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2화 (92/258)

< 92. 리그컵 트로피 (3) >

[우리는 제퍼슨 리의 하드웨어와 득점력을 주목해 왔습니다.]

중계 화면에는 땀에 흠뻑 젖어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제퍼슨 리의 원샷이 계속 잡혔다.

마치 축구 경기라는 90분짜리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인 것처럼.

해리 케인이 득점 찬스를 놓치고,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제퍼슨의 얼굴이 교차하여 잡혔다.

[하지만 제퍼슨 리의 하드웨어는 단지 그가 가진 능력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제퍼슨의 하드웨어.

리그 최고의 수비수도 혀를 내두르다 못해 피할 정도의 완벽한 피지컬은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소프트웨어가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의 경기력입니다. 캉테와 조르지뉴가 없는 오늘 첼시 패스의 KEY는 다름 아닌 LEE입니다!]

해설자는 일반적인 찬양을 늘어놓았다.

하나,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다.

타미는 단순한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높은 활동량으로 공간을 파고든다.

그리고 제퍼슨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완벽한 패스 능력.

[창의적이고, 창조적입니다! 현재 타미의 움직임은 예측불허입니다.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필드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죠. 제퍼슨은 그런 타미가 나타날 공간을 미리 알고 패스를 보내는 느낌이네요. 엄청납니다!]

타겟터에게 중요한 건 비단 피지컬뿐만이 아니다.

공을 지키는 능력뿐 아니라, 그걸 적재적소에 찔러주는 패스도 중요하다.

[현시점에서 제퍼슨 리는 최고의 타겟터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어요!]

툭!

[제퍼슨! 살짝 내려와 공을 잡고, 버텨 줍니다. 그리고 백 힐을 사용해 왼쪽으로 툭 빠지는 공! 아, 타미! 타미가 또 한 번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공간에 나타났습니다!]

"Yeaaaaaaaaaaa!"

"패스 미쳤다!"

경기장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퍼슨의 패스였다.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도 '왜 저기로 패스를 하지?' 싶을 정도로 난데없는 패스.

한데 타미의 높은 활동량에 이어 기회를 포착하는 그 특유의 골 본능은, 제퍼슨의 패스를 그저 감탄만 나오게 하는 창의적인 플레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타미 아브라함에게 빠른 압박이 가해지네요! 타미, 순간적으로 멈칫합니다! 아! 이때, 제퍼슨! 제퍼슨이 엄청난 속도로 단숨에 페널티 박스 안으로! 얀 베르통언이 옷깃을 잡아끕니다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타미의 컷백! 컷백!]

"막아!"

"우왁!"

토트넘 벤치가 일순 창백해졌다.

필드 위 수비수들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렸다.

[제퍼슨! 제퍼슨이 파고들어갑니다!]

마치 지금맞을 기다렸던 것처럼.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던 맹수가 순간적으로 비축한 힘을 터뜨리는 것처럼.

제퍼슨의 폭발적인 움직임은 수비가 미처 반응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얀 베르통언이 옷깃이라도 잡아끄는 게 최선일 정도.

달려드는 제퍼슨의 발끝에 도달하는 날카로운 컷백 크로스.

뻐-엉!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

제퍼슨 리의 발끝에서 팀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The Blues!"

"Jefffff, Goooooaaaaall!"

"제-퍼슨!"

[이것이죠! 이게 제퍼슨이 괴물이란 이유입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바뀐 건 고작 5초입니다! 5초 만에 오늘 보여 준 플레이 스타일을 단숨에 바꿔 수비진을 농락하고 득점에 성공합니다!]

***

[토트넘에겐 악몽이야 #제퍼슨 리 #첼시VS토트넘 #골 폭격기]

[와, 미쳤다! LEE의 득점! 순간적인 스피드를 보라고! #제퍼슨 리 #스프린터 #첼시]

[그거 알아? 지금 제퍼슨의 추세면 첼시의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 경신은 시간문제인거?]

[Oh God! 하긴, 리그에서만 26골이야. 유로파, 리그컵 그리고 이제 FA컵까지 생각해 봐!]

[미쳤군. 정말 이건 말도 안 돼!]

[너희들 하나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이번 시즌이 제퍼슨의 데뷔 시즌인거 기억하고 있지?]

[Shit! 제퍼슨은 이미 완벽해. 결점이 없다고. 이제 19살인데 말이지.]

[그가 은퇴할 때까지 첼시에서 뛰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세계 최고의 클럽은 우리 블루스가 될 테니까!]

[로만! 당장 LEE와 재계약을 해! 30만 파운드쯤이야 사업 하나 정리하면 10년 계약 충분하잖아? #제퍼슨 리 #재계약 #첼시 레전드]

***

"너의 조언은 늘 완벽해."

