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27화 (127/258)

< 127. 아직도 모르겠어? (3) >

바르셀로나는 수비도 강하다.

제라르 피케라는 월드클래스가 있으니까.

하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에릭 덴 하그 감독은 점차 선수들을 바꿔 가고 있었다.

피케는 올해 35세다.

세대교체가 되는 게 당연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월드 클래스는 여전한 법이니까.

대신 나온 게 장클레르 토디보라니.

좋은 선수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얕본 것일 수도 있지.

륑글레와 토디보 조합.

하나, 알아야 한다.

애당초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한 반 다이크와 맥과이어, 존 스톤스 같은 수비수들이 저들보다 하등 부족한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맙소사!"

"반칙! 반칙이라고! 심판!"

웃기는 소리.

어설프게 바디체킹 걸다가 날아간 건 그쪽이란 말이지.

패스 한 방.

그리고 수비수 한 방.

단 두 방에 길이 열렸다.

순간 주위가 슬로우 화면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그리고 머릿속은 더 보다 빠르게 핑핑 돌아간다.

살짝 튀어나온 골키퍼. 몸의 방향은 왼쪽으로 기울여지는 듯한 느낌. 그의 시선은 왼쪽을 향한다.

판단은 끝났다.

오른쪽, 강하게 때린다.

뻐엉!

적당한 힘이 실린 임팩트가 공에 실리고,

골키퍼는 역동작이 걸린 채 뒤늦게 몸을 돌리지만.

슈팅이 골네트를 흔드는 걸 확인한 후에 나는 별생각 없이 웃었다.

"Wuuuuuuuuuuuuuu!"

"XX-XXX---!"

음.

너무 환하게 웃었나 보다.

바르셀로나 팬들이 욕하는 걸 보니까.

***

[아르투로 비달! 가벼운 몸놀림으로 파고듭니다! 캉테와 맞대결! 뚫어냅니다!]

아르투로 비달의 전진 드리블.

캉테가 빨빨거리며 달려들지만, 비달은 비달이었다.

순간적인 스피드로 치고나가는 특유의 드리블을 보여 주며, 순식간에 공간을 벗어났다.

[비달!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그리즈만에게 찔러주는 패스! 하지만 시셀도가 몸을 날리며 공을 차단합니다!]

멕시코 주전 센터백이자, 30살쯤에는 반 다이크에 이어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센터백으로 군림하는 시셀도.

'철조망'이란 별명답게, 그는 패스 차단에 눈에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 줬다.

[첼시의 수비! 굳건합니다! 뤼디거의 파워풀한 수비와 시셀도의 몸을 날리는 헌신적인 수비에 막혀, 바르셀로나 번번이 슈팅에 실패합니다!]

첼시의 중원이 약하지는 않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패스 플레이는 유기적으로 첼시를 압박했다.

어느새 점유율은 바르셀로나가 가져가고 있었다.

한 55대 45 정도로.

그러나 점유율 축구가 반드시 승리하는 법은 없다.

첼시의 수비는 굳건해서, 웬만해선 슈팅을 허용하지 않았다. 설령 허용한다고 한들, 케파는 만만한 골키퍼가 절대 아니었다.

[케파 골키퍼! 공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아스필리쿠에타에게! 쿠에타! 전진하다가 바로 얼리크로스으으!]

점유율 축구에 상극인 건, 다이렉트한 패스다.

단 한 번의 패스가 골로 연결된다면.

그것만큼 치명적인 게 없다.

그리고 첼시는 그게 가능한 선수가 여럿 있었다.

아스필리쿠에타의 얼리크로스는 월드 클래스 수준에 이르렀고, 그걸 받아 내는 공격수, 제퍼슨 리도 마찬가지다.

[제퍼슨 리! 미친 듯이 달려갑니다! 머리에 헤-더! 아! 골키퍼 선방입니다! 엄청난 선방입니다!]

지켜보던 바르셀로나 관중은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경기 직전에 가득했던 자신감은 사라졌다.

손에 절로 땀이 쥐어졌다.

"도대체 뭐야?"

"저 자식 뭐야? 대체!"

가슴이 서늘했다.

어느 순간 관중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팬이.

단 한 선수에 집중된 채.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제퍼슨은 말 그대로 부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모두 클래스가 있지만, 단 한 가지 그나마 단점을 꼽는다면, 바로 피지컬이다.

한데 그 단점은 부각되기 어렵다.

아무리 단점이어도 일단 기본 평균치보단 높다.

다만 다른 장점에 비해 유난히 약해 보일 뿐이다.

한데 제퍼슨은, 그 약점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끄흡!"

