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101화 (101/258)

< 101. 키 플레이어 (1) >

[스타드 렌, 홈에서 1대 3 패배! 유로파 8강 빨간불!]

[제퍼슨 리, 후반 교체 투입 2골 1어시스트 맹활약!]

[경기장을 지배했던 제퍼슨 리. 압도적인 경기력이 수치로 증명되다!]

[제퍼슨 리 VS 스타드 렌 FC]

89.4% 패스성공률

1/2 태클성공

9/10 경합승리

7/7 공중볼 경합승리

4/4 드리블 돌파

3 키패스

2 빅 찬스 창출

3 유효슈팅

2 득점

1 어시스트.

***

원정에서 3득점을 한 건 매우 유리하다.

원정 다득점의 원칙도 있고, 홈에서 우리가 렌에게 지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FA컵과 유로파가 눈앞에 있다! 모두 집중해!"

FA컵은 4강에 올랐고, 유로파는 8강이 가시화됐다.

두 대회다 매력 있는 대회다.

감독님은 두 대회에 전심전력할 것을 선언했고, 비교적 3위 자리가 공고한 리그에선 힘을 약간 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약해졌단 뜻은 아니었다.

[첼시, 노리치 시티 상대로 2대 1 승리. 제퍼슨 리 결승골 폭발!]

[노리치 티무 푸키, '제퍼슨 리는 존경스러운 스트라이커다. 그처럼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조커' 제퍼슨 리. 교체 투입 6분 만에 결승골 폭발!]

[리그 키패스 1위, 유효슈팅 1위, 드리블 성공률 1위, 득점 1위, 공중볼 경합 성공 1위, 어시스트 3위, 피파울 1위! 제퍼슨 리. 기록이 말해 주는 압도적 존재감!]

[EPL 파워 랭킹 1위, 제퍼슨 리. 4개월 연속 1위 자리 수성!]

[제퍼슨 리, 31라운드 리그 35골! 득점왕 가시화. 40득점 득점왕 탄생하나?]

[해리 케인, '아직 득점왕을 포기하지 않았다.' 맨유전 해트트릭 폭발! 리그 28호골!]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말이지.

물론 케인의 득점력은 비판할 게 없다.

31라운드에서 28골이면 경기당 1골에 가까운 엄청난 페이스다.

물론 내 페이스가 더 말도 안되는 게 문제라서,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마치 모차르트를 만난 살리에르랄까."

"뭐라는 거야, 경기 중에?"

풀리시치가 이상한 놈 본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케인이 많이 오버하는 거 같아서."

32라운드, 토트넘전. 해리 케인이 선제골을 넣고 무릎 슬라이딩까지 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날 쳐다보고 씩 웃는 걸 봐서 말이다.

"널 일생일대의 라이벌로 생각하나 본데?"

"음. 귀찮은데."

"귀찮아? 쟤 29호 골이야. 해트트릭 두어 번만 하면 금방 쫓아온다고."

"그럼 나도 하지 뭐."

"......."

사실 득점왕은 거의 확실하다.

내가 앞으로 남은 모든 경기에서 결장한다고 한들, 6골 차이는 좁히기 쉬운 격차가 아니다. 이제 남은 건 6경기니까.

그래도, 해리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보다.

하면, 아예 그 의지를 꺾어 줘야지.

"안 놓쳐!"

나에게 공이 오자, 건장한 체구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다.

오늘 빅토르 완야마가 아주 나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귀찮다 싶을 정도로.

그러나 귀찮은 건 모기 정도로 충분하다.

모기 같은 건 잡거나, 쫓으면 그만 아닌가.

직접 제치거나, 또는 동료를 이용하거나.

뒤에서 오랜만에 선발이라고 들뜬 얼굴이던 드링크워터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완야마의 태클을 가뿐히 피한 뒤 볼을 드링크워터에게.

투욱!

곧바로 몸을 돌려 다시 전방으로 내달렸다.

뻐엉!

뒤에서 공을 높이 차올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갔다!"

"저건 아웃이야!"

공이 날아가는 동선과 방향을 보고 선수들이 외치는 소리가 일제히 들려온다.

높이를 보건데 자칫 터치라인을 넘어갈 지도 모른다.

아이고. 내가 기대한 건 제이미 바디에게 어시스트하는 드링크워터였는데, 오늘 힘이 너무 들어갔군.

공이 나가는 게 확정적으로 보이자 그쪽으로 달려가는 선수는 없었다.

오직 나만 빼고.

모기처럼 나만 쫓아오던 완야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따라붙기를 멈췄다.

필요 없는 체력소모라고 봤을 터.

그러나 난 절대 필드에서 쓸데없는 움직임을 가져가지 않는다.

우드드득!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내지른다.

발끝, 종아리, 무릎, 허벅지로 이어지는 근육이 탄력적으로 출렁이며 땅을 박찼다.

"헉!"

주위가 휙 스친다.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터뜨리며 터치라인 바깥으로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는 공을, 발바닥으로 안쪽으로 긁으며.

