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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73화 (73/258)

< 73. LEE will Kill you (1) >

"좋은 계약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첼시가 미국 스포츠 시장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니, 저 역시 기쁩니다."

첼시의 구단주 로만은 사업가다.

협상 자리에서 웬만해선 감정을 노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런 로만도 지금은 시원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메인 스폰서십 계약은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죠."

"모쪼록 이 계약이 오랫동안 문제없이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첼시의 유니폼 메인 스폰서였던 요코하마 타이어와의 계약이 끝났다.

요코하마 측에선 계약 연장을 제시했지만, 때마침 미국 유수의 기업에서 스폰서십 계약을 제안해 왔다.

여러모로 저울질하던 로만 구단주는 고심 끝에 미국을 선택했다.

미국이란 새로운 시장이 너무나도 커 보였던 것이다.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미국은 축구에 대한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럽 축구팀으로 첼시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풀리시치와 제퍼슨 리까지.'

로만 구단주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두 명의 미국 스타 때문에, 미국의 축구팬들은 모두 첼시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미국 기업이 스폰서를 제안하는 건 당연한 일.

심지어 그 금액도 천문학적인 수준.

'EPL 최고 기록인가?'

맨유의 스폰서 기록을 단숨에 제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로만 구단주는 이 상황에 다시 힘을 얻었다.

작년엔 무관이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미국 스타인 LEE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면서 첼시는 상승세를 탔다.

비록 리버풀이라는 압도적인 강팀이 1위 자리를 지키고, 맨시티란 벽이 아직 남아 있지만.

시즌은 길다.

어느 순간 역전할 기회가 오리라.

'LEE가 부상만 안 당하면 가능성 있어.'

가슴이 뛰었다.

다시 한번 리그와 유로파를 제패할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고, 이쁜 자식.'

로만은 당장 영국으로 날아가 제퍼슨의 볼에 키스를 해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직 입국 금지가 풀린 게 아니었으니까.

어찌 됐건 LEE 때문에 새로운 스폰서도 찾고, 미국에서도 활발한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을 거 같으니 그가 예뻐 보일 수밖에.

'혹여 나중에 감독이 그를 팽하더라도, 내가 지켜야지.'

로만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뭐, 필마르크가 제퍼슨 리를 버릴 가능성은 1퍼센트도 없지만.

"첼시가 이번 시즌에 우승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업에도 좋은 일이니까요."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EPL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나, 적어도 올해 두 개의 트로피는 따낼 거라 기대합니다."

리그는 다소 무리더라도, 유로파와 FA컵. 로만 구단주는 두 개를 차지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선수 보강을 착실히 해낸 다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노린다.

이것의 그의 플랜이었다.

"자, 사진 한번 찍으시죠."

"아, 좋습니다."

팟팟팟.

사진이 찍히고, 스포츠 언론에는 여러 기사가 올라왔다.

[첼시, 요코하마 타이어와 메인 스폰서십 계약 종료.]

[새로운 스폰서십 '테슬라'와 5년 계약 체결]

[역대 최고 금액, 메인 스폰서 계약. 맨유의 3억 파운드 계약을 뛰어넘어]

[제퍼슨 리와 풀리시치, 두 명의 미국인 스타를 품은 첼시. 미국 시장 겨냥.]

[첼시 구단과 팬들은 'LEE'를 이번 시즌 최고의 선물이라고 여긴다.]

***

토론토는 MLS 정규리그를 우승했다.

음, 리그 종료가 한 달이나 남았는데도 우승을 확정 지었단다.

내가 떠나고 많은 사람이 토론토가 몰락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트로피가 배송됐다.

[MLS 정규리그 득점왕- 제퍼슨 리]

"뭐야. 득점왕?"

"응. 이적하기 전에 세운 득점 기록이 안 깨졌나 봐."

"몇 골인데?"

"33골."

"······네가 풀경기 다 뛰었으면?"

캉테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이적 안 하고 리그 전체를 다 뛰었으면.

못해도 50골은 넣지 않았을까.

그땐 정말 골감각이 절정이었으니까.

뭐, 지금도 마찬가지고.

플레이오프도 꼭 우승하라고 산티아고와 로드릭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산티: 진짜 내가 미친 듯이 골 넣었는데

-산티: 득점왕 못함

-산티: 미친놈아

-로드릭: 미친놈이야 떠난 제프가 루니 즐라탄 산티 다 이기고 득점왕.

