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10화 (110/258)

< 110. 우승 청부사 (3) >

[첼시, 리버풀 상대로 FA컵 결승전 3대 2 대역전극!]

[화끈한 펠레 스코어, 제퍼슨 리! 후반전 해트트릭 폭발!]

[첼시,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다!]

[웸블리를 뒤덮은 푸른 물결! 제퍼슨 리, 첼시를 우승으로 이끌다.]

[첼시 팬, 극적 역전승에 환호하다! '후반전 필드로 들어오는 제퍼슨의 표정을 봤다. 우리는 모두 이 경기를 이길 수 있다고 예감했다. 제퍼슨이 그리 만들었다.']

[첼시를 역전으로 이끈 원동력은 두 가지. '위닝 멘탈리티'와 '제퍼슨 리']

[위르겐 클롭, '제퍼슨 리는 믿을 수 없는 선수다. 그 어떤 전술도, 그 어떤 선수도 그를 막을 수 없다.']

[리버풀, 반 다이크, '경기에서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내가 있는 공간과 시간을 빼앗아 버리는 느낌이다. 소름 돋는 선수다.']

[첼시 필마르크 감독, '보라! 그를 5700만 파운드에 영입한 건, 너무 저렴했다 것이 이제야 증명되지 않았나?']

[제퍼슨 리, FA컵 우승에 대한 소감을 묻자,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가지고 온 후에 같이 말하겠다.']

***

풀럼에 있는 병원은 꽤 암울한 분위기였다.

병실에는 노령의 환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첼시의 열렬한 서포터즈였다.

때문에 입원실의 TV에 FA컵 결승 중계가 흘러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끄응."

첼시의 전속 사진사로 40년 동안 첼시의 역사를 찍어 온 할리도, 지금 병원에 있었다.

1월부터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병환이 깊어져 결국 사진사를 그만두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할리는 병실에 누워서도 첼시의 모든 소식에 귀를 열고 지켜봤다.

그런 그에게 전반전 2대 0의 스코어는 참혹한 것이었다.

"TV 끌까요? 할아버지?"

손녀딸, 브리아나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리모컨을 가져왔다.

할리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봐라. 저기 제프의 표정을."

후반전.

필드에 들어오는 제퍼슨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담겼다.

"아무리 제프라고 해도, 2대 0스코어인데."

"이 할애비는 믿는다. 분명히 그가 해 줄 거야."

브리아나 역시 할아버지처럼 제퍼슨의 팬이다.

그러나 경기를 늘 이길 수 없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하필 그것이 결승전인 게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 그 생각은 후반전에 곧 바뀌었다.

[Oh!! Lovely Finish! 제퍼슨 리! 환상적인 추격골이 터집니다!]

시작하자마자 터진 추격골.

[세상에, 제퍼슨! 심판을 이용하면서 센스 있게 반 다이크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돌파하고! 슈웃! 고오오오오오올!]

극적으로 터진 동점골.

병실에 누워 있던 환자들이 언제 아팠냐는 것처럼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다.

"그렇지이!"

"저 자식이 해낼 줄 알았지!"

"무슨 소리야? 질 거 같다면서 잠이나 잔다고 했던 양반이?"

"내가 언제 그랬나? 이 양반아!"

"역시 제프야. 제프가 정신 차리고 경기 뛰니까 속이 시원하네!"

"진짜 물건이야, 저 친구."

"어떻게 저런 얘가 나타났을까."

할리와 브리아나도 동감했다.

어떻게 저런 선수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을까.

작년 무관이었던 설움을, 이번 시즌 모조리 해소해 주는 선수가 아닌가.

그리고 후반전 막바지에 터진 극적인 해트트릭 역전골에 병실은 그만 뒤집어졌다.

"간호사! 의사를 불러와!"

"이 양반 너무 기뻐하다가 혈압이 터질 거 같은데!"

"오, 제기랄! 제퍼슨 저 자식이 리버풀뿐만 아니라 이 노인네마저 죽이려고 드네!"

"으하하하하! 우승이다! 우승이야!"

끝내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중계로 나오면서, 병실은 TV를 끄려는 간호사들과 막으려는 환자들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 보기 힘든 광경에 할리와 브리아나는 그저 웃었다.

썩 괜찮고, 즐거운 장면 아닌가.

"할아버지는 혈압이 그래도 팍 오르진 않으시네요? 별로 안 기쁘신가 봐요?"

"흠흠. 억지로 참는 중이란다."

"네?"

"유로파 우승도 곧 할 텐데, 벌써 이러면 안 돼."

"그전까지 좀 괜찮으시면, 같이 가는 게 어때요?"

"스페인? 너무 멀다. 여기서 봐야지.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직접 가 보고 싶구나, 죽기 전에."

