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LEE will Kill you (2) >
쿵쿵 짝!
쿵쿵 짝!
"이거 들려?"
오도이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를 마킹하던 수비수 다비데 칼라브리아(Davide Calabria)는 미간을 좁혔다.
경기장이 저 박자에 맞춰 일순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발을 두 번 구르고 손뼉을 치는 익숙한 리듬감.
그리고 모든 홈 관중이 한목소리로 내지르는 응원가에 소름이 돋았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LEE가 너희를 죽이려고 들어온다고."
오도이의 말에 칼라브리아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AC 밀란이 첼시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위험인물로 꼽았던 제퍼슨 리의 교체 투입.
동시에 울려 퍼지는 응원가와 표정이 바뀌는 첼시 선수들.
"뭐야?"
고작 선수 한 명의 교체건만,
필드와 관중석에서 변화가 감지되었다.
로테이션 멤버가 적절하게 섞인 1.5군의 첼시 선수진 사이에서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고, 경기장을 울리는 응원가에 밀란 선수들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고작 한 명.
제퍼슨 리.
그의 투입에 필드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
선수는 선발로 뛰는 걸 좋아한다.
당연한 일이다.
팀의 선발이란 건, 그 팀의 중요한 스타팅 멤버라는 것이니까.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교체로 투입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후반 70분에 치닫는 시간대.
이 시간대라면 두 개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단한 선수들도 체력적으로 지친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쌩쌩한 체력으로 필드에 뛰어들면,
뭔가 내가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고?
그야 뭐,
툭!
"Wuuuuuaaaa!"
간결한 발놀림 한 번에 선수를 제치고, 그대로 돌파.
뻥 뚫린 공간을 있는 힘껏 내달리면 시원한 바람이 볼을 빠르게 스친다.
"제기랄!"
"누가 좀 막아 봐!"
여기저기서 험한 욕설이 튀어나오지만, 지친 밀란의 수비진은 불 붙은 속도를 따라붙지 못했다.
쿵쿵 짝!
경기장을 울리는 익숙한 리듬감에 몸이 절로 흥겨워진다.
그리고 빨라진다.
두세 명의 수비를 속도로 농락하며 공간을 파고들 때의 쾌감은 가슴에서부터 고양감을 끌어올린다.
"The Blues!"
밀란의 미드필더 프랑크 케시에(Franck Kessie)가 이를 악물고 쫓아온다.
그러나 우리팀 동료들도 마지막까지 분전했다.
오랜만에 선발 출장한 드링크워터가 그답지 않게 강력하게 차징하며 케시에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 준 사이.
쿵쿵 짝!
귓가에 꽂히는 응원가를 자양분 삼아, 모든 속도를 끌어올린 채 그 끝을 향해 치달았다.
밀란의 수비수 알레시오 로마뇰리(Alessio Romagnoli)가 최후방에서 버티고 섰다.
좋은 위치 선정이다.
치고 들어갈 공간을 미리 점유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틈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쿵쿵, 짝!
You got grin on yo'face,
You big World class!
너는 웃게 될 거야, 너는 위대한 월드 클래스!
가슴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고양감. 관중들의 발 구르기에 맞춰 뛰는 심장. 평소보다 더 빠르게 순환하는 혈액이 온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내 시야는 한층 날카로워지며 모든 감각이 극한까지 치달았다.
그러자 보였다.
아주 미세한 틈.
틈을 향해 낮고 빠르게 찔러 넣는 패스.
"······!"
마지막 체력을 불사르며 우측면을 돌파한 오도이의 발끝에 공이 도달하고,
동시에 깔끔한 원터치로 로마뇰리의 뒤쪽으로 리턴패스.
쿵쿵 짝!
LEE will LEE will rock you!
'LEE'는 널 뒤흔들어 버릴 거야!
"미친!"
로마뇰리가 헛숨을 들이키며 급히 몸을 돌리고 공을 향해 따라가지만,
애당초 나는 패스를 찔러주는 순간에도 가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뒤돌아서는 로마뇰리를 속도로 단숨에 제쳐 버리고 돌아오는 리턴패스를.
LEE will LEE will Kill you!
'LEE'는 널 죽여 버릴 거야!
뻥!
멀리 파포스트를 향해 감아 때렸다.
그대로 때려도 되지만, 이미 각도를 좁히며 달려 나오는 골키퍼를 무너뜨리려면 다소 위험한 슈팅을 시도해야 한다.
까다로운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ianluigi Donnarumma)가 달려오면서 역동작에 걸려 그대로 중심이 무너졌다.
LEE will LEE will Kill you!
'LEE'는 널 죽여 버릴 거야!
결과야 당연한 일이다.
일대일 찬스를 놓치는 것만큼 스트라이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깔끔한 마무리.
