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07화 (107/258)

< 107. Six and the City (2) >

맨시티 91점, 리버풀 91점.

승점 동률.

하면.

"득실 차는?"

"우리가 1점 앞서고 있어요!"

"······!"

펩은 입을 다물었다.

지독한 침묵이 벤치에 가라앉았다.

그의 가라앉은 시선이 필드로 향했다.

그 순간에, 펩은 축구를 하면서 가장 심각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걸어 잠궈?'

이대로 스코어를 지킨다면, 이긴다.

하지만 리버풀이 다시 재역전 골을 넣으면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그렇게 된다면 필요한 건 오로지 승리다.

여기서 걸어 잠그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또한 맨시티가 언제 수비적으로, 시간 끄는 플레이를 했단 말인가?

그것도 4대 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 위협적이다.'

하나 펩은 심장을 비수로 짓누르는 기분에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제퍼슨 리.

그 어마어마한 공격력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 공격력을 막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내려앉는 게 답이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겹칠 무렵.

관중석에서 다시 비명과 환호성이 동시에 울렸다.

"······!"

[제퍼슨 리! 가운데로 찔러 주는 패스! 아! 윌리안이네요! 윌리안 한 번 접고, 인프론트 슈팅! 골! 골입니다!]

"Yeaaaaaaaaaaaaaa!"

"Goooooooaaaaaal!"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홈 팬들.

부르르!

꽉 쥔 두 주먹이 미친 듯이 떨렸다.

온몸이 긴장감과 위기감으로 팽팽해졌다.

5 대 2.

승점 동률, 득실차 동률.

펩의 선택은 하나로 강요됐다.

'더 넣어야 한다! 이 흐름이라면, 실점 하나 더 내줄 수도 있어! 그리된다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

제아무리 감독이 명장이어도, 필드의 흐름은 제어할 수가 없다.

엄청난 압박감이 필드를 짓누르는 가운데.

한번 휩쓸리기 시작한 분위기는 쉽게 역전시킬 수 없다. 지금 필드가 그랬다. 역전시킬 방법은 하나다.

무조건 공격, 그리고 득점과 승리.

[베르나르도 실바가 마레즈 대신 교체 투입되네요. 다비드 실바 대신 귄도간이 들어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 승부수를 던집니다!]

[오! 세상에! 로드리를 빼고 제수스를 투입하네요! 교체 카드 세 장을 다 사용합니다! 공격적인 교체입니다!]

꿀꺽.

목울대가 출렁였다.

꽉 쥔 주먹과,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

언제였던가.

이렇게 긴장했던 적이.

수많은 우승 경쟁 중에, 지금만큼 긴장한 적은 몇 번 없다.

그리고 그를 긴장케 한 선수는 세상에 몇 없었다.

최근엔 그의 제자였던 리오넬 메시가 그랬다.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어떤 전술이든 부숴 버리는 그 가공할 퍼포먼스에 경악하다가 끝내는 체념했다.

한데, 지금 그때의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준비한 전술이 모두 무너지고, 그 분위기마저 혼자서 뒤집어 버리고 있어.'

두려움과 경외감이 섞인 시선이 제퍼슨에게 향했다.

그리고, 또 강렬한 소유욕이 들었다.

'갖고 싶다!'

언제였던가.

이런 감정이.

정말 미치도록 갖고 싶은 선수라니.

펩이 속으로 실소했다.

이미 구단주에게 단단히 말해 놨으니, 어쩌면 다음 시즌엔 자신이 저 선수를 지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를 막아야만 한다.

그의 뜨거운 시선이 필드를 향하는 순간.

제퍼슨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남들의 시선이 강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벤치와 필드, 그리고 관중석까지.

그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엔 기대감, 놀라움, 분노, 짜증, 살의에 가까운 감정까지 다양했다.

그것은 어쩌면 압박감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맨시티 선수들이 흔들리고 있는 이유였다.

압박감. 우승에 대한 그 압박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하지만 난 아니다.

어차피 난 여기서 져도 상관없다. 42호 골을 터뜨렸고, 첼시 역대 최다 득점을 세웠으며, 리그 3위에 안착했다.

부담감?

그런 건 없다.

다만 나에게는 지금 내가 드리블할 공간과 길이 보일 뿐이다.

툭!

"막아!"

맨시티는 득점을 위해 라인을 높였다.

그리고 나를 시종일관 괴롭히던 로드리가 빠졌다.

툭, 차고는 직선으로 달렸다.