[제퍼슨의 돌파에 아르투르 멜루! 고통스러워하면서 나자빠집니다! 노 파울입니다! 그대로 치고 달리는 제퍼슨! 순식간입니다!]

끝이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돌파로 선수를 날려버린 제퍼슨은, 순간적인 대각선으로 치고 빠지는 스텝으로 센터백 렝글레를 속여 넘긴다.

아니, 끝까지 쫓아왔으나.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거친 터닝 동작, 일명 제퍼슨 턴에 끝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미친!"

그것은 흡사 두려움이었다.

팬들과 벤치뿐만 아니라.

있는 힘껏, 모든 전력을 쥐어짜 제퍼슨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던 렝글레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무얼 해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감정.

[바르셀로나의 수비라인이 제퍼슨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이것으로 증명합니다, 제퍼슨! 그의 클래스는 월드 클래스입니다!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한 왕이 바르셀로나를 공격합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플레이.

눈이 부신 플레이에 중계진은 중립성을 벗어던지고 소리쳤다.

예측 불가능한 방향 전환 끝에.

남은 건 골키퍼 하나였다.

[아! 급하게 복귀하는 토디보의 위험한 슬라이딩 태클! 맙소사! PK입니다! 찍었습니다!]

***

투욱, 툭!

조르지뉴는 PK를 이상하게 찬다.

골에 임팩트를 넣기 직전, 반박자 늦게 때리면서 골키퍼의 박자를 순간적으로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벽한 PK골.

이로써 2대 0이었다.

"어때, 이 풀리식의 조언이?"

"최고야."

전반전이 끝나고, 풀리시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다.

그런 말이 있다.

바르셀로나 스토크 검증론.

거칠고 짝이 없는 스토크 축구를 이길 수 있냐는 일종의 '밈'이었다.

물론 그건 어설픈 소리다.

아마 제공권은 스토크가 다 따내도, 나머지는 그냥 비교도 안 될 거다.

바르셀로나의 약점이 피지컬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우습지. 나머지 장점들이 워낙 좋아 보이니까, 그나마 약해 보이는 피지컬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 일반적인 팀에 비교하면 피지컬이 약한 것도 절대 아니다.

아.

물론 나는 다르다.

그래서 풀리시치가 때려 부수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했고, 그게 꽤 성공적이었다.

만일 심판이 라리가 출신이었다면, 안 통했을 수도 있지만. 다행히 꽤 관대한 성향이라서 말이지.

후반전엔 풀리시치가 빠지고 우트가 들어왔다. 부상은 회복되었지만 아직 폼을 다 찾은 게 아니라서.

"좋아, 제프. 우리 둘이 골을 넣고 세레모니 같이하자고."

"응, 싫어."

"아, 왜!"

우트의 칭얼거림을 무시하고 슬쩍 반대쪽을 바라봤다.

바르셀로나는 역시 토디보를 빼고 피케를 투입했다.

"침착하게! 압박하면서 공을 돌려! 정신없이 공을 돌리면서, 상대 압박을 헐겁게 만들라고!"

바르셀로나 감독은 그렇게 소리쳤고.

우리 감독은.

"그냥 제퍼슨에게 뻥 차!"

흠.

누가 우리 감독보고 제퍼슨 의존증이라고 했냐.

이건 제퍼슨 의존이 아니지.

지금 가장 '효과적인' 전술을 지시하는 명장이라 이거다.

***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일격을 먹었다.

피케부터 시작된 후방 빌드업이, 단숨에 수아레스에게 도달하더니, 수아레스는 휘어지는 궤적으로 환상적인 추격골을 만들어 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죽여 버려!"

바르셀로나 팬들이 기세등등한 채 외쳤다.

흠.

확실히 수아레스, 무섭다.

이제 제법 나이도 먹었건만, 가장 화려하던 때의 폼에 비교해 분명 떨어졌지만, 클래스는 어디 안 가는 법이지.

감상은 거기까지다.

2대 1이란 스코어는 가장 불안한 스코어다.

한 골만 내주면 동점이 되고, 그 마음에 흔들리다 보면 역전골까지 내주는 건 부지기수다.

펠레스코어가 그래서 나오는 거지.

거기에 반격하는 우리의 방식은.

"이게 잉글랜드산 뻥 축구다! 이 자식들아!"

뻐어엉!

아스필리쿠에타가 저렇게 괴성을 질러 대는 건 처음이다.

그의 긴 얼리 크로스가 순식간에 수비진 사이에 뚝 떨어진다.

당황한 표정의 피케가 보였다.

그냥 무식하게 최전방에 때려 넣고 보는 롱패스가 아니다.

정확하게 계산된 완벽한 패스.

그 누가 뻥 축구를 구닥다리라고 불렀나.

