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이상한 놈, 잘생긴 놈, 잘하는 놈 (3) >
[카이 하베르츠, 첼시 깜짝 이적 합의. 이적료 1억 300만 유로(한화 1,350억 원) 추정!]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걷어차고 첼시를 선택한 카이 하베르츠.]
[첼시 팬, 카이 하베르츠 영입에 반색 '드디어 유럽 챔피언에 도전할 만한 선수가 왔다!']
[카이 하베르츠, 왜 첼시를 선택했느냐에 대한 질문에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서다.' 알쏭달쏭한 답변]
***
보통 사람들은 말한다.
많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애매한 A급, B급 선수 3-4명을 사는 것보다는 확실한 S급 선수를 사는 게 낫다고.
동감이다.
선수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다.
선수가 많아지면 기 싸움이 잦고, 각자 포지션에 충돌이 일어나며 적합한 플레이에도 의견이 나뉜다.
그 모든 것을 다 맞춰야 아름다운 플레이가 가능하다.
차라리 S급 선수를 한 명 데리고 오는 게 낫다.
S급이 S급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카이 하베르츠는 아마 다음 AT 마드리드 전, 후반전에 잠깐 뛸 수 있을 거다. 훈련으로 발도 안 맞춰 보고 뛰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친선전이니 부담 없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카이 하베르츠는 대단한 미드필더다.
저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뛴 우트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놈이지. 미드필더 주제에 한 시즌 20골,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놈이야. 물론, 제프, 네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면 50골 20어시스트는 했겠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미드필더가 저런 스탯을 찍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인데.
그는 캠프에 뒤늦게 도착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인해 하루 쉬고 왔단다.
그리고 AT 마드리드 전.
차분하고 침착한 얼굴로 라커룸에 들어와 축구화를 신었다.
그는 새로운 동료들과 짧은 인사만 나누고는 헤드셋을 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선수들은 각자 경기 전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냥 별생각 없이 잡담 떠는 것이지만. 캉테는 조용히 기도하더라. 책을 읽으며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친구도 있다.
카이 하베르츠에게는 저것이 그런 방식이겠지.
하지만 뭔가 좀 묘하게 느껴졌다.
떠들썩한 동료들과는 따로 떨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더는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뭐.
친해지는 거야, 경기 좀 뛰어 보면 되겠지.
***
AT 마드리드와 첼시의 친선경기는 시작 전부터 꽤 화제가 됐다.
미국 스포츠 방송사에서 친선인데도 중계권을 사서 방송을 내보낼 정도다.
AT 마드리드는 미국에서 꽤 인기가 있는 팀이다.
아무래도 히스패닉이 많으니까.
현재 미국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 중에 히스패닉의 비율이 높지 않나.
거기에 첼시는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기도 하고.
덕택에 6만 석의 관중석이 꽉 찬 건, 친선경기임에도 굉장한 일이었다.
"제프!"
"제-퍼-슨!"
경기 시작 후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
관중들은 살짝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을 포함한 옆, 옆, 옆, 옆 사람까지.
대부분 관중이 한 선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잘하는데?"
"와! 정신없이 싸우는데?"
아름다운 볼 터치와 유려하고도 우아한 움직임은 둘째 치고.
덩치 큰 AT 마드리드의 수비진을 향해 성큼성큼 돌진하는 제퍼슨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끈질기게 볼을 지키면서 수비진을 헤집는 모습은 심장을 뛰게 하는 역동성을 갖고 있었다.
"빠르기도 엄청나게 빨라!"
"맙소사! 수비수가 날아가 버리는데?"
"이거 친선경기 맞아? 수비수가 몸싸움에서 그냥 밀려 버리는데?"
AT 마드리드의 수비진은 강력하다.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의 간격을 좁히면서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압박은 숨도 쉬기 힘들다.
개개인이 출중한 능력을 지녔고, 쉽게 뚫리는 선수가 아니다.
그런 수비 라인을 제퍼슨이 몸으로 밀쳐 낸 뒤, 볼을 발끝으로 달고 움직이는 컨트롤을 보여 주며 무너뜨린 것이다.
거칠게 수비 라인을 찢어 버린 제퍼슨이 그대로 전진했다.
마치 앞을 가로막는 건 다 부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주저 없는 그 전진 드리블에 관중석이 달아올랐다.
"Shit! 때려 버려!"
"때려!"
AT 마드리드의 수비진은 터프한 수비도 잘한다.
몸으로 밀치면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데도 그들이 제퍼슨의 움직임을 저지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이것이 프리시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 몸 상태가 절정으로 올라오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런 걸 감안해서도.
고작 한 명의 선수에게 3명의 수비 압박이 단숨에 벗겨졌다.
너무 허무하게.
"Yeaaaaaaaaaaaaaa!"