"미친!"

"저걸 잡는다고? 저걸?!"

뒤늦게 달려드는 완야마를 팬텀드리블로 제치고.

뻥 뚫린 공간을 향해 냅다 달렸다.

옆에서 급히 달려오는 다비손 산체스와 최후방에서 자리를 지키는 얀 베르통언.

그들은 어쩌면 나에 대한 공략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벌써 세 번째 마주친 것이니까.

하나, 토트넘에게 내가 익숙해질수록, 나도 저들의 수비 방식이 익숙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으업!"

달려드는 산체스를 왼팔로 밀어내며 속도를 죽이지 않고,

페널티 박스 구석으로 파고든다. 베르통언과 요리스 골키퍼가 협력해 각도를 좁혀 온다.

베르통언은 지능적이다. 똑똑하다. 그런데 때로는 똑똑한 게 약점일 때가 있다.

공격수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게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속도를 죽이지 않고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빠지는 척 상체 페인트를 주면.

툭!

".....!"

그래, 바로 이것이다.

베르통언은 워낙 지능적이라 페인트에 절대 속지 않는다. 그래서 페인트를 넣지 않고, 그냥 그대로 왼쪽으로 공을 차면서 빠졌다.

아주 간결한 플레이.

차라리 페인트에 속아 넘어갔다면 이리 쉽게 뚫리지 않았으리라.

최종수비마저 벗겨 내면 남은 건 요리스다.

요리스는 베르통언과 협력을 위해 다소 애매한 거리에 뛰쳐나온 상황.

달려가는 속도를 죽이지 않고, 발끝으로 공 밑을 찍었다.

"맙소사!"

요리스가 황급히 머리를 뒤로 젖히며 손을 들어 올리지만,

공은 아슬아슬하게 손끝을 스치며,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골문을 향해 툭! 데구르르 들어가는 깔끔한 칩슛.

"Yeaaaaaaaaaaaaa!"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한 선수들.

"그걸 잡아 내서 때려 넣다니!"

"미친놈!"

"어떻게 그걸 살려 내?"

터치라인으로 나갈게 분명했던 공을 살려내는 볼 터치와 이어진 돌파. 그리고 침착한 칩슛까지.

뭐,

이게 득점왕 페이스 아니겠나.

***

[LEE의 활약이 무시무시합니다! 토트넘은 이제 제퍼슨만 보면 노이로제에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제퍼슨만 만나면 그 견고한 수비진이 무너집니다! 제퍼슨! 환상적인 감아차기 슛으로 벌써 두 골을 뽑아내네요!]

[우수수수 무너지는 토트넘의 수비진이, 제가 알고 있는 토트넘이 맞는지 의심스럽네요. 단 두 번의 볼 터치로 수비진의 태클을 모조리 피합니다.]

[흡사 종이 쪼가리를 난도질 하듯이, 제퍼슨이 토트넘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네요!]

[아아! 해리 케인의 슈웃! 동점! 동점입니다!]

[해리 케인, 이대로 득점왕과 승리를 포기하지 않겠단 열망인가요?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격하게 기뻐합니다!]

[어? VAR을 보네요. 이런! 오프사이드입니다! 케인이 한 발짝 앞섰네요!]

[아아! 케인, 유니폼을 벗어서 괜히 경고만 받고, 득점은 취소당합니다! 해리 케인 29골, 제퍼슨 리 37골!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두 팀의 승점도 벌어지네요! 첼시! 6점차로 리그 3위! 토트넘은 4위를 간신히 유지합니다!]

***

경기가 끝나고 가장 바쁜 건 아이러니하게도 늘 나였다.

"와. 진짜 이거 이제 그만할 때가 됐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제퍼슨 리."

"협회에 가서 말 좀 잘해 줘요. 어떻게 32라운드 중에 20라운드를 도핑테스트 합니까."

바로 도핑테스트였다.

경기 끝나고 약물 사용이 가장 의심되는 선수에게 테스트가 진행되는데.

애석하게도 거의 매번 내가 걸리고 있다.

이것도 은근히 고역이다. 담당자하고 같이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는 거까지 보여 줘야하니.

뭐, 계속하다 보니 익숙하긴 하다.

"제가 아무리 보고해도, 경기를 본 사람들이 다 저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품더라고요."

담당자는 쓰게 웃었다.

뭐, 그럴 법도 하지.

"저기 미국의 NFL에 가면 이 정도는 기본일겁니다."

심지어 내 신체 조건보다 더 우월하고 불가능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말이지.

여하튼 도핑테스트까지 끝내고 남은 건 인터뷰였다.

경기 MOM선정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인터뷰도 거의 생활화가 되었다.

기자들의 질문 중, 핵심은 당연히 해리 케인과의 비교였다.

아무래도 케인이 계속 득점왕을 포기하지 않겠단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으니까 말이다.

흐음. 어떤 식으로 말해 줄까.

