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85화 (85/258)

< 85. 1억 파운드 탄환 (2) >

"이거 뭐야?"

"제프가 진짜 이 정도라고?"

"오늘 너무 잘하는데?"

홈팬들도 제퍼슨의 활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관중의 눈에 비친 제퍼슨은 필드에 풀어놓은 늑대 같았다.

하면 나머지 리버풀의 수비진은?

다름 아닌 양 떼처럼 보였다.

놀라운 일이다. 다른 팀도 아닌 리버풀의 수비진을 저토록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니.

"제-프가 리버풀을 찢어 버리고 있어!"

거친 압박이 제퍼슨에게 쏟아졌지만, 그들의 수비가 무언가 결과를 얻어 내지는 못했다.

제퍼슨은 특유의 탈압박 능력으로 수비의 압박을 벗어났다.

과격한 방향 전환과 무브먼트에 리버풀 선수들의 등골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필드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

언론의 호들갑이라고 여겼건만······.

직접 상대해보니 왜 수많은 강팀이 그를 막지 못해 무너졌는지 실감했다.

"제기랄! 저 자식은 대체 뭐야?"

수비들은 이전처럼 계속해서 압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빠르고, 폭발적인 공격수를 상대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거친 태클, 숄더 차징, 바디체킹, 미칠 듯이 강력한 압박.

공간을 봉쇄하고 움직임을 제한시키며, 상대 선수가 거친 태클을 망설이게 만들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제퍼슨은 과격한 움직임으로 수비가 예측 못 할 방향 전환으로 길을 만들고 개척했다.

공간을 창조해 내는,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플레이.

[제퍼슨의 움직임은 마법과 같습니다! 공간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달려들어 봤자 수비는 실패한다.

오히려 제퍼슨이 공간을 만들어 빠져나가면, 수비는 더 어려워진다.

결국, 수비들은 타이트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수비에 임했다.

툭!

"Yeaaaaaa!"

그것이 또 문제였다.

제퍼슨은 말도 안 되는 백스텝과 고스트 스텝으로 그런 수비진을 또 한 번 농락했다.

[제퍼슨이 물 만난 고기처럼 날뜁니다!]

[전후좌우 활발하게 움직이네요. 뒤에 눈이라도 달렸나요? 마치 머리에 안테나가 꽂혀 있는 느낌입니다. 필드 안에서 그는 모든 공간을 보고,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리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말 오늘 눈이 즐겁네요. 이런 플레이를 볼 수 있다니 대단할 따름입니다.]

중계진들은 격양된 어조로 소리쳤다.

심지어 몇몇 방송사의 해설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퍼슨의 플레이에 중립성도 잃고 그저 감탄만 터뜨렸다.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제퍼슨 턴.

고스트 스텝과 백스텝, 그리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 전환까지.

정말 눈이 즐거운 플레이에 관중들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Shit!"

또 한 번 달려드는 로버트슨과 바이날둠을 가벼운 백스텝과 방향 전환으로 단숨에 무너뜨리자.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친! 싸이클론 같잖아!"

"으하하하! 리버풀 수비들을 보라고!"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제퍼슨인 만큼,

그는 돌파를 시도하다가도, 바로 곧바로 풀리시치에게 사이드 체인지를 시도했다.

수비수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플레이.

부르르!

클롭 감독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몸을 떨었다.

'괴체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군.'

한때 자신이 지휘했던 선수 중에 마리오 괴체가 저런 플레이에 능했다.

클래식하게 직선 돌파뿐만이 아니라, 중앙으로도 파고들며 수비를 흔드는 플레이.

괴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저러하지 않을까.

'고작 19살짜리가 말이지.'

등골이 서늘했다.

프로세계에서 10대에 이미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는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은, 하나같이 괴물을 뛰어 넘어 월드클래스 그 자체로 성장했다.

가깝게는 음바페가 그런 선수가 아니던가.

[제-퍼슨! 다시 한번 수비들을 떨쳐 내고 페널티 박스 대각으로 파고들어 갑니다!]

[조엘 마티프! 무너집니다! 남은 건 반다이크와 골키퍼 알리송밖에 없어요!]

또 한 번 제퍼슨이었다.

리버풀 수비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제퍼슨, 제퍼슨, 제퍼슨!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할수록 몸이 절로 떨렸다.

반다이크는 이번만큼은 막아내겠다고 다짐했다.

한 발짝 먼저 움직였고, 빠르게 판단했으며 어떻게서든 몸을 날려 제퍼슨을 향해 뛰어갔다.

'됐다!'

