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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120화 (120/258)

< 120. 이상한 놈, 잘생긴 놈, 잘하는 놈 (1) >

요즘 시대에 시청률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낮아졌다.

높은 인터넷 보급률과 스마트폰의 활용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러나 TV는 아직도 중요한 대중매체였고, 방송국은 그 시청률 하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시청률이란 객관적인 지표가 광고를 끌어오는데 가장 효과적이니까.

"제발, 제발"

총괄 PD는 초조하게 손톱을 뜯으며 기다렸다.

4강전, 엘 살바도르전은 18.5%라는 시청률을 달성했다.

역사적인 시청률이다.

늘 비인기종목에 치였던 축구가 이 정도 시청률을 기록한 건 월드컵 외에는 없다.

제아무리 골드컵이라도 말이다.

결승전은, 하필 라이벌 멕시코전이었다.

시청률 외의 모든 집계가 폭등했다.

SNS 키워드, 인터넷 검색량까지.

당연히 기대할만 했다.

"선배님! 선배님!"

그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후배.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

꿀꺽.

스포츠국의 모든 직원의 시선이 쏠렸다.

무시무시한 침묵.

그리고.

"국장님한테 당장 성과급 통장에 입금해 달라 해 주십쇼! 저는 당장 비행기 표나 예약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

"됐다!"

"몇 퍼센트야? 얼마 나왔어?"

"전미 시청률 26%!"

"미친!"

"Oh, Shit!"

"맙소사, 말도 안 돼!"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시청률에 오히려 환호성이 잦아들었다.

저 시청률은 NBA도, MLB도 나오지 못했던 시청률이다. 오로지 NFL에서만 가능했던 수치.

"제퍼슨! 이 자식이 결국 해 줬어!"

"우리 성과급은 제퍼슨이 만들어 준거죠."

"전 오늘부터 제퍼슨 팬입니다."

그리고 그런 환호는 제퍼슨에게 향했다.

제퍼슨이 보여줬던 센세이셔널한 활약이 지금의 시청률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국장님!"

그때 스포츠국에 국장이 들어왔다.

난리를 부리던 직원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국장이 다가와 총괄PD에게 악수를 청했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국장님. 운이 좋았죠."

"덕택에 우리 쪽 전화가 뜨겁다 못해 날아갈 지경이네."

"네?"

"월드컵 중계권, 우리가 갖고 있잖나. 그 하프타임 때 광고 좀 따내겠다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아주!"

국장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월드컵 중계권 따야 한다고 이사진 회의에 프레젠테이션 발표까지 했다지?"

총괄 PD가 애매한 웃음을 흘렀다.

그 때문에 1조 원이란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썼고, 18년 러시아 월드컵은 그대로 날려 먹지 않았나.

"이번 월드컵 프로그램은 자네가 맡아."

"네?"

"혹시 아나. 제퍼슨이 활약해서 우리가 월드컵 8강, 4강까지라도 진출하면. 다음 국장 자리는 자네 것이 될지."

"······!"

국장은 묘한 웃음을 흘리며 스포츠국을 나갔다.

총괄 PD는 크게 심호흡하고 소리쳤다.

"자! 성과급 받고, 각자 휴가일정 제출한 뒤에 실컷 놀고 와!"

"와아아아아!"

환호하는 부하직원들을 쓱 둘러보면서 총괄 PD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제퍼슨, 이 사랑스러운 자식!'

오늘만큼은.

집에 있는 와이프보다 더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제발 승승장구해라! 유럽 정복하고! 월드컵 가서도 그냥 막! 지금처럼만!'

***

내가 골드컵을 뛰는 동안 이적시장은 꽤 활발하게 진행중이었다.

EPL은 6월 7일부터 이적시장이 열린다.

덕택에 발 빠른 팀들은 빠르게 선수들을 선점했다.

우리 팀은 떠나는 선수가 먼저 나왔다.

