀고 나가며.

여전히 귀찮은 기색으로 앞을 막아서는 올리버에게 물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거야?"

"음, 물론이지."

"진짜로?"

"안 그러면 축구선수를 내가 왜 하겠어?"

"그야 네가 하고 싶은 모델이나 사업에 도움 돼서 그런 건 아니야?"

"······!"

정곡을 찔렀나.

그는 내가 드리블하는 걸 막을 생각도 못 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뻐엉!

올리버를 제치고, 망설임 없이 빈 골대를 향해 슈팅을 때렸다.

쉽다.

캉테와 훈련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돌파가 쉽다. 한숨만 나온다.

"자. 9번째 놓쳤어. 방금도 정신이 흩트려졌고. 뭐야? 내가 욕을 한 것도 아니고, 트래쉬 토크를 심하게 한 것도 아닌데. 프로 맞아?"

"헤이, bro. 적당히 하지?"

슬슬 올리버도 화가 난 기색이었다.

늘 유들유들한 얼굴, 나른한 목소리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낸 적 없던 그의 변화였다.

하기야.

내가 계속 신경을 긁으면서, 드리블에 성공하고 있으니 그럴 만하지.

이게 필요했다.

선수라면 응당 있어야 할 짜증과 독기, 승부욕 말이다.

내가 본 올리버는 지금까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션. 너에겐 축구는 그냥 부가적인 것이잖아?"

"뭔 소리야? 대체?"

언성을 높였다.

애써 당황한 것을 감추려는 방어기제다.

다 보였다.

지금의 션 올리버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다.

하나 내 실제 나이는 그렇지 않다.

회귀 전 38세였고, 축구판에만 20년을 뛰었다.

선수들의 심리를 읽는 건 흔했다. 필드 위의 심리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아직 어린 올리버의 감정이야 눈에 훤히 보였다.

"잡지 모델? 뭐, 그냥 잘생긴 모델이야 얼마나 많아? 하지만 현역 축구선수 잡지 모델은 별로 없지. 그것도 첼시라는 빅클럽에서 뛰는 모델이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모델은 그냥 내 부업일 뿐이야."

"아하, 미안해. 내가 착각했어. 주업은 사업이잖아? 하긴. 평범한 패션 브랜드 사업보단, 현역 축구선수가 운영하는 사업이라고 하면 뭔가 더 화제가 될 만하지!"

"······너 나한테 불만 있어?"

"존나게 많지. 이 자식아."

뻐억!

나직이 소리치며 거칠게 바디체킹을 걸었다.

올리버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정신 차려. 놀고 싶으면 혼자 놀아. 팀 분위기 헤치지 말고."

듣자 하니 최근 1군에서 콜업된 유스 선수 두 명과 클럽에 갔단다.

뿐인가.

지루가 체중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알고 보니 이 녀석이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옆에서 분위기를 헤치는 것이다.

하기야, 남들은 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혼자 탱자탱자 놀자판이면, 그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사실 올리버의 성격이 어떠하든, 내가 상관할 건 아니다.

하나, 적어도 팀 분위기를 헤치는 건 상관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승을 해야 하거든. 네가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되겠어?"

그래. 올리버 혼자 저렇게 노는 거야 상관없지.

하지만 난 이번 시즌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아스필리쿠에타가 말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자고.

난 그걸 위해 수억 원에 가까운 주급을 마다하고 현재 첼시에 남은 게 아닌가.

우승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리오넬 메시가 왜 월드컵 우승을 하지 못했나.

결국, 동료들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축구는 팀 스포츠니까.

올리버는 그걸 망치고 있다.

일부러 그런 짓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료들이 그 분위기에 휩쓸리니까 문제다.

"봐. 너보다 어린 애송이인데 한 번을 못 막고 있어. 그게 네 수준이야."

"하."

"운동선수는 연예인이 아니야. 스포츠 스타에겐 실력이 가장 필수적이라는 건 알아야지."

"나도 운동선수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큰일인데. 경기에서 뛰지 않는 선수에게는 인기가 높아질, 아니 없어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경기장에 나가는 건 한계가 있어. 네가 아무런 성과를 못 내면 도태되고, 지금 너를 향한 관심도 멀어지겠지."

올리버는 입을 다물었다.

"한 5년 후에 보자고. 그 잘난 얼굴이 늙기 시작하면, 인기는 언제까지 갈 거 같아? 네가 2부리그와 하부팀을 전전하는 그저 그런 수준까지 떨어진다면?"

올리버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무언가 느낀 게 있으면 좋겠다.

"훈련 그만하자고. 보니까 더 할 필요도 없는 거 같은데."

이제 내가 뭘 어찌할 수는 없다.

알아서 깨달아야지.

그저 그런 선수로 남거나.

잘생겼으면서도 실력 좋은 녀석으로 기억되거나.

선택은 올리버가 할 일이다.

***

[첼시와 토트넘 핫퍼스의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경기를 보내드립니다. 라인업입니다.]

[첼시의 골키퍼 장갑은 케파가 꼈습니다. 수비진에는 에메르송, 뤼디거, 시셀도, 아스필리쿠에타가 뜁니다. 중앙에 A매치 데이 때 부상을 입은 캉테 대신 션 올리버가 첫 선발 출전합니다. 조르지뉴와 카이 하베르츠가 함께 중앙에 위치합니다. 공격진에는 왼쪽에 풀리시치, 중앙에 제퍼슨 리, 오른쪽에 마크 우트가 뜁니다.]

