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82화 (82/258)

< 82. 첼시의 8할 (5) >

아스톤 빌라전이 끝나고 꽤 시끄러웠다.

내가 마지막에 넣은 원더골 때문이었다.

[제퍼슨 리의 UFO 슛, 골키퍼를 농락하는 환상적인 득점!]

[금주의 골 선정! 제퍼슨 리. 아스톤 빌라전 놀라운 득점!]

[제퍼슨에게서 카를로스의 킥을 보았다. 환상적인 왼발 아웃 프론트 슈팅!]

[제퍼슨의 골, 푸스카스 상은 이미 따 놓은 당상!]

푸스카스 상.

1년 동안 세계에서 터진 수많은 득점 중에, 가장 아름답고 대단하며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골을 가리는 FIFA 주관 트로피다.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아, 생각해 보니 MLS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집어넣은 시저스 킥이 후보에 오르긴 했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수상은 못 했지만.

"푸스카스 상? 그거 별 거 없어."

"지루?"

"내가 한 번 받아 봤는데 말이야. 그냥 아름답고 멋진 골을 넣고 기다리면 돼."

"아름답고 멋진 골이요? 지루에겐 어울리는 문장이 아닌데."

"오, 세상에. 이봐, 소년. 내가 발뒤꿈치로 넣은 스콜피온 킥 못 봤어? 솔직히 말해 봐. 그것보다 아름다운 골 봤냐고."

지루가 푸스카스 상을 받은 골이 그 유명한 전갈킥이었구나.

대단한 골이긴 했다.

"솔직히 아름답진 않았어요. 좀 신기했다고 할까?"

음, 사실 아름다운 골이긴 했다.

그런데 그다음 경기였나?

승점 3점이 간절했던 경기. 지루가 동점골을 넣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을 잡고 하프라인으로 뛰지 않았던 적이 있다.

왜냐면, 전갈킥 세레모니를 하느라 ······.

그 모습에 좀 깨긴 했지.

"딱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굳이 다음 경기에서 추가시간 지나가는데 세레모니를 해서······."

내가 그의 흑역사를 살짝 들추자,

"흠흠. 뭐 가끔 철없던 시절이 있는 법이지."

지루는 은근슬쩍 자리를 피했다.

"제-프!"

"캉-테!"

지루가 자리를 피하고, 훈련장에 드디어 캉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캉테의 복귀는 좀 이른 편이다.

며칠 더 훈련하면서 지켜봐야 한다지만,

이미 다음 경기 출장이 확실시된 상황이다.

왜냐면 아주 중요한 매치거든.

"리버풀을 격침할 준비는 됐어?"

"물론이지, 제-프. 네가 UFO 슛 같은 걸 한 번만 더 해 주면 될 거야."

"물론이지. 리버풀한테 지면 우리는 리그 3위로 만족해야 하니까."

벌써 18라운드.

리그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리버풀이 단 1패만 기록하며 1위,

그 뒤를 승점 2점차로 맨시티가 바짝 쫓고 있으며,

첼시와 토트넘이 3, 4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우리 팀이 2패밖에 안 하긴 했지만, 무승부 경기가 좀 있어서 말이야.

그런데 그걸 떠나서 리버풀과 맨시티는 말도 안 되긴 한다. 1위와 2위 모두 엄청나게 승점을 쌓고 있으니까.

사실 지금 첼시와 토트넘도 다른 리그였다면, 현재 승점으로 리그 1~2위를 차지해야 정상이다.

EPL이, 정말 치열하긴 하다.

여기서 진다면 우리는 어쩌면 1, 2위는 쳐다보지도 못하는 3위로 만족해야 할 그림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실 박싱데이가 시작하면 더 문제지만.'

이미 지쳐 있는 선수들이 눈에 보인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저번 주 유로파 경기에서 로테이션 멤버였지만, 프라하한테 충격패를 당한 것도 체력 부족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모든 대회를 노리는 건 욕심이란 얘기가 나온다.

동감한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막상 경기를 뛰면 이기고 싶어지는데.

리그컵도 포기했지만, 막상 져도 괜찮다고 내보낸 로테이션과 유스 멤버들이 8강까지 만들어 냈는데.

결국, 끝까지 싸워 봐야하는 거다.

물론 전략적인 계산은 감독님이 하시겠지만.

듣자 하니 로만 구단주의 요구 사항이 있다고 들었다.

리그 4위 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FA컵 우승

유로파리그 우승.

흠.

쉽진 않은데 말이야. 언제든 리그 밑으로 처박힐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 경기가 더 중요하다.

리버풀전.

분수령이다.

[리그 1위 리버풀, 3위의 첼시 잡고 맨시티의 추격 떨쳐 낼까?]