[첼시 소속, 대니 드링크워터 아스톤빌라행 전격 합의. 이적료 2,800만 유로(360억 원)]

드링크워터가 끝내 팀을 떠났다.

마초 축구라는 새로운 신기원을 열고 있는 그랜드 감독의 품으로 향했다.

"좋은 감독님이지."

"그래? 무조건 전진만 외친다고 들었는데?"

"편해질 거야. 공격과 수비 중에 공격만 하면 되거든. 수비는 안 해도 되니까."

내 말에 드링크워터는 웃으면서 떠났다.

제법 괜찮은 친구였다.

하나 프로 세계는 냉혹한 법이다.

그와 늘 좋은 대화를 나누던 필마르크 감독이 냉정하게 그를 쳐냈다.

첼시 2년 차에 접어든 감독님은 자기 뜻대로 팀을 리빌딩하기를 원했다.

1년차에는 무리였다.

팬들의 지지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팀을 구성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와 시셀도를 영입하는데에만 그친 것이지.

2년 차에 접어든 그는 과감하게 칼을 휘둘렀다.

로만 구단주도 그의 뜻을 존중했다.

어쨌거나 첫 시즌, 세 개의 트로피를 가지고 온 감독이니까. 팬들의 지지도 충분하고.

[로스 바클리, 아스날 이적 확정! 3,000만 파운드(430억 원) 합의]

"잘 있어, 친구들! 런던 더비에서 보자고!"

바클리가 아스날로 떠났다.

에버튼 복귀 루머도 있었지만, 그는 런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는지, 아스날로 떠났다.

첼시로서도 만족스러운 딜이었다.

생각보다 저조한 활약이 몇 시즌 째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잉글랜드 국적, 홈그라운드에 해당하는 선수라 포기할 수도 없는 계륵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던 선수다.

1,500만 파운드에 사 온 선수를 두 배 가격에 넘겼다는 건 썩 괜찮은 일이다.

아스날도 만족스러워했다.

ㄴ잉글랜드 국적을 3천만 파운드라면 싸게 산거지.

ㄴ첼시에서 좀 좋지 않았지만, 에버튼 시절의 바클리면 무섭지. 그가 폼을 찾으면 문제없어.

ㄴ부상도 많은 선수도 아니야.

ㄴ부상 얘긴 하지 마.

ㄴ설마.

ㄴ우리 팀에 오자마자 다치겠어?

그리고 가끔, 팬들의 끔찍한 상상은 소름 끼칠 정도로 들어맞을 때가 있다.

[로스 바클리, 발목 염좌로 2개월 아웃!]

참 신기한 팀일세.

가자마자 부상당하다니.

이런 상황에서 율리아겐은 고개를 저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보면서 말이지.

"아스날은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저긴 저와 디 파코가 가더라도, 안 될 것 같아요."

음.

에이, 설마.

율리아겐과 디 파코라는 괴물 트레이너 두 명이 가면 달라질 수 있겠지.

······아니려나?

***

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시즌 뛰었다고, 역사가 엄청나게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맨시티가 무관을 했고, 리버풀이 우승했으며, 우리가 3관왕을 했다는 것이 바뀐 역사다.

하나, 내 예상보다 더 큰 변화가 있었다.

[리버풀 위르겐 클롭 감독, 감독직 사임!]

[위르겐 클롭, '늘 말했듯이 휴식기가 필요하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

클롭 감독이 리버풀을 사임했다.

놀라운 일이다.

······음, 아닌가?

본래 회귀전을 떠올리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도르트문트에서 사임했던 것처럼.

휴식기를 가지고자 하는 의도일 거다.

회귀 전에도 그랬다.

리버풀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나서 미련 없이 사임했었지.

다만 그게 내가 맨시티를 때려잡으면서, 올 시즌으로 바뀐 것이다.

아마 한 24-25시즌이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클롭의 사임은 감독 연쇄 이동을 불러왔다.

