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6화 (96/258)

< 96. 빗장수비는 열쇠가 없답니까? (1) >

리그컵 결승전이 열리는 시각.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수많은 유명 인사가 몰렸다.

아스날의 팬들인 영국 왕실의 사람들과 배우, 가수들이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것도, 이것이 축구라는 세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한데 슬픔이 아니라 놀람과 경악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두 무리로 나눠진 인물들은 서로를 무시하는 척하면서도, 경계하고 있었다.

"최고군요."

"예. 언론의 호들갑이라고 일부 생각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릅니다."

"현시점에서 아스날이 유럽 최고라고 할 순 없지만, 저력이 있는 팀입니다. 에메리 감독도 훌륭하고요. 한데 저들을 마치 갖고 노는 듯한 저 여유로운 플레이는 정말······ 저 친구가 01년생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네요."

"1억 파운드라. 솔직히 그걸로도 어림없을 것 같습니다."

"네. 지금 저치들도 몸이 달아올랐을 테니까요."

남자들은 그 말에 조금 멀리 있던 일단의 무리를 바라봤다.

두 무리 모두 영국에서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하게 서로를 경계했다.

"바르셀로나 놈들이 저 친구를 데리고 간다면······."

"그거야 끔찍한 일이죠."

"하지만 저치들은 네이마르의 복귀를 점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친구야 워낙 튀는 선수 아닙니까. 저기 제퍼슨 리도 튀는 선수긴 하지만, 그거야 축구 외적이지, 실제로 훈련에 임하는 태도는 프로 중의 프로라더군요."

"더구나 파리가 네이마르의 몸값을 쉬이 내주지 않을 것 같고요."

"하면 저치들이 제퍼슨 리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요. 더구나 수석 스카우터가 이 자리에 왔으니까요."

"끙!"

옆에 있는 무리는 바로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터들이다.

하면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은 누구겠는가.

바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나온 스카우터들이었다.

처음에는 루머였다.

비교적 '관심'수준에 머물렀던 걸, 제퍼슨의 에이전시가 루머로 크게 떠뜨렸다.

루머 때문에, 두 클럽은 관심을 좀 더 가지고 제퍼슨을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지구에서 가장 큰 두 클럽이 진지하게 제퍼슨 리의 영입을 논의하고 있었다.

"주앙펠릭스가 1억 2천만 유로(1700억 원)로 알레띠(AT마드리드)로 갔죠."

"비싸다는 말이 있었지만, 막상 까 보니 충분한 가치가 있었죠."

"제가 보기엔 저기 제퍼슨 리는 오히려 더 확실하단 생각입니다만."

"1억 유로로는 턱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면······."

"음바페가 얼마였죠?"

"1억 8천만 유로(2400억 원)이었죠."

"그게 최소치입니다."

"헉!"

"그, 그건······ 솔직히 파리의 기름쟁이들이니까 가능한 몸값입니다!"

"지금 제퍼슨 리의 스탯을 보세요. 비교적 경쟁이 약한 프랑스에서 찍고 있는 음바페보다 더합니다! 저 친구가 챔피언스리그에 나가 활약 한번 해 보십쇼! 1억 8천만 유로? 웃긴 이야기입니다. 네이마르의 2억 2천만 유로(2,970억 원)는 그냥 나오겠죠!"

스카우터진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갈락티코(은하계)라는 별명으로 슈퍼스타들을 끌어모았던 레알 마드리드로서도 쉬이 생각할 수 없는 천문학적 액수.

"하지만, 지금 겨울 이적시장에 그만한 자금을 동원하는 건 힘들어요. 회장님도 고개를 저을 겁니다."

"여름 이적시장을 노려야죠. 내년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한 이후에 노린다면, 그건 늦습니다. 파리 놈들이 3억 유로를 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설마 그런······."

그러나 요즘 미쳐 돌아가는 이적시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뒷배경으로 놓고 있는 축구 천재.

01년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어린 나이.

최소한 10년 이상은 지금 이상의 폼을 계속해서 보여 줄 확률이 높은 선수.

더구나 훈련장에서 보이는 프로의 태도와 그들이 소문으로 접한, 선수진에 불화가 없는 친화력까지.

"완벽하죠."

언론이 말하는 1억 유로?

절대 불가능한 수치다.

만일 첼시가 유로파와 FA컵, 두 개의 대회에서 더 우승을 한다면.

1억 유로는 아주 가뿐하게 넘을 것이다.

잠깐의 침묵.

그러나 어느 순간, 스카우터진 속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비명처럼 외쳤다.

이미 경기는 끝난 상황. 선수들이 세레모니를 하고 빠져나가는 시점에.

"바르셀로나 놈들이 없어졌어요!"

"뭐?"