-산티: 나쁜 놈, 내 득점왕 내놔

음.

산티아고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다.

리그 29골.

그 나이대에, 물론 나랑 동갑이지만.

센세이셔널한 활약이다.

벌써 듣기로는 유럽 여러 클럽이 그에게 관심이 있다니까.

이러다가 카타르 월드컵도 같이 갈 것 같은데.

회귀 전 카타르 월드컵 땐 산티가 없었다.

그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도 23년인가, 24년쯤이다.

회귀 전과는 달리 너무 빠르게 축구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 나쁘지 않지.

좋은 스트라이커 파트너다. 그가 대표팀에서 같이 뛴다면. 그러고 보니 다음 엔트리에 산티가 등록되려나. 득점 29개면 충분히 엔트리에 오를 만한데.

"EPL 득점왕도 할 기세인데. 제프?"

캉테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현재 내가 16골로 득점 1위였다.

2위가 해리케인과 아구에로가 12골이었다.

하지만 4골 차이는 어느 순간 확 좁혀질 수도 있다. 특히나 다른 스트라이커도 클래스가 있어서, 어느 한 경기에 갑자기 4골을 쏟아붓는 일도 가능하다.

그래도 욕심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EPL 데뷔 첫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한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하지만 장애물은 많았다.

우선 체력.

FA컵까지 시작하면 진짜 체력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나도 나지만,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서로를 보완해 가며 득점을 생산해야 할 터.

때문에 어느 순간 부침은 분명 겪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최소화하고, 잘 이겨 내냐가 중요하다.

팀 훈련이 끝나고, 에이전시의 제크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돈 필요하십니까?"

"네?"

······내가 돈 못 벌어 한이 서린 귀신인 줄 아나.

제크는 가벼운 조크였다면서 웃었다.

"다름이 아니라 재계약을 한 번 논의할까 생각 중입니다."

"벌써요?"

이적한지 반년도 안 지났는데?

"지금 워낙 대단한 활약을 보여 주고 있어서요.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하면, 내년 여름에 재계약이 진행될 겁니다. 어떻게, 진행해 볼까요?"

제크 팀장이 눈을 빛냈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나도 첼시란 팀에 충분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좋은 동료들과 좋은 감독, 그리고 열정적인 팬들은 아직은 내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 주고 있다.

물론 프로의 무대에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갑자기 팀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면 제크의 말대로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내는 게 맞는 일이다.

돈이 엄청 급한 건 아니지만, 슬슬 율리아겐과 디 파코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

'제퍼슨의 괴물 같은 피지컬을 유지해 주는 미친 트레이너가 있다!'

라는 소식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단 얘기다.

저들을 트레이닝 팀에 붙들어 놓으려면, 나 역시 저들에게 높은 급료를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돈이야 많으면 좋은 거다.

물론 거기에 너무 매몰되면 나쁜 일이지만.

"준비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음. 이런 겁니다."

제크 팀장은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스탬포드 브리지. 파란 유니폼으로 둘러싸인 관중 속에 일단의 무리가 찍혀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아니 선글라스를 쓰면 축구 경기가 잘 보이나?

"이들이 누군데요?"

"레알 마드리드 스카우터입니다."

"······!"

"이 사진 한 장이면 단숨에 몸값을 올릴 수 있죠. 레알 마드리드니까요."

"아!"

"지금부터 기사를 조금씩 터뜨리면서, 이적 시장을 흔들면 구단 수뇌부의 몸이 달아오를 겁니다. 먼저 재계약하자고 얘기하겠죠. 아직 계약 기간이 2년 반 남았으니, 조금씩 질질 끌면서 여름에 계약 조건을 확 올리면 되죠."

"음. 알겠습니다."

제크 팀장은 분명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내 에이전시에 소속된 에이전트 모두가 그랬다.

그리고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 점은, 어떤 사항이든 우선 나에게 허락을 받고 나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인 스폰서십도 모두 내 의사가 중심이 된 채로 진행됐다.

"아디다스 광고 CF는 아마 2월 EPL 휴식기에 촬영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 슈퍼스타들이 찍는다는 아디다스 CF에 섭외가 됐다.

내 개인 스폰서에 아디다스가 추가되어서 말이다.

음, 바쁘네. 축구 외적으로도 할 게 많아졌어.

그래도 다음 경기는 준비해야 한다.

맨유전 이후 고작 3일 만에 치르는 경기.

