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1화 (91/258)

< 91. 리그컵 트로피 (2) >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다.

강팀이라고 부르기에는 늘 뭔가 부족했던 토트넘을 이제는 유럽에서 인정받는 강자로 만들었다.

현재의 토트넘을 만든 건 포체티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나, 그런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래, 욕심이다.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일정만으로도 벅찬데, 리그컵이라니. 하지만 나는 트로피를 원해. 너희들 목에 걸 메달과 클럽 하우스에 전시할 트로피를 말이지!"

토트넘은 강팀이다.

해리 케인과 라멜라, 쏘니로 이뤄지는 공격진.

잉글랜드 미드필더의 주축이 된 델리 알리의 중원, 얀 베르통언이 중심을 잡아 주는 수비진까지.

자타가 인정하는 훌륭한 선수진이다.

애석하게도 포체티노는 토트넘을 이끌며 트로피를 얻어 낸 적이 없다.

프리미어리그나 FA컵은 차치하고라도, 그 흔한 리그컵마저 없었다. 아직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의 아쉬움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나는 우리가 첼시를 잡고 결승에 진출해서 우승까지 차지하기를 바란다. 팬들이 원하는 건 결국 트로피야. 그것이 아무리 종이컵이라 비웃는 리그컵이라도 말이지!"

우승 커리어는 선수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토트넘에서 몇 년간 뛰면서 우승 커리어를 얻은 선수는 없다.

하여 선수들은 포체티노의 연설에 깊게 공감했다.

트로피가 없다면, 훗날 갈수록 저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결승전에 가면 아스날을 만날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그 전에 저 빌어먹을 파란 것들을 잡아야 해! 가서, 짓밟아 버리자고! 런던에 우승팀은 오로지 우리만 남게끔!"

뜨거운 열기가 드레싱룸에 가득했다.

***

"해리 케인이 널 죽여 버릴 것처럼 쳐다보고 있어."

"괜찮아. 우리 뤼디거가 잘 막아 주겠지."

"물론이야, 제프. 저놈의 다리를 부서뜨려서 득점왕 경쟁을 쉽게 만들어 주지."

"어, 굳이 그럴 필욘 없어, 뤼디거."

뤼디거는 유쾌하게 웃었다.

농담인데 농담 같지가 않다.

더구나 저 덩치로 저런 말을 하면 말이지.

역시 독일인인가 싶다.

뤼디거가 물러나자 타미가 다가와 생수를 건넸다.

"둘이 뭐라고 대화한 거야?"

"음. 뤼디거가 케인의 발목을 부서뜨린다는군."

"그거 멋진 일인데."

뤼디거와 대화할 땐 독일어를 썼다.

아마도 그게 저 딱딱한 뤼디거하고 금방 친해진 이유였던 것 같다. 팀에 독일어를 쓰는 친구가 얼마 없으니까.

"그나저나 토트넘 애들 표정이 무섭네."

"전쟁이라도 나가는 것 같군."

"4강전이니까."

"우리는 너무 편안한 거 아닌가."

타미의 다소 불안한 목소리에 웃으며 핀잔을 줬다.

"편해야 골이 잘 들어간다고, 친구."

"그건 그냥 네가 잘 넣으니까 그런 거 같은데."

"그것도 맞는 말이지."

"······풀리시치가 가끔 네가 재수 없다고 하는데 이제 이유를 알겠어."

"······그것도 맞는 말 같군."

하긴.

내가 상대방 입장이어도 남들은 일 년에 두 자릿수의 골을 넣을까 말까인데, 이렇게 쉽게 골을 넣는다고 편안하게 말하면······.

재수가 없을 수도 있겠다.

***

[토트넘은 부상자를 제외하고 거의 전력으로 선발진을 꾸렸네요.]

[그에 반해 첼시는 다소 로테이션을 가동했네요. 최근 스페인 복귀 루머가 있는 페드로와 미세한 근육 부상이 있는 풀리시치 대신 타미 아브라함이 왼쪽에 자리하네요.]

[토트넘의 선발진입니다. 위고 요리스 골키퍼, 수비진에는 왼쪽부터 대니 로즈,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다빈슨 산체스입니다. 중앙에는 해리 윙크스와 빅토르 완야마, 무사 시소코가, 2선에는 에릭센과 쏘니, 그리고 원톱에는 해리 케인입니다. 델리 알리가 근육 통증으로 결장한 게 토트넘으로서는 가장 불안 요소이군요.]

[첼시의 라인업입니다. 원톱에는 제퍼슨 리, 왼쪽엔 타미 아브라함, 메이슨 마운트, 윌리안이 자리합니다. 중원에는 체력 회복이 필요한 캉테 대신 대니 드링크워터와 마테오 코바치치가 출전하네요. 수비진은 왼쪽부터 에메르송, 뤼디거, 시셀도, 아스필리쿠에타입니다. 골키퍼 장갑은 케파가 꼈습니다.]

[격한 일정을 치르며 피로가 쌓인 첼시입니다만, 그건 토트넘도 마찬가지죠.]

