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3화 (93/258)

< 93. 리그컵 트로피 (4) >

[첼시, 리그컵 결승 진출! 아스날과 결승전에서 마주치다.]

[토트넘을 무너뜨린 제퍼슨의 해트트릭, 올 시즌만 해트트릭 5번의 기염!]

[제퍼슨의 득점력에 프리미어리그 팀들 고민 중]

[제퍼슨 리, 3분 2골! 커피 한 잔 내리기도 전에 끝난 토트넘의 우승을 향한 꿈]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본격적인 영입 경쟁에 시동]

[1억 파운드(1400억) 제시, 로만 구단주 재계약 준비 중.]

[포체티노 감독, "솔직히 말해 변명할 여지가 없다. 단지 상대팀엔 제퍼슨 리라는 규격 외의 선수가 있었다는 점. 라리가도 아닌 프리미어리그에서 메시처럼 알아도 막기 어려운 선수가 나올 줄은 몰랐다."]

[제퍼슨 리, "리그컵 결승에 올랐다. 우리는 모든 런던팀을 이겼고, 결승에서 아스날을 상대한다. 쉬운 일이다."]

***

12월의 선수상과 1월의 선수상을 연속 수상한 건 즐거운 일이다.

이것도 커리어에 올라가는 거니까.

거기에 첼시의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일찍이 경신한 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리그 29골

유로파 5골

리그컵 6골.

총합 40골을 터뜨렸다. 현재 경기당 1.46골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솔직히 말해 나도 첫 시즌에 이런 기록을 쏟아 낼 줄은 몰랐다. 첫 시즌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토론토 시절과는 달리 '득점'에만 집중한 결과인 것 같았다.

강한 압박에 활동량을 다소 줄이고 득점 기회만 노린 것.

덕택에 게으른 공격수라는 힐난은 들었지만, 어차피 여기선 아무리 잘해도 상대팀들에게 욕먹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상대팀에게 욕먹는 일은 오히려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네가 잘하고 있다는 거지, 제프."

근육 부상에서 회복한 풀리시치가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당분간 북런던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왜?"

"북런던의 두 팀 팬들이 널 보면 죽이려고 할 테니까."

"거참 세상 각박한 이야기군."

북런던의 두 팀.

토트넘과 아스날의 팬들이 날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두 팀 다 나에게 패배했다.

아스날은 나에게 승점 6점을 빼앗겼고, 토트넘은 리그컵 트로피를 얻을 기회를 잃었다.

더구나 리그컵 결승전 상대가 아스날로 확정되면서, 내가 했던 인터뷰가 그들의 복장을 뒤집어 버렸다.

[제퍼슨 리, "리그컵 결승전 상대인 아스날은 쉬운 팀."]

ㄴ존나게 건방진 인터뷰야.

ㄴ이래서 아메리칸이 싫어.

ㄴ빌어먹을 자식. 정말 싫다고!

ㄴ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 못 나간다면 저 자식 탓이야.

ㄴ왜 너희들 실력 부족한 걸 제퍼슨 탓을 하지?

ㄴ빌어먹을 첼시놈들. 너희들은 운 좋게 저 자식을 영입해서 잘 나가는 거야. 저 녀석이 없었으면 너희는 올해도 무관이라고.

ㄴ우리 아스날에 쟤가 왔다면,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하겠지.

ㄴ챔피언스리그도 못나갔던 팀이 말이야.

ㄴ우린 우승컵이 있어. 너희 팀은 올해 출전권 따는 것부터 걱정해야할 거 같은데.

ㄴ그리고 너희 팀에 갔다면 부상으로 몇경기 뛰지도 못했겠지.

ㄴ지금 부상이 가장 많은 팀이 아스날이던가.

ㄴ챔피언스리그 16강 바르셀로나전을 앞두고 주전 선수 4명이 부상이라면서?

ㄴ아마 그전 리그컵 결승에서, 우리 제퍼슨이 너희 수비진 두세 명은 박살 낼 거야.

ㄴ오, 제발.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

ㄴ응. 너희 수비진들도 부상당해.

ㄴ제발! 꺼져 버려!

그에 반해 신난 건 첼시팬들이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첼시팬들이 있는 곳은 늘 웃음이 가득했다.

"난 저런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네 이미지가 있잖아."

"내 이미지가 뭔데?"

"빌어먹을 정도로 잘났는데 본인도 그걸 잘 알아서 잘난 척 잘하는 녀석."

"······."

풀리시치의 말에 난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내 이미지가 저런 거였다니.

그래서 인터뷰가 저렇게 왜곡됐나.

사실 저 헤드라인은 다소 자극적이고, 억울한 면이 있다.

당시 내가 했던 말은 '아스날은 리그에서 두 번 상대해 봤다.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안다. 결승전이라고 긴장하지 않고 이기겠다.'였던 거 같은데 말이지.

"기자들이 그렇지."

"어쨌든 오히려 첼시팬들은 좋아하잖아?"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다.

라이벌 팀을 깎아 내리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선수는, 적어도 팬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는다.

