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90화 (90/258)

< 90. 리그컵 트로피 (1)>

타미는 실력있는 스트라이커다. 2부 리그 임대 시절에는 득점 1,2위를 다퉜다. 2부 리그 골 폭격기였다.

한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설명해 달라고 하면, 첼시 팬들도 고개를 갸웃하기 마련이다.

"음. 어떤 스타일이라고 딱 말하기가 좀 그러네."

"드록바처럼 몸으로 버텨 주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키가 크지만 좀 호리호리한 편이라서 포스트 플레이는 어느 정도 하긴 하지만, 그게 장점은 아니지."

"스피드도 있지만 킥력이 좀 아쉬워."

작은 육각형 스트라이커.

모든 분야에 두루 기본적인 능력은 갖췄지만, 특출 나다 싶은 건 없는 유형이었다.

"너무 무난해서 어디에 놔도, 어떤 롤을 줘도 충분히 소화시키지.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약점이야."

감독에게 로테이션 멤버로는 좋은 선수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주전으로는 아쉽다. 육각형 선수는 어디에 놔도, 어떤 역할을 부여해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내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아예 제퍼슨처럼 꽉 찬 육각형이면 모를까."

제퍼슨이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어떤 역할이던, 모든 면에서 장점을 발휘하는 선수.

육각형이 각 분야마다 최정상의 기량을 뽐낼 수 있다는 건, 세계적인 선수 중에도 많지 않은 일이다.

타미 아브라함은 굳이 따지면 제퍼슨과 유사하다. 단지 육각형의 크기가 다르다고 보면 된다.

그가 제퍼슨을 주전 경쟁에서 이겨내고 선발이 되기에는 부족한 이유다.

제퍼슨은 그런 타미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발견할 수 있었다.

"넌 피니쉬 능력이 상당히 좋아."

바로 타미의 마무리 능력.

피지컬이 부족하던 이학현으로서 살 때.

그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스타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파헤쳤다.

수없이 분석한 스타플레이어의 장단점.

때문에 제퍼슨의 식견은 놀라울 정도다. 현재 코치들이 발견하지 못한 점도 찾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어떤 상황에서든 골을 넣는군. 원더골은 없어도, 정말 멋없는 골이지만 어떻게든 득점을 성공시키는 피니시 능력을 갖고 있어."

큰 키를 가졌지만 힘이 부족해, 기대와 달리 아쉬운 포스트 플레이.

발은 빠르지만 발목 힘이 약해, 슈팅력도 좋지 못하고, 드리블 능력도 리그 탑클래스는 아니다.

다만 제퍼슨이 발견한 건 바로 타미의 피니시 능력이었다.

"굳이 다른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단, 그 장점을 살리면 좋지 않을까?"

제퍼슨의 조언은 처음 타미를 망설이게 했다.

타미가 되고 싶던 건 제퍼슨 같은 스트라이커였다.

화려한 플레이, 완벽한 드리블, 수비진을 바보로 만드는 천재적인 플레이.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원더골.

"너처럼 골을 넣고 싶어."

그건 어려운 일이다.

현 유럽 최고 공격수 중 제퍼슨 같은 플레이를 요구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선수는 몇이나 될까.

우선 제퍼슨의 하드웨어부터 따라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제퍼슨은 쓰게 웃었다.

제퍼슨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과 축구 센스.

이학현 시절부터 단련한 그 모든 것들은, 제퍼슨이 지닌 엄청난 하드웨어를 만나 할 수 있던 것.

애석하게도 타미가 따라 하기 힘든 종류였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현란한 개인기와 강력한 슈팅.

버텨 주고 지켜 주는 포스트 플레이부터 양쪽 측면에서 라인을 부숴 버리는 골게터 능력까지.

"타미, 내가 너에게 도와줄 수 있는 건, 그 골잡이 본능을 더 살리는 것뿐이야."

***

[타미 아브라함! 유령처럼 나타나 튕겨 나온 공을 툭 밀어 넣습니다!]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팰리스 수비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얼어붙었다는 표현이 맞을 터.

그리고 그런 수비들의 얼굴을 보고 타미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런 거군. 제프가 말했던 것이.'

그의 가장 날카로운 능력은 바로 골 냄새를 맡는 것.

제퍼슨은 타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알아챘고, 그 능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애당초 포스트 플레이는 적합하지 않았다.

타미는 끊임없이 전후좌우로 움직였다.