[스탬포드 브릿지로 향하는 콥(Kop)]

[리그 18라운드 최대 빅매치, 첼시 VS 리버풀]

쉽지 않은 상대다.

아니, 리그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중 하나다.

옛날에야 온갖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유럽 챔피언을 얕볼 수야 있겠는가.

다만, 리버풀은 EPL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팀 1위였다.

진짜로 모든 팀의 팬들이 리버풀을 싫어한다.

라이벌팀뿐만이 아니라 거의 말이다.

-솔직히 말해 리버풀이 졌으면 좋겠어.

-난 리버풀이 너무 싫어.

-근본 없는 첼시도 싫지만, 리버풀은 더 싫지.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으론 리버풀인데.

-객관적인?

-객관적으로 제퍼슨 리만 한 공격수가 리버풀에 있나?

-모하메드 살라? 걔가 지금 몇 골이지?

-리버풀엔 살라만 있는 게 아니야. 살라, 피르미누, 마네의 삼각 편대를 어떻게 막을 거야?

-너희 리버풀은 제퍼슨 리를 어떻게 막을 생각인데?

-당장 여기서 꺼져. Kop!

[유럽 챔피언을 맞이하는 10년 전 유럽 챔피언]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한 게 벌써 10년 전이라니.

-빌어먹을 보싱와 자식.

-램파드가 트로피 드는 걸 막았지. 빌어먹을 놈.

-그러게. 어울리지 않는 트로피였어. 블루스.

-어울리지 않는 트로피? 어이. 너희 아스날은 트로피가 있긴 해?

-그 킹 앙리가 트로피를 따내지 못했지. 차라리 보싱와가 나아.

-토트넘은 기웃거리지도 마. 격 떨어지니까.

인터넷의 발달은 참 신기하다.

축구팬들끼리의 장외 싸움은 지구 반대편이나, 여기 잉글랜드나 다를 게 없었다.

[첼시, 기다리던 캉테의 복귀. 첼시 전력의 절반이 온다!]

-드디어 왔다!

-그가 왔다!

-킹 이즈 백!

-근데 캉테가 첼시 전력의 절반이라니?

-솔직히 제프가 잘하긴 하지만 팀 영향력에 캉테만큼은 아니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제프야 말로 첼시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글쎄? 캉테가 70%, 제프가 30%쯤 되지 않을까?

-나머지 선수들은?

-필요 없어.

-OMG

음.

내가 3할이라니.

그건 좀 아닌데.

난 스마트폰 자판을 두들겼다.

-리버풀전을 보자고. 내가 보기엔 제프가 적어도 80% 이상이야.

***

프리미어리그에서 제퍼슨 리의 활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든 팀은 첼시를 상대하기에 앞서 경기를 분석한다. 수많은 전력 분석관과 데이터 분석가가 달라붙어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를 본 코치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도대체 이게 어디서 나타난 별종이야?"

"미쳤군. 왜 우리는 얘를 영입하지 않은 거지?"

"돌겠네. 어떻게 막으라고?"

제퍼슨은 약팀에도 쏠쏠한 득점을 올려 주지만,

강팀에게 더 큰 활약을 보여 준다.

아무래도 수비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막강한 수비진의 압박을 이겨 낸다는 건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맨시티가 무너졌군."

"우리한텐 고마운 일이야."

"맨유도 무너졌어."

"그것도 고맙지."

"토트넘도 잡았고."

"걔들은 별로 신경 안 쓰여."

"아스날도 처참하게 졌지."

"호! 이제 보니 우리에게 아주 고마운 친구인데?"

"문제는 우리도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나 코치진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그들의 얼굴에 새겨진 건 자신감이었다.

"우리가 공격력이 뛰어난 팀인 건 명백해."

"그렇다고 수비가 약하다고 착각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지금 리그 최소 실점팀이 어디지?"

"우리 리버풀이라고."

모하메드 살라, 피르미누, 사디오 마네로 이뤄진 공격진.

파비뉴, 조던 헨더슨, 베이날둠의 중원.

그리고 EPL 최고의 수비수인 반다이크를 주축으로 한 알렉산더 아놀드, 조엘 마티프, 앤드류 로버트슨의 수비라인.

거기에 골키퍼 알리송까지.

공격력은 이미 폭발적이었으며,

수비력 역시 리그 최고였다.

특히 반다이크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은 양측 풀백부터, 리버풀이 구축한 수비라인 중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을 어찌 뚫어낸다고 한들, 골키퍼 알리송이 있지 않은가.

"너무 자만하지는 말자고."

그때, 감독 위르겐 클롭이 테이블에 나타나 말했다.

하얀 건치를 드러내고 유쾌하게 웃으며.

"어찌 됐건 현재 리그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수야. 우리는 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맞아요, 코치."

"첼시 팬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우리에겐 제퍼슨 리가 있다고.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

"······?"

