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Welcome to the EPL (2) >
[첼시, 인터 밀란 4:0으로 대파! 총합 스코어 5:2로 유로파 16강 진출 확정!]
[첼시의 16강 상대는 스타드 렌 FC]
[주세페 메아차에서 울려 퍼지는 'LEE Will Kill You' 빗장 수비를 부숴 버리다.]
[그 남자가 문을 여는 방법, 제퍼슨 리. 2골 2어시스트로 콘테의 쓰리백 박살 내다!]
[인터 밀란 1차전 승리에도 불구, 2차전 패배로 낙담. 인터 밀란 팬들 '제퍼슨 리를 막지 못한다면, 차라리 제퍼슨 리를 빚져서라도 사 줘라!']
[인터 밀란 콘테 감독, "컨트롤 불가한 존재. 그를 막는 방법은 딱 두 가지. 총으로 쏘거나, 아니면 돈으로 그를 사 오거나.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된 제퍼슨 리에게 경외를!"]
[제퍼슨 리, 평점 9.8점으로 경기 MOM 선정]
[2Shot 2Kill. 때리면 골, 제퍼슨 리의 슈팅 비결은?]
[제퍼슨 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이적설에 대해 반응. '세계 최고의 선수를 얻고 싶으면, 세계 최고의 클럽만이 가능하다. 첼시는 현시점 세계 최고의 클럽이다.']
***
제퍼슨 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찬양받는 선수임과 동시에 가장 욕을 먹는 선수라는 건 부정할 여지가 없다.
특히 필드 위에서 보여 주는 제퍼슨의 모습은, 상대팀에게 끔찍했다.
골을 넣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껄껄 웃는 모습하며.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세레모니.
그러면서 정말 얄밉게도 골은 잘 넣어 버리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녀석이니까.
또 인터뷰에선 사람 복장을 살살 긁어 버리기까지 하지 않나.
한데 인테르전이 끝나고 보여 준 제퍼슨의 모습은 의외였다.
"인테르를 말 그대로 부숴 버렸습니다. 경기 전 공언했던 것처럼, 빗장을 열쇠로 열지 않고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 줬는데요. 경기 소감 부탁드립니다."
"인테르는 강한 팀이었습니다. 오늘 여러 번 저와 부딪친 고딘을 비롯한 수비진에 찬사를 보냅니다. 콘테 감독이 만들어 놓은 인테르는 훌륭한 퀄리티를 가진 대단한 팀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승리를 거뒀지만, 인테르 역시 대단한 팀이란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퍼슨의 깔끔한 인터뷰를 본 리그팬들은 깜짝 놀랐다.
[제퍼슨 리, "인테르는 훌륭한 팀, 찬사를 보낸다."]
ㄴ저 녀석이 내가 아는 제퍼슨 리인가?
ㄴ저 악동이 저런 인터뷰를 했다고?
ㄴ음. 우리 팀 상대로는 펫카페의 강아지 같다고 했는데.
ㄴ허. 내가 아는 이미지가 아니야.
ㄴ스토크는 귀여운 중학생 같다고 했어.
ㄴ보라고, 이게 우리 제퍼슨이지. 경기 끝나고 술만 마시고 클럽이나 가는 다른 선수들이랑은 달라!
상대팀에 대한 존중이 보이는 깔끔한 인터뷰.
제퍼슨은 인테르의 수비를 충분히 인정했다.
경기는 끝난 후에도 깔끔했다.
소수의 울트라스가 윌리안과 제퍼슨, 캉테와 뤼디거를 향해 인종차별 발언을 던졌다. 인테르 구단 측에서 평생 경기장 출입금지 등 강력히 조치를 취하면서 공식성명으로 사과를 한 것도, 제퍼슨이 그들을 존중해 줄 이유는 충분했다.
물론 인테르가 같은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타 리그라는 점도 그랬다.
굳이 팀을 깎아내리며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있겠는가.
하여튼 그런 제퍼슨의 인터뷰 때문에, 제퍼슨은 여러 각도로 재조명받았다.
"솔직히 말해 제퍼슨처럼 프로의식이 훌륭한 선수가 어디 있어?"
"훈련장에서 보여 주는 모습 생각해 보라고."
"지독해. 정말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훈련을 해."
"훈련이 끝나고 집에서도 개인 트레이닝을 하고, 또 다음 경기 분석을 한다던데."
"자! 나와 봐! 그 친구가 새벽 내내 술 마시는 꼴 본 사람 있어?"
"미국인이라고! 그 미국인이 술, 마약, 여자 없이 축구만 한다고!"
10대에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선수.
수많은 인기와 명성,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선수.
그의 통장에는 매주 1억짜리 차를 살 수 있는 돈이 찍히는데도, 제퍼슨은 방탕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의외로 선수로부터 인성 논란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것들은, 별것도 아닌 사건을 크게 부풀리기도 한다. 하여 제퍼슨은 필드 위에서와 필드 바깥에서의 분위기를 철저하게 분리했다.