골대 안으로 완벽한 역전골이 빨려 들어갔다.
"The Bluuuuessss!"
"제퍼슨!"
"제-----퍼슨!"
후반 72분.
1대1의 치열했던 경기 흐름을 단숨에 끝내 버리는 역전골이 터졌다.
관중석의 팬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환호했고, 마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선수들이 모두 달려와 나에게 매달린 채.
나는 양팔을 크게 펼쳤다.
마치 이 모든 게 내 것처럼. 그런 표정과 동작을 취했다.
"하하하! 그렇지! 스탬포드 브릿지의 주인은 너라고!"
"오만해 보이지만 멋있는데!"
"빌어먹을 이태리 놈들! 언제 적 명문이야?"
"유럽에서 두 번째로 챔스 우승컵이 많은 팀이라고?"
"그런 팀을 우리 LEE가 죽여 버렸군!"
"LEE will Kill you!"
조금 거친 반응이지만,
익숙하다. 미국에서도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았으니까.
한 차례 세레모니를 마치고 센터서클로 돌아가려는 찰나.
허망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양팔을 올리고 있는 돈나룸마가 보였다.
"아직 어려서 그래. 더 나이 들고 경험 좀 쌓으면 막을 수 있을 거야."
음.
영어라서 알아들으려나.
뭐 알바는 아니고.
근데 갑자기 표정이 확 변하는 게,
알아들은 것 같은데?
***
[오도이의 슈팅! 돈나룸마의 선방!]
[돈나룸마, 역전골을 허용한 이후에 마치 각성한 것처럼 세이브를 해냅니다!]
제퍼슨의 역전골로 경기 흐름이 역전되나 싶었는데, 분위기는 다시 묘해졌다.
하칸 칼하노글루(Hakan Calhanoglu)가 환상적인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렸다.
"뛰어! 달리라고!"
필마르크 감독이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뛰쳐나와 소리쳤다.
첼시 선수들은 힘든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분전했다. 그들의 목적은 승리하여 승점 3점을 따내는 것.
밀란은 동점골을 넣은 후 라인을 급격하게 내리고 수비적으로 임했다.
제퍼슨의 무지막지한 돌파력과 스피드를 감안한 조치.
그에 반해 첼시는 라인을 끌어올리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뻑!
"우오오오!"
그러나 또 한 번, 교체 투입된 캉테의 중거리 슛을 막아 내는 돈나룸마의 멋진 슈퍼 세이브.
그 모습에 제퍼슨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브를 하고 크게 포효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돈나룸마.
'음, 내가 각성시켰나.'
제퍼슨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의외로 영어를 할 줄 아나보다.
제퍼슨의 말에 마치 각성한 것처럼 돈나룸마는 연신 멋진 선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밀란이 원하는 대로 2대 2 동점으로 끝날 터.
첼시 선수들은 절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교체 투입된 캉테가 중원에서 부지런하게 뛰어다녔다.
공을 끊어 내고, 패스하고, 달려들고, 전진하면서.
완벽한 박스 투 박스의 플레이를 보여 주며 중원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지친 밀란의 중원은 캉테의 존재감 하나에 잠식당했으며, 경기는 후반 88분까지 첼시가 끊임없이 가둬놓고 패는 일방적인 양상으로 흘러갔다.
만일 돈나룸마가 본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지만 않았다면,
이미 스코어는 아마 4:2까지는 벌어졌어도 무방한 상황.
[밀란의 박스에 거의 모든 선수가 들어가 있네요.]
[제퍼슨의 위협적인 돌파를 감안한 수비라인입니다. 밀란은 원정경기에서 승점 1점으로 만족하겠다는 뜻이죠!]
[아무리 제퍼슨이어도, 이 엄청난 수비블록을 혼자서 뚫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마라도나가 오더라도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해설자의 말처럼, 공격수까지 내려와 혼신의 힘을 다해 수비하는 밀란.
제퍼슨이 두세 명을 화려한 발재간으로 뚫더라도,
공간은 좁았고, 마지막엔 돈나룸마가 있었다.
답답한 양상 속에서.
제퍼슨에게 패스가 향했다.
"자리 지켜!"
"중거리 때릴 공간 내주지마!"
"넌 달라붙어! 이쪽은 내가 막을게!"
밀란의 선수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위험 인물!'
드리블 돌파, 공중볼 경합, 몸싸움, 중거리 슛.
그 모든 게 위협적인 공격수.
밀란의 선수들이 긴장한 채 제퍼슨의 다음 플레이를 기다리는 찰나.
제퍼슨에게 도달한 공은 가볍게 다시 발을 떠났다.
툭!
골문을 등진 채 다시 뒤로 원터치 패스.
캉테가 우측에서 자유로운 오도이에게 바로 원터치로 보냈다.