"우리에겐, 반다이크가 있다고."

***

경기장에는 뭔가 비장함이 감돌았다.

리버풀 전.

각 클럽간의 수많은 역사가 존재하겠지만, 난 그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리버풀을 상대한다고 해서, 선수들이 모두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잔뜩 기세가 오른 건지는.

런던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첼시 팬들이 많이 있는 장소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마치 생사를 가를 결판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아니건만, 분위기는 마치 그것과 같았다.

그만큼 리버풀을 상대로 지기 싫다는 방증이고, 어떻게든 이기면 좋겠단 팬들의 마음이겠지.

"제프. 바뀐 전술, 괜찮겠어?"

"물론이죠."

감독님은 이번에 전술 변경을 시도했다.

리버풀을 잡으려면, 그간의 방식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리버풀의 양쪽 풀백은 무시무시하지. 솔직히 말해 풀리시치하고, 오도이가 이겨 내기는 힘들어. 중앙의 반다이크도 마찬가지고. 아, 물론 제프. 너라면 반다이크를 뚫어낼 수 있다고 믿지만······."

"알아요, 감독님. 쉬운 상대는 아니죠."

"어쨌든, 오늘 전술이 실패하면 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돌을 맞을 거야. 빌어먹을 자식들."

"그러게, 인터뷰 좀 잘하시지 그러셨어요."

"잘하면 뭐해? 지들 원하는 입맛대로 잘라 써먹는 놈들인데.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군."

"오늘 전술은 성공할 거예요. 제가 감독님이 기자들에게 큰소리칠 수 있게 만들죠."

"오, 제프. 널 보면 요즘 내가 이상해."

"네?"

"내가 마치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니까."

"······어머님이 천주교인이라서요."

어우, 소름이야.

감독님은 필드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선수들을 향해 이런저런 말을 하며, 긴장감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내가 보기엔 본인이 가장 많이 긴장한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은 우리도 할 만했다.

아스필리쿠에타와 뤼디거가 복귀해서, 수비진도 문제가 없다. 중앙에는 캉테가 왔고.

"제프?"

"음? 브래던, 무슨 일이세요?"

잠깐 화장실 좀 가려고 터널로 나간 사이.

스탬포드 브리지의 잔디 관리사, 브래던이 다가왔다.

그는 다소 떨떠름하고도, 미안한 기색이었다.

"오늘 터널에서 같이 에스코트 입장할 아이 중에, 내 손녀딸이 있거든."

"아? 그래요? 이름이 뭐예요?"

"안나라고. 아, 이건 중요한 거 아니고. 혹시 걔가 말을 걸면 무시해."

"네?"

"걔가 말이 참 많아. 순수한데 뭔가 악독하기도 하고. 하여튼 말이야. 무시해. 알겠지?"

손녀딸을 무시하라니.

뭐 이런.

아,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순수한 얼굴로 선수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말을 던진다고 했던가.

윌리안이 저번에 치를 떨던데.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지.

나에게 중요한 건 리버풀전이니까.

***

[핸더슨! 공을 잡습니다! 왼쪽에 피르미누가 선수들을 끌어 내고, 오른쪽에서 안쪽으로 살라가 파고듭니다!]

[기회입니다! 헨더슨, 패스 줘야죠! 어? 그대로 중거리 슈웃! 아, 골문을 빗나갑니다!]

[조금은 아쉬운 판단이었네요. 살라에게 연결됐으면 완벽한 득점 기회였는데요.]

위르겐 클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커룸에서만 해도 컨디션 최고였던 헨더슨이, 터널에서 나온 이후로 영 이상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평소와는 다소 다른 모습.

"쟤 왜 저래?"

"글쎄요."

"음."

코치진도 이해 못 하는 얼굴이었다.

터널에서 나온 순간부터 뭔가 떨떠름한 얼굴이긴 했지만.

'터널에서 상대 선수와 싸웠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생각은 더 깊게 이어지지 못했다.

[맙소사! 제퍼슨 리! 제퍼슨 리가 공을 잡았습니다!]

[어? 포지션이 급격하게 변화하는데요?]

[올리비에 지루와 투톱인 줄 알았습니다만, 아닙니다! 오도이가 중앙 세컨톱 위치로, 제퍼슨이 우측 윙어의 자리에 자리 잡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스트라이커 제퍼슨 리가, 우측 인사이드 포워드로 라인을 질주합니다!]

"뭐?"

클롭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단순한 스위칭인가?

아니다.

이건.

"저 제퍼슨 리를 인사이드 포워드로 쓴다고?"

윙어의 위치에 자리 잡으면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 득점을 만들어 내는 포지션.

클롭 감독은 순간 지금 전술이 변경되는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으로 찾아온 감정은,

극도로 치닫는 위기감이었다.

< 82. 첼시의 8할 (5)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