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1억 파운드 탄환 (1) >
우리에겐 캉테가 있다.
팀의 엔진이자 완벽한 조력자.
감독님이 이번 전술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캉테의 복귀 때문이다.
툭!
중앙에서 공을 소유한 채 전진하던 헨더슨.
그리고 그 뒤를 귀신같이 달려들어 공만 빼내는 영리한 태클을 선보이는 캉테.
캉테가 볼을 인터셉트한 순간.
우리의 공격 템포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뛰-어!"
투욱!
캉테는 곧바로 오른쪽 공간을 향해 로빙패스를 보냈다.
긴 포물선과 함께 수비의 머리를 넘겨 버리는 패스.
그리고,
"압박해! 저 자식을 놓치지 말라고!"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지지만,
여유롭게 그들의 뒤로하고 한 발짝 먼저 공간을 파고들었다.
캉테가 인터셉터에 성공하는 그 순간부터 베어진 뒷공간을 향해 뛰고 있었다.
당연히 수비진은 나보다 뒤늦게 몸을 돌려서 달려들었다.
같은 시작점에서 뛰어도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 하는 일인데.
이미 최고 속도에 도달한 나를 따라잡기란 요원한 일이다.
"저 자식 막으라고!"
이대론 놓쳐서 기회를 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마 수비수의 머릿속에 스칠 것이다.
방금 유사한 상황에서 골이 터졌으니까.
그렇다면 수비는 어떻게 행동할까?
공간을 향해 뚝 떨어지는 볼.
발끝으로 돌려세운 뒤.
달려드는 로버트슨을 한 번 바라봤다.
발을 쭉 뻗는 스탠딩 태클.
발바닥이 보일 정도로 거친 태클이었다.
설령 파울을 받더라도 어떻게든 끊어 내겠단 의도.
파울은 피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예측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 반응 속도라면 말이다.
툭!
공을 한 번 살짝 찬 뒤에,
로버트슨의 태클은 공간을 가르고.
그대로 반대편 사이드로 길게 공을 찼다.
"······!"
사이드 체인지.
정확하게 반대편으로 전환된 패스는 풀리시치에게 도달했다.
"미친!"
이거다.
저 다급한 목소리와 잔뜩 새하얗게 질려 버린 수비수의 얼굴을 보라.
공의 궤적을 따라 고개가 돌아간 로버트슨.
나에게서 시선이 분산된 사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뒷공간을 향해 무지막지한 스피드를 터뜨렸다.
순식간이다.
로버트슨을 찢고 들어가 박스 대각으로 파고드는 건.
그리고 그 순간에 풀리시치와 눈이 마주쳤다.
"제-프!"
허공으로 올라오는 긴 크로스.
"어딜!"
순간 거구의 그림자가 시야를 가렸다.
엄청난 존재감과 위압감.
숨이 막힐 거 같은 느낌이 엄습했다.
반다이크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달려와 뛰어올랐다.
하지만.
퍼억!
올리비에 지루가 달려들어 반다이크를 그대로 제지했다.
물론 지루가 밀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는 골을 넣을 충분한 틈이 생겼다.
철-럭!
"Gooooaaaaal!"
"The Blues!"
"제-프! 제-프!"
하지만.
"삐이이익!"
역전골이 터졌지만, 심판은 휘슬을 불며 사각형을 그렸다.
잠시 후 VAR판독 결과 심판은 골이 아니었다고 선언했다.
"지루가 박스에서 반다이크를 밀었어. 반칙이야. 골이 들어가기 전에 벌어졌으니까 골은 인정될 수 없다."
단호한 심판의 선언.
"아쉽네."
사실 지루가 급하게 반다이크를 민 것은, VAR로 보지 않아도 너무 눈에 띌 법한 반칙이었다.
미안해하는 기색의 지루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애당초 지루가 반다이크를 제지하지 못했다면, 나 역시도 공을 머리에 맞히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때 반다이크가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다가왔다.
"네들 속셈이 뭔지 알겠어."
"속셈?"
반다이크는 축구 지능도 뛰어난 선수다.
어쩌면 현재 전술의 키포인트를 짚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래서 뭐?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도 당하진 않아. 제-퍼슨. 우리는 여기서 승리를 쟁취할 거다."
"그거 알아? 반다이크?"
"······."
"알고도 못 막는 게 있는 법이야. 오늘 잘 느껴보라고. 덩치."
괴상하게 일그러지는 반다이크의 얼굴.
그를 도발한 것 같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오늘 그를 상대할 건 내가 아니라 지루였으니까.
지루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팀 스포츠 아니겠나.
***
위르겐 클롭은 경기의 흐름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제퍼슨이 핵심이군."
오른쪽을 말 그대로 찢어 버리는 제퍼슨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앤드류 로버트슨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수비수지만,
뒷공간을 계속 허용하고 있었다.
