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25화 (125/258)

< 125. 아직도 모르겠어? (1) >

리그 개막 일정이 다가오면.

뜨거운 기대감과 묘한 열기가 모여든다.

방송사에선 특집 프리뷰 방송을 연신 내보냈고, 스포츠 잡지와 신문들도 연신 기사와 칼럼을 내놓았다.

[2021-22 시즌 프리미어리그 프리뷰]

1. 맨체스터 시티

핵심선수들을 재계약으로 지켰으며, 다비드 실바의 빈자리를 '산드로 로날리'의 영입으로 충분히 메꿀 것.

2. 리버풀

젊은 피와 유망주 콜업으로 부족한 스쿼드 뎁스를 보강함. 유일한 약점은 클롭 체제에서 알레그리 체제로의 변경.

3. 첼시

중원에서 3명의 미드필더가 이적했으나, 카이 하베르츠라는 걸출한 선수의 영입으로 이번 이적시장 대어를 낚음. 제퍼슨 리라는 월드 클래스가 팀을 떠나지 않은 게 가장 주효함. 이번 시즌 강력 우승 후보 중 하나.

4. 토트넘

포체티노 감독의 OUT. 핵심 선수들의 재계약 실패. 이적시장에서 성과 좋지 못함. 현재로선 빅4에서 가장 탈락할 확률이 높은 팀.

등등.

그 외에도 아스날이 제법 괜찮게 보강에 성공했고, 맨유는 여전히 돈을 많이 쓰면서 여러 선수를 영입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많은 급여 지출 팀 1위!]

ㄴ아무 의미 없어

ㄴ산체스는 도대체 언제 팀을 떠나는 거야?

ㄴ이번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야.

ㄴ빌어먹을! 선수가 팔리지도 않아!

ㄴ너 같으면 최소 35만 파운드(5억 2천만 원)에서 59만 파운드(8억 8천만 원)을 받아 타 먹는 도둑놈을 살 거 같아?

ㄴ좋은 선수 사는 데 주급 주는 거 좋다 이거야. 왜 린가드는?

ㄴFuck! 린가드가 뭔데 왜 15만 파운드를 받는 거야?

ㄴ제퍼슨 리를 보라고! 걔가 작년에 받은 연봉은 9만 유로밖에 안 돼! 그래놓고 팀을 3개 대회 우승으로 이끌고, 모든 시상을 다 차지했지!

여러 의견이 쏟아지고, 반응이 엇갈렸다.

전문가들은 제퍼슨이 있다는 점에서 첼시를 우승 후보로도 꼽았다.

그 점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나, 일부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가령 다른 라이벌 팀들의 팬들이 그랬다.

"어린 선수야. 어린 선수가 한 시즌 반짝였다가 자만해서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잊혀진 경우가 어디 한둘이야?"

보통 사람들은 선수를 평할 때 한 시즌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한 시즌 반짝하고 사라진 선수가 얼마나 많았던가.

제퍼슨도 그런 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한 시즌 60골을 넘게 터뜨린 선수에게도 그런 냉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지만.

사실 그렇다. 모든 선수는 선수 생활 내내 평가받는 위치다. 수많은 레전드들이 그러했다. 진정한 평가는 은퇴 후에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하나, 그런 반응에 제퍼슨은 일격을 날렸다.

[첼시, 리버풀을 4대 2로 격파!]

[제퍼슨 리, 3골 1어시스트!]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제퍼슨 리. 해트트릭으로 산뜻한 출발!]

FA컵 우승팀과 리그 우승팀이 붙는 이벤트성이 짙은 경기였긴 했지만,

어쨌거나 첫 스타트를 해트트릭으로 끊은 선수다.

리버풀의 수비진을 궤멸시켜 버린 그 폭발력은.

그에 대해 설왕설래하던 많은 이를 침묵하게 했다.

그리고 제퍼슨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일격을 날린 셈이다.

[내가 득점하지 못한 프리미어리그 팀은 세 팀이다. 스완지, 웨스트 브롬, 노팅엄 포리스트. 나머지 팀들은 나에게 당해 놓고, 아직도 모르겠나?]

***

왜 그런 인터뷰를 했냐고?

뭐.

사실 그냥 지른 거다.

내가 득점하지 못한 세 개의 팀은, 이번 시즌 승격팀 세 팀이다.

스완지, 웨스트 브롬, 노팅엄.

세 팀을 제외하곤 모든 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데도 계속해서 내 실력에 대한 의심(물론 라이벌 팀의 시기에 가까운)을 계속 받는 건 조금 귀찮은 일이다.

어차피 리그에서 우리 팀을 제외하곤 날 좋아할 수가 없다.

지금껏 내가 터뜨린 득점으로, 어떤 팀은 유로파나 챔스 진출에 실패했고, 어떤 팀은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으며, 몇 팀은 강등까지 당하지 않았나.

축구란 이런 거다.

누군가에는 엄청난 찬사를 받는 선수가, 한쪽에선 엄청나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엔 그냥 속에 있는 말 시원시원하게 질러 대는 게 낫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덜 받기도 하고.

까짓 뭐.