미국에서 겸손은 미덕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자신감은 거만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제퍼슨은 경기 외적인 상황.
훈련, 팬서비스, 인터뷰 등에서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때로는 자신의 활약을 동료와 코칭스태프의 공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이 점차 누적되어, 필드 위에서는 누구도 통제 못할 선수지만, 그래도 인성은 그 나이대에서 훌륭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제퍼슨은 상대팀에겐 끔찍하고 무서운 공격수지만 무조건 미워할 수는 없는 훌륭한 이미지까지 만들어졌고 이미 널리 퍼지고 있었다.
***
경기가 끝나고 율리아겐에게 혼났다.
"그런 플레이는 자제해야 합니다."
고저 없는 목소리.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경기 직후 검사한 신체 데이터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하나하나 짚어 주는데, 그게 얼마나 무섭던지.
아놀드 트레이너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볼 정도였다.
"알겠어요."
"제퍼슨의 신체는 훌륭하고 단단하죠. 상대편하고 부딪치면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입어요. 하지만 제퍼슨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티는 나지 않아도, 근육은 그 충격을 기억하고 누적되죠. 그것이 나중엔 악영향을 불러옵니다."
"넵."
율리아겐은 말을 잇다가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 내가 옛날에 백스텝과 제퍼슨 턴 기술을 여러 번 사용할 때 나온 표정이다.
난 멋쩍게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새로 계약서 쓰실래요?"
"예?"
"연봉 인상해 드리죠!"
"······음."
율리아겐과 디 파코가 스카웃 제의를 받았단 소리를 들었다.
이런 트레이너들을 어디 가서 구할 수 있겠나.
내 곁에 잡아 둬야 한다. 그래야 인테르전 같은 플레이를 하고도, 회복할 수 있지 않은가.
뭐, 갑작스레 연봉을 올려 줄 수 있는 것도.
"우리 구단주께서 보너스를 제시하셨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도 보너스, 유로파 우승해도 보너스, FA컵 따내도 보너스, 아. 리그컵 우승에 대한 보너스는 이번 주 금요일에 입금될 거라는군."
구단주께서 자금을 푸셨다, 이 말씀이지!
이미 돈이라면 많이 받는 우리지만, 돈을 더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난 그 돈을 이 둘을 내 곁에 잡아 두는 거에 좀 투자할 생각이고.
그래야 롱-런 아니겠나.
***
첼시 의료진에서도 많은 조언을 했다.
"휴식이다, 제프. 푹 쉬어라."
나뿐만이 아니다.
캉테와 윌리안, 그리고 뤼디거가 휴식을 부여받았다.
토요일 원정경기, 더비전에선 쉰다.
합리적인 결정이다.
우리는 지쳤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탄스러울 정도로.
그래도 첼시의 뎁스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로테이션이 가동되었음에도 더비를 상대로 3대 1 승리를 거두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첼시, 제퍼슨 리의 결장에도 불구 더비를 잡으며 연승 행진.]
[첼시의 무서운 공격력! 제퍼슨이 빠졌는데도 지루 1골, 타미 아브라함 2골 폭발!]
[타미 아브라함, '제퍼슨 리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저 그에게 많은 걸 배울 뿐이다.']
"넌 정말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있구나."
오랜만에 만난 로드릭의 얼굴엔 언뜻 부러움이 스쳤다.
이번에 아스톤 빌라로 이적해서 처음 식사자리를 가진 로드릭의 얼굴엔 약간의 수심이 자리 잡았다. 아직 리그 선발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왜. 누구 괴롭히는 사람 있어?"
로드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냥, 주전 경쟁이 쉽지가 않네. 감독님은 강등권 팀이라고, 내가 충분히 주전이 될 거라고 꼬드겼는데."
사실 선수에게 있어 주전 경쟁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문제는 우리 수비들이 강등권을 오가는 하위권 팀의 수비란 거야. 내가 보기엔 얘들도 정말 대단해. 스킬 좋고, 피지컬도 단단하단 말이야. 그러면 리그 공격수들은 얼마나 괴물인거야?"
"세계 4대 리그 중 하나니까."
"넌 어땠어?"
"나? 나야, 음. 그냥, 바로 선발이었는데."
"······."
미안하지만 그리고 이런 점에서 지금 조언해 줄 수 없는 위치기도 했고.
그러나 다행히도 로드릭은 원체 승부욕이 강한 친구라서.
"좋아. 반드시 내가 지금 수비수들을 꺾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겠어!"
저렇게 의욕을 다지는 모습을 보니, 이 녀석은 곧 주전으로 나올 거다.
그러나 별안간 의욕을 불태우던 로드릭이 날 흘끔 바라보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뭐냐, 이 과격한 감정 변화는?
"왜 그래?"
"내가 주전이 되면, 널 막아야겠지?"
"그렇지."