완벽한 롱패스를 넣는 선수와 그걸 받아 내는 최고의 타겟터가 있는 이상.

"크흡!"

신음을 삼키며 무너지는 피케.

그리고 나는 공을 그대로 왼쪽으로 떨어뜨려 줬다.

골대 안으로 직접 집어넣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달려오던 우트가 반박자 빠른 발리 슈팅으로 그대로 집어넣었다.

"Goooaaaaal!"

정석적인 잉글랜드식 뻥 축구의 득점루트.

얼리 크로스 -> 머리로 공 떨구고 -> 받아먹는 슈팅!

"보고 있으신가요? 질리먼 코치님?"

내가 불현듯 중얼거리자.

우트가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네가 더 이상한 놈 같아, 제프."

에이, 그럴 리가.

***

"미친 잉글랜드 놈들."

피케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때 맨유에서 뛰었기 때문에,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수없이 프리미어리그 클럽을 만났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축구를 잘 안다.

거친 축구를.

한데, 오늘 상대하는 첼시는 달랐다.

뻐어어어엉!

"또 온다!"

뻐어어어엉!

"그마아안!"

뻐어어엉!

"쫌!"

스트라이커를 최전방에 놓고 냅다 크로스를 올린다.

풀백이 올리는 얼리 크로스.

조르지뉴가 쏘아 보내는 롱 패스.

오도이의 직선 드리블 후 크로스.

제퍼슨의 머리를 향해 그냥 닥치고 올리는 크로스에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머리가 핑핑 돌았다.

사실 뻥 축구를 수비하는 건 어렵지 않다.

크로스를 아예 못 올리게 하거나, 정확도를 떨어뜨리게 방해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았다.

뻐어엉!

'무슨 뻥 축구가 이렇게 정교해?!'

그랬다.

조르지뉴의 롱패스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유명했고,

카이 하베르츠의 창의성 넘치는 롱패스는 바르셀로나 수비가 예측하는 범위를 벗어났으며,

아스필리쿠에타의 얼리크로스와 오도이의 무난하지만 정확하게 떨어지는 크로스는 마치 오랫동안 연습한 것처럼 정교했다.

아무리 방해를 해도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진 이해를 한다.

본래 다이렉트 축구를 하는 선수들은 정교한 로빙 패스를 잘하니까.

문제는.

그걸 받아 내는 스트라이커의 존재다.

"끄어어억!"

랑글레가 저런 비명을 내지르며 넘어지는 건 진짜 오랜만이다.

피케는 급히 달려들었지만,

번뜩!

희번뜩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뛰어오르는 제퍼슨의 모습에 순간 가슴이 서늘해져서 멈칫했다.

아까 몸싸움하다가 부딪친 가슴이 얼얼한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처참한 얼굴이다.

자신 넘치던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사실 약간의 자만도 있었다.

애당초 슈퍼컵이란 대회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첼시란 팀을 그렇게 크게 무서워하지도 않았으니까.

'실수다.'

가장 위험한 팀을 상대하는 것처럼 준비했어야 했다.

너무 얕봤다.

방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또다!"

누군가 발작처럼 외쳤다.

하프라인에서부터 날아오는 하베르츠의 로빙패스.

그리고 피케는 똑바로 봤다.

'안 된다!'

3대 1의 스코어.

여기서 한 골을 더 내준다면.

아무런 가망도 없다.

아니 가망을 떠나서 그건 너무 처참한 패배가 아닌가?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는데 대패라니! 그건 바르셀로나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다.

피케는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하나, 그 순간 피케는 그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허공에 떠오른 채.

허리를 비틀어 대며 충격을 최대한 피해 내면서도.

정확하게 공에 머리를 갖다 대는 그 찰나의 광경이 마치 슬로우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철럭!

높은 곳에서 그대로 때려 박아 버리는 헤더 골.

"Yeaaaaaaaaaaaaaaaaaaaa!"

제퍼슨이 웃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럴 리가.

피케는 실감했다. 알 수 있었다. 몇몇 언론이 그를 보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 작년에 보였던 경기력은 한 시즌 반짝한 거 아니냐고.

다 운이지 않겠냐고.

'개소리.'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제는 알겠다.

저 녀석,

'메시의 발롱도르 라이벌이 나타났군.'

피케는 헛웃음을 지었다.

관중들을 향해 자신의 등번호를 가리키는 제퍼슨의 셀레브레이션이 시야에 담겼다.

No 9.

9번이란 번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트라이커.

'끄응. 챔스에서 또 만나면 골치 아프겠군.'

이왕이면,

만나기 전에 첼시가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 127. 아직도 모르겠어?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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