성큼성큼, 길게 공을 쭉쭉 뽑아내며. 아직도 죽지 않은 스피드를 터뜨리며.

맨시티의 수비수, 라포르테가 반칙으로 끊을 속셈으로 어깨를 아예 잡아끌려고 했다.

툿!

하나 웬만한 힘이 아닌 이상 난 무너지지 않는다.

라포르테가 적어도 120kg의 디펜스맨이 아닌 이상, 그들의 황소 같은 돌진이 아닌 이상 날 멈춰 세울 수는 없다.

"멈춰!"

흠. 멈추라고 해서, 멈추는 사람이 있을까.

느낌이 온다.

"------!"

선수들의 갖은 외침이 쏟아진다.

오른쪽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스톤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거, 태클이군.

카드?

그래, 카드를 받아서라도 막겠단 심보다. 저 표정과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감독님이 해트트릭을 한 날 교체 아웃하려고 했지.

이대로 물러서기엔 아쉽다. 내게 필요한 건 골이다.

투욱!

"Yeaaaaaaaaaaa!"

달려오는 스톤스보다 한 발짝 앞서 공을 높이 띄우고.

순간적으로 점프해 스터드를 들어 올린 비열한 슬라이딩 태클을 피했다.

툭!

떨어지는 공이 발끝에 닿아 멈춘다.

아무런 반동이 없이 착.

느낌이 좋다.

나머지 선수가 달려오기 전에 뛰어야 한다.

어차피 좀 있으면 체력 때문에 교체될 것이다.

하면, 지금 남은 체력을 모두 불사른다.

보인다.

골키퍼의 얼굴이.

에데르송 골키퍼의 결의가 어린 표정이.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맨시티 팬들의 간절한 표정.

이거 참.

성격이 변했나.

뻐어—엉!

저 간절했던 표정이 다 일그러지고.

누군가는 욕설을 터뜨리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리니까.

왜 이리 기분이 좋냐.

응?

***

제퍼슨의 마지막 슈팅은 강렬했다.

수비수 두, 세 명을 오로지 힘과 속도로 부숴 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가공했다.

아무런 수비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

늘 완벽한 폼을 보여 줬던, 맨시티의 수비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어떤 것인가 잘 느꼈다.

그리고 그 슈팅이, 에데르손의 손끝을 스치고 골네트에 꽂히는 순간.

6 대 2.

맨시티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도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렸던 적이 없던 펩이.

처음으로 참지 못하고 억눌린 감정을 내비치는 순간이었다.

"씨이이이이이이이바아아알!"

***

"그거 알아?"

"응?"

"어렸을 때, 집에 아무도 없을 때. TV에서 하던 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제목이 워낙 선정적이어서, 호기심 갖고 봤었거든."

"음."

"섹스 앤더 시티라고. 뭐 막상 보니 별거 없었지만 말이야. 근데 지금이 훨씬 더 자극적인 거 같아."

"응?"

"펩의 표정을 보니 행복한 저녁이군."

제퍼슨이 전광판에 떠오른 스코어를 가리키며 웃었다.

6 대 2.

"Six and the City!"

4골 2어시스트.

제퍼슨 리,

맨시티의 우승을 향한 집념을 꺼뜨렸다.

***

[첼시, 맨시티를 6대 2로 완파하다!]

[제퍼슨 리, 최종전 4골 2어시스트, MOM선정!]

[Six and the City! 맨시티의 치욕!]

[맨시티 팬들 집중력을 잃은 수비수를 비판하다! '썩어 빠진 정신력! 이럴 거면 차라리 제퍼슨을 사 와라!']

[리버풀, 맨유와 무승부! 하지만 골 득실 차로 기적의 역전 우승!]

[리버풀 팬들, 제퍼슨 리를 찬양하다! '안필드에 제퍼슨 리의 동상을 세울 계획이다. 그가 우리에게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선물했다.']

[원더보이에서 리그 올해의 선수가 된 제퍼슨 리.]

['캡틴 아메리카', '미국의 왕', '원더보이' '신대륙의 나폴레옹' 제퍼슨 리. 리그 19개 팀에게 모두 득점하는 신기록!]

[리그 43호골, 제퍼슨 리.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차지!]

[19세의 리그 득점왕, 천재의 탄생인가? 신의 탄생인가?]

[제퍼슨 리, 맨시티의 우승을 저지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다. '난 리버풀의 우승도, 맨시티의 우승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원했던 건, 경기장에서 우리가 골을 먹히고 울고 있던 꼬마 팬을 위해서 승리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것뿐이다.']