타미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이제 부담스러울 정도다.

"제프, 너의 조언대로 그저 패스를 주니까 게임이 완벽하게 풀리는군."

저번에 농담으로 했던 말이다. 일단 나에게 패스하라던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이야.

전반전을 마치고 드레싱 룸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에 반해 토트넘 선수들의 얼굴은 다소 일그러져 있었다.

"저기 해리 케인을 보라고."

뤼디거가 웃으며 다가와 케인을 가리켰다.

오늘 몇 번의 찬스를 맞이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케인이었다.

"내가 좀 혼내줬지. 아마 오늘 득점은 꿈도 못 꿀 거야."

뤼디거가 우람한 팔 근육을 강조하며 웃었다.

음.

"뤼디거, 그렇다고 어디 부러뜨리지는 마."

"설마. 내가 그런 프로 의식 없는 짓거리를 하겠어?"

"당연히 안 하겠지."

뤼디거는 프로선수다.

그가 그런 비열한 짓거리를 할 리가 없다.

"근데 너랑 부딪치면 어디 부러질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오, 제프. 그런 얘기를 네가 하니까 웃긴 거 알아?"

"음."

하긴.

훈련장에서 유일하게 나랑 몸싸움이 비등하게 가능한 선수가 바로 뤼디거였으니까.

"제프, 체력 괜찮나?"

드레싱 룸에 들어가자 전술보드를 쳐다보던 감독님이 황급히 다가왔다.

솔직히 경기 전부터 좀 지친 상태였다.

불과 나흘 전에 경기를 치르지 않았나.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괜찮다.

타미가 내 몫만큼 더 뛰어 줘서 말이지.

"제프. 후반 20분까진 뛸 수 있겠어?"

"네. 그 정도는 충분해요."

"좋아. 이왕이면 해트트릭을 만들어 버려. 그러면 후반 10분 만에 빼 줄 수 있으니까."

"10분 만에 두 골을 더 넣으라는 건가요?"

"불가능하나?"

감독님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글쎄.

"3분 만에 해결해 드리죠."

거, 까짓것 지르고 보는 거지.

***

[토트넘 선수들의 얼굴에 결의가 느껴집니다.]

[때때로 감독들은 라커룸에서 마법을 부리죠. 오랫동안 토트넘을 지휘하며, 선수들의 신뢰를 쌓은 포체티노의 하프타임 매직이 과연 이뤄질까요?]

하프타임의 매직.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하프타임 이후 라커룸에서 감독이 마법을 부리는 일은 토너먼트에서 의외로 자주 일어난다.

그것이 축구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때문에 경기장에 모인 토트넘의 팬들은 그런 마법을 기대하고 있었다.

반면 첼시 팬들은 왁자지껄 웃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타미! 오늘 정말 인상적인데!"

"역시, 우리 첼시의 공격수는 흑인 공격수지!"

"그거 좀 인종차별 같지 않아?"

"무슨 소리야! 드록바, 말루다 기억 안 나?"

"제퍼슨이 들으면 실망하겠군."

"오, 세상에. 제퍼슨은 인종을 떠나 그냥 신이라고. GOD!"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는 첼시팬들.

"난 저 자식의 다리가 부러졌으면 좋겠어."

"그래. 맞아. 베르통언이 작정하고 박아 버렸으면 좋겠군."

"그거 좀 위험한데? 베르통언이 작살 날 수도 있어. 아까 산체스 날아가는 거 못 봤어?"

"빌어먹을.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매직을 기다리는 토트넘 팬.

하나, 매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법.

[드링크워터의 롱패스가 단숨에 제퍼슨의 발끝에 도달합니다!]

횡 방향으로 정확하게 도달하는 드링크워터의 직선패스.

툭!

공을 받은 제퍼슨이 버텨 준 채, 오른쪽의 윌리안에게 내주고 적진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수비라인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

골이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도 토트넘 팬들은 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제퍼슨 주위에 수비가 있지만, 그것이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으니까.

[윌리안이 공을 받고 중앙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수비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거침없습니다!]

윌리안은 화려한 드리블을 펼치며 단숨에 안으로 좁혀 들어갔다.

그 순간에 수비들의 시선이 잠깐이나마 윌리안에게 몰렸다.

'지금!'

제퍼슨의 눈이 번뜩였다.

잠깐의 균열.

단단한 수비진의 시선이 잠깐 쏠린 사이.

그 찰나의 시간에 제퍼슨은 남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터뜨리며 내달렸다.

"패스!"

마치 훈련에서 연습했던 것처럼.

윌리안은 선수 한두 명의 시선을 잡아 둔 뒤.