일견 보기에는 너무 많은 활동량 때문에 오히려 쓸모없는 움직임이라고 느껴질 정도.

하지만 타미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수비의 위치를 파악했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퍼슨이 쏘아 낸 슈팅 후, 수비 블럭에 틈이 생긴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스트라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골에 대한 본능.

거짓말처럼 튕겨 나온 공에 가장 먼저 다가갈 수 있던 것이다.

'모든 부문에서 골고루 준수한 능력을 지녔어. 그리고 어떻게든 골을 집어넣는 피니시 능력은, 나처럼 바이시클로 때리는 원더골은 못 넣더라도, 귀신처럼 쉽게 골을 넣을 수 있어. 차라리 그 능력을 살려. 미친 듯이 움직이고 수비를 파악하면서 골 냄새를 맡는 것에만 집중해 봐, 타미. 그러면 넌 좋은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을 거야.'

훈련장에서 제퍼슨이 해 줬던 조언.

타미는 그 말대로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무한한 경외감과 전율이 흘렀다.

"제-프! 넌 나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존재야!"

***

[첼시 3 : 0 크리스탈 팰리스]

[제퍼슨 1골 2어시스트! 타미 아브라함 2골!]

[제퍼슨 리-타미 아브라함 투톱, 크리스탈 팰리스를 박살 내다!]

[돌아온 타미의 부활. 기가 막힌 골잡이 본능을 발휘하다.]

[타미 아브라함, "제퍼슨이 훈련장에서 해 준 조언대로 플레이했다. 내가 넣은 두 골은 모두 제퍼슨의 중거리 슛부터 시작됐다. 제퍼슨이 없었다면, 오늘 나는 리그 복귀 골을 터뜨리지 못 했을 것."]

***

FA컵에서 3부 리그의 노팅엄 포레스트를 만나, 우리는 5대 0이라는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타미가 선발로 나가 4골을 터뜨렸다.

물론 상대가 3부 리그인걸 감안해도, 골 감각이 절정에 올랐다는 건 부정할 일이 아니었다.

팰리스 전에 이은 타미의 골 폭격.

그리고 지루가 헤더골을 하나 넣으면서, 우리 팀 스트라이커들은 출전하는 경기마다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첼시, 리그 최강의 공격력!]

[리그, 리그컵, FA컵, 유로파 가릴 것 없이 매 경기 득점 행진을 이어 나가는 첼시.]

[스트라이커에게 분포된 순도 높은 골 비율. 제퍼슨 효과?]

[리그 최악의 창에서 최강의 창이 된 첼시. 비결은 필마르크 감독과 제퍼슨 리의 폭발력.]

첼시는 공격력이 가장 약한 팀이었다.

경쟁 팀의 스트라이커들이 대단한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현 리그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은 팀은 우리가 됐다.

나를 필두로 스트라이커 3인방은 매 경기 득점을 올려 주고 있었고,

2선에서도 골고루 득점을 올리고 있었다.

가장 최근의 무득점 경기가 9월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제프."

그런데 첼시에게 쏟아져야할 찬사가 나에게 쏟아진다는 것이 더 아이러니한 일이다.

[제퍼슨 효과, 첼시의 화력 폭발의 원인]

내가 기록한 득점이 첼시 득점의 절반을 차지하긴 하지만, 저 찬사는 과한 면이 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간단하다.

[타미 아브라함, 그의 날카로운 득점력은 제퍼슨에게 배운 것이라고 밝혀]

"제가 작년에 9골을 넣었죠? 지금 벌써 3경기 동안 7골이에요. 비결은 특별한 게 없어요. 단지 그때는 제퍼슨이란 좋은 스승이 없었다는 것이죠. 첼시에는 좋은 코치들이 많지만, 제퍼슨이 알려준 몇마디 조언이 제 득점력을 더 상승시켜 줬어요. 그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음.

타미의 이런 인터뷰 때문에 말이지.

타미뿐만이 아니다. 지루도 나와의 스트라이커 경쟁으로 더 의욕을 갖고 임해서 득점력이 높아졌다고 인터뷰했고, 감독님도 내 득점력에 찬사를 보냈다.

언론들은 첼시 화력의 원인이 마치 나에게 있다는 것처럼 떠들어 댔다.

하기야, 현재 내가 득점 29골로 1위이니.

저 찬사가 무리일 것도 아니다.

리그 득점 2위 해리 케인이 22골이던가.