[관건은 결국 누가 서로의 수비벽을 뚫어내고 먼저 득점하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변수가 있으니까 선제골이 가장 중요하죠.]

전 세계의 도박사들은 빅클럽들이 맞붙는 경기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한데 두 클럽의 배당은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도박사들도, 그리고 전문가들도 쉬이 승패를 예측하지 못하는 경기.

[이거 예상하기 쉽지가 않네요. 해리 케인의 득점력은 최근 물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첼시에도 리그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가 있죠, 제퍼슨 리! 오늘 그가 리그컵에서 첫 선발로 나와 토트넘의 심장을 겨누고 있습니다.]

[포체티노는 리그 초반 제퍼슨 리를 막지 못해 처참하게 무너진 경험이 있습니다. 과연 오늘 어떻게 될지, 모두 지켜봐 주시죠!]

***

"LEE will LEE will Kill you!"

"제퍼슨이 수탉놈들을 잡아먹으러 오신다!"

"KFC 알고 있나? 본고장에서 온 제프가 너희들을 튀겨 먹겠지!"

"어이! 포체티노! 늘 그랬듯이 우승컵은 우리에게 양보하고 적당히 3위나 4위로 만족하라고!"

포체티노는 등 뒤에서 들리는 첼시팬들의 조롱을 애써 무시했다.

리그 초반, 제퍼슨 리가 지금처럼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크게 한 방 얻어맞았던 적이 있던 포체티노였다.

그땐 그를 잘 몰라서 못 막았고, 다음엔 충분히 잘 막을 수 있으리라고 애써 자위했었다.

그리고 지금 트로피를 얻기 위한 리그컵 4강.

거기서 운명같이 첼시를 맞닥뜨렸다.

"오늘 제퍼슨 리의 컨디션이 나쁘길 바라는 게 가장 베스트입니다."

"그거 슬픈 일이군"

포체티노는 쓴웃음을 지었다.

감독으로서 참 굴욕적인 상황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퍼슨을 막을 방도를 몇 가지 준비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가득한 불안함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지금까지 제퍼슨을 상대한 팀이 방도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프리미어리그의 감독들은 다들 한 가닥 하는 양반들이다. 각자 축구 철학이 존재했고, 기막힌 발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저 미친놈이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완전히 틀어막는 방법은 없다!"

심지어 그 자존심 강한 맨시티의 과르디올라마저 동의한 얘기이니, 오죽하겠는가.

"빅토르가 오늘 컨디션이 좋아요."

"빅토르라면, 어느 정도 잘 막아 줄 거야. 윙크스가 또 옆에서 받쳐 주니 말이야."

토트넘이 준비한 건 제퍼슨에게 가는 패스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빅토르 완야마가 중간에서 패스 길을 끊어 내고,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을 누비는 윙크스가 상대 중원을 틀어막는 사이. 무사 시소코가 특유의 전진 능력으로 전방으로 볼을 공급하는 것.

현재 제퍼슨의 유일한 단점으로 두드러지는 건 딱 하나다.

체력과 지구력.

경기 후반부터 제퍼슨의 활동량은 눈에 띄게 떨어지며, 피로에 몸이 느려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괴물 같지."

"지친 게 그 정도니까요."

수석코치의 맞장구에 포체티노는 가슴이 꽉 답답해졌다.

어쨌든 약점은 명확하다.

제퍼슨 본인도 그걸 안다. 그 때문에 불필요한 움직임은 일절 가져가지 않는다. 최근 다른 공격수에 비교해 전방압박 횟수와 강도도 낮다.

중간에서 볼을 차단하면, 제퍼슨은 결국 보다 많은 움직임을 가져갈 것이고, 그건 추후에 제퍼슨의 파괴력을 격감시킬 것이다.

물론 제퍼슨이 지칠 때까지, 토트넘의 수비가 잘 막아 줘야하는 선제조건이 있지만.

"제퍼슨이 공만 잡지 않으면 돼. 제퍼슨에게 공만 없으면, 그러면."

포체티노는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감춘 채, 필드를 바라봤다.

한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포체티노의 의도가 무너지고 있었다.

퍽!

"······헉!"

공을 잡고 빠르게 전개를 시도하던 해리 윙크스가 헛숨을 들이켰다.

순간적으로 왼쪽에서 강하게 들어오는 압박.

"저 자식이 왜 여기서 나타나?"

그의 시야에 첼시의 중원은 이미 거리가 있던 상태.

갑작스러운 압박은 윙크스의 의표를 찌르며 공을 빼앗기게 했다.

[아! 타미 아브라함! 엄청난 활동량에서 나온 강한 압박으로 윙크스의 드리블을 저지합니다!]

"타미 아브라함? 저 자식은 뭐야?"

윙어로 출전한 타미 아브라함.

하나, 엄청나게 의욕적으로 움직이던 타미는 제퍼슨의 낮은 활동량을 노린 포체티노의 의도를 마치 비웃는 것처럼.

제퍼슨의 부족한 활동량을 커버할 만큼의 충분한 움직임으로 첼시의 중원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스트라이커를 또 괴상하게 쓰는군. 저 덴마크 감독 말이야."