"······."

순간 브리아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쁜 기색이 가득했던 할리의 얼굴에 언뜻 아쉬움이 비쳤다.

"1년, 1년은 어떻게 버티겠는데. 과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갈 수 있을까."

브리아나는 순간 울컥했다.

단순한 병이 아니기에, 40년 동안 일했던 첼시의 사진사마저 그만두고 입원한 것이다.

1년.

어쩌면 할아버지에게 남은 건 1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챔피언스리그 결승, 그리고 곧 우승이다.

브리아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제프가 있잖아요."

***

"유로파 결승전을 준비해야 하는데, 시상식이라니."

"하루잖아. 수상만 하고 오면 되지."

"협회에서 꼭 참석해 달라는 거 보면, 일단 상은 확실히 주는 거 아니겠어?"

FA컵이 끝나면서, 잉글랜드의 모든 대회가 끝났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상식이 열린 것이다.

하나, 우리는 유로파 결승을 앞둔 상태.

물론 10일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결승은 그리 쉽게 생각할 게 아니다.

하여 시상식은 불참하려 했으나, 협회 측에서 꼭 참석해 달라는 간절한 메시지가 왔다.

"뭐, 한두 시간이면 끝나겠지."

술 안 마시고, 놀 생각 안하고, 후딱 상만 받고 와서 다음 훈련 준비하면 될 거다.

"음."

"사실 놀고 싶지만, 제프, 네 생각대로 해야겠지."

시상식에 동행하는 동료는 풀리시치와 캉테였다.

몇몇도 더 초청받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수상을 받을 게 확실하지 않아서.

사실 이쯤이면 누가 무슨 상을 받을지 다 짐작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고.

시상식은 꽤나 큰 규모로 진행됐다.

레드카펫부터 시작해서 식전 행사에 유명 가수들이 참여하여 분위기를 달궜다.

여러 행사가 있었지만,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조금 신경 쓴 건, 레드카펫에서의 팬서비스 정도다.

"여기 사인 부탁드려요!"

"여기도요! 제프!"

"제-프!"

흠.

할리우드 스타라도 된 거 같군.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내가 다짐한 게 여러 개 있지만, 그중 하나는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바로 팬 서비스.

언제였더라.

내가 아주 어렸을 때다.

축구는 그냥 학교에서 공 차는 것밖에 모르던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K리그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선수가 부상으로 출장하지 않아 내가 엉엉 울었지.

하여튼 경기도 지고, 슬픈 마음에 아버지 차 뒷좌석에 울면서 차에 오르는데.

저 멀리 관중석에서 빠져나오는 그 선수를 봤다.

아버지는 얼른 종이하고 펜을 주면서 사인을 받아오라고 나를 떠밀었다. 쭈뼛쭈뼛 다가가 '팬이에요. 사인 좀······' 하던 나를 무표정한 표정으로 내려 보던 그 선수.

처음에 무서워서 식겁했다. 당연하다. 190cm가 넘던 선수니까.

한데 그 선수는 이내 목마를 태워 주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고작 사인 하나만 받을 거야? 응? 사진은 안 찍어?"

그때부터였다.

그것이 정말 내 뇌리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단 꿈을 가지게 되었고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공을 차기 시작했다.

그 선수에게는 고작 5분이다.

5분 동안 어린이 팬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다.

한데 그 5분이 나에게는 평생의 추억과 기억으로 남았고, 내 인생마저 바꿔 놓지 않았던가.

축구 선수는 단순히 공만 차는 스포츠 선수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조금은 낭만적인 직업이 아닐까.

그런 기억과 생각이 되도록 팬서비스를 빼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다.

"제프! 너무 친절해요!"

"경기 중의 나쁜 남자처럼 굴어 주세요!"

"막 욕도 하고!"

음.

때론 팬들이 정상적이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군.

***

"20-21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득점왕입니다. 통산 35경기 출장, 43골! 첼시 FC의 제퍼슨 리!"

짝짝짝짝짝짝.

객석의 반응은 너무 당연해서 편안할 정도다.

이미 득점왕을 수상한 건 당연한 일이다.

트로피를 받고 소감을 말하는 건 요식 행위였다. 중요한 건 아마 올해의 선수 같은 상이겠지.

대부분 객석이 편안한 표정으로 손뼉을 치는데.

오로지 해리 케인만이 다소 불편한 얼굴이었다.

음. 그럴 만하지.

"감사합니다. 이 시상을 받게 도와준, 우리 팀의 도움왕인 풀리시치에게 고마움을 보낼게요."

간단히 소감을 남기고 내려온 후.

다음 시상이 진행됐다.

"프리미어리그 시즌 최우수 선수입니다. 최종 후보는 6명입니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해리 케인, 반 다이크, 제퍼슨 리, 은골로 캉테!"