그에게 찰거머리처럼 붙던 지루를 떨쳐 내는 것에 성공했다.

[반다이크가 제퍼슨의 공격을 막기 위해 움직입니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인 것이 주효했다.

반다이크는 노련했고, 대단했다.

그 짧은 찰나 제퍼슨이 달려올 궤적을 판단했으며, 그 위치를 선점했다.

순간적으로 제퍼슨의 길을 막아서자, 제퍼슨이 급히 속도를 줄이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황급하게 몸을 돌려 등지는 플레이.

[제퍼슨의 돌파가 막힙니다!]

[역시 반다이크네요.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갈 길목을 막아섭니다.]

반다이크가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제퍼슨의 돌파를 봉쇄하는 것에 성공했다.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그 좁은 공간을 치고 나가긴 힘들다.

더구나 자신, 반다이크를 뚫기란 말이다.

허나 그건 곧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제퍼슨이 등을 지자마자, 발뒤꿈치로 공을 그대로 때렸다.

'힐킥?'

설마 여기서?

아니다.

'골문하고 거리가 있는데? 그리고 알리송이 있잖아?'

힐킥으로는 절대 넣을 수가 없다.

그걸 이 대단한 공격수가 모를 리가······.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가능성에 반다이크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지------루!"

그가 떨쳐 낸 지루.

아니, 그게 떨쳐 냈던 것일까?

반다이크는 자신을 보며 미소를 머금은 제퍼슨을 보고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애당초 약속된 플레이.

'지루도 공격수였어.'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루도 공격수다. 언제든 득점을 얻어 낼 수 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스트라이커.

그가 애당초 수비만 한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한데 반다이크는 착각했다. 경기 내내 자신에게 달라붙는 지루를 보고, 오늘 득점 루트는 오로지 제퍼슨에게만 있다고 순간적으로 착각해 버렸다.

그것이,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모든 수비가 비워진 공간.

거기로 떨어지는 제퍼슨의 힐킥.

그리고 달려드는 지루의 슈팅.

"The Blues!"

철-럭!

원터치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한 지루.

그는 아무도 막지 못했다.

***

"생각해 보니, 우리 팀의 2패를 모두 미국인이 만들어 냈군."

1골 차이와 2골 차이는 크다.

첼시는 3골로 먼저 달아났고, 리버풀은 여전히 공격을 퍼부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끊임없이 두드린 끝에 사디오 마네가 추격골을 터뜨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또 저 자식이야!"

왼쪽에서 달려나가는 풀리시치, 반다이크과 경합하는 지루와 뒤에서 받쳐 주는 오도이.

순간적으로 모든 첼시의 공격진이 전진했고.

조르지뉴의 롱패스가 오른쪽에 뚝 떨어졌다.

"막아!"

땀으로 흠뻑 젖은 로버트슨이 달려와 제퍼슨을 몸을 던져 막으려 했지만,

"우우우우우우우-!"

제퍼슨은 이미 최고 속도에 도달한 스피드를 줄이지 않을 생각으로,

간단한 두 번의 볼 터치로 로버트슨의 압박을 벗어났다.

그렇지만 센터백 조엘 마티프가 뒤를 커버하고 있었다.

공간이 없는 셈.

하나 제퍼슨의 움직임에는 딜레이가 없었다.

압박을 벗어나고, 그사이에 생각과 판단이 생략된 것처럼 바로 다음 동작이 이어졌다.

수비의 판단보다 빠른 매끄러운 연결 동작. 그 동작이 수비들의 허를 찌른다는 것이다.

툭!

과연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의.

갑작스런 방향 전환에 마티프의 중심이 무너지고,

중앙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치고 들어가는 제퍼슨은,

달려드는 바이날둠을 공 한 번 접는 거로 따돌린 뒤,

발바닥을 안쪽으로 끌어들이다가 그대로 툭 공을 띄웠다.

훅!

"Shit!"

수비의 머리를 넘기는 로빙패스.

지루와 싸우던 반다이크는 짜증 어린 얼굴로 공을 올려봤고, 다른 수비들은 모두 지친 얼굴로 그 패스의 궤적을 바라볼 때.

뻐-엉!

[풀리시치가 쐐기골을 집어넣습니다!]

제퍼슨은 그 자리에서 포효하고, 달려드는 선수들과 함께 뒤엉켜 바닥에 쓰러졌다.

"허······ 허허허허"

클롭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마네의 추격골에 기운을 차려 역전까지 노려볼 만했건만.

곧바로 꽂혀 버리는 쐐기골에 흘러가는 전광판의 시계가 그저 야속할 따름이었다.