제퍼슨은 결코 경험 없는 초짜가 아니다.
회귀 전 20년을 뛰었고,
지금의 삶도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을 뛰며 리그를 지배했다.
그는 침착했고, 동시에 화려했다.
수비들을 다 뚫어내고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게.
"응?"
"Oh! Shit! 골키퍼를 농락했어!"
슈팅 페이크로 골키퍼의 중심을 한 차례 무너뜨린 뒤, 급히 역동작에 걸려 손끝으로 공을 잡으려는 골키퍼를 피해서 완전히 비어 있는 골대를 향해 공을 그대로 때려 버렸다.
"Yeaaaaaaaaaaaaaa!"
"제-퍼-슨!"
"Goooaaaaal!"
홈팬도, 원정팬도 없는 중립구장에서.
제퍼슨은 이곳을 스탬포드 브리지로 만드는 엄청난 마법을 부렸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
내가 한 골을 넣었고, AT 마드리드의 주앙 펠릭스가 골을 넣으면서 1대 1이 되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끝났다.
"좋았다. 괜찮은 플레이였어. 하지만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많았다. 좀 더 움직여 줘야해! 기술로 제치지 못한다면, 더 많이 뛰고! 더 격렬하게! 더 거칠게 몰아붙여야해!"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하나, 하나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마운트, 수고했어. 후반전은 카이가 들어갈 거다."
훈련에서 발도 안 맞춰 본 선수가 바로 뛰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게 프리시즌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
마운트는 근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 우리의 중원은 점수를 매기자면 30점이었다.
"제프, 힘들었지?"
필드로 나가기 전, 감독님은 따로 나를 한쪽으로 불러 이온 음료를 주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깨를 으쓱였겠지만.
나도 오늘은 좀 힘들다.
"혼자 하려니 죽겠네요."
"조르지뉴도 영 몸이 좋지 않고, 마운트의 돌파력도 오늘은 별로군. 덕택에 고군분투하느라 애썼다."
"확실히 얘들, 챔스 4강팀이라 그런지 어려워요. 수비가 아주······."
"그렇지. 패스 길을 완전히 막아 버리니까."
사실 한 골 넣은 것도,
AT 수비진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점을 노린 것이다.
그냥 피지컬로 찍어 누른 거다.
만일 저들이, 시즌 중 한창 절정이었을 때 만났다면 쉽지 않았으리라.
더구나 오늘 중원에서 나에게 오는 패스가 모두 형편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AT의 선수들이 모든 패스 길을 철저하게 틀어막는 거지.
내가 중원에서 뛰어도, 패스할 길이 쉬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카이가 들어갈 거다. 그 친구가 레버쿠젠에서 보여 준 모습이라면, 후반전은 더 수월할지도 몰라."
"실력이야 확실한 친군데, 대화 한 번 안 해 봐서 호흡이 잘 맞으려나 모르겠네요."
"걱정 마라. 원래 잘하는 놈들은 지들끼리 눈빛만 봐도, 척 알잖아?"
"······."
음.
내가 이 양반한테 환상을 너무 심어 준 것일지도.
***
카이 하베르츠는 필드에 올라서며 생각했다.
'어렵진 않겠군.'
그의 경쟁 선수는 아마 조르지뉴나 메이슨 마운트일 것이다.
전반전에 뛰는 걸 봤을 때, 카이는 별문제 없이 주전을 쟁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딱 그 정도만 하면 되겠군.'
매 경기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니까.
더구나 프리시즌 경기다.
그는 이해하기 힘든 눈길로 전방에서 싸워 주는 제퍼슨을 바라봤다.
어설픈 패스조차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수비진을 부수는 선수.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프리시즌이고.
'어차피 그저 공 차는 스포츠인데.'
저러다 큰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찌 되려 하나.
프로는 딱 자신이 받는 만큼.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지 않은가. 그걸로도 제몫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굳이 저렇게 몸까지 날려서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는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제퍼슨뿐만 아니라 첼시의 선수들은 치열하게 공을 따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는, 그저 천천히 걷다시피 뛰었다.
***
카이는 재능이 있다.
아니, 단지 그걸 재능으로만 표현하기는 어렵다.
차기 축구 황제를 놓고 겨루던 수많은 선수 중에 하나였으니까.
하나, 그는 세계 정상급은 되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딱 한 단계 차이다.
신계와 인간계 최정상의 차이는.
그러나 많은 선수가 인간계 최강이라고 불렸지만, 정작 메시와 호날두가 뛰는 신계에는 접어들지 못했다. 고작 한 단계인데. 그렇다고 그 밑의 선수들의 재능이 부족한가? 아니다.
아무리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도, 그 한 단계를 극복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카이는 그걸 극복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그 정도까지 재능은 아닌가 싶었다.