왜곡된 인터뷰는 첼시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그래서 굳이 왜곡된 걸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승전에서 골 넣어서 이겨버리면, 욕 또 먹을 텐데, 굳이 왜곡된 거라고 사과할 이유도 없지."

상대팀에게 욕먹는 거야말로, 최고의 선수라는 증명 아니겠는가.

내 말에 풀리시치는 다소 질린 듯한 시선으로 날 쳐다봤다.

뭐냐, 그 눈빛은.

"너 마조히스트는 아니지?"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은 또.

***

[사실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선수죠.]

캐스터의 얘기에 해설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프리미어리그의 19개의 팀이 모두 그를 싫어하니까요.]

[그럴 수밖에요! 만날 때마다 살 떨리는 공포감을 주는 선수니까요!]

[각 팀마다, 유난히 내 팀에 골을 잘 넣는 선수가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한데 제퍼슨은, 첼시를 제외한 모든 팀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선수일 수도 있겠네요.]

[첼시팬만 그를 좋아하니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제퍼슨 리! 그는 너무 위협적입니다! 오늘 경기 역시 마찬가지네요! 스토크 시티, 제퍼슨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Wuuuuuaaaa!"

경기장에 일제히 함성이 울린다.

스토크 팬들은 오늘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

"지금 날아가는 거 우리 쇼크로스 맞지?"

"쟤 가면 벗겨 봐. 쇼크로스 아닐지도 몰라."

스토크 수비의 핵.

터프한 축구의 대명사를 넘어, 거친 플레이 그 자체, 라이언 쇼크로스.

그를 만나는 공격수는 모두 애를 먹는다.

강력한 피지컬, 거친 태클, 망설이지 않는 몸싸움.

웬만한 공격수는 그와의 싸움을 피한다.

싸워 봤자 골 넣기는 힘들어지고, 다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한데 오늘은 달랐다.

"정면 승부라니."

"마치 황소 두 마리가 서로 돌진하는 거 같아."

"근데 한쪽이 너무 일방적으로 밀리는군."

스토크 팬들은 넋두리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얘기를 나눴다.

"으억!"

저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는 거대한 체구의 수비수.

삐빅!

너무 크게 날아갔던 탓에, 심판은 참지 못하고 휘슬을 불었다.

정말 트럭에 치인 것처럼 날아가는 모습이었으니, 설령 저것이 정당한 몸싸움이라고 한들 심판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휘슬을 불어버린 것이다.

첼시의 공격이 공격자 파울로 끊기자, 제퍼슨이 아쉬운 얼굴로 다가와 쇼크로스를 일으켜 세워 줬다.

"어이, 덩치. 너무 덩칫값 못하는 거 아냐? 헐리웃이지. 이건."

"뭐? 이 미친!"

쇼크로스는 순간 억울함이 덜컥 치밀었다.

너무 억울했다.

헐리웃이라니! 덩칫값도 못 한다니!

자신이 과연 언제 그런 말을 들어봤던가.

방금은 진짜였다.

엄청난 드리블에 수비진이 무너지자, 쇼크로스는 이를 악물고 돌진했다. 진짜 온몸을 날려 막아 보겠다는 심정이었다.

한데 온몸이 날아간 건 본인이었다.

'하늘이 푸르네.'

처음이었다.

경기 중에 하늘을 보면서 그런 감상을 빠졌던 적이.

"헐리웃 아니라고. 이 괴물 자식아······."

쇼크로스의 눈이 촉촉해졌다.

***

"난 이 팀이 좋아."

"첼시가?"

"아니, 스토크가."

"······."

내 말에 윌리안 대신 출전한 오도이가 괴상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별 같잖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 같은 얼굴이다.

"스토크가 좋다니. 리그에 그런 선수는 너밖에 없을 거야."

뭐, 그럴 수도.

워낙에 거칠고, 싸우길 좋아하는 색채의 팀이니까.

같이 경기를 뛰면 몸 곳곳에 멍이 드니, 스토크를 상대하는 걸 좋아할 선수가 어딨겠는가.

"근데 난 좋아."

"너 진짜 마조히스트 아니지?"

"뭔 소리야."

"······아니, 맞는 거 좋아한다는 얘기 아니야?"

세상에.

적어도 내 취향은 그런 쪽이 아니다.

"맞긴 누가 맞아?"

스토크는 손을 잘 쓴다.

어깨도 발도 잘 쓴다. 정강이를 까 버리는 건 기본이요, 발로 몸을 때리듯이 밀쳐 버리는 건 반칙조차 아닌 팀이다.

그래서 내가 이 팀을 좋아한다고 해서 보이는 오도이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정말로 스토크 시티가 좋았다.

"미식축구 하는 것 같거든."

비록 내 정신은 이학현이지만,

내 육체는 아직도 미식축구의 플레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고로.

나에게 망설임 없이 돌진해 오는 저기 스토크 선수들이 정말 좋았다.

"이게 축구지."

퍽!