'로버트슨의 공격이 막히면 우리 팀 공격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데.'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공격력을 뽐내는 게 리버풀의 풀백이다.
그러나 중간에 캉테가 볼을 끊어 내고 찔러주는 패스는, 제퍼슨의 무지막지한 스피드와 합쳐져 최고 풀백이라는 로버트슨의 뒷공간을 말 그대로 탈탈 털고 있었다.
고민하던 클롭은 오버래핑을 자제하란 지시를 내렸다.
'말려드는 모양새군.'
클롭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들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꼴이니까.
그런데 별수가 없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저 무지막지한 스피드를 막기 위해선, 풀백이 내려앉아야만 했다. 아무리 로버트슨의 수비 복귀가 빠르다지만, 제퍼슨의 스피드는 로버트슨을 돌아오지 않는 풀백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리버풀이 뒤로 물러납니다!]
[어쩔 수 없는 조치입니다. 제퍼슨의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은, 정말 끝내주네요.]
[보고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리버풀의 수비진이 이렇게 허물어질 수가 있나요?]
[제퍼슨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력은 정말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리버풀은 최대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미치겠군."
앤드류 로버트슨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꺼끌꺼끌했다.
얼마나 소리 지르고 뛰어다녔는지 벌써 허벅지가 땅겼다.
"너무 빠르잖아?"
도저히 공격하러 나갈 수가 없다.
중간에 볼이 한 번이라도 차단되면,
뒷공간을 파고드는 상대 공격수, 제퍼슨의 몸놀림은 마치 탄환 같았다.
단숨에 터치라인을 타고 질주하는 스피드는 리버풀의 막강한 수비진을 마구 찢어 버렸다.
그래서 로버트슨은 오버래핑을 자제하라는 클롭의 지시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적어도 이전처럼 미친 듯이 뒷공간을 내줄 일은 없지 않겠는가.
'스피드로 라인을 타는 놈들은, 그 스피드를 살릴 수 없으면 무너져.'
단순한 패턴.
제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미리 내려앉아 수비에 임하면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스피드로 재미를 봤으니, 또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겠지. 아직 어린 녀석이니까.'
10대 선수라고 보기엔 너무 위험한 공격수지만,
그래도 멘탈만큼은 노련하지 못할 거란 생각.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The Blues!"
[풀리시치가 넓게 공을 벌립니다! 사이드 체인지네요! 제퍼슨에게 공이 날아갑니다!]
다시 한번 이뤄지는 사이드 체인지.
중앙의 바이날둠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놈의 스피드를 틀어막으려면 협력해!'
클롭의 지시에 따라 로버트슨과 함께 제퍼슨을 압박할 생각.
하지만.
툭, 툭!
"······!"
우측 터치라인을 타고 질주하는가 싶던 제퍼슨이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버렸다.
그의 왼쪽으로 달려들던 바이날둠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터닝 동작에 가까운 방향 전환. 단숨에 로버트슨과 바이날둠 사이로 빠지는 게 아닌가?
본능적으로 바이날둠이 발을 쭉 뻗었지만, 제퍼슨은 가볍게 뛰어올라 태클을 피했다.
하나, 협력 수비의 무서운 점은, 양 측면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위협적인 태클이 들어온다는 것.
그 짧은 찰나.
바이날둠의 태클을 피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제퍼슨의 중심.
그 중심을 노린 로버트슨의 스탠딩 태클이 쑥 들어왔지만.
"흡!"
그는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발끝이 닿는 순간. 공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빠지더니, 제퍼슨이 또 한 번 말도 안 되는 과격한 방향 전환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Yeaaaaaaaaaaa!"
"제------프!"
경기장을 울리는 환호성.
달려든 바이날둠과 로버트슨은 얼어붙었다.
말도 안 되는 방향 전환이 그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다니!
"이런 건 본 적도 없어."
로버트슨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는 사이.
중앙까지 치고 들어간 제퍼슨은 박스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센터백 반다이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려는 순간,
퍽!
"······!"
지루가 앞을 막아서며 강하게 몸을 밀쳐 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반다이크의 움직임이 잠깐이나마 멈춘 찰나.
제퍼슨은 아주 좁은 공간 사이로, 인프론트 슈팅을 강하게 때렸다.
아름답게 감겨 들어가는 첼시의 역전골.
VAR을 볼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골이었다.
철럭-!
"Wuuuuuuuuuuaaaa!"
"제-----퍼슨 리!"
"빌어먹을! Lovely Finish!"
"미친 골이야! 미쳤다고! 혼자서 몇 명을 제친 거야?"
"리버풀의 수비가 리그 최고라고? 최소실점?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해!"