"제기랄! 벌써 접촉하려는 건가?"

"지금 걔들도 돈 없을 텐데?"

"미리 기름칠 좀 해놓으려는 속셈인거지!"

"뭐해? 이대로 넘길 거야?"

필드에서의 엘 클라시코처럼,

장외 엘클라시코도 치열하다.

레알 마드리드 스카우터진이 분분히 일어나, 선수와 스태프들이 지나는 통로 쪽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터진이 한 남자와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조심스레 그들 쪽으로 다가가자, 앞에 서 있던 중후하게 생긴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레알 마드리드 측에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아메리칸 엑스 스포트 에이전시의 제크 팀장입니다. 유럽 지사를 담당하며, 현재 제퍼슨 리에게 고용되어 있죠. 자, 우리 영국에 온 김에 홍차라도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실까요?"

레알 마드리드 스카우터진은 그제야 이해가 됐다.

바르셀로나 측이 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 자는 두 팀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저울질할 생각이었다.

또한.

'장사꾼 냄새가 솔솔 나는군.'

저 웃음과 표정.

'빌어먹을. 제퍼슨 리의 에이전시 놈들이 미친 사기꾼 같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짐작은 정확했다.

"자, 우리 고객님들.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

@Cabarao_Cup

매력적인 첼시의 축구가 카라바오 컵을 지배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첼시. #CC #우승 #첼시

ㄴ제퍼슨 리는 완벽했어.

ㄴ3골 1어시스트.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이런 활약을 해주는 선수가 어딨어?

ㄴ제퍼슨 리! 탈인간급이야!

@Jack_Harold

첼시는 90분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줬죠. 훌륭한 플레이였습니다. 그리고 제퍼슨 리의 플레이는 감히 훌륭하다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표현할 수 업습니다.

축구, 그 자체였습니다.

#제퍼슨 리 #첼시 #카라바오컵 우승

ㄴ언빌리버블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워.

ㄴ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플레이야.

ㄴ특히 후반전에 공미로 빠져서 하는 플레이 봤어? Shit! 그 순간만큼은 맨시티의 데 브라이너가 안 부럽더군!

ㄴ잭 헤럴드 칼럼가, 이 자식 중립적인 척은 다 하면서 결국 제퍼슨 찬양하는군. 역겨워.

ㄴ거너들은 어서 집에 가서 베개에 얼굴 파묻고 울음이나 터뜨리지 그래?

ㄴ오, 설마 너희도 올해 무관?

ㄴ그리고 리그 5위?

ㄴ차라리 그게 낫지. 우승 확률 없는 챔피언스리그보다 유로파 우승을 노리라고!

ㄴ그것도 우승 확률 없는 건 마찬가지지!

ㄴ흥. 첼시 너희들은 고작 리그컵 트로피 하나 따고 좋아할만한 수준으로 떨어진 건가?

ㄴ응! 너무 좋아!

***

사실 많은 이들이 첼시의 리그컵 우승을 예상했다.

결승전 매치업은 서로 비등한 명성의 팀이지만,

도박사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첼시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빅6중에 가장 수비가 약한 팀이 아스날이니까."

"리버풀하고 맨시티도 제퍼슨 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막지 못했어. 아스날이 막기에는 무리야."

제퍼슨 리의 공격력은 아스날의 수비가 커버하기엔 위험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아스날의 승리를 조심스레 예상하는 측도 있었다.

"하지만 제퍼슨이 매번 컨디션이 좋을 수도 없지."

"비디오 게임도 아니고 말이야."

"한 골 정도로만 그를 막는다면, 아스날도 승산이 있어. 아스날의 공격력이야 나쁘지 않은 편이잖아? 오바메양도 좋고, 라카제트도 복귀했으니까."

"첼시 수비진이 최근에 좋아졌지만,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고."

허나 헛된 예상에 불과하게 됐다.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첼시 4 : 2 아스날, 웸블리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첼시 선수진.]

비록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리그컵 트로피였지만,

팬들에겐 어쨌거나 우승을 했단 사실이 중요했다.

그것도 라이벌 아스날을 꺾고 들어 올린 우승컵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퍼슨 리!"

"제퍼슨!"

"제퍼슨! 제퍼슨! 제퍼슨!"

버스를 타고 웸블리를 빠져나가는데.

아직도 승리를 향한 열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팬들이 몰려들었다.

"아빠! 제퍼슨 리가 안 보여요!"

"저기, 버스 안에 있단다."

"제퍼슨이 보고 싶어요! 이것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린이 팬들은 정말로 많았고, 그중에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꼬마도 있었다.

그런 꼬마를 애써 다독이는 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해, 경기장 맨 꼭대기에서 경기를 봤고, 세레모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퍼슨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아일랜드에서 왔건만.