오도이 역시 공을 받자마자 풀백에게 공을 주며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이뤄지는 짧은 패스 워크에 밀란의 수비진이 일순 당황했다.
박스에 다이렉트로 올리는 크로스를 시도하던 첼시가 갑자기 짧은 패스로 전환한 것이다.
제퍼슨과 캉테가 중심이 되어 좌측, 중앙, 우측을 빠르게 오가는 패스.
모두 힘들고 집중도가 떨어질 시간대지만, 첼시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집중력을 토해 냈다.
선수들은 끊임없이 활발하게 공을 주고, 받고, 움직이면서 밀란의 수비진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형성된 수비 블록에 묘한 균열이 발생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지자, 캉테는 우측으로 파고들어가는 오도이에게 스루패스를 보냈다.
"Wuuuaaaa!"
균열이 발생한 밀란의 수비진.
우측으로 파고든 오도이는 그런 수비진을 향해 곧바로 킥모션을 취했다.
"크로스!"
"막아! 제퍼슨을 막아!"
"제---퍼슨!"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완전하게 열린 공간. 오도이가 마음껏 원하는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타이밍이다.
그러자 모든 관중과 밀란의 선수들이 제퍼슨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늘 완벽한 헤더골을 집어넣어 주던 제퍼슨.
그가 결국 해결해 줄 거란 기대감이었다. 늘 승리를 만들어 주고, 팀을 구해내 주던 해결사에게 향하는 감정. 그 모든 게 뜨거운 열기가 되어 제퍼슨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제퍼슨이 움직였다.
밀란의 수비 세 명을 양옆에 달고 골문으로 쇄도하는 제퍼슨.
[제퍼슨! 공간으로 파고듭니다!]
뻐엉!
[오도이, 기다렸다는 듯이 잘 감긴 크로스를 올립니다!]
한데 오도이의 크로스는 길었다.
쇄도하는 제퍼슨이 아니라, 더 멀리 향하는 크로스.
"······!"
"미친!"
밀란 수비수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모두가 제퍼슨에게 집중된 상황.
심지어 세 명이 제퍼슨에게 달라붙었다. 균열이 발생했던 수비 블록이 한순간 완벽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왼쪽에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풀리시치! 노마킹 찬스입니다!]
[풀리시치가 뛰어올라 헤더를 시도합니다!]
프리 상태에 놓인 풀리시치가 오랜만에 점프하며 헤더를 시도했다.
하지만 헤더 능력이 부족한 풀리시치였기에,
위력적인 헤더는 나오지 못했다. 살짝 옆으로 빠져나가는 공을, 달려든 밀란의 수비수가 발끝으로 걷어 내려는 찰나.
"제---프!"
오른쪽에서 쇄도했던 제퍼슨이 모든 수비수의 방해를 이겨 내고 먼저 공에 발을 갖다 댔다.
수비의 발이 먼저 높게 떠오른 상항.
제퍼슨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들어 반박자 빠르게 공을 먼저 밀어 넣는 것에 성공했다.
"Wuuuuuuaaaaaaaa!"
"제-퍼슨!"
"제-프! 제-프! 제-프!"
스탬포드 브리지가 진동했다.
고막이 멍멍할 정도로 격한 환호가 쏟아졌다.
노심초사하며 끝까지 지켜보던 관중들은 모두 첼시의 푸른 깃발을 마구 흔들며 열광했다.
기민하고도 재빠른 움직임으로 제퍼슨이 만들어 낸 재역전골이자 게임을 끝맺을 결승골.
"허."
질린 얼굴로 제퍼슨을 쳐다보는 돈나룸마가 애꿎은 잔디를 때리며 격한 감정을 쏟아 낼 때.
제퍼슨은 피식 웃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너무 상심하지 마! 더 크면 막을 수 있을 거야! 넌 아직 어리잖아?"
"······Sei fuori di se(정신 나간 놈)!"
제퍼슨은 알까.
본인이 돈나룸마보다 어린 선수라는 사실을.
***
[첼시, 유로파리그 3연승! AC 밀란을 3대 2로 무너뜨리며 토너먼트 진출 가시화!]
[제퍼-슨 리! 교체되어 경기를 결정 짓다! 2골로 승리 견인!]
[완벽한 스트라이커의 전형.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유럽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
[AC 밀란, 분전했지만 첼시의 'LEE'라는 전략 무기를 막지 못해]
[다시 한번 유로파 우승을 꿈꾸는 첼시!]
[리그와 유로파 모두 상승세!]
[잔루이지 돈나룸마, "LEE가 세리에가 아닌 EPL에서 뛰고 있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가 세리에서 뛰었다면 내 무실점 경기 수에서 2경기는 무조건 줄어들었을 것."]
< 74. LEE will Kill you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