가볍게 몸을 돌리며 공을 지키며, 제퍼슨에게 향하는 패스를 툭 찔러줬다.

"······!"

수비 다리 사이를 절묘하게 빠져나가는 패스는,

뻐엉!

달려오는 제퍼슨의 발리 슈팅 한 방은 골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루트로 빨려 들어갔다.

"제---퍼슨!"

"오, 제프! 제프!"

"Yeaaaaaaaaaaaaaaaaaa-!"

팀의 세 번째 골이 터지자, 매직을 기다리던 토트넘 팬들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쐐기골.

그리고.

"왜 공 잡고 뛰는 거야? 제프! 세레모니 안 해?"

"2분 남았어!"

3분 내 두 골이란 농담 같은 약속.

"빨리 넣고 쉬어야지!"

***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터진 제퍼슨의 쐐기골은 치명적이었다.

"골 정말 쉽게 넣는군."

누군가 그런 감탄을 쏟아냈다.

상대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감탄을 숨길 수는 없다.

완벽한 패스플레이도, 수비진과 뒤섞인 채 치고받는 움직임도 아닌.

그저 슈팅 한 방에, 한 골.

어찌 보면 참 쉽게 골이 들어간다 싶을 정도였다.

'저런 놈을 막을 수 있다고?'

얀 베르통언은 좌절감을 느꼈다.

얼마만이던가.

리그에서 그에게 좌절감을 준 공격수는 많지 않다.

그의 심정은 비단 그뿐만 가진 게 아니었다.

빅토르 완야마의 중원부터 수비진까지.

제퍼슨이 공을 잡을 때마다 몸이 움찔거린다.

애당초 토트넘의 전술은 실패했다.

타미의 변칙 사용도 주효했지만, 제퍼슨의 엄청난 유효슈팅률과 기회가 오면 마무리를 지어 버리는 피니쉬 능력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로 제퍼슨에게 가는 패스를 차단하는 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이전 경기와 비교하면 제퍼슨이 공을 터치한 횟수는 확실히 적다.

그러나 그것이 제퍼슨의 집중도를 높여 주는 결과를 불러왔다.

기회가 적게 오는 걸 판단한 제퍼슨은 평소보다 더 강한 집중력을 보였다.

특히 후반전 들어서는.

3분 이내에 두 골을 넣겠단 마인드는 초인적인 힘을 불러왔다.

"제----퍼----슨!"

"LEE will LEE will Kill you!"

저 지겨운 환호와 노랫소리.

베르통언은 다시 한번 몸이 빳빳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귀신같은 움직임, 그리고 도저히 파악 못 할 방향 전환으로 공을 잡고 맹렬하게 파고드는 제퍼슨 리.

토트넘의 중원이 단숨에 무너졌다.

제퍼슨의 화려한 돌파도 돌파지만, 타미 아브라함과 윌리안의 움직임은 매서웠고, 토트넘 수비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제퍼슨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 줬다.

왼쪽 60도 대각으로 치고 달리더니, 풀백이 압박해 오자,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우측 30도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제기랄!"

"부숴 버려!"

순식간이다.

제퍼슨의 속도는 어마어마했고, 수비가 무너지는 속도는 더 무시무시했다.

수비를 지휘하는 베르통언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태클? 아니면 공간?'

베르통언은 태클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지금은 소용없었다.

'태클을 피해 버리는 저 방향 전환. 저게 말이 돼?'

럭비 선수나 저렇게 움직이지 않을까.

태클을 시도하기도 전에, 가볍게 벗겨 버리는 저 과격한 방향 전환은 제퍼슨을 최고의 골게터에 이어, 최고의 드리블러라는 평가를 선물해 줬다.

그리고 대단한 수비수인 베르통언마저,

툭!

[제퍼슨 리! 특유의 백스텝으로 베르통언의 태클을 무효로 만들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버립니다!]

"허."

몸의 중심이 무너지자,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농락이다.

백스텝으로 태클을 피하고, 왼쪽으로 유유하게 방향을 틀어 버리는 제퍼슨.

그리고 그에게 남은 건, 오늘 세 골이나 실점해 좌절감에 빠진 요리스였고,

요리스는 또 한 번 제퍼슨의 구석을 정확히 노리는 슈팅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Goooooooaaaaalll!"

"The Blues!"

"제-퍼슨! 해트트릭! 해트트릭!"

후반 시작 3분 24초.

제퍼슨의 연이은 두 골로 토트넘은 침몰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필마르크 감독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제퍼슨! 벤치에 올 필요도 없어! 당장 샤워하고 집에 가서 맥주나 즐기라고!"

< 92. 리그컵 트로피 (3)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