공을 잡자마자 몸을 던져오는 미드필더, 샘 클루커스를 그대로 맞받아치면서.

"Yeaaaaaaaaa!"

"죽여 버려! 제프!"

툭!

공을 차고 그대로 달렸다.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 클루커스와 심판을 흘깃 번갈아 보고.

망설이는 심판의 표정.

음, 휘슬 불기 전에 빠르게 진행해야겠다.

"Wuuuuuuuuuu!"

스토크 팬들의 야유.

나는 공을 툭 차고 달리면서 공간을 찾았다.

동시에 고개를 빠르게 돌려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왼쪽으로 달려가는 풀리시치를 향해 롱패스를.

툭!

"Wuuuaaaaaaaaa!"

센터서클 바로 위에서 올라가는 롱패스는,

첼시의 다이렉트한 축구, 그 자체를 보여 줬다.

조르지뉴와 드링크워터가 자주 보여 주는 깔끔한 롱패스.

한데 내가 할 줄은 몰랐던지, 스토크 선수들의 입이 헤 벌어진다.

짜식들.

마, 그래도 한때 축구 천재였어. 아시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다고!

어쨌든 풀리시치는 나랑 호흡이 잘 맞는다.

국대에서나 클럽에서나.

그래서 내가 보낸 롱패스를 정확히 받고, 완벽하게 컨트롤 했으며,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다시 볼을 돌려보냈다.

단 두 번의 롱패스로,

미드필더부터 시작하는 스토크의 압박이 헐거워진다.

볼을 부드럽게 돌려세우며 그대로 전진.

나에게 여러 번 날아간 쇼크로스가 험악한 기색으로 다가온다.

"죽여 버리겠어!"

살벌하군.

그리고 그 말이 단순한 허언이 아닌 듯, 쇼크로스는 이번에 작정하고 발을 높게 든 태클을 시도한다.

"미친!"

"저 개자식이 우리 제프를······ 우와악!"

쇼크로스에게 야유와 욕설을 쏟아 내려던 첼시팬들은, 그 태클을 가볍게 몸을 돌리며 피하는 우아한 움직임에 감탄을 터뜨린다.

쇼크로스마저 무너진 스토크의 수비진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요, 헐거운 자동문이다.

어정쩡한 거리에 수비가 복귀하고, 골키퍼 잭 버틀랜드가 애써 좋은 자리를 선점하며 압박해 오지만.

여기서 골을 넣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놓치려면, 새벽 4시까지 못 잤어야겠지.

그래서 생각했다.

'쟤들 우는 꼴을 보고 싶어.'

저 터프하고, 거친 상남자들이.

늘 상대 선수들을 아프게 하고, 못살게 굴던 저것들을.

엉엉 울게 하고 싶었다.

음.

좋아.

"슛! 슈웃! 슛! 때려!"

"제프! 때리라고!"

누가 봐도 완벽한 슈팅 타이밍.

하나, 나는 그대로 공을 차고 들어갔다.

수비진이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는 찰나.

아니, 이미 타이밍은 놓쳤다.

수비는 복귀했고 자리를 잡았으며 압박을 시도했다.

심지어 쇼크로스마저 금세 자리를 잡는다.

순간 첼시팬들이 내가 무리하게 공을 끌자, 몇몇 거친 말을 쏟아 내는 것 같았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툭!

왼쪽에서 들어오는 발끝을 반박자 빠른 동작으로 피하고,

"헉!"

오른쪽에서 어깨를 밀어오는 수비수를 그대로 밀어내면서, 동시에 공을 지킨 뒤.

"이 개자식!"

험한 욕설을 내지르며 덮쳐오는 쇼크로스를 한 번 더 팬텀드리블로 제친 뒤에.

"으아아아!"

완벽하게 각도를 좁히는 골키퍼 잭 버틀랜드를,

툭!

"······!"

다시 한번 또 제쳐서.

그러니까, 수비수 세 명과 골키퍼 한명까지.

드리블로 제쳐서.

그대로 공과 함께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Fuck."

버틀랜드의 나지막한 욕설.

그렇지, 이거지!

***

"······."

오도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건 농락이다.

골을 넣을 타이밍에서 일부러 한 번 더 공을 끌었다.

마치 상대에게 희망이라도 주는 것처럼.

잔인한 짓이다.

상대에게 가망을 주더니, 다시 한번 짓밟아 버리는 플레이.

그 좁은 공간, 박스 안.

수비수 세 명과 골키퍼까지 제쳐 버리는 그 화려한 드리블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쳐 날뛰는 첼시팬들의 함성이 귀를 먹먹하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허망한 표정으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 스토크의 덩치 있는 선수들.

심지어 쇼크로스는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었고, 촉촉한 무언가가 살짝 맺힌 듯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즐거운 미소를 띠고 있는 제퍼슨 리.

골을 넣어서 즐거운가?

아니다.

저건, 쇼크로스가 울어서 즐거운 거다.

그 사실에 오도이는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새디스트인가······ 아니면 둘 다인 건가."

< 93. 리그컵 트로피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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