"처음인 거 알아? 너하고 같은 팀이어서 든든했다가, 이제 내가 너를 막아야 한다는 거."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않나.
이게 프로 무대인 걸.
로드릭은 나와의 식사 이후, 그 다음 리그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
미친 듯이 공격만 외치는 그랜드 감독의 팀에서 1실점만 내준 건 호평을 받을 만한 일이지.
로드릭은 이후에도 점차 인정을 받으며 주전 자리를 꿰차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우리 첼시도, 더비전 이후에 1승 1패를 거두며 순항했고.
FA컵 6라운드 8강전에서 브라이튼을 만나는 좋은 매치업에서 연장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다.
"걔들 미쳤어. 약 빨고 경기하는 거 같았다니까?"
FA컵은 자이언트 킬링이 워낙 자주 일어나는 대회다.
특히 브라이튼은 마치 약이라도 한 것처럼 맹렬했고, 우리는 곤혹스럽게 플레이하다 연장 109분에 터진 지루의 결승골로 간신히 4강전 진출에 성공했다.
[첼시, 브라이튼과의 연장 혈투 끝에 FA컵 4강 확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시티에게 패배하며 FA컵 탈락!]
[리버풀, 아스날 격침하며 FA컵 4강 진출!]
[왓포드FC, 토트넘 무너뜨리는 이변을 보이며 FA컵 4강에 안착!]
그리고 이어지는 대진 추첨 결과.
[FA컵 4강 매치업]
첼시 VS 왓포드FC
맨체스터 시티 VS 리버풀
"부라보! 신이 우릴 돕는군!"
최고의 매치업이다.
32강 크리스탈 팰리스.
16강 QPR.
8강 브라이튼.
4강 왓포드라니.
뭐, 왓포드도 쉬운 팀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머지 두 팀보단 낫지 않는가.
리그 1, 2위를 계속 다투는 저 팀보다야 낫지.
"제프, 다음 리그 경기는 오랜만에 선발 출전이다. 옛 스승을 박살 내 버리라고."
인테르전 이후 리그 3경기, FA컵 경기까지.
내가 뛴 시간을 다 합쳐 봤자 150분도 안 될 거다.
그만큼 감독님은 내 몸이 회복하고 올라오는 시간을 진득하니 기다려 줬다.
덕택에 리그 30라운드, 아스톤 빌라전을 상대로 최고의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 네 옛 친구도 있다지? 요즘 아스톤빌라 수비력이 좋아졌던데. 그 친구 좀 하더군."
"로드릭이요? 괜찮은 친구죠. 곧 미국 국가대표에 뽑힐 거예요."
이건 진짜다.
로드릭은 어느새 좋은 활약을 펼치며, 매 경기 실점을 내주던 아스톤 빌라에서 첫 무실점을 이끌어 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대표로 뽑히는 건 어쩌면 늦어질 수도 있겠네요."
"왜?"
"제가 조금 박살 내 줄 생각이라서요."
"하하하하! 그렇지! 암! 축구판에선 친구도 없는 거지!"
아니, 뭐 친구 없는 정도는 아니고.
***
아스톤 빌라는 공격적인 팀이다.
원래는 그러지 않았으나,
팀을 강등권에서 끌어올린 그랜드 감독의 취임 이후, 공격적인 색채가 뚜렷했다.
하나 애당초 강등권팀이 공격적이라면, 수비에서 약점을 노출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클린시트는 30라운드까지 딱 세 번 있었다.
그리고 최근 클린시트는, 제임스 로드릭이 주전으로 자리잡으면서 만들어냈다.
때문에 로드릭을 향한 아스톤 빌라 팬들의 기대감도 상당했다.
그런 기대감에 힘입어 로드릭은 오늘 30라운드, 첼시전에도 선발 출전이었다.
하지만.
"미쳤군."
로드릭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 앞에 있던 그릴리쉬가 하늘을 날았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삐빅!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았다면,
어쩌면 다음에 이어 날아가는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을 몰고 돌진하던 제퍼슨이 자신을 보고 아쉽다는 기색으로 입맛을 다시며 뒤로 돌아갔으니까.
"아냐. 쫄지 말자. 내가 잘하는 걸 하자고."
로드릭의 장점은 명확했다.
준수한 수비력에 더불어 발밑 기술까지.
그는 롱패스를 제때 찔러 넣어주는 기술이 좋았다.
공을 몰고 살짝 전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공격적인 아스톤 빌라에서는 그런 롱패스가 꽤 중요했고, 로드릭은 그런 기대에 힘입어 공을 몰고 전진했다.
그 순간.
퍼억!
충격과 더불어 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몸이 짜르르 울리는 충격.
숨이 턱 막히는 아찔함.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몸의 중심까지.
"아!"
그리고 흐릿해지는 시야로 비치는 악동 같은 웃음.
"Welcome to the EPL! 친구!"
쓰러지면서 로드릭은 생각했다.
'친구는 개뿔······.'
< 99. Welcome to the EPL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