아, 그러고 보니 해리 케인이 이런 인터뷰를 했다.

[전 매 경기 득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25라운드에 22골이면, 당연히 득점 랭킹 1위여야 하죠. 그렇지만 이번 시즌은 다릅니다. 이번 시즌 득점왕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다면, 그건 당연히 제퍼슨 리의 자리겠죠. 그러나 저는 득점왕 자리와 토트넘의 승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겁니다.]

기자들은 원래 경쟁구도를 좋아한다.

나와 전혀 관련 없는 토트넘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은 아마 케인에게 계속 나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겠지.

어쨌건 해리 케인은 득점 욕심이 상당한 선수다.

그리고 득점왕에 대한 욕심도 대단하다.

오죽하면 한때 자기 딸마저 걸었을 정도일까.

그런 그에게 득점왕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

인터뷰 화면에서 보여진 해리 케인의 감정이 그랬다.

어느 정도 맹렬한 질투심과, 또 승부욕. 그리고 살짝 분노가 맺힌.

어떻게든 득점왕을 차지하겠단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밀리고 있단 굴욕감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뭐, 어쩔 수 있나.

그렇다고 내가 득점 기회에서 일부러 놓칠 수도 없는 일이니.

***

"구단주님. 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클럽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일단의 미국인 사업가들.

미디어 쪽 사업가와 미팅자리에서, 로만 구단주는 어깨를 펴고 웃었다.

"당연히 우리 첼시죠. 제퍼슨 리와 풀리시치가 뛰고 있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첼시가 1위가 되기 전에 어느 클럽이 인기가 많았는지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음, 아마도 맨시티가 아닐까 싶은데요. 뉴욕 시티와 같은 그룹이니까요."

"하하하, 놀랍게도 현재 3부 리그의 선더랜드가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선호도를 따지면 첼시 다음이고요."

그 말에 로만은 쉬이 믿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선더랜드는 빅클럽도 아니고, 한때 프리미어리그의 팀이었지만 지금은 3부 리그에 불과하지 않은가.

"바로, 넷플릭스로 서비스된 '죽어도 선더랜드'라는 다큐멘터리가 공전의 히트를 쳤죠. 축구를 잘 모르는 미국인들도 선더랜드라는 팀의 매력에 빠진 것도 그 영향입니다. 이게 바로 미국에서 미디어의 영향력이죠."

"하면 저희와 라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건."

"남은 시즌, 첼시를 대상으로 촬영하고 싶어요."

"그건 아마도, 제퍼슨 리와 풀리시치가 있어서겠죠?"

"맞습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제퍼슨 리가 아무래도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겁니다."

로만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애써 표정을 감춘 것이다. 이미 제안을 들은 순간부터 마음의 결정이 이뤄졌다.

"하시죠."

***

"첼시TV에서 온 거야?"

훈련장에 방송촬영용 카메라와 일단의 스태프가 들이닥쳤다.

첼시는 구단 자체적으로 첼시TV라는 걸 운영하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미국에서 왔다더군."

"미국이요?"

코치의 말에 선수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나도 모르는 일이라 어깨를 으쓱이곤 말았는데.

"리얼 블루스, 첼시. 뭐 그런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던데."

다큐멘터리라.

하긴, 미국이 스포츠라면 환장을 하지.

스포츠 다큐멘터리라면, 그것도 꽤나 흥행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방송촬영이란 말에 관심이 쏠린 것도 잠시.

우리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다음 경기는 리그컵 4강, 토트넘전이었으니까.

리그컵이 아무리 후순위라지만, 런던의 팀을 상대로. 그것도 4강까지 올라온 이상 허투루 준비할 수 없다.

카메라가 생생한 훈련 현장을 찍는 가운데.

훈련 도중 휴식시간에 나에게 짤막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제퍼슨 리. 미국 대표로, 한때 본국이었던 대영제국의 중심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음 상대인 토트넘과의 해리 케인과의 맞대결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사족부터, 느낌이 왔다.

하여튼,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들은 경쟁구도를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하기야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가 싸움구경과 불구경 아니겠는가.

어차피 이 방송은 차후 편집을 통해 송출될 터.

난 미국 스포츠팬들이 좋아할 만한, 다소 건방진 답변을 내놨다.

"영국 대표와 미국 대표 스트라이커가 맞붙는 경기죠.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싱거울 겁니다. 섬나라의 공격수가 북미대륙의 공격수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요."

< 90. 리그컵 트로피 (1)>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