그간 너무 겸손을 떨었던 것 같다. 케인이 먼저 인터뷰로 득점 운운했으니.

이번엔 입 좀 털어야겠다.

"해리 케인은 훌륭한 스트라이커입니다. 32경기 29골은 엄청난 기록이죠. 대단한 선수입니다. 문제는 현재 리그에는 더 대단한 선수가 있다는 것이죠. 32경기 37골. 그에겐 정말 애석한 일입니다만. 제가 일찍 프리미어리그에 안 온 걸로 안도하면 좋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제가 2~3년 전에 왔으면, 그때 득점왕도 케인이 아니라 저였을지."

***

'리얼 블루스, 첼시'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2개월 동안 촬영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가졌다.

"이거 된다! 이거 분명 성공해!"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사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그런 점에 있어서 촬영팀이 주인공으로 '제퍼슨 리'를 선정한 것은, 지금에 와서 매우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는 게 증명됐다.

"스타성 하나는 끝내주는구만!"

"실력도요. 유럽 애들이 다들 경악하는 거 보세요!"

"우리 런칭이 7월이지?"

"네."

"당장 예고편 때리자."

"벌써요?"

"이 정도면 충분해. 좀 있으면 A매치잖아? 좋은 타이밍이야. 예고편 크게 제대로 만들어서 여기저기 내보내자고."

"흠!"

"특히, 우리 저번에 딴 인터뷰하고 오늘 토트넘 경기 이후에 한 인터뷰를 반드시 편집해서 넣어!"

"자극적이지 않을까요? 해리 케인하고 비교하는 건."

"그게 핵심이지!"

"하기야."

"할리우드에 있는 음향하고 편집자들 다 불러 모아! 영화 예고편 저리가게 하나 뽑아내 보자고!"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미국인답게.

그들은 흐름을 볼 줄 알았다.

제작진은 할리우드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예고편을 편집했다.

2분 정도 분량으로 만들어진 예고편은 순식간에 북미 전역에서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다가오는 월드컵 예선에 맞춰 TV매체와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헤이, 소피아! 이거 새로 나온 영화 예고편이야?"

"뭐? 뭔데 조회 수가 벌써 백만이야?"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

하이스쿨의 풋볼 치어리더 소피아는 화면에 나오는 영상의 재생버튼을 누르고, 점점 빠져 들어갔다.

시작은 적막에 잠긴 스타디움이었다.

그 위에 서 있는 선수들의 그림자가 비쳐지고.

순간 완전히 화면이 아웃되었다가, 다시 줌 인되면서.

꽉 찬 관중들의 환호와 필드에서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Yeaaaaaaaaaaaaaa!

-Lovely goal! Lovely Finishi!

-신대륙에서 온 사나이가 본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습니다!

-제퍼슨 리! 미국인이 런던에서 왕으로 대관식을 치르네요! 미국에서 온 원더보이가 런던의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입니다!

관중의 환호와 해설자의 격정적인 멘트.

그리고 골문을 향해 바이시클 킥을 때리는 선수의 역동적인 모습까지.

-유럽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이, 이번엔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봐야죠.

-제퍼슨 리는 곧 세계최고가 될 거라 예상되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틀린 예상이죠. 그가 세계최고가 아니라면, 다른 선수들에게 너무 억울한 일 아니겠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짧고 빠르게 지나가면서.

-해리 케인은 훌륭한 공격수죠. 하지만 영국의 공격수보단, 북미 대륙의 공격수가 더 대단하다는 건 결과가 말해주죠.

제퍼슨이 했던 인터뷰가 편집을 거쳐 절묘하게 이어지고.

-Oh! 제퍼슨 리! 첼시의 영웅으로, 첼시의 왕으로!

-LEE will LEE will Kill you!

다시 잔뜩 흥분한 해설자들의 멘트와 4만 관중의 응원가.

마지막 장면.

제퍼슨이 성조기를 등 뒤로 둘러쓰고 세레모니하는 A매치 장면이 나온 뒤에.

제퍼슨의 과거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위대한 아메리카다."

탓!

"와."

"와······."

영상이 끝나고, 정신없이 영상에 몰입했던 소피아와 친구들은 모두 벌어진 입을 쉬이 닫지 못했다.

스포츠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과 짜릿함만을 절묘하게 찍어 낸 편집과 중간에 들어가는 해설자들의 격한 멘트. 그리고 제퍼슨의 마지막 인터뷰까지.

마치 잘 만든 스포츠 영화의 예고편을 본 듯한 여운이었다.

"이거 뭐야?"

"제퍼슨 리 다큐멘터리인가?"

"제퍼슨 리?"

"뭐야, 소피아. LEE를 몰라? 유럽에서 축구하는 애인데. 영상 속 주인공이야! 캡틴 아메리카라는 별명이 있다고!"

비단 그런 장면은 소피아가 있던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곧 다가오는 월드컵 예선전 A매치를 앞두고.

많은 미국 시민들의 관심이 제퍼슨 리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 101. 키 플레이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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