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8화 (98/258)

< 98. Welcome to the EPL (1) >

[디에고 고딘을 축으로 한 인테르의 쓰리백은 무시무시하네요.]

[첼시가 현재 특별한 공략법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3-5-2의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인테르는 빗장 수비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이었다.

특히 콘테가 만들고 다듬어 낸 전술은 첼시 선수들을 곤욕스럽게 했다.

[윌리안이 다시 한번 막힙니다.]

[조르지뉴의 롱패스가 읽히고 있어요!]

[캉테의 활동량은 인상 깊습니다만, 인테르가 한 발짝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답답하군."

이런 흐름은 감독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패를 다 까고 붙는 경기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첼시 선수들은 모두 콘테가 한때 지휘했던 선수들이 절반이 넘x 으니까.

"홈에서 2실점을 내준 게 뼈아프군."

1차전에서 내준 2실점이 뼈아프다.

작정하고 현재 스코어를 지키려는 전술.

누군가는 그걸 그저 재미없는 수비축구로 비난할 수도 있지만,

토너먼트는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도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그리고 그런 수비 축구를 깨부숴야 하는 게 상대팀의 입장 아니겠는가.

"제프에게 공이 쉬이 가지 않으니 어렵군."

쓰리백을 상대하는 외로운 원톱.

조력자들마저 막혀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하나 필마르크는 제퍼슨 리의 표정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표정만 보면 침착하군."

공 한번 오지 않는다. 답답해하는 기색이라도 드러날 법했다.

하지만 오늘 딱 한 번만 공을 터치한 제퍼슨은 묘하게 침착했다.

마치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코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때.

드디어 제퍼슨이 움직임을 가져갔다.

그의 첫 무브먼트는.

퍽!

[아! 데 브라이! 제퍼슨과 충돌합니다!]

삐빅!

파울이었다.

"저것 봐라?"

필마르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터치라인과 가까웠던 두 선수의 충돌.

제퍼슨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오케이. 이 정도는 경고가 아니라 단순 파울이란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제퍼슨의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악랄해 보였다면, 착각이었을까.

***

카테나치오.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를 일컫는 말.

유벤투스에서 엄청난 업적을 세웠던 콘테가, 인테르에서 디에고 고딘을 중심으로 만들어 낸 쓰리백은 '수비'하면 이탈리아라는 명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만일 공격력만 갖췄다면 이 팀은 완벽했을지도 모른다.

하나 공격력까지 갖췄다면 인테르가 유로파에서 뛰고 있겠는가.

"당장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겠지."

어쨌거나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고,

유로파로 왔다는 건 약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디오를 돌려 봐도 쉬이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한 수비벽.

해결책은 의외로 내 트레이닝 팀에서 나왔다.

아놀드가 말했다.

미국인은 잠긴 문을 열쇠로 열지 않는다고.

그건 할리우드 영화를 비판할 때 튀어나오는 말이다.

늘 닫힌 문을 향해 총을 갈기고, 터프가이들이 발로 차고, 문을 부수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등장하니까.

그것이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문을 열쇠를 찾아서 열 필요가 있는가?

"집중해! 저 어린놈이 파고들 공간을 내주지 마!"

바락바락 소리치는 디에고 고딘.

그가 이 견고한 수비 블록의 핵심이었고, 또 약점이었다.

디에고 고딘은 베테랑이지만, 이제 노쇠한 신체를 감출 수 없다.

이미 파악했다.

오늘 심판의 성향 말이다.

여긴 프리미어리그가 아니다. 심판의 판정 기준이 다르다.

내가 경기 시작하고 15분 동안 침묵한건 그 경계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심판이 프리미어리그만큼 관대한 편이군.'

하면.

오늘만큼은 노인공경을 때려치울 생각이다.

자비 없는 건방진 10대 소년이 되어 주마.

남의 문을 부수는 할리우드 주인공처럼 말이지!

퍼억!

"끄읍!"

파울이 아닌 만큼, 딱 아슬아슬하게.

상대를 움츠리게 할 정도로만 딱.

젊은 시절 고딘은 단단한 피지컬과 엄청난 반응속도, 주력을 지녔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걸 집요하게 노리는 게 내 목표다.

공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무조건 크로스 올려!"

현란한 드리블?

이 견고한 수비벽에서는 무리다.

드리블 속도를 죽여 버리고, 방향을 틀어막는데 무슨 소용이랴.

단순히 수비 숫자가 많은게 아니다. 촘촘한 그물망처럼. 각자가 태클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서 압박을 가해온다. 이건 수비 숫자가 아니라, 실력으로 하는 수비다.

어쩌면 복잡하고 대단한 수비일수록, 그걸 공략하는 방법은 가장 간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이렉트한 롱볼 축구와,

몸으로 박살 내 버리는 피지컬 축구.

그러니까 스토크처럼 말이지.

뻐엉!

수비진에서부터 길게 올라온 롱 볼.

