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Six and the City (1) >
축구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처럼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게임처럼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데 맨시티는 가능했다.
"City! City! City!"
"Go! City! Goal City!"
캉테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본다.
케빈 데 브라이너의 유려한 움직임은 보는 나조차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다.
단 두 번의 볼터치,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한 유연성, 환상적인 팬텀 드리블까지.
단숨에 캉테를 벗겨내고 강한 발목 힘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속도와 위치, 수비의 틈새와 달려 들어가는 공격수의 위치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킥이었다.
정확한 위치에서 완벽하게 휘어져 골문 앞으로 뚝 떨어지는 공.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하프 발리 슈팅까지.
"City--------!"
"Goooooaaaal!"
골을 넣으면 주목받는 건 스트라이커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돌파한 후에 수비진을 바보로 만드는 어시스트까지.
맨시티 팬들은 데 브라이너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리고 내 감상은.
"저런 패스를 두고 지금까지 20골밖에 못 넣은 건 좀 미안해야 할 텐데."
그리고 그런 내 말을 지나다가 들은 데 브라이너가 피식 웃었다.
"맨시티로 오라고. 그러면 리그 50골을 넣게 해 줄게."
남들이 보기엔 실없는 농담 같지만.
어쩌면 우리 둘은 그게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데 브라이너의 패스에 감탄했고, 그 역시 내 득점력에 놀라워했으니까.
뭐 프로 세계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50골은 여기서도 충분해. 이제 41골이니까, 9골만 넣으면 되거든."
"······이번 경기가 마지막 경기인 건 기억하고 있지?"
"물론."
"······Shit."
데 브라이너는 짧은 욕설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필드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2대 2 동점이지만, 서로의 동기 부여가 다르니까.
맨시티는 무조건 승리, 우리는 사실 아무 의미 없다. 리그 3위는 확정이니까.
설령 지더라도 말이지.
아무래도 다음 경기인 FA컵 결승전과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더 중요하다 보니, 선수들은 다치지 않기 위해 조금 조심스럽게 플레이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전력을 다해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가 맨시티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솔직히 흐름을 계속 넘겨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강하게 질타할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왔으니까.
또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음?"
하나, 환호하는 관중석을 둘러보다가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첼시의 원정 섹터.
맨시티의 동점골로 격한 분위기의 홈 팬들과는 상반되는 우울한 분위기였다.
특히 맨 앞에서 울먹이는 꼬마 팬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옆 섹터에서 홈 팬들이 떠들어 대는 조롱에 마음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허."
그걸 보니 입가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스포츠는 오로지 팬이 있기에 가능한 문화 산업이다.
한데 다음 경기 준비니, 뭐니 하면서 원정까지 온 팬의 마음에 실망감을 안겨 주면 안 되지, 암.
"모두 저기 보라고!"
동료들에게 외쳤다.
그들의 시선이 원정 섹터를 향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은 캡틴 아스피가,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소리쳤다.
"Blues! 지금 다큐멘터리 촬영하고 있는 거 알지? Real Blues가 누구인지 보여 줘야지! 정신 차려! 이 멍청한 자식들아!"
모범생에 가까웠던 캡틴의 일갈.
뭐, 저 한마디로 정신을 차릴 거라고 기대하는 건 너무 동화 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팀은 적어도 여기까지 오면서, 위닝 멘탈리티를 갖게 됐다.
무승부 경기에 승리하게 만들고, 패배할 경기를 어떻게든 무승부로 만드는 정신력.
첼시는 어느덧 그런 멘탈을 갖게 됐다.
"Go! Blues!"
**
첼시는 비교적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팀이다. 극단적인 공격이나 수비는 하지 않는 팀.
안정적인 축구를 선보이는 클럽.
이런 축구는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으나, 자칫하면 무색무취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제퍼슨 리의 존재감은 엄청난 것이다.
수비부터 중원까지 안정적인 밸런스를 유지한 채.
공격에서 제퍼슨의 강력한 한 방!
특히 홀딩 미드필더 로드리는 진땀을 흘렀다. 제퍼슨이 공을 잡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위험해. 아구에로보다 훨씬.'
팀의 공격수 아구에로는 노련하다.
한데 이 어린 공격수는 그런 아구에로의 노련함까지 갖춘 채, 폭발력을 갖고 있다.
펩이 그를 조심하라고 강조한 게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온다!'
중간에 패스를 받은 제퍼슨은 그대로 방향을 꺾어 질주했다.