"저번 아스톤 빌라 감독도 미국인이었지. 지금 2골 2어시스트를 때려 박으며 우리 팀을 농락하는 저 녀석도 미국인이고."

공교롭게도 사실이 그랬다.

리버풀은 미국 감독이 지휘하는 아스톤 빌라에게 무패가 깨졌으며,

다시 미국인 공격수에게 오늘 무너지고 있었다.

"끙. 아무래도 내가 미국인하고 맞지 않나 보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클롭은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1패 준우승을 했을 때, 프리시즌 전지훈련을 미국으로 갔었지?"

리그를 치르다 보면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1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던 기억이 있던 클롭에겐, 한 경기의 결과가 무척 중요했으며.

공교롭게도 미국인 감독에게 1패, 미국인 공격수에게 1패를 당한 사실을 농담처럼 웃어넘기긴 어려웠다.

"빌어먹을. 이젠 미국이 싫어졌어."

4대 2.

리버풀에게 시즌 두 번째 패배를 안겨 준 제퍼슨의 활약에 맨시티와 리버풀의 순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

[첼시, 홈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4대 2 쾌승을 거두다!]

[맨시티는 왓포드 상대로 1대 0 신승. 뒤바뀐 순위표.]

[다시 1위를 내준 리버풀. 1패 준우승에 이어 2패 준우승이란 기록 나올까?]

[제퍼슨 리, 2골 2어시스트! 리그 절반가량이 지난 지금 24골로 득점 랭킹 1위!]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 40골 공격수 출현 가능성은?]

[오른쪽 날개로 포지션 변경한 제퍼슨 리. 리버풀을 무너뜨린 치명적인 비수!]

[필마르크 감독 "제퍼슨은 공격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만점 활약을 펼치는 이 시대 최고의 공격수다."]

[위르겐 클롭 감독, "지루의 반다이크 마킹과 제퍼슨의 포지션 변경에 대응하지 못했다. 온전히 내 실수다."]

[앤드류 로버트슨, "다시는 제퍼슨 리를 상대 하고 싶지 않다. 가장 힘겨운 경기였다."]

***

경기가 없는 날에도 경기장은 여전히 붐볐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니까.

첼시의 각종 굿즈를 판매하는 메가스토어부터, 선수들의 라커룸과 믹스트존, 그리고 필드까지.

관광객들은 모두 가이드의 진행에 맞춰 경기장을 둘러보는데.

그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춘 곳은 딱 한곳이었다.

"제-프다!"

"제퍼슨 리!"

실제로 제퍼슨 리가 나타난 건 아니었다.

바로 벽화.

가로로 10m에 이르는 긴 벽에 그려진 제퍼슨의 사진.

가장 인기 있거나 뛰어난 선수의 벽화를 새기는 것인데,

이번엔 싹 교체가 됐다.

바로 제퍼슨 리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핫한 포토스폿이 된 것이다.

가이드는 당연히 여기서 자유 시간을 줬고,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서로 제퍼슨 리의 벽화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잘 생겼네."

"와, 여기 허벅지 봐."

"이거 그림이야?"

"사진 아니야?"

"허벅지 장난 아니다."

"팔 근육 봐. 실제로 이럴까?"

"경기 중계로 보면 무지막지하긴 하던데."

"근데 실물은 다르지 않을까?"

"왜?"

"솔직히 그런 몸으로 축구를 할 수 있을까?"

"헐크라는 선수도 있는 걸."

"얘는 그것보다 더한 것 같던데."

"그건 인정."

"솔직히 실물로 보면 TV처럼 근육이 클 것 같진 않아. 이게 사람이 가능하냐고."

"그렇지. 보디빌더도 아니고."

"음. 실제로 보면 다르긴 하죠."

"그치?"

"네. 보세요. 사진보다 더 두껍잖아요?"

"······?"

순간 관광객들 사이에 적막이 감돌았다.

그리고.

"제퍼슨이잖아?"

"우와아아아!"

제퍼슨의 등장에, 관광객들은 모두 어찌할 줄 몰랐다.

제퍼슨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세요. 실제로 보니 근육이 더 크죠?"

"와······."

"허벅지도 보여 주세요."

"······그건 좀."

짓궂은 요청에 제퍼슨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퍼슨은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 주며 간단한 미니 팬미팅을 열었다.

제퍼슨에게 있어서 잠깐 시간을 쓴 것이지만, 이들에겐 평생의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걸 고려하면 제퍼슨은 까짓 온종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들에겐 운이 좋은 일이었다.

< 85. 1억 파운드 탄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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