하나, 지금 좀 왜 그런지 알겠다.
'열정이 없군.'
굳이 공을 향해 뛰지 않는다.
굳이 선수와 싸우지 않는다.
'게으른 건 아니야. 그냥 뭐, 딱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지.'
볼을 연결해 주고, 움직여 주고.
자신이 맡은 역할은 충실하게 하고 있다. 감독이 지시했던 사항을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다.
다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 가령 수비와 싸워 주거나 부딪쳐 주는, 또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하드워커적인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 놀라운 건.
어쨌든 그가 감독의 지시는 철저하게 이행한 탓에.
경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볼의 전개가 매끄러워졌고, 흐름이 좋아졌다.
'확실히 재능은 뛰어난데.'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애당초 선수의 마인드가 그러하면 무엇이 문제겠나.
더구나 아예 게으른 것도,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하는데 뭐라 할 수 없지 않나. 제 몫은 충분히 하고, 그에게 떨어진 지시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데, 왜 더 열심히 안 뛰냐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친해지긴 힘들겠어.'
뭐, 나랑은 맞지 않는 성격이라서.
캉테처럼 순둥순둥하거나, 풀리시치처럼 말이 잘 통하면 모를까.
저런 성격은......
그래도 우트 정도만 되도.
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때.
카이 하베르츠와 눈이 마주쳤다.
볼을 잡고, 평범하게 볼을 전개하려던 녀석과 불현듯 시선이 얽혔다.
"······!"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중앙 수비를 향해 돌진했다.
어떤 특별한 계산이 있던 게 아니다.
그냥 뛰었다.
눈빛을 마주친 순간, 수비진 사이를 파고 들어야 한다고,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몸이 조건반사처럼 움직였다.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리고.
투욱!
"뭐?"
"······!"
누군가 말한다.
축구는 예술이라고.
지단의 패스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트 사커, 그 자체라고.
어쩌면 오늘 난 예술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수비 세 명, 미드필더 두 명, 측면 미드필더까지 총 일곱 명이.
철저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패스 길을 막고 있었다. 순도 높은 압박이었고, 선수가 돌파할 수도, 그렇다고 패스를 넣을 수도 없는 완벽한 수비였다.
한데 놀라운 일은.
그 모든 간격을 다 찢어 버리는.
예술에 가까운 패스가 눈앞에서 보였다.
그리고 내 발 끝에 공이 도달했다.
수비들의 얼빠진 목소리. 몇몇은 손을 들며 부심을 쳐다보지만.
No, 오프사이드.
웃긴 일이다.
저 강력한 수비진이 패스 한 방에 뚫리다니.
그리고 그저 뛰었는데, 직감적으로 뛰었을 뿐인데 발끝에 공이 걸린다.
나는 망설임 없이 후려쳤다.
뻐어어엉!
"······!"
"맙소사!"
감독이 말했지.
잘하는 놈들은 눈빛만 마주쳐도 척척 움직인다고.
그건 감독이 나만 보고 느낀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센터서클에서 말도 안 되는 패스를 보여 준 카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차분한 표정 가운데, 눈만 살짝 동그래진 카이.
성격적으로 맞지 않을 거다.
이건 확실하다.
그러나.
필드에서 호흡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방금의 패스.
완벽했다.
***
카이 하베르츠는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의 눈동자가 부릅떠진 것이 그 증거였다.
'저걸 받았다고?'
소름이 다닥다닥 올라왔다.
그의 작년 레버쿠젠에서의 스탯은 21골 11어시스트.
엄청난 스탯이다.
그러나 어시스트가 득점보다 적다는 걸 생각하면, 누군가는 그가 패스하기보단 중거리 슛과 돌파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그랬다.
그는 어시스트를 올리기 위한 패스보단, 직접 해결 짓는 걸 선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받는 놈들이 없었지.'
그에겐 패스 길이 보였다.
아무리 두터운 수비벽, 완벽한 차단이어도.
어느 순간 길이 보였다.
'여기에다 패스하면 될 거 같은데?' 하면 단숨에 대지를 갈라 버리는 패스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공격수와의 호흡이었다. 상대 수비도 감히 예측 못하는 패스를, 같은 팀의 공격수라고 예측할까.
때문에 그의 어시스트 기록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패스했다.
일단 길이 보였으니까.
그냥 공을 찔러 넣었을 뿐이다.
한데 패스를 받고, 완벽한 오프사이드 침투를 보여 주더니 골을 만들어 냈다.
상상도 못 했던, 기대하지도 않았던 공격수의 화답에.
그는 온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이었다.
'희열이라니.'
희열과 짜릿한 감정이 온몸을 관통했다.
그의 알수없는 눈빛이 허공에서 제퍼슨과 얽혔다.
< 122. 이상한 놈, 잘생긴 놈, 잘하는 놈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