결과로 보여 주면 되지 않나.

"나도 그런 인터뷰를 하겠어."

우트가 다가왔다.

아.

피해야겠다.

"존나게 멋졌다고. 아직도 모르겠나? 캬! 그 말을 메모해 놨어. 내가 나중에 해트트릭을 터뜨리면, 이 멘트를 꼭 쓰고 말 거야."

흠.

저 멘트를 쓰려면, 여간 잘해서는 안 되는데.

뭐, 그건 우트가 알아서 할 일이고.

"노리치는 어떤 팀이야?"

별안간 그가 묻는다.

풀리시치가 골드컵 후유증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해 피로를 호소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페드로도 현재 좋지 않은 상태.

아마 왼쪽에 우트가 출전할 확률이 높았다.

우트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개막전 상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왔다.

"나한테 네 골 정도 먹힌 팀이야."

"어렵지 않은 상대군!"

"아니, 매우 어려운 팀이지. 두 경기 치르고 네 골 밖에 안 먹혔으니까."

"······제프, 그거 알아?"

"응?"

"여기 친구들이 나보고 약간 좀 이상하다고 말하더라고."

"그건 맞아. 너 좀 이상해. 왜 축구화가 내 것과 똑같아진 거야? 원래 다른 거였잖아?"

"아니, 말 돌리지 말고. 진짜 이상한 건 너 같단 말이야."

"뭐래. 이상한 놈이."

내가 우트와 옥신각신하는 꼴을 본 션 올리버가 지나가면서 말했다.

"싸우지 말라고. 주름 생기면 얼굴이 확 늙는다고! 피부 관리해야지! 내가 런던에 유명한 숍 하나 소개해 줄까?"

뭔, 염병할.

***

리그 개막전은 맨유 대 아스톤 빌라였다.

맨유의 홈에서 벌어진 경기였는데.

로드릭이 헤더 결승골을 뽑아내며, 이변을 일으켰다.

1,500억에 가까운 이적료를 지출한 맨유를 고작 250억만 지출한 아스톤 빌라가 1대 0으로 이긴 것이다.

그날 로드릭과 통화를 했다.

아주 기뻐서 날뛰더라.

보아하니 팀에서 로드릭이 중용받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랜드 감독님도, 공격만 하는 전술 성향상 롱패스를 장착한 센터백인 로드릭이 상당히 중요한 자원이리라.

-다음 첼시를 만나면, 반드시 보여 주겠어.

"뭘?"

-내가 발전한 모습 말이야. 이번엔 너도 쉽게 뚫지 못할걸?

신났군, 신났어.

"흠. 하긴, 두 골만 먹혀도 성공한 거겠지."

-웃기지 마! 한 골도 안 내줄 거야.

"그거 알아? 로드릭?"

-뭘?

"나한테 그런 말을 던져 놓고 지킨 놈 하나 없어. 심지어 반 다이크도."

-······나쁜 놈.

뭐, 아직 로드릭과 만나려면 멀었다.

13라운드가 아스톤 빌라 전이니까.

지금은 개막전이 중요하다.

첫 경기 상대는 노리치 시티.

상대적으로 약팀이 분명하지만, 쉽게 볼 상대는 아니다.

하위권 팀이지만 제법 매력 있는 축구를 보이며 3시즌 째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공격수 티무 푸키의 득점력이 매섭다.

다른 빅팀들과 비교해 빈약한 미드필더의 지원임에도, 두 자리 이상 득점을 꼬박꼬박 터뜨려 주는, 좋은 스트라이커다.

"그래 봤자야. 훈련에서 널 상대하면, 다른 팀 애들은 시시할 정도니까."

"이젠 나한테 말을 거는구나! 시셀도!"

"······."

시셀도는 골드컵 결승전 이후로 나한테 삐쳐 있었다.

정말로.

'굳이 그렇게까지 넣었어야 했어?'

라면서 울었다고 풀리시치가 증언해 줬다.

어쨌든 조금 어색해하던 그가, 이제는 다시 멘탈을 추스른 것 같으니 다행이다.

[노리치 티무 푸키, '첼시는 제퍼슨의 창이 무서운 팀이다. 수비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득점에 성공할 수 있을 것.']

"이 인터뷰 봤지? 난 절대 실점을 내주지 않을 생각이야."

시셀도는 꽤 주가가 올라가다 다시 떨어진 상태였다.

골드컵 결승 이후로, 탈탈 털린 모습이 노출되어서 말이지.

덕분에 시셀도는 첼시에서 운 좋게 주전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좀 미안하긴 하다.

그것 때문에 시셀도는 클린시트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니까, 네가 반드시 득점해. 실점은 다 틀어막을 테니까. 쟤들을 멕시코를 무너뜨린 것처럼 폭격하라고."

흠.

접수 완료!

***

"노리치, 내 고향이야."

그건 몰랐다.

션 올리버는 버스에서 보이는 노리치의 풍경을 보며 추억에 잠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흥미가 팍 식는다.

동료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말을 계속했다.

"어렸을 땐 캐로우 로드에서 뛰는 게 꿈이었지. 실제로 거기서 잠깐 생활도 했고. 하지만 난 떠날 수밖에 없었어."