[클롭 감독, '이래서 축구는 재밌다. 맨유에게 동점골을 먹히는 순간 분노했지만, 제퍼슨이 4골을 터뜨렸단 소식에 웃어 버렸다.']

[펩 과르디올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완벽한 패배다. 하지만 다음 시즌, 우리는 더 무서워져서 돌아올 것이다.']

[펩, 더 무서워진다는 것이 선수 보강이라는 뜻이냐는 질문에, '제퍼슨 리가 예티하드 스타디움에서 뛴다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리미어리그 20-21시즌 폐막!]

[리버풀 1위, 맨시티 2위, 첼시 3위, 토트넘 4위, 에버튼 5위, 맨유 6위, 아스날 7위!]

***

"당신의 팬이에요."

일상에서 팬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마트를 가거나, 산책하거나, 식당을 가거나.

런던에는 수많은 첼시 팬이 있고, 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리버풀 팬이 나에게 팬이라고 다가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보세요. 유니폼에 당신의 이름을 새겼죠."

"그거 리버풀 유니폼 아닌가요?"

난 쓰게 웃었다.

나 참.

리버풀 유니폼에 사인을 해 주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러고 보니 런던에 리버풀 팬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웸블리에서 펼쳐지는 FA컵 결승전 때문이다.

그리고 날 만나는 리버풀 팬들은 모두 악수와 사인을 청해 왔다.

"당신이 맨시티를 잡았죠."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우리는 우승이 필요했어요."

"리그 우승이 정말 간절했는데, 맨유 그 자식들에게 동점 골이 먹히는 순간. 내 딸은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죠. 하지만 맨시티가 6 대 2로 패배했단 소식에 미친 듯이 웃으며 방방 뛰었어요."

리버풀 팬들은 정말로 나에게 고마워하는 기색이었다.

이거 참.

저번에 안필드 원정 가서 골 넣고 온갖 험한 욕이란 욕을 다 들은 거 같은데 말이지.

뭐, 이게 축구판이긴 하다. 원래 좀 감정적이고, 내로남불이고. 이걸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저들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팬들 아닌가.

난 웃으며 그들에게도 사인을 해 줬다.

그러다 문득 말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란 꿈을 이뤘으니, FA컵은 그다지 상관없겠네요?"

"네?"

"그럴 리가요! 우리는 더블을 원합니다!"

"더블! 클롭 감독은 FA컵 트로피를 갖고 올만한 명장이죠!"

"이런, 아쉽군요. 당신의 딸이 어쩌면 울지도 모르겠어요."

"네?"

"제가 골을 넣어서 리버풀은 우승이 힘들지도 모르니까요."

딱딱하게 굳어지는 얼굴들.

뭐,

사실 우리가 사이좋게 하하호호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지 않나.

***

로만 구단주는 통이 크다.

"보너스가 너무 과한데?"

"여기에 FA컵하고 유로파 우승까지 하면 얼마나 돈 줄지 모르겠군."

리그 3위의 성적이지만, 로만은 충분히 만족한 거 같았다.

아주 흔쾌히 보너스를 뿌렸다.

그리고 FA컵과 유로파 우승에 대한 보너스도 약속했다.

갑작스레 제법 큰돈이 들어왔다.

"우승컵 두 개를 더 따낼 거니까, 돈은 더 들어올 거야."

"아주 우승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네?"

"그렇게 만들 거거든."

"하하하!"

내 말에 캉테가 웃으며 차에 올랐다.

아오, 저 미니쿠퍼.

돈도 많이 버는 녀석이, 취향이 저러니까 참 귀엽네.

흠. 그러고 보니 부모님에게 좀 돈좀 써야겠다. 안 그래도 최근에 운동 기구에, 내 개인 트레이닝 팀에 돈을 쏟아부었으니까.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응?

"여름에 어머니랑 휴가 다녀오실래요?"

-휴가?

"호화 크루즈 타고 세계 여행 다녀오세요. 오대양으로 쫙!"

-헙!

"안에 카지노도 있는 걸로요. 가서 종종 즐기시고. 둘이 오붓하게 말이죠. 카드도 드릴게요."

-아들아.

"네?"

-사실 난 네 어머니보다 널 더 사랑하는 거 알지? 원래 부모는 자식을 더 사랑하는 법이란다.

"······지금 옆에 엄마 계시는데. 스피커폰인데."

-농담이란다. 내가 널 아무리 사랑해도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농담이에요. 아무도 없어요. 음, 카드는 어머니한테 드려야겠네요."

-어······ 아들아?

< 107. Six and the City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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