"제기랄! 막아! 저 황소 같은 자식이 또 온다!"

황소라니.

"탱크다! 이 자식들아!"

내 앞뒤로 같이 뛰어오르는 두 명의 수비수.

뒤의 고딘과 앞의 미드필더 바렐라.

왼발을 살짝 들어 올려 무릎으로 바렐라의 허벅지 뒤쪽을 은근히 찍고.

어깨를 먼저 넣는 척 왼팔로 고딘의 가슴팍을 지그시 누른다.

"끄흐읍!"

"어헉!"

그 누구의 머리도 맞지 않고. 볼은 허무하게 공간으로 떨어졌다.

상관없다.

애당초 볼을 노린 것보단, 이 수비들이 나에게 겁을 먹는 걸 노린 거니까.

그리고 고통스러운 표정과 잔뜩 독이 오른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고딘과 바렐라.

"아직 부족하네."

뭐, 상관없다.

아직 시간은 많지 않은가.

퍼억!

"흡!"

"무슨 몸이······!"

"단단해! 몸으로 싸우지 마!"

"공만 빼내거나 견제만 해!"

끊임없이 부딪치고, 싸운다.

공이 저들에게 가면, 평소의 내 플레이답지 않게 미친 듯이 달려가 압박한다.

압박만 한 게 아니다.

벌써 심판이 4번의 휘슬을 불 정도로 강력하게 숄더차징과 바디체킹을 걸었다.

내가 미친 듯이 싸움을 걸자, 수비들은 점점 질린 표정이었다. 내가 달려들면, 공을 잡자마자 황급하게 패스하기 일쑤였고, 고딘은 이전처럼 자신있게 수비진을 지휘하지 못했다.

그의 찡그려진 얼굴을 보니 어디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계속해서 롱 볼 이후 경합.

인테르 수비진은 단 한 번도 나에게서 피지컬적으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쓰리백 세명 모두 피지컬 수비보단, 영리한 태클이 아주 뛰어난 지능적인 수비수들이었으니까.

공이 올라오면 경합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견제만 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됐어. 드디어 다 겁 먹은거야.'

모두가 나에게 달려드는 걸 망설이는 순간.

그리고 내가 달려들면, 공을 소유하려고 하기 보단 황급히 패스하려는 모습.

"와악!"

수비수, 데 브라이가 공을 잡자 나는 괴성을 내지르며 망설임 없이 맹렬하게 돌진했다.

마치 덤프트럭이 돌진하는 것처럼.

"......!"

툭!

그리고 갑작스러운 압박은,

데 브라이가 황급하게 왼쪽으로 횡패스를 하게 했고,

어슬렁거리며 틈을 엿보던 윌리안이 중간에 그 패스를 끊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제-프!"

윌리안은 오늘 수비벽에 드리블이 여러 번 막혔다.

그의 선택은 명확했다.

수비 머리 위로 넘기는 로빙 스루패스.

윌리안이 공을 잡은 순간부터,

나는 있는 힘껏 내달렸다.

그야말로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미드필더 바렐라와 브로조비치가 황급하게 에워싸지만,

이미 발목에서 종아리, 허벅지로 터져 나오는 순간적인 속도는 그들이 달려드는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흡!"

두 명이 에워싸는 그사이를,

왼팔과 오른팔로 두 선수의 어깨를 강하게 떨쳐 내며 빠져나오자,

툭!

뚝 떨어지는 공이 발끝에 걸린다.

됐다.

드디어 공을 잡았다.

"Goooooooooo!"

"Wuuuuuaaaaaaaaa!"

첼시 원정팬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고양감이 솟구친다.

남은 건 디에고 고딘과 슈크리니아르로 이어지는 최종 수비진.

데 브라이는 파고드는 윌리안을 마킹하느라 바쁘다

두 명만 제치면 골문이다.

생각은 짧다. 이럴 땐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간단하고 과격하면서, 간결하게.

고딘이 정면 슈르키리니아르가 왼쪽에서.

마주 달려오던 고딘이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이며 타이트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거다.

나에게 된통 당해서, 몸으로 부딪치기보단 거리를 유지해 공을 빼내려는 속셈.

그도 아니면 슈팅 각도를 열어 주지 않을 생각.

만일 내가 여타 다른 유형의 공격수였다면, 아주 훌륭한 판단이다.

그러나 나는 나다.

나는 제퍼슨이다.

툭, 툭툭!

"미친!"

상대의 다급한 욕을 듣는 건 즐거운 일이지.

공을 왼쪽으로 빼는 척 툭 쳤다가, 왼발로 다시 안쪽으로 볼을 끌고 오는, 플립플랩으로 고딘의 중심을 한 차례 무너뜨린 뒤.

"엿 같은······!"

왼팔로 간신히 중심을 지키며 다시 위치를 선점하려는 고딘을 밀어내며 가볍게 터닝.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지면 내가 잘 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또.

"이 개자식!"

저런 귀여운 욕을 들으면 더.