[알레그리 감독, 리버풀의 새 감독으로 부임.]

유벤투스의 알레그리가 리버풀로 왔다.

토트넘에서 여전히 트로피를 차지 못한 포체티노에게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가 들어왔다.

[포체티노 감독,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다!]

유벤투스와 지단 감독의 링크가 뜨고 있었고,

바이에른 뮌헨의 세바스티안 루디 감독이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았다.

자연히 뮌헨의 감독직 자리가 비었다.

그리고 때론, 본래 역사는 강력한 자석처럼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필마르크 감독,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나나?]

딱 이 시즌에 뮌헨의 지휘봉을 잡는 게 필마르크 감독이다.

감독의 의도대로 팀이 리빌딩 되는 상황이라, 첼시의 스태프들은 모두 잔뜩 긴장했다.

"제프, 너 혹시 뮌헨 갈 생각 있냐?"

필마르크 감독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뮌헨에서 저 영입 원한대요?"

"영입 문의는 진작 들어왔지. 하지만 돈을 크게 쓰는 데가 아니라. 혹시 네가 뮌헨으로 떠날 용의가 있다면······."

바이에른 뮌헨, 좋은 팀이다.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경험도 나쁘지 않다. 또 뛴다면 괜찮겠지.

그러나 한 시즌 더, 첼시에서 더 뛰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속내였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떠날 생각 없어요."

"그래? 알겠다."

감독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필마르크 감독,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는 팀을 내버려 두고 떠나진 않는다. 난 다음 시즌에도 첼시의 감독이다.']

"뮌헨 좋은 팀이잖아요?"

"하지만 네가 없지."

"레반도프스키라는 아주 걸출한 공격수가 있는데요."

"제퍼슨 리는 없잖아?"

"제가 그렇게 감독님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내 와이프, 아들, 딸, 그다음 너야."

"어우, 소름."

턱수염 성성한 남자의 고백이라.

어찌 됐건 필마르크 감독이 거취를 확실히 하자 우리는 본격적인 프리시즌에 돌입했다.

"USA!"

"여기가 미국이군!"

덕택에 런던으로 가는 일은 덜었다.

첼시의 전지훈련 장소가 바로 미국으로 확정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조금은 마케팅적인 측면이 크다.

미국에서 첼시의 인기는 유럽 클럽 중 최고에 달했으니까.

또한, 미국은 수많은 스포츠 인프라가 완벽한 시장이다.

훈련에 임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제-퍼-슨!"

"제-프! 사랑해요!"

훈련장에 들어서면,

수많은 팬이 펜스 밖에 몰려들었다.

엄청났다.

수백 명, 그 이상이었다.

"우리 미국 인기가 이 정도였나?"

"우리 인기가 아니지."

"제프의 인기야."

"여기선 데이비드 베컴이나 다름없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제프를 알아본다고!"

"적어도 여기에선 데이비드 베컴보단 제프인 것 같은데?"

사실 축구선수가 거리를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도 외국 선수면 그렇다.

실제로 선수들은 훈련장까지 조깅하며 천천히 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팬들이 알아보니 조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제프 때문에 시내 조깅은 불가능하겠군."

"여기가 뉴욕이라서 그런 거야? 아니면 미국은 다 이래?"

"제프라서 그런 거 같아. 풀리시치를 외치는 사람은 별로 못 봤어."

캉테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풀리시치는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심지어 제프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응?"

"저번에 SNS로 제퍼슨을 응원한다고 올렸거든? 한 4일 후부터 내 라커룸에 온갖 한국 과자들이 배송되더군."

"오!"

오도이의 자랑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국팬들이 보내 주는 애정도 미국인들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편이다.

SNS나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내가 한국 팬들을 대하는 모습이 좋은 모습으로 꽤 퍼진 영향이었다.

"자. 한국 과자 받고 싶으면, 제퍼슨하고 셀카 찍고 올려!"