역전골을 위해 라인을 높였던 맨시티.
제퍼슨의 순간적인 돌파가 단숨에 틈새를 헤집었다.
[로드리! 완벽한 태클입니다! 제퍼슨의 반응 속도보다 한 발짝 더 빠르네요!]
하지만 경기 내내 제퍼슨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 있던 로드리가 태클에 성공했다.
슬라이딩 태클로 걷어 낸 공이 터치라인 쪽으로 흐르고, 이대로 아웃되려던 순간.
[아! 제퍼슨! 제퍼슨 거짓말처럼 일어서서 달립니다!]
저걸 무어라 불러야 할까.
로드리는 마치 오뚝이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위험한 태클에 대한 분노나 그런 건 없었다. 일어서는 제퍼슨을 보며 로드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을······ 오로지 시선이 공만 따라가고 있어!'
지독한 집념이다.
이런 태클에 터치라인으로 빠져나가는 공이라면.
포기하고 다음 공격 전개를 준비할 법도 하건만.
로드리는 뒤늦게 일어나 달렸다.
[제퍼슨! 달립니다! 엄청난 집념! 공, 나가지 않습니다! 제퍼슨이 슬라이딩으로 공을 살려 냅니다!]
로드리의 태클을 보고, 여유롭게 자리를 잡으려던 존 스톤스는 기겁했다.
"미친놈!"
독종 중에서 독종이다.
공에 대한 집중력과 집념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미끄러지듯이 슬라이딩하면서, 터치라인 위에서 간신히 공을 살려 내고.
제퍼슨은 그 관성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 공을 툭 차면서 라인을 질주했다.
"Noooooooo!"
제퍼슨이다.
또 제퍼슨이 공을 잡고 질주한다.
맨시티의 홈 팬들은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떨며 소리쳤다.
스톤스가 그를 잡아채려고 손을 뻗었으나.
툭!
그러나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제퍼슨의 가속에 헛손질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이게 말이나 되는가.
스톤스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미 최고 속도로 질주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도 부스터라도 단 듯이 더 빠르게 튀어 나간다.
역동적이고 폭발적인, 그리고 공을 쫓는 저 강렬한 시선에 스톤스는 질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부르르!
'돌파는 불가능!'
지금 제퍼슨은 자신의 근력을 모조리 쥐어 짜내는 중일 것이다. 더 달렸다간 근육에서 분명 경련이 온다.
여기에 박스를 채우기 시작한 맨시티의 수비벽을 생각하면 뚫기는 힘들다.
하면.
'지금!'
어느새 전진해서 수비진 사이로 파고드는 작은 체구.
3선에서 박차고 튀어나와 최전방에 올라온 캉테였다.
경기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플레이.
제퍼슨은 웃었다.
툭!
[제퍼슨의 얼리 크로스! 오, 세상에! 캉테가 파고듭니다!]
완벽한 얼리 크로스.
마치 조금 전, 데 브라이너의 어시스트를 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궤적.
그 궤적에 맨시티 팬들은 비명을 지르다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했다.
뻐어엉!
"The Bluesssssssss!"
"Gooooooaaaaaal!"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캉테가 집어넣습니다! 캉테! 팀의 세 번째 골! 3 대 2입니다!]
[캉테의 골도 대단합니다만, 그전에 이뤄진 제퍼슨의 플레이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공에 대한 집념! 태클 후에도 공을 쫓아가는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집념과 스피드, 거기에 아름다운 어시스트까지! 이게 어딜 봐서 올 시즌 데뷔한 선수입니까!]
3 대 2의 스코어.
로드리는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패배한다면.
안 된다.
이제 필요한 건 두 골이다.
"아니지."
두골이야 공격진에서 어떻게든 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점을 더 내준다면."
부르르!
몸이 떨렸다.
이제 더 실점을 내준다면, 1년 동안 치러 온 리그의 승리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그 엄청난 압박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무리 대단한 베테랑이어도, 수만 관중의 시선이 도달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멋진 골이야, 캉테."
"아니, 제프. 솔직히 이건 네가 만든 골이야!"
제퍼슨이 씩 웃었다. 분위기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이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맨시티는 두골이 필요하다.
그런 사실이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비교적 압박감에서 자유로운 첼시 선수들의 얼굴은 밝았다.
"풀리식! 크로스를 좀 더 높이 올려 줘."