호명된 선수들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니, 평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언뜻 긴장한 기색이 스친다.

흠.

이건 다른 사람을 주려나.

"프리미어리그 시즌 최우수 선수! 첼시 FC의 제퍼슨 리입니다!"

***

한 시즌 동안 2관왕을 받는 선수가 없던 건 아니다.

리그를 지배했던 선수들은 고작 상 하나만으로 만족하기엔, 너무 대단한 활약을 했으니까.

제퍼슨 리는 그 시상식에서 무려 8개의 트로피를 받는 기염을 토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제퍼슨 리(첼시) 43골

<프리미어리그 시즌 최우수 선수상>

제퍼슨 리(CF, 첼시)

제퍼슨 리(19, 첼시)

"그냥 다 싹쓸이해 버렸네."

"이래서 협회가 꼭 시상식 참석해 달라고 했던 것이군."

"허. PFA, FWA, 거기에 리그 공식 올해의 선수까지. 이걸 다 싹쓸이했다고?"

시상식이 끝난 다음날.

훈련장의 첼시 선수들은 제퍼슨의 수상 내역을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특히 PFA는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동료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선수들에게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최고로 영예로운 수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심지어 거기에 잉글랜드 축구기자협회에서 지정한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더구나 나이도 어려서 올해의 영플레이어상, 즉 신인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올해의 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리그 득점왕이 아닌가.

거기에 FA컵 결승전에서 보여 준 활약에 MVP가 확정됐고, FA컵 득점왕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마디로 이번 프리미어리그는.

"제퍼슨의 시즌이군."

사실 아무리 프로의 세계라고 한들, 질투와 시기가 없을 리가 없다.

그래도 적어도, 첼시 구단 내에는 그런 선수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선수가 알았다.

"제프 때문에 우리가 우승했지."

"맞아.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사실 제프의 공이 커."

"이번 시즌은, 정말 제프가 와서 다행이야."

포지션 경쟁자인 타미 아브라함은 제퍼슨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지루는 제퍼슨의 실력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자신의 로테이션 역할에 충실했다.

"그래도 유로파 득점왕은 내 것일걸?"

"4골 차이죠?"

"응."

"······제퍼슨이 결승전에서 4골을 집어넣으면, 출장 수가 적어서 제프가 득점왕을 받지 않나요?"

타미의 물음에.

지루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지루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훈련장 한편.

방송사에서 온 일단의 무리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제퍼슨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보였다.

지루는 느꼈다.

이 불안함이.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프리미어리그가 아니라, 제퍼슨리그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많은 트로피를 받아서, 어떤 수상을 축하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43골은 프리미어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차후 몇 년, 어쩌면 몇십 년 동안 깨지기 힘든 불후의 기록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깨지기 쉬운 기록이죠."

"네?"

리포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전 최고기록은 32득점이 아니었던가.

한데 43골은, 그 기록을 열 골 이상 앞섰다.

엄청난 기록이란 얘기다.

그 기록이 깨지기 쉽다니?

"당장 다음 시즌에 45골 이상 넣기에 충분하거든요. 제가요."

"······."

리포터는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즌 제퍼슨이 보여 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것이었으니까.

그 퍼포먼스가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면?

아니 발전한다면?

꿀꺽.

'무서운 시즌이 되겠지.'

기대감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이 제퍼슨에게 향했다.

"다음 유로파리그 결승전, 세비야 FC와의 일전이 남았습니다. 심지어 경기가 열리는 구장은 세비야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입니다. 세비야의 홈구장이죠. 세비야는 홈에서 엄청난 성적을 보여 주는데, 어떤 각오로 임하실건가요?"

리포터의 질문에 마이크가 좀 더 가깝게 다가갔다.

제법 좋은 인터뷰 스킬과, 인기를 모으는 방법을 아는 미국인이다.

방송 관계자들의 기대감 어린 시선이 쏠리고.

제퍼슨이 입을 열었다.

"세비야는 강팀이죠. 유로파리그 통산 5회 우승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기록한 최고의 팀입니다. 절대 얕보지 않고, 필사의 각오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세비야 팬들을 위해서 반드시 우리가 이기겠습니다."

"네? 세비야 팬들이요?"

첼시 팬이 아니라, 세비야 팬들을 위해 우승하겠다니?

혹여 실수한 게 아닌가 싶어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제퍼슨의 웃음은 더 짓궂었다.

"세비야는 유로파를 우승하고 핵심 선수들을 거액에 다른 구단에 팔아넘기지 않습니까? 세비야 팬들은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 제가 아예 세비야의 유로파 우승을 막아 드리면, 세비야 팬들이 좋아하지 않겠어요?"

< 110. 우승 청부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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