[이번 경기의 관건은 바로 캉테의 공백입니다!]

[션 올리버는 노리치와 아스날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으로, 한때 벵거 감독에게 잉글랜드 허리를 책임질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인데요.]

[생각보다 성장하지 못한 채 여러 팀을 오가다가 지금 첼시에 왔습니다!]

[사실 이번 시즌 첼시가 영입한 선수는 다 성공적이었거든요? 카이 하베르츠와 마크 우트는 초반부터 좋은 기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연 션 올리버가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가 기대되네요.]

중계진의 해설과 함께 카메라는 션 올리버를 비췄다.

[긴장한 것 같군요.]

[네. 표정이 조금 딱딱해 보이네요. 아무래도 첫 선발인데다가, 상대가 하필 토트넘이니까요!]

[그에 반해 제퍼슨 리는, 여전하군요.]

이번엔 카메라가 센터 서클에서 우트, 풀리시치와 옥신각신하는 제퍼슨을 잡았다.

긴장이라고는 단 조금도 보이지 않는 표정.

[제퍼슨이 저런 얼굴로 경기를 준비할 때, 늘 골이 터졌죠.]

[그런가요?]

[오늘, 토트넘 수비진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긴장해서 막을 수 있는 선수였다면, '제퍼슨 밤(Jefferson BOMB)'이란 별명이 붙지 않았겠죠!]

***

"제프!"

하베르츠의 패스의 특징은 미치도록 빠르다는 것이다.

강하게 때린 패스.

자칫하면 선수가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건 치가 떨리는 정교함이다.

탓!

뭐라 표현해야할까. 쫀득쫀득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발끝에 착 감기는 느낌이다.

아주 가볍게, 그리고 우아하게 볼을 트래핑했다.

토트넘의 풀백, 대니 로즈.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을 지닌 선수다. 그러나 잔 실수가 많은 편이다.

저들이 나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한 만큼, 나도 역시 분석했다.

개인 분석팀을 동원했고, 1년간 뛰면서 느낀 경험을 그대로 플레이에 녹아 냈다.

"흡!"

왼발, 오른발 스텝오버로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다가, 왼쪽 대각선으로 순간적으로 치고 나갔다.

"XXX---!"

상대가 욕을 한다.

필드에선 이것은 칭찬이다.

발끝으로 공의 방향을 다시 한번 오른쪽으로 살짝 바꿔 놓고,

수직에 가깝게 급한 방향 전환을 시도해 떨쳐냈다.

"제-퍼-슨!"

"Gooooooo!"

굳이 상대 수비를 중앙으로 뚫고 갈 필요가 없다.

베르통언이 자리 잡은 중앙보다 상대적으로 양 풀백의 수비가 현저하게 약하다.

그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제-프!"

우트가 비명을 질러 대며 중앙으로 파고든다.

베르통언이 잽싸게 먼저 자리 잡는다.

음. 조금 아쉬운 움직임이다. 반 박자 빨랐다면 우트에게 좋은 기회가 갔을 것.

하나, 우트의 판단이 나쁜 건 아니다.

덕택에 수비 둘셋이 우트에게 몰렸다.

밖에서부터 미드필더들이 전진해 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내가 오른쪽에서 휘저으며 박스로 파고들고. 중앙에선 우트가 수비진을 휘저은 사이.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간격이 벌어졌고, 그 공간에 침투하는 미드필더의 움직임.

내 선택은 간단하다.

투욱!

깔끔하고 낮은 컷백 크로스.

하나, 토트넘의 수비진, 특히 베르통언도 만만치 않다.

눈치 하나만큼은 빠르고, 영리한 자식이다.

순간적으로 우트를 밀쳐 내며 튀어나온다.

컷백을 차단하겠다는 듯이 쭉 넘어지며 슬라이딩.

'이번 건 놓쳤군.'

하긴, 매번 공격이 성공한다면 늘 다득점 승리겠지.

속으로 살짝 아쉬움이 치밀 때.

별안간 그 컷백 크로스를 향해 냅다 머리를 갖다 대는 선수가 있었다.

"어?"

"안 돼!"

베르통언의 스터드가 들어 올려져 있건만.

거길 향해 냅다 머리를 들이미는 선수.

그 얼굴을 보고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철썩!

"올리버어어어!"

"Yeaaaaaaaaaaa!"

"션, 저 녀석 존나게 터프한데? 스터드에다 머리를 갖다 박아 버렸어!"

스터드에 박히진 않았지만, 머리가 쓸렸다.

올리버는 이마에서부터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거칠게 무릎 슬라이딩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Heeeeeeeeeyaaaaaaaaa!"

거칠게 포효하는 올리버.

허.

그는 치아 사이에 빨간 핏물이 들어가는데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소리쳤다.

"5년 후에 보자고? 그래, 한번 보자고! 제프!"

흠.

갱생 성공인가.

"헤이 제프, 이리 와 봐."

"뭐 지시할 사항 있으세요?"

"아니. 어떻게 한 거야?"

"아, 션이요?"

"그래. 저 놈이 저렇게 몸을 날릴 놈이 아닌데."

"그냥······ 뭐 훈련하면서 몸으로 좀 여러 번 넘어뜨렸죠."

"호!"

감독님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잘생긴 놈에겐 매가 약이란 건가."

< 130. 잘생긴 놈은 매가 약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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