"응? 지금도 높은데? 더 높아졌다간······."
"상관없어."
"······오케이."
***
풀리시치는 현재 어시스트 18개로 데 브라이너와 도움왕 자리를 경쟁하고 있다.
오늘 경기에서 데 브라이너가 어시스트를 추가하면서 2위로 떨어졌다.
그 때문에 그는 평소보다 집중력 있게 패스와 크로스를 올리고 있었는데, 아직은 효과가 없었다.
그의 눈에 다시 중앙으로 수비수를 달고 들어가는 제퍼슨이 보였다.
'높은 크로스?'
그의 크로스는 이미 높다.
제퍼슨의 타점을 고려한 것.
하나 그 정도는 맨시티의 수비수인 스톤스와 라포르테도 커버가 가능하다. 그 압박에 제퍼슨이 경합엔 성공하지만, 득점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여기서 더 높은 크로스라면.
'에라 모르겠다!'
뻐엉!
[크로스! 아! 너무 높네요! 코너 라인 쪽으로 향합니다!]
하나 너무 높고, 긴 크로스.
멀리 떨어지는가 싶던 그 순간.
제퍼슨이 다시 한번 스프린터를 터뜨리며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아슬아슬하게 머리 끝을 스치는 순간에, 제퍼슨은 있는 힘껏 방향을 틀어 공을 안쪽으로 떨어뜨렸다.
[제퍼슨! 엄청난 속도, 엄청난 집중력입니다! 공을 살려 내고! 오! 윌리안! 윌리안이 떨어지는 세컨 볼을 그대로 슈웃!]
[아, 막히네요. 에데르손 골키퍼의 선방!]
[하지만 맨시티 선수들은 지금 이 장면, 그냥 넘어가선 안 됩니다. 모두 공이 나가는 줄 알고 넋 놓고 있다가, 제퍼슨이 공을 살려 내 슈팅까지 이어지게 만들었거든요?]
[잘못 올린 크로스입니다만, 제퍼슨은 그걸 살릴 힘이 있습니다! 대단한 선수예요!]
해설진과 코치진, 그리고 관중들까지.
풀리시치의 크로스를 단순 실수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 생각은 흔들렸다.
뻐엉!
너무 높고, 먼 크로스.
저걸 도대체 받으라고 올리는 건가 싶은 터무니 없는 크로스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너무 난해했다.
한데, 그 난해함이 의외의 효과를 가지고 왔다.
턱없고 난해한 크로스는 의외성이 있단 얘기다.
즉, 수비수들도 예측하기 힘든 위치에 떨어진다는 것이고, 제퍼슨은 놀랍게도 그 위치에서 공을 따냈다.
첼시의 공격 횟수가 높아지고 있다.
거기에.
"저기서 크로스를 한다고?"
"아니, 이건 좀."
첼시 팬들마저 고개를 갸웃하는 풀리시치의 크로스.
그럴 수밖에.
박스에 첼시 공격수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한마디로 버리는 크로스였다.
그때였다.
탓, 탓탓!
박스 밖에서 제퍼슨을 마킹하던 로드리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허업!"
그의 어깨를 치고 뛰어나기는 제퍼슨 리.
곁에서 마킹하다 보니 알게 됐다.
이 선수는 미쳤다.
이 속도는, 축구선수의 속도가 아니다.
가속에 가속, 멈추지 않는 질주.
이 질주가 끝나는 순간에는.
뻐어어엉!
"Yeaaaaaaaaaaaaaa!"
"제-----퍼----슨!"
"LEE Will LEE Will Kill You!"
골이 들어갈 따름이다.
[Lovely Goal! 엄청난 골입니다! 박스 바깥에서부터 쇄도하는 제퍼슨의 대단한 스프린트에 이어지는 높은 타점의 헤더 골!]
[맙소사! 두 미국인 선수가 결국 또 하나 만들어 내네요! 엄청난 골입니다!]
[제퍼슨 리! 해트트릭입니다! 리그 최종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립니다!]
4 대 2.
맨시티는 승리를 위해 세 골이 필요하다.
현재 맨시티 승점 91점, 리버풀이 맨유에게 이기고 있으면서 93점.
펩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지다 못해 무너지는 그때였다.
"감독님!"
코치 한 명이 황급하게 뛰어왔다.
"왜?"
"리버풀이 실점했습니다! 동점이에요!"
"뭐?"
"승점 동률입니다!"
"······!"
< 106. Six and the City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