"오늘 우리 제프가 너희 팀을 최다 실점팀으로 만들어 주겠어!"
스코어 2대 1.
경기의 추가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
"제기랄!"
반다이크는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지루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왜? 너만 수비 잘하는 줄 알았어?"
"넌 스트라이커야? 수비수야?"
"오늘만큼은 수비수지."
"자존심 상하지도 않아? 공격은 전혀 하지 않고 나만 틀어막는 게?"
"별로. 어쨌든 우리가 이기고 있잖아?"
능글거리는 말투에 반다이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수비수를 틀어막는 수비수라니.'
참으로 괴상한 전술이 아닌가.
"필마르크가 지루 시프트를 쓰는군."
클롭도 지루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지금 지루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위치에 있지만, 그의 실제 플레이는 수비수에 가까웠다.
"오로지 반다이크만 막는 공격수라니."
반다이크는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수비수다. 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라는 건 이미 챔피언스리그에서 증명됐다.
제퍼슨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건, 그런 반다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반다이크는 지루의 방해 때문에 제퍼슨에게 접촉조차 못 하고 있었다.
"흥. 우리 제프가 반다이크에게 막힐 거 같아? 물론 뚫을 수 있지. 하지만 반다이크가 아니면, 한 골이 아니라 두 골, 세 골을 넣을 수 있는 게 제프야."
제퍼슨과 반다이크의 대결.
모든 언론이 주목한 부분이지만,
필마르크 감독은 그 허점을 노렸다.
굳이 세 골 이상을 넣을 수 있는 제퍼슨을 반다이크와 정면으로 부딪쳐, 그 폭발력을 줄일 필요가 뭐가 있는가?
"지루는 활동량이 높고 수비력도 좋아. 몸으로도 잘 버텨 주지. 반다이크가 제퍼슨을 수비할 수 없게, 지루가 반다이크를 수비해 버리면. 제퍼슨은 말 그대로 날뛸 수 있다."
그렇게 나온 최전방 수비수 지루의 시프트.
그리고 오른쪽 인사이드 포워드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주는 제퍼슨의 포지션 변경.
그것이 리버풀을 무너뜨리는 한방이 된 것이다.
반다이크가 아닌 나머지 수비수는, 제퍼슨이 충분히 공략하고도 남음이었다.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저렇게 쓰다니. 저 양반도 어지간히 변태 같군."
스트라이커를 가장 잘 쓰는 감독, 필마르크.
그의 능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가능해진 건.
"제퍼슨. 저 9번 때문이지."
클롭은 후회했다.
제퍼슨을 더 집중해서 분석하지 못한 후회?
글쎄, 그건 아니었다. 더 분석했다고 한들,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 않았을 거란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솔직한 본심은.
"저 녀석을 1억 파운드를 줘서라도 영입했어야 했어. 상대의 숨통을 끊어 내 버릴 탄환을, 내가 놓쳤군."
그리고 그 탄환이,
리버풀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
지루가 반다이크를 잘 막아 주는 사이.
나는 정말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가레스 베일과 카카.'
필마르크 감독이 이 전술을 꺼내면서 말한 선수들이었다.
상대의 뒷공간을 찢어 버리는 플레이.
가레스 베일과 카카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플레이가 바로 이번에 내가 보여 줄 모습이었다.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진 수많은 무기 중, 육상선수에 버금가는 엄청난 스피드가 있었다.
어머니의 유전자와 미식축구로 단련된 폭발적인 스프린터는, 이미 오버래핑으로 공간을 많이 내준 로버트슨이 막기엔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다.
'만일 상대가 너의 공격력에 충격을 받아 내려앉는다면, 중앙으로 파고들어라.'
그 이후 전해진 주문.
굳이 사이드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는 움직임.
그렇게 말하면서 주문한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토마스 뮐러처럼 말이지.'
라움도이터.
공간을 향해 미친 듯이 찾아 들어가는 모험가.
라는 별칭이 붙은 포지션.
이 플레이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내 방향 전환에 있었다.
좁은 공간만 있어도, 나는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거기에, 이렇게 툭.
"미친!"
새하얗게 질린 로버트슨.
그가 달려오는 순간, 공을 발바닥으로 드래그하며 순간적으로 뒤로 백스텝을 밟았다.
러닝백이 가진 스킬.
과격한 방향 전환과 백스텝.
그리고 대각선으로 폭발적으로 밟는 고스트 스텝은, 라움도이터로서 활약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도대체 넌 뭐야! 이 자식아!"
뒤에서 들리는 로버트슨의 절규.
"LEE will LEE will Kill you!"
그리고 마치 대신 대답해 주는 듯한 응원가.
뭐긴 뭐야.
"너희들의 머리를 터뜨릴 총알이다, 이 자식들아!"
< 84. 1억 파운드 탄환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