"왜?"

착한 캉테가 그나마 받아 준다.

같은 포지션여서겠지.

"거기 대표 딸하고 사귀었거든."

얼씨구?

"우리의 사랑은 뜨거웠지. 난 유소년 선수였고, 그 얘는 경기장에 자주 찾아왔어. 처음엔 그냥 축구를 좋아하니까, 대표의 딸이니까 관심 있는 건 줄 알았지. 한데 아녔어. 날 보러 온 것이더군. 내가 보통 잘생긴 게 아니잖아?"

뭔 이런······.

어느새 동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결국 일이 터졌어. 내가 막내라 밤늦은 시간에 훈련이 끝나고, 용품을 정리하고 있는데······그 아이가 찾아왔지. 아무도 없는, 오직 나만 있는 훈련장, 깜깜한 밤에!"

거기까지 말하고 올리버는 입을 닫았다.

마치 뜸이라도 들이듯이.

이 녀석.

배우해도 되겠다.

말 잘하는 거 보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선수 중 누군가 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올리버는 피식 웃었다.

"오늘 이기면 다음 얘기까지 해 주지."

그 말에 선수들이 일제히 탄식했다.

몇몇은 짓궂게 가벼운 욕을 하기도 했다.

아니,

저 이상한 사랑 얘기가 뭐라고.

하여튼 만국 공통이구나. 남자들은 여자 얘기 나오면 이러는 거.

올리버의 기행에 맨 앞에 있던 감독님도 피식 웃더니 소리쳤다.

"너희 무조건 이겨라! 저 빌어먹을 다음 이야기를 나도 듣고 싶으니까!"

***

"개 같은!"

노리치의 홈구장, 캐로우 로드는 리그 첫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기분을 느끼기 어려웠다.

"저 엿 같은 패스는 뭐야?"

누군가 절규하는 것처럼 외쳤다.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지는 너무 당연했다.

뻐엉!

카이 하베르츠의 예술적인 패스가 중원에서부터 수비진까지.

모두 한 번에 뚫어 버리고 뚝 떨어지는 것이다.

떨어지는 볼을 향해 달려드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 제퍼슨 리가 속도를 낸다.

"놓치지마!"

노리치의 센터백 벤 고드프리가 달려든다.

괜찮은 체구를 지닌 수비수다. 그러나 제퍼슨의 들소와 같은 돌파에 어깨싸움을 시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는 너무 쉽게 날아가 버렸다.

"Oh, Shit!"

제퍼슨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피지컬이 부족해도 상대방의 무게 중심을 이용해 수비를 곤혹스럽게 하는 공격수도 존재했지만,

제퍼슨은 그럴 필요 조차 없었다. 우월한 신체조건 하나만으로 재앙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번에는 풀백 자말 루이스가 한 발 먼저 뛰었다.

하베르츠의 예술적인 패스를 어떻게든 걷어 내기 위한 심리였다.

원래 이 패스는 성공할 수가 없다. 고드프리가 공격수를 견제하며 잠깐의 시간을 벌어 주면, 자말 루이스가 걷어 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상대는 상식 외의 선수지 않은가.

"What the Fuck!"

악몽이다.

자말 루이스가 분명 앞에 있었건만.

뒤에서 뛰어온 제퍼슨이 순식간에 제쳐 낸 것이다.

루이스가 황급하게 옷깃을 잡아 끌었지만, 그대로 끌려가면서 이내 나자빠질 뿐이다.

악몽이다.

수비들은 생각했다.

저번 시즌에도 충분히 경험했던 선수다.

무서움이야 익히 안다. 하지만 오늘은 더했다.

"이거 미친 놈 아니야?!"

괴성과 같은 절규와 함께.

뻐어어엉!

"제---퍼---슨!"

수비진을 완전히 찢어 버리는 재앙과도 같은 피지컬의 첫 득점이 나왔다.

***

"오늘 왜 이래?"

필마르크 감독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그 첫 경기다.

선수들이 의욕을 가질 만했다.

한데 오늘은 더했다.

[첼시 4 : 0 노리치]

득점자: LEE('04) LEE('12) Havertz('34) Kante('41)

그야말로 압도적인 경기력.

심지어 오늘 하베르츠마저 이상했다.

프리시즌과 커뮤니티 실드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때도 말도 안 되는 대단한 플레이였지만,

오늘은 거기에 '열정'까지 있었다.

"쟤가 저렇게 미친 듯이 뛸 수 있다고?"

마치 승리를 간절하게 원하는 것처럼.

차분하기 짝이 없던 하베르츠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프, 쟨 왜 저래? 이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뛰네?"

심지어 제퍼슨처럼.

평소와 같은 득점력이지만, 플레이 자체가 폭발적이었다.

상대 선수를 말 그대로 찢어 버리는!

평소와는 다른 엄청난 동기부여.

그리고 벤치에서 퍼지는 희미한 웃음소리.

"이게 사랑 이야기의 힘이죠. 감독님."

션 올리버가 웃었다.

예의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 125. 아직도 모르겠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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