***

필드 안에서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읽는 건 어렵다.

벤치에서 감독이 보는 것과 직접 뛰는 선수들의 시야는 다르니까.

그런 걸 고려해도, 지금 필드에서 토트넘이 준비한 움직임은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이 경기 전 예측했던 바와 일치하면 말이지.

"너란 존재 하나만으로 상대팀의 전술이 바뀌지, 제프."

유명한 감독들은 이미 자신이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전술과 포메이션을 갖고 있다.

그런 감독이 본래의 방식을 버리고, 스타일을 변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데 우리 감독님은 포체티노의 의중을 예측했다.

"또 뻔한 일이야. 제프, 너에게 가는 패스를 차단하겠지."

사실 예측은 어렵지 않다. 이미 많은 팀이 나에게 그런 방식을 써왔으니까.

하지만 우리 팀에는 캉테가 있었고, 그것이 상대 팀들의 의표를 무너뜨렸다는 것. 또한, 상대팀의 중원이 우리 중원을 완벽하게 장악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토트넘의 중원은 만만치 않지. 빅토르 완야마, 이 친구면 캉테가 없는 우리 중원을 단단히 틀어막을 거야."

그러나 캉테는 그간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한 만큼, 휴식이 절실했다.

때문에 감독님은 타미를 미드필더처럼 사용하는 변칙적인 전술을 시도했다.

"으음!"

타미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으로 내려가고, 윌리안이 내 근처로 파고들면서 다이아몬드형 4-3-1-2의 포메이션으로 바뀐다.

즉, 타미가 중원으로 들어가면서 순간적으로 우리는 4명의 미드필더가 존재하게 된다.

타미는 해리 윙크스를 강력한 압박으로 무너뜨리고, 공을 뺏고 빠르게 볼을 전개했다.

"나이스! 타미!"

"오른쪽으로!"

제아무리 토트넘 중원이 좋다고 한들, 델레 알리가 없는데다가 숫자에서도 밀린다면 용쓸 재주가 없다.

툭!

타미의 활발한 움직임은, 토트넘의 맨마킹 수비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덕택에 우리는 시작부터 시종일관 토트넘을 공략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선제골이다.

타미가 아무리 활동량이 좋다고 한들, 내 활동량까지 커버하는 건 오버페이스다.

그러니 지치기 전에 끝내야 한다.

"빌어먹을! 저 자식은 스트라이커잖아!"

"왜 3경기 동안 7골을 넣은 녀석을 미드필더로 써?"

"미쳤군!"

몇몇 선수와 부산스러운 토트넘의 벤치서 튀어나오는 불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타미, 너의 공격력을 저렇게 무서워하는 친구들이 많아."

"헉헉, 그거, 헉······ 참 헉헉······."

"······아니, 대답 안 해도 돼, 친구."

타미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다시 공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저들의 의견이 합당할 수 있다.

차라리 활동량 많은 미드필더 하나를 넣는 게 낫지, 3경기 7골을 넣고 골 감각이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스트라이커를 쓰는 건, 닭을 잡을 때 소 잡는 칼을 쓴 것일 수도.

한데 말이지.

"우리 감독 양반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어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중앙에서 타미가 압박하고, 그 틈을 나 드링크워터가 태클에 성공한 공이 내 발끝에 도달했다.

"제-퍼슨!"

드디어 내 발끝에 공이 도달했다.

나에게 오는 패스를 차단하겠다던 토트넘의 대명제는, 타미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무너졌다.

그 말은.

"달려들어!"

"저 자식에게 기회를 주지 마!"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강한 압박.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비와 미드필더까지 세 명이.

특히 얀 베르통언이 죽일 듯이 달려온다.

한데 말이다.

필마르크 감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어야 한다고."

타미를 미드필더로 쓴다고?

글쎄.

저 녀석의 골 냄새 맡는 본능은 나도 감탄스러울 정도라서.

달려오는 베르통언을 등진 채, 공을 지켰다.

그리고 쏟아지는 압박 속에서.

툭!

"미친!"

"노룩 패스야!"

"맙소사!"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왼쪽으로 길게 쭉 찌르는 패스.

그러나 내 시야는 정면이었고, 내 표정과 시선에 집중했던 수비들이 일순 속아 넘어가는 노룩 패스였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한 패스였다.

딱 2초 전까지만 말이다.

"타----미! 아브라함!"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가 찔러준 공을 향해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진 타미가 달려들었고,

뻐-엉!

멋진 원더골은 불가하더라도, 어떻게라도 피니쉬를 해내는 타미의 슈팅이.

철-럭!

골네트를 흔들었다.

"타미 아브라함!"

"오, 제프, 제프, 제프! 말도 안 돼. 그냥 무작정 뛰고 있었는데, 공이······ 공이 왔다고!"

암.

그래야지.

"내 패스엔 눈이 달렸어, 타미."

그러자 타미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제프, 아무래도 너한테 반한 거 같아."

아니, 그건 좀 접어 둬.

< 91. 리그컵 트로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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