유로파 조별리그, 3차전 AC 밀란전이 다가왔다.

***

최근에 스탬포드 브리지에 변화가 생겼다.

"태극기 들어도 되냐?"

"음. 미국인인데 좀 그런가."

"그래도 저번에 영상 보니까 한국말 잘하던데. 태극기 들고 있는 팬들한테 먼저 다가왔잖아."

일단의 동양인 관중.

바로 한국인들이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런던 유학생을 비롯한 여행객이 간간히 경기장을 찾았다.

바로 제퍼슨의 영상이 한국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토트넘전, 경기장을 찾은 한국인 팬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어린 꼬마 팬에게 유니폼을 벗어서 선물해 주는 장면.

그 동영상은 생생한 대화까지 모두 담은 채 유튜브에 업로드됐다.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

현재 EPL에서 가장 핫한 한국계 공격수가 능숙한 한국말로, 한국에서도 응원해 달라는 말을 하다니.

축구를 좋아하는 한국팬들, 런던 유학생들, 유럽 여행객들까지.

모두 한 번씩 제퍼슨의 경기를 보고자 스탬포드 브리지를 찾은 것이다.

"야, 그래도 태극기는 쫌."

"그러게. 한국계라서. 그래도 미국인이잖아."

그들이 나누는 얘기는 바로 태극기를 드냐였다.

보통 한국 선수를 응원할 때 태극기를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카메라에도 잡히고, 선수의 눈에도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퍼슨은 엄연히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다소 망설였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넌 뭔데 성조기를 갖고 왔냐."

성조기였다.

성조기를 꺼낸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응. 우리 할아버지가 집회에 자주 나가셔서, 집에 있길래 갖고 옴."

"······아."

결국, 그들은 사이좋게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었다.

물론 제퍼슨을 응원하는 플래카드까지.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제퍼슨은 후보였다.

필마르크 감독은 유로파 조별리그보단 EPL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제퍼슨을 리그에서 쓰는 데 중점을 맞췄다.

비록 제퍼슨이 없어도 유로파는 지루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에.

"와, 재밌긴 하네."

"그러게. 둘 다 만만치 않아."

"밀란 애들 유니폼 멋진 거 같아."

"그나저나 LEE는 안 나오나?"

"음, 보고 싶은데."

"혹시 알아? 유니폼 던져 줄지?"

경기는 치열하면서도 재밌게 흘러갔다.

일대일의 스코어.

첼시는 이미 2승을 거뒀기 때문에 무승부를 거둬도 큰 부담은 아니다. 하지만 3승을 먼저 챙긴다면, 다음 경기를 훨씬 여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 필마르크 감독은 후반 70분에 승부수를 던졌다.

[OUT No.18 올리비에 지루]

[IN No.9 제퍼슨 리]

"오! 나온다!"

"제퍼슨이다!"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인 팬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은 심장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감동받아서?

아니었다.

경기장이 말 그대로 흔들렸다.

쿵쿵 짝!

쿵쿵 짝!

첼시의 홈팬들이 모두 일어나 바닥을 크게 두 번 구르고 손뼉을 쳤다.

귀에 익숙한 박자감이 피부를 타고 전해지자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나, 이거 들어봤는데. 그 영화에."

"바보야, 퀸 노래잖아."

"그게 왜 여기서?"

퀸의 노래 'We will rock you'를 개사한 응원가가 4만 홈팬들의 입을 타고 동시에 흘러나왔다.

Buddy, You're a 'LEE' man

친구! 너는 'LEE'야.

LEE man who plays for the Chelsea gonna be a big man someday.

LEE는 언젠가 위대한 사내가 되어 첼시에서 뛸 거야.

You got grin on yo'face,

You big World class!

너는 웃게 될 거야,

너는 위대한 월드 클래스!

"와 미쳤다."

4만 명이 동시에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한 명을 응원하기 위해 부르는 응원가.

한국팬들은 온몸에 소름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LEE will LEE will rock you!

'LEE'는 널 뒤흔들어 버릴 거야!

LEE will LEE will Kill you!

'LEE'는 널 죽여 버릴 거야!

Sing it!

노래해!

LEE will LEE will Fuck you!

'LEE'는 널 엿 먹일 거야!

"맙소사."

팬들은 그 광경을 감탄사를 터뜨리며, 빠르게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어떤 관광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감을 영국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 73. LEE will Kill you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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