흠.

누가 찍어 준대?

***

로만 구단주는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처럼 충분한 이적 자금을 지원해 줬다.

[독일 차세대 스트라이커, 마크 우트 샬케에서 첼시 이적 전격 합의! 이적료 2,000만 유로(262억 원)]

마크 우트.

호펜하임에서 두 자리 이상의 득점,

샬케에서도 매 시즌 두자리 득점을 찍어주는 꽤 준수한 실력의 스트라이커다.

이 친구, 필마르크가 뮌헨에서 영입해서 아주 잘 써먹던 선수다.

괜찮은 공격수다. 내 백업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파트너로서 공격진에 힘을 더해 줄 좋은 자원이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좋다.

"반가워, 우트!"

"마크 우트, 첼시에 온 걸 환영해!"

"······Hello."

캡틴과 부주장인 조르지뉴가 나서서 환영했다.

우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로 손만 살짝 흔들었다.

흠.

낯가리는 친구인가보군.

아니면 영어를 못 해서인가.

뤼디거하고는 좀 길게 대화를 하긴 했는데,

그것도 긴 대화는 아니었다.

그냥 성격이 무뚝뚝한 사람인 듯했다.

그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음.

뭔가 표정이 들뜬 표정인데?

"I'm······ You're Big fan!"

"어. 고마워."

떨리는 눈동자, 살짝 올라간 목소리 톤. 그리고 어디다 놓아야 하는지 방황하는 양손까지.

뭐야. 얘 왜 저래?

내가 독일어로 반기자, 우트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다른 동료들에게 무표정이던 그 친구가 맞나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이었다.

"오, 난 정말, 제퍼슨 당신의 팬이야. 널 좋아한다고."

"고마워."

"진짜야. 특히 너의 플레이는 환상적이지. 이 엄청난 근육질에서 터져 나오는 힘과 스피드, 그리고 득점력은 정말 남자의 로망과도 같아. 멋지지."

그는 그러면서 내 몸을 한차례 쭉 훑어보았다.

어, 설마.

얘 그런 쪽은 아니지?

"한번 안아 봐도 될까? 정말 팬이라서 그래?"

"······."

주위 동료들의 묘한 시선이 날아와 박힌다.

이 녀석.

위험한 놈이다.

***

프리시즌 첫 경기는 컨디션 회복이 중점이었다.

그 때문에 첫 상대는 비교적 약팀이다.

미국 2부리그에 있는 뉴욕 코스모스를 상대했다.

전반전은 백업, 로테이션, 유망주 멤버로 치뤘다.

그래도 2대 0으로 앞섰다.

후반전에는 저번 시즌 베스트 일레븐이 그대로 나갔다.

아, 거기에 마크 우트가 내 파트너로 투톱 출격했다.

툭!

"오!"

"밸런스가 좋은데?"

우트는 필마르크의 선택을 받은 선수다.

적어도 스트라이커로서의 재능은 충분하단 증거겠지.

그는 순식간에 박스에서 수비 셋을 벗겨 냈다.

물론 그 수비들이 미국 2부리그 선수란 걸 감안해도, 그가 보여 준 발재간은 훌륭했다.

단숨에 수비를 벗겨 내고, 심지어 골키퍼까지 페이크로 속여 낸 뒤.

빈 골대를 향해.

툭!

"응?"

"어?"

패스했다.

아니, 그러니까 골대 안이 아니라, 한쪽에서 멀거니 지켜보던 나에게.

나는 나도 모르게 일단 굴러오는 공을 그대로 골대 안으로 밀어 넣긴 했다만.

왜 저기서 빈 골문으로 안 집어넣고 패스를 해?

내가 어이가 없는 눈길로 우트를 바라보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 환상의 호흡이야!"

아.

진짜 얘 좀 이상한데.

< 120. 이상한 놈, 잘생긴 놈, 잘하는 놈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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