남자는 애당초 첼시의 팬이 아니었다.

한데 어느 순간 TV에 나온 제퍼슨의 광고를 보더니, 마치 영화배우 팬이라도 된 것처럼 축구팬이 돼버린 딸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제퍼슨의 사인을 받고, 선물을 주고 싶단 생각에 런던까지 왔건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끼익!

그때, 인파에 막혀 쉬이 전진하지 못했던 버스가 열렸다.

"어차피 길 막힌 이상. 카 퍼레이드 비슷하게 한번 하자고."

웃음 가득한 첼시 코치진부터 버스에서 튀어나왔고,

급히 연락받은 런던 경찰들이 통제하며, 깜짝 팬미팅이 열렸다.

"아빠! 아빠 가요!"

딸의 외침에 남자는 급히 딸을 들어 올리고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려 용을 썼다.

그러나 꽉 막힌 인파는 뚫기 쉬운 것이 아니었고, 깜짝 팬미팅은 빠르게 끝나가고 있었다.

선수들이 다시 버스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 딸, 딸! 저기 봐라!"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던 딸이 고개를 돌렸다.

인파를 헤치고 이쪽으로 오는 제퍼슨 리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어어?"

"아까부터 제 이름을 계속 외치면서 울려고 하는 거 같길래, 그냥 갈 수가 없네요. 유니폼은 아까 다른 팬한테 줘버려서, 여기 트레이닝복에 사인 했어요. 미안해. 꼬마야."

딸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고, 그건 부녀 모두 마찬가지였다.

"오, 고마워요, 제퍼슨 리. 나와 내 딸은 당신의 진짜 팬이에요."

제퍼슨은 그저 미소를 보였다.

이제 스태프들이 가야된다고 소리칠 무렵.

딸이 품에서 무언가 꺼냈다.

"선물이에요! 우승 선물이에요!"

한 손가락 세 개 정도 크기의 포장된 상자.

제퍼슨은 과장된 웃음을 지었다.

"어이쿠, 고마워! 정말 고맙다. 오늘 들어 올린 트로피보다 더 좋은데?"

"헤헤!"

"앞으로 우리 첼시 응원 많이 해줘!"

"네! 사랑해요! 제프!"

주위에 있던 첼시 팬들도 일순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순박해 보이는 부녀와, 그 부녀에게 해주는 제퍼슨의 팬서비스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장면은 SNS와 여러 기사를 통해 퍼져 나가며, 그저 건방지고 실력만 좋았다던 제퍼슨의 이미지를 팬에게는 정말 따뜻한 좋은 친구로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

세상이 주목하는 건 비단 제퍼슨의 득점력뿐만 아니다.

"리그컵에서 보여 준 미드필더로서의 재능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인테르의 전력 분석관 팀장의 말에 콘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크린에서 나오는 제퍼슨의 최근 경기 활약상.

리그컵 후반전에 보여 준 제퍼슨의 팔색조 같은 모습은, 콘테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누가 보면 애당초 포지션이 플레이메이커인줄 알겠군."

"물론 아스날이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크지만, 제 생각엔 아스날이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제퍼슨의 플레이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네."

콘테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유로파 32강 1차 원정에서 인테르는 2대 1이란 스코어로 첼시를 잡았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콘테가 첼시 출신이었으니까.

그리고 첼시의 베스트 일레븐은 콘테가 지휘했던 선수들이 아직도 대다수였다.

한마디로 콘테의 손바닥 위에 있단 얘기였다.

뛰어난 전술가이자 전략가인 콘테는 맞춤 전술을 준비했고, 첼시를 상대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제퍼슨 리."

딱 한 명.

그가 아무리 분석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던 재앙 같은 선수.

그가 아니었다면 2대 0이란 스코어가 됐을 터.

제퍼슨이 1차전에서 터뜨린 득점은 비록 한골이었지만, 콘테에게 큰 충격을 줬다.

자신이 구축한 완벽한 쓰리백을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으니까.

일각에서는 수비력이 강한 인테르인만큼,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유리한 거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제퍼슨 리가 있어. 바르셀로나가 4골을 넣었다가, 2차전에서 역전당해 지는 게 토너먼트지. 제퍼슨 리라면 2차전에서 3골이던, 4골이던 만들어 낼 선수야. 고작 한 골 차이? 웃기는 이야기지."

콘테의 말에 코치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맴돌고.

"그래도, 한번 잘 해보자고. 우리 인테르의 홈이다! 주세페 메아차라고! 우리가 구축한 쓰리백, 공격력은 비록 강한 편은 아니어도, 우리의 빗장 수비라면! 놈을 막을 수 있어!"

< 96. 빗장수비는 열쇠가 없답니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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