슈크리니아르가 각도를 좁히며 스탠딩 태클을 시도한다.

그의 발끝에 내가 빼놓은 볼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순간.

투욱!

발바닥으로 공을 내 쪽으로 드래그하며 뒤로 백스텝을 밟고,

오른쪽 대각선으로 공을 길게 뽑아내며 내달렸다.

백스텝과 고스트 스텝으로 이어지는 연계 동작에 인테르의 견고한 쓰리백을 난도질했다.

그리고 오늘 유효슈팅 하나 없어서 지루해하던 한다노비치에게, 첫 유효슈팅이자.

첫 골을 선물로!

뻐-엉!

"Yeaaaaaaaaaaaaaaaa!"

원정팬들의 환호에 즐겁고,

"개자식-----!"

"죽여 버려-!!"

"Wooooooooooooo!"

인테르 팬들의 욕설과 야유에 더 즐거운,

내 첫 득점이다.

***

제퍼슨의 득점이 들어가는 순간.

콘테는 격한 분노와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으니까.

"왜 겁먹었지? 저 자식이 약 먹은 망아지처럼 날뛰는 꼴을 왜 거리를 두고 지켜만 봐?"

콘테가 드레싱 룸에서 미친 듯이 분노를 토했다.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욕설을 마구 던지며, 전술보드판을 집어던지고, 정장 재킷을 벗어 던지기까지.

인테르의 선수들은 묵묵히 분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콘테가 아무리 이들을 닦달한다고 한들, 제퍼슨과 부딪치며 누적된 고통을 몸이 잊을 리가 없다.

삐익!

인테르의 수비진은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다시 제퍼슨을 강하게 압박했으나.

제퍼슨은 다시 한번 무식하게 대응했다.

화려한 드리블? 발재간? 기가 막힌 무브먼트? 오브 더 볼 움직임? 그 모든 걸 던져 버리고.

빠악!

[디에고 고딘!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집니다! 제퍼슨과 충돌 후에 일어나질 못하네요!]

[데 브라이! 제퍼슨의 차징에 무너집니다! 제퍼슨! 말 그대로 수비진 가운데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제퍼슨의 거친 움직임에, 수비진은 말 그대로 겁을 집어먹었다.

설령 정신이 그렇지 않다고 한들, 제퍼슨이 달려드는 순간 몸이 빳빳하게 굳어지는 건 당연한 본능이었다.

고딘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지만, 제퍼슨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며 어깨를 들이밀려고 상체 페이크를 주자 흠칫하며 멈칫거렸다.

"아뿔싸!"

고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제퍼슨은 언제 무식하게 몸으로 싸웠냐는 듯, 우아한 두 번의 볼 터치로 공간을 만들고, 슈팅을 때렸다.

뻐어어어엉!

첫 터치는 스쿱 턴으로 고딘을 벗겨 내고.

두 번째 터치는 슈팅으로 한다노비치의 손끝을 가르며 터뜨리는 득점.

두 번의 유효슈팅과 두 번의 득점.

콘테는 그 순간에 터질 거 같은 분노에 휩싸였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완벽하다고 평가받았던 쓰리백을 부숴 버리는.

저 어린 공격수에게, 축구인으로서 순수한 경외심이 저절로 발현됐다.

"제기랄! 제기랄! 빌어먹을! 내가 런던에 있을 땐, 왜 저 친구가 첼시에 없었던 거냐고!"

또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마저.

***

제퍼슨이 단 두 개의 슈팅으로 만들어 낸 득점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슈팅을 유효슈팅으로 연결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득점으로 성사시켰다.

그것은 인테르가 갖고 있던 원정 다득점의 이점은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혔단 뜻이다.

수비적으로 임했던 인테르가 어떻게든 득점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했다.

즉, 철벽과 같던 쓰리백에 크게 균열이 생겼다.

[제퍼슨! 대체 저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수비 두 명을 끌고 측면으로 빠지면서 달립니다! 윌리안이 빈틈으로 파고듭니다! 빗장 수비의 균열을 파고드는 윌리안이 제퍼슨의 패스를 이어받아 그대로 득점을 성사시킵니다!]

제퍼슨은 후반 22분, 교체로 물러나기 전까지 풀리시치에게 하나의 득점을 선물하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인테르의 빗장을 끝까지 부숴 버렸다.

반으로 쪼개고, 그걸 또 쪼개고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밟아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제퍼슨 리가 오늘 인테르를 무너뜨립니다!]

[인테르의 빗장 수비는 무섭죠. 그러나 콘크리트로 이뤄진 벽이 아닌 이상 폭탄을 막지는 못합니다! 제퍼슨 리, 오늘 경기 2골 2어시스트로 인테르를 터뜨려 버립니다!]

[제퍼슨 밤(Jefferson BOMB)! 미국의 팻맨과 리틀보이에 이은 엄청난 폭탄이 밀라노를 터뜨려 버리는군요